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훈목사님과의 특별인터뷰 ‘나의 사랑 나의 찬송’
사진 아래로 가시면 박재훈목사님에 대한 내용을 보실수 있습니다.
2013년도 7월 7일 현재 91세 이시고 암(갑상선, 전립선)과 당뇨로 투병중이시고 왼쪽눈은 실명이 되셨지만 여전히
손양원목사 일대기 오페라를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작곡을 하심, 오페라 손양원은 이미 예술에 전당에서 공연되었음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음악사랑’, ‘주님사랑’ ‘나라사랑’ ‘어린이사랑‘의 한 길 인생
대음악가 박재훈 목사님(朴在勳 호: 一麥 1922∼ 강원도 김화)
한국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인
<어서 돌아오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 <눈을 들어 하늘 보라>와
수십 년 동안 한국교회 여름 성경학교의 주제가였던 <흰구름 뭉게 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해 명랑하게…>(시편 23편 하나님은 나의 목자와 더불어 제가 어릴적 피리로 가장 많이 부른 18번 곡이었음)
그리고 동요 <산골짝에 다람쥐>, <시냇물은 졸졸졸졸>, <송이송이 눈꽃송이>,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 >의 작곡가 !!!
작곡가요 합창지휘자인 박재훈 목사의 작곡 분야는 거의가 교회음악이다. 그는 한국 교회음악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인물이다. 박재훈은 1922년 강원도 김화군 김성면에서 박창숙의 4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자라면서 기독교적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네 아들 중 하나였는데, 네 형제 모두가 후에 목사가 되었다.
박재훈은 미국 감리교회의 선교사 문요한이 세운 평양의 「요한 학교」에 입학하여 1943년 3회로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제국 고등 음악학교에 입학했다. 학생 시절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을 당했으나 훈련소에서 도망쳐 귀국한다. 귀국 후 평남 강서군 문동 국민학교의 교사로 교편을 잡으면서, 평양에 살던 이유선으로부터 작곡법을 배웠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애창하는 「어서 돌아오오」1943)는 이 무렵 작곡된 곡이다. 1946년 4월,서울로 월남하여 산에 있는 금양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해방 이후 작곡해온 동요들을 모아 『일맥동요집』을 출판하였고, 그의 동요 20여곡이 음악교과서에 실려 많이 불리게 되었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산 높고 물 맑은 우리 마을에」, 「산골짝의 다람쥐」, 「시냇물은 졸졸졸졸」, 「송이송이 눈꽃송이」 등. 그 후 그는 대광 고등학교의 음악 교사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면서 새로 설립된 중앙신학교를 다녀 제 1회로 졸업하였다. 6·25 전쟁 때에는 해군 정훈음악대에 복무하면서 피난 시절 부산에서 한국교회음악협회를 창립하는 일원이 되기도 한다. 전쟁 후에는 기독교 방송 음악 과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영락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일했다.
그는 37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하여 웨스트민스터 합창 대학에서 공부한 후 크리스천 신학교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하여 다시 영락교회의 지휘자가 되었고, 한국 찬송가 위원회 간사와 음악전문위원을 지냈다. 그리고 교회음악학교를 설립하고 싶어했던 그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서울 기독교 음악원」을 창설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1963년에서 1965년까지는 『교회와 음악』이라는 전문 교회음악잡지를 자신이 운영하던 교회음악사에서 격월간으로 펴냈다. 그리고 서양 교회음악 합창곡들을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지휘자 장수철이 타계한 후 그의 후임자가 되어 선명회 합창단을 이끌고 북미 지역을 순회 연주하기도 했다. 1966년 순회 연주 도중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아주사 패시픽 대학으로부터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과 합창지휘를 가르쳤다. 1967년 「서울코랄」을 창단하여 정기적 연주회를 열고 두 개의 음반을 낸다. 1971년에는 오페라 『에스더』를 작곡한다.
박 목사님은 1973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는 할리우드 한인장로교회의 음악책임자가 되었으며, 동시에 그는 로스앤젤러스 서울 코랄을 만들어 합창지휘활동을 계속했다.
1977년에는 다시 캐나다로 자리를 옮긴다. 거기서 토론토 한인 연합교회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1979년 토론토 한인 합창단을 창단하여 지휘하였다. 1982년 회갑을 넘긴 그는 목사 안수를 받는다. 그리고 1984년 영락교회의 주문에 의해 <성 마가 수난음악>을 작곡하여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첫 연주회를 열었다. 1984년 토론토에 큰빛장로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사가 되었고 1990년 목사직에서 은퇴했다. 그는 담임목사 직을 그만 둔 후 그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남아 그가 원로목사로 추대되는 1994년까지 일했다.
박재훈의 가장 큰 활동 영역은 성가대 지휘자와 합창단 지휘자였다. 그 다음으로 목회자와 교육자였다. 하지만 교육자는 그가 스스로 포기한 분야였다는 점에서 그의 독특한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는 우선적으로 교회음악가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거의 교회음악에 국한되는 것은 그 증표이다. 후대는 그를 합창 지휘자, 목회자, 교육자로 기억할 뿐 아니라 위대한 교회음악 작곡가로 기억할 것이다.
그는 목회를 하면서도 그리고 은퇴 후에도 대단히 부지런한 작곡가였다. 작품의 크기도 한국교회에서는 드물게 보는 대작들이 많다. 오라토리오 『성 마가 수난 음악』과 『뿌리, 온 땅에 편만하리』, 그리고 내용상으로 보아 교회음악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오페라 『에스더』와 『유관순』 등이 그러하다. 박재훈 목사가 한국 교회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는 단순히 그의 음악을 한국교회가 애창한다는 데에 있지 않다. 물론 그는 한국교회가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가들의 작곡가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지내온 것」,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산마다 불이 탄다」,「주는 저 산밑의 백합」 등이 그것들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1947년 이후 6회에 걸쳐 발간한 『찬미』 시리즈이다. 이 악보 모음집은 거의 자신의 작품으로 되어 있고, 일부는 장수철의 곡도 들어 있다.
그 이전에는 한국 작곡가들이 교회음악을 작곡하여 교회로 하여금 부르게 하겠다는 의욕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있다면 겨우 어린이 찬송가 정도였다. 하지만 박재훈은 『찬미』 시리즈 물을 통하여 그러한 의욕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그는 찬송가와 성가곡들을 작곡하여 세상에 내어놓았는데, 이는 진정한 의미의 한국 교회음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것은 사재를 털어서 만든 출판물이었다.
박재훈의 음악은 실험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친근하고 잘 불릴 수 있는 서양식 음악으로 자신의 작곡작업을 시작했다. 초기 음악들은 성악적 선율에 보편적 화성을 붙인 서양식 삼화음 위주의 부담 없는 찬송가, 독창곡, 합창곡을 썼다. 그는 선율의 아름다운 구성에 관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주는 저 산밑의 백합』이 그런 곡이다. 그는 멜로디 성부가 아닌 성부들도 상당히 성악적으로 다듬었다. 그러다가 1964년을 기점으로 그의 음악은 새로운 경향을 띠는데, 그것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이다. 예를 들어 독창곡집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에 실린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을」과 독창곡집의 제목과 같은 곡이 완연하게 한국 전통음악과의 관련성울 보여준다. 그러나 전통음악적 성격을 가진 그의 작품은 서양음악의 보편적 3화성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통적 리듬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끔 병행4도의 연속이 나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 또한 한국적이라 느껴지는 음계와 장식음들의 사용도 눈에 띈다.
작품집, 잡지, 저서, 레코드 목록
『일맥 동요집』서울 1946.
『찬미1』 애민문화사 1947.
『찬미2』 애민문화사 1949.
『찬미3』 전도사 1951.
『찬미4』 전도사 1952.
『찬미5』 전도사 1953.
『찬미6』 찬미사 1954.
『찬송가 합창곡집 3』 찬미사. 연대미상
찬송가 해설서 『찬송가 작가의 면모』 교회음악사 1955.
『주일학교 음악지도법』 교사양성 총서 장로교 총회 교육부 1956.
격월간지『교회와 음악』교회음악사 1964-66.
서울코랄 찬송가 레코드 1집『만세반석 열리니』, 2집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한국 찬송가집 1』 교회음악사 1970.
오페라 『에스더』 1971.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교회음악사 1972.
『목마른 사슴같이』 교회음악사 1973.
『고난의 주』교회음악사 1979.
오라토리오적 수난곡 『성 마가 수난음악』 영락교회 음악부 1983.
『십자가를 지신 예수』 아가페 음악선교원 1988.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교회음악사 1989.
『찬양하라 창조의 주 하나님을』 교회음악사 1991.
『예수 그리스도 찬미』기독교음악사 1995.
오라토리오 『뿌리, 온 땅에 편만하리』 영락교회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1995.
『창조주 여호와』 호산나 음악사 1997
『깨어 기도하자 주님 오신다』 기독교음악사 1999.
편찬서
『한-러 찬송가』 교회음악사 1992.
『한영 찬송가』 Korea-English Hymn Book Publication Commission 1983.
『손에 손을』 Korea-English Hymn Book Publication Commission 1983.
참고문헌
김수연. 박재훈의 교회음악에 관한 연구.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9.박진나. 박재훈 찬송가에 관한 연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0.
김숙희. 박재훈의 성가독창곡에 관한 연구.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0.
홍정수. 교회음악가의 교회음악관 -나운영과 박재훈의 경우- 장신논단 제13집 1997. 12. 1. 449-467쪽.
홍정수. 한국 교회음악사상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0.
나진규. 박재훈의 찬송가 눈을 들어 하늘 보라에 나타난 시적 음악적 표현 어법. 『연세음악연구』 제5집 연세음악연구소, 1997. 207-224
조덕영 목사의 글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