요새 석정이는 핸드폰으로 친할머니(제 어머니 이평숙 사모님) 사진을 보여주면 사진에 뽀뽀를 하고, 역시 할미, 할미.. 를 부릅니다. 엊그제는 고모(제 여동생 원정인 선생)와 잠시 통화를 하고 나서 아직 말도 잘 못하는 두 살짜리 아기답지 않게, 뭔가 아련한 그리움에 싸인 표정으로 한참을 앉아있기도 했습니다.전화로 귀국하신 장모님을 바꿔드렸더니 손짓 발짓을 하며 ‘우어 우어 할미 할미 우어 히히 우어 어엉.. ’하고 뭔가 부지런히 이야기하는데.. 귀여우면서도 차마 계속 바라보기 어려웠습니다.
사실 신학생시절, 전도여행 중에 정말 안타까운 선ㄱ사 자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며칠간 같이 살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이도 있었고, 우리가 있어도 소 닭 보듯 티브이에서 고개도 안 돌리는 아이도, 정성스럽게 준비해 간 선물도 건성으로 받고 눈도 안 마주치던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슬픈 작별과, 간이라도 빼줄 듯 사랑하다 열흘 만에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던 단기 사역팀의 배신(?)을 격었던 것일까 하는 마음도 듭니다.
그리고 우리 석정이도 그 아픈 길에 들어섰다는 게 이제 실감이 납니다.
제 탈북 청소년 제자들은 듣고 나면 며칠을 기도하지 않고는 소화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갖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거나 꼭 껴안고, ‘선생님도 알아, 사랑해.’ 라는 말을 공허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배나 많은 아픔이 필요했습니다.
양화진에 가면 수많은 어린이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조선 땅에서 아이를 잃고, 그 아이들을 이 땅에 심은 선ㄱ사님들, 그 파란 눈의 천사들이 흘린 눈물로 젖어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사실 그 헤어짐, 그리움의 무게는 아직도 그려지지 않습니다. 차마 각오하기에는 너무 큰..
분명 충성을 바친 만큼만 외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피를 흘린 만큼만 주장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요즘 선ㄱ사라는 말이 쉽게 쓰여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찬양 사역자라고 한 걸, 찬양 선ㄱ사, 영상 사역자는 영상 선ㄱ사, 청소년 사역자도 청소년 선ㄱ사, 군대가는 청년도 군 선ㄱ사.. 선ㄱ사 대 풍년 시대입니다. 물론 모두가 선ㄱ적인 마인드로 살아야 하겠지만, 이제는 낭만적인 열정을 넘어 뭔가 세련됨까지 느껴지는 추세입니다.
저는 이제 먼 길의 첫걸음을 내딛었을 뿐입니다. 두 살짜리 아들과 아내의 눈물에서.
사실 세상에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거나, 조국을 떠나거나, 나그네가 되거나, 병에 걸리는 것 같은 비극과 아픔이 무궁 무진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악한 정권 때문에, 이상한 종교나 철학 때문에.. 등 이유도 여러 가지지요.
겸손하게 순종하여 들어가는 것이 선ㄱ사의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흘려진 눈물은,
절망 속에서 흘려질 수많은 눈물을 그치게 할 것입니다.
두 살 난 어린 아들은 생애 처음으로, 주님 때문에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앞으로 잃어야 할 것들을 잃어가는 먼 길을 온전히 완주하게 하시고,
그 대신, 주님께서 잃어버리신 영혼들이 찾아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주님의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