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월요일 밤부터 수요일까지는 앓았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이규학 목ㅅㅏ님 댁 이사를 도왔고, 주일에는 이명길 선교ㅅ ㅏ의 이사 문제로 약간의 무리가 있었지만 휴일(월요일)에 푹 쉬면 충분히 회복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정상이 아닌 몸으로 월요일에도 무리를 했더니, 마지막 한 방울에 잔이 넘치듯 결국 몸의 균형이 무너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들 석정이와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장모님께서 귀국하신 후로는 육 개월 된 송정이 때문에 가족 외출이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우기라 매일같이 폭우가 쏟아지고요. 그래서 석정이는 안쓰러울 정도로 답답해 하고, 며칠에 한번 외출할 기회만 생기면 방방 뛰며 좋아합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서 오토바이 택시로 약 30분 거리에는 ‘이노르빗’이라는 최고급 쇼핑몰이 있고, 그곳에는 건물 구석구석을 순회하는 장난감 기차가 있습니다.(10분 타는데 100루피) 저번 주 아내 생일에 처음으로 그 기차를 태워 주었더니, 그 후로 석정이는 틈만 나면 ‘기차 기차’ 하고 노래를 부르고 뽀로로 영상에서도 기차만 나오면 ‘칙칙 폭 폭 때~’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다가도 일어나서 자기가 기차를 탔던 핸드폰 동영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걸 보고 나면 다시 행복하게 잠이 들곤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휴일인 월요일에 장도 볼 겸, 데려가서 기차 태워 주마고 여러 번 약속을 했던 것입니다. 비록 말 못하는 아이도 느끼는 게 있기에, 저는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거리도 만만찮고, 값도 비싸고, 무엇보다 오전 힌디, 오후 영어 수업에 태권도, 심방 등등 평일에는 그곳을 다녀올 짬이 나지 않습니다. 저 없이 아내가 아이 둘과 다녀올 수도 없구요.)
그렇게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몸은 으슬으슬 했지만, 결국 폭우를 해치고 가족들을 이노르빗에 데려 가서, 석정이의 소원을 풀어 주었습니다. 아들이 박장대소하며 행복해 하는 것은 뿌듯했지만 저는 그 작은 기차에서도 멀미를 느끼다가, 결국 아내의 장보기도 이명길 선ㄱ사에게 도와 달라 부탁하고 장난감 기차 정거장 근처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임무를 완수한 가장의 뿌듯함 속에 앓아누워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삼일간은 최소한의 활동(학교 아침 기도회 참석 등) 외에는 거의 잠만 잤습니다. 침도 잘 안 삼켜지고, 열도 많이 났지만 다행히 속은 탈나진 않아 견딜 만 했습니다.
목요일에는 다시 털고 일어나서 힌디공부와 영어 공부도 시작하고 수라지 목사님과 슬럼 심방도 다녀왔습니다. 폭우가 자주 쏟아지는 시기에 열악한 곳들을 다니는 데는, 군대에서 사용하던 장교우의처럼 쓸모있는 게 없었습니다. 몸 상태도 별로였고, 그 슬럼은 무슬림 우범지대이기도 했지만(올드 봄베이의 반두프 지역), 그 우의를 걸치니 사관후보생 시절의 패기가 다시 쏟아나더군요. 그렇게 노동자들, 창녀들, 빈민들의 눈길을 한눈에 받으며 씩씩하게 다녀왔습니다.
그날은 아버지 원성웅 목사님의 환갑이기도 했습니다.
심방 가기 전에 안부 전화는 드렸지만,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더군요. 심방 다녀와서 페북 사진으로만 가족 모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저희 없이 파티가 진행되었습니다.
제 새터민 제자 이야기가 생각나더군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멋진 생일 파티를 해 주는데, 도리어 북에 있는 자기 엄마가 더욱 더욱 보고 싶어지더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북에 있는 엄마도 오늘이 내 생일인줄 알고 있을 텐데..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고 싶을 텐데.. 이렇게 해 주지 못해서 얼마나 슬플까..
사진 속에서 부모님은 두 달 전에 결혼한 여동생 부부와 함께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동생이 직접 구운 케이크가 테이블 위에 예쁘게 놓여 있더군요. 저는 그 시간에 슬럼 매춘골목의 한 집에 들어가 옛날 군복 외투를 걸어놓고 할머니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도, 동생도 저희와 함께 식사하고 싶었을 텐데.. 저나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석정이랑 송정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보이면 마음이 어떠실까.. 이제는 그 마음을 평생 갖고 사셔야 할 텐데. 평생 1년에 열한달은 아들과 손자들을 그리워하시면서..
좋은 것을 못 갖는 아픔보다, 자식에게 좋은 것을 못 주는 아픔이 더 큽니다. 아들에게 장난감 기차 한번을 태워주기 위해서라면 하루 이틀 쯤 아파서 누워도 행복하다는 마음이 초보 아빠인 저에게도 있는데 말입니다. 선교는 이렇게 불효막심한 것입니다. 한 가족의 슬픔이 통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환갑 자리에 아들과 손자들이 없었던 슬픔의 대가로, 그날 가족 없는 슬럼의 할머니 들은 저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즉, 그날의 사역을 위해 대가지불을 한 분들은 우리 부모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날, 한 과부 할머니가 저에게 22루피(440원)를 헌금했습니다. 자기 집이 없어서 크리스천인데도 힌두교 신전에서 자는 분이었습니다. 일생 처음 드린 헌금이라고 하더군요. 동전 하나 하나를 꺼내는 지갑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그 돈은 차마 쓰지 못하고, 예배때 드리기 위해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세 용사가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오자, ‘용사의 피 같은 이 물은 내가 마실 수 없다.’ 라고 하며 하나님께 바치던 다윗의 마음이 살짝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언젠가 석정이와 송정이에게 아버지로서 하지 못할 일을 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는데,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할 수 있는데 그 길을 아버지의 손으로 포기하게 하는 날. 함께 살 수 있는데, 따로 살게 하는 날.. 하지만 그로 인해서 아비 없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존재가 주어진다면, 그것이 밀알이 죽어 많은 열매 맺는 길일 것입니다. 선ㄱㅛ는 기회가 아니라 포기라고 배웠습니다.
또한 언젠가 저에게도, 자녀와 손자들이 그들의 사명의 자리에 가 내 곁에 없음을 아쉬워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아들도 선ㄱ사가 되라고 서원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느끼는 자녀의 빈자리 덕에 자녀 없는 이들의 마음 한 켠이 채워질 수 있다면.. 그 아픔 역시 밀알의 죽음처럼 30배 60배 100배를 맺을 것입니다.(제발 물질에만 이 구절을 적용하지 마시길)
제가 앞으로도 숱하게 삶 속에 맞닥트려야 할 이런 아픔들을 스킵하지 않는 선ㄱ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대대에 걸쳐 저희 가정을 흩으셔서 더 큰 하늘 가정들이 형성되게 하시기를. 그리고 그런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더욱더 늘어나게 되기를.
이곳에는 추수할 것은 너무 너무 많은데 일꾼이 없습니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또 제가 좋은 추수꾼이 되기를.
또 누군가 이 땅에 더 오기를.
주님의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