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해외 교민사회 존재는 한국에 큰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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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해외 교민사회 존재는 한국에 큰 행운”

올해는 1903년 한인들의 첫 해외 이주인 하와이 이민이 시작된 지 110년 되는 해다.

 가난과 일제 탄압을 피하기 위해, 나중엔 꿈을 이루기 위해 이 땅을 떠난 해외동포가 어느덧 726만 명에 이르렀다. 남북한 7300만 인구의 10%가 160여 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셈이다.

 유별난 민족의식 때문인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어디에 뿌리내렸든 대부분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다 기적 같은 한국의 발전을 목도한 해외동포 중 상당수가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해외동포의 존재. 이는 과연 한국인에게 축복일까, 아니면 고단한 짐일까.

 디아스포라 전문가인 하리스 밀로나스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더할 수 없는 행운”이라고 단언했다. 지난 8일 아산정책연구원 토론회에 참석한 밀로나스 교수를 만나 한국의 교민정책에 대한 진단과 조언을 들었다.

-교민정책이란 뭔가.

“해외 거주 동포들에 대한 정책을 의미하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이주한 국가 내의 교민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일이다. 한국 외교부·교육부, 그리고 한국국제교류재단(The Korea Foundation)이 함께 펼치고 있는 해외 한인학교 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현재 외국에 설립돼 있는 한인학교는 1900여 개에 달한다고 들었다. 이 중 900여 개는 주말에만 운영되는 비정규 학교들이다. 한인학교를 통해 한국 동포들의 정체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교민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도 본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다. 둘째는 역이민하거나 귀화해 오는 해외 동포들을 상대로 펼치는 교민정책이다. 미국으로 이민 갔다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돌아오는 미국 동포, 또는 한국으로 귀화하는 조선족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는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다. 노동력 수급은 물론 실업 및 사회갈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귀화 동포들에게 언제 어떻게 국적을 부여할지, 어떤 비자를 줄지, 언어 교육은 어떻게 시킬지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독특한 가족사로 이민정책에 관심

-한국 교민정책이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미국 등 선진국과는 달리 민족적 요소가 강하다. 이스라엘·그리스 등과 비슷하다. 이에 반해 다민족 이민국가인 미국에선 교민이란 개념이 없다. 단지 해외 체류 미국 국민만 존재할 뿐이다.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면 그걸로 끝이다. 미국 정부가 옛 미국 국민을 위해 신경 쓰는 일은 없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한국 국적 소유자는 물론이고 한국인의 피가 흐르면 교민으로 받아들인다. 단, 교민들이 살고 있는 국가와의 관계가 중요 변수로 작용한다. 국교가 없거나 적대국인 경우 의미 있는 정책을 펼 수 없어 교민으로 인정해도 실효성이 없다. 90년대 이전 중국·러시아 내 한국계 주민들을 교민으로 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91년 이전 외교부가 발표한 해외 교민은 150만 명에 불과했다. 그러다 중국·러시아와의 국교 수립 뒤 양국 내 한국계도 교민으로 인정되면서 전체 숫자가 졸지에 500만 명으로 늘어났다.”

 -교민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재외 교민들이 본국에 큰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특정 국가 내 교민들은 본국 외교정책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민간 외교관’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미주 한인들은 미국 외교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재일동포의 힘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부유한 교민들 중 상당수는 한국에 투자를 함으로써 경제에 보탬이 된다. 재일 한국인들은 경제적 이익이 없더라도 감성적 이유로 고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싶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97년 외환위기 때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음에도 많은 재일동포가 한국에 투자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해외 교민 중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나 유능한 경영자들을 데려올 경우 경제적 혁신을 이룰 수 있다.”

 그리스 출신인 밀로나스 교수가 이민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독특한 가족사와 관련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터키에 살던 그리스인이었고 할머니는 러시아에서 쫓겨난 그리스계였다. 이들은 터키에서 만나 결혼했는데 당시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몰락하면서 그리스로 이주하게 됐다. 이때까지 할아버지가 썼던 터키어 성(姓)은 원래 ‘방앗간 주인’이라는 뜻이어서 이에 해당되는 그리스어인 ‘밀로나스(Mylonas)’가 새로운 이름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밀로나스 교수 자신이 귀화한 교민의 후손인 것이다.

한국 내 이민자 집단 커지면 부작용도

하리스 밀로나스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지난 8일 한국의 교민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한국에선 지역에 따라 다른 교민정책을 쓰는데 온당하다고 보나.

 “교민정책이야말로 그 나라의 외교·안보 전략은 물론 국내 정치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상황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달라야 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각 지역에 따라 교민들의 이주 이유와 성향이 다르다. 중국 내 교민들은 가난이나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엔 일제 때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숫자가 많다. 반면 미국 교민들은 60년대 이후 경제적 기회를 찾아 한국을 떠난 이들이다. 역사적 배경이 다른 탓에 본국에 대한 충성도도 다르고, 이들에 대한 본국 사람들의 인식에도 차이가 있다. 여러 이유로 인해 평균적인 교육수준이나 전문기술의 보유 여부도 제각각이다. 각 지역의 특성과 본국의 필요성을 감안한 개별적인 교민정책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도 그런가.

 “그리스의 경우 소련이 붕괴하자 같은 혈통이라는 게 인정만 되면 시민권을 주고 받아들였다. 당시 소련에서는 여권에 어느 민족 출신이라는 것을 명시했었다. 따라서 소련 정부가 발행한 여권에 그리스계라고 적혀 있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국적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변국인 알바니아에 살고 있는 그리스계 주민들에게는 이런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스 정부는 알바니아 남부 지역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알바니아로 편입된 이 지역에 아직도 많은 그리스계가 거주한다. 그런데 이곳에 사는 그리스계 주민들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실시한다고 하자. 그렇게 하면 이 지역이 그리스 영토라고 주장할 근거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재외 교민들, 특히 중국 교민들의 귀화에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다.

 “조선족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과연 그게 온당한가는 따져봐야 한다. ‘선택 편향(selection bias)’이란 개념이 있다. 표본을 잘못 추출함으로써 특정 사안에 대해 올바르지 않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한국인이 사람을 죽이면 그저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보도된다. 그러나 조선족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다르다. 조선족이 살인을 했다고 보도되면 부지불식간에 조선족은 범죄자라는 잘못된 편견을 갖게 된다. 그러나 내가 만난 조선족은 다 선량하고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한국 내 잘못된 편견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족들도 적극 수용하는 게 좋다는 뜻인가.

 “여러 면에서 그렇다. 조선족들을 데리고 오는 게 사회적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이들 대신 중국인들을 쓴다고 생각해 보라. 각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건 이민자들이 그 나라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족들은 그럴 우려가 없다. 한글을 가르칠 필요도, 문화적 동화정책을 실시할 이유도 없다. 언어와 풍습이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임금이 더 싸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 이민자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숫자가 늘어 수십 만, 수백 만이 된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이들의 출신국 정부가 거대해진 이민자 집단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려 할 수 있다. 예컨대 한·중 간에 분쟁이 생길 경우 베이징 정부에서 ‘한국 내 중국인들로 하여금 불복종 운동을 벌이도록 하겠다’고 협박할 수 있다. 한국인들에겐 생소할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일은 여러 번 일어났었다. 그러나 한국 내 형성된 이민자 집단이 외국인이 아니라 조선족이라고 하자. 외국 정부가 그런 협박을 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출생권 여행’ 참고할 만

-한국 정부가 참고할 만한 외국의 교민정책을 소개해 달라.

 “해외 교민정책 분야에서 앞선 나라는 단연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자체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유대인들의 힘에 의해 건국됐다. 가장 대표적인 게 ‘출생권 여행 (birthright trip)’ 제도다. 고교를 졸업한 유대계 젊은이들에게 이스라엘에 가서 여행할 수 있는 비용을 대주는 프로그램이다. 부모 중 한쪽만 유대인이어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일하기를 원하면 항공료와 함께 거주비도 일부 지원된다. 해외에 700만 명 이상의 교민이 살고 있는 그리스 역시 적극적이다. 소련에 살던 그리스계 주민들에게는 자동적으로 국적을 부여했다. 아울러 귀화해 온 해외 교민 자녀들에겐 대학 입학 시 가산점을 주기도 하고 병역 의무 기간을 단축해 줬다. 이 모든 것이 해외 교민들의 역이민, 또는 귀화를 장려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이런 정책들은 한국 정부도 참고할 만한 것들이다.”

하리스 밀로나스 교수 그리스에서 태어나 아테네대학에서 정치학·법학을 공부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땄다. 요즘엔 세계 각국의 교민정책을 연구 중이다. 지난해에는 교민정책이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한 『국가 형성의 정치학(The Politics of Nation-Building)』을 펴냈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nam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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