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8월8일 목요일, 수라지 목사님과 슬럼 두 곳을 방문했습니다.
두 번째로 간곳은 매춘굴에서 10미터쯤 떨어진 곳이었죠. 그곳에는 B아주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습니다.
(B 아주머니 이야기는 다음 링크에 있습니다. 참고해 주세요 ^^
https://www.facebook.com/groups/indiaokto/permalink/579066105472061/)
군 시절의 장교우의를 뒤집어쓰고 오토바이 뒷좌석에 매달려서 한 시간여를 달렸습니다.
달리는 오토바이 뒤에서 헬멧을 쓰지 않은 얼굴에 비를 맞으니 꽤 아프더군요.
결국 우의 두건을 코 밑까지 수도승처럼 푹 뒤집어썼습니다. 그렇게 하니 얼굴은 보호되도 시야는 거의 차단됩니다.
들리는 것은 인도 거리의 소음과 제 우의에 떨어지는 빗소리, 그리고 우리가 탄 오토바이의 힘겨운 엔진소리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의 사역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하며 갔습니다. 기도도 해야 하긴 하지만, 또 혹여 깜빡 잠들어도 큰일이니까요.
한 평이 안 될 좁은 공간에서 수라지 목사님과 제가 앉고, 또 B할머니와 친구분 이렇게 두 명이 앉았습니다.
수라지 목사님과의 심방사역 특징 중 하나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이야기 나눔입니다.
‘심방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무슨 찬양 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주기도문이나 축도로 마칩니다.’ 이런 게 일체 없습니다.
대게 셔츠 정도는 입어주는 다른 인도인 사역자들과는 다르게 옷도 그냥 바지에 티셔츠 입고 가는 경우가 많구요.
그렇게 마치 마실 온 것처럼 이런 저런 교제를 하다 상황에 맞는 예화들을 적절하게 이야기합니다.
그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대체로 ‘흥부놀부전’이나 ‘심청전’해주듯이 성경의 본문을 그대로 나누는 것입니다.
거의 문맹인 성도들에겐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잠시 교제를 나누던 중, 갑자기 처음 보는 할머니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아마 원래 교회에 나오시는 두 할머니가 미리 소개를 해 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울면서 힌디로 이런 저런 호소를 하는데 저도 반은 알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보잘것없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 딸이 말라리아에 걸려서 사경을 해매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요. 기도해 달라고 찾아왔어요. 꺼이꺼이.. ’
그러자 수라지 목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옛날 옛날에 어떤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애원을 했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녀가 먹을 떡을 개에게 던지는 일은 없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먼저 고쳐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사람은 수로보니게 사람이었는데 마치 타밀 사람이랑 펀잡 사람만큼 예수님과 먼 종족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여인은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어요. ‘맞아요. 저는 개처럼 비천한 여자에요.
하지만 개들도 주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잖아요?’ 그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놀라고 감동하셨어요.
그리고 그 여인과 아이를 축복하셨고, 그 때로부터 그 아이는 나았어요.. ’
목사님은 여인의 애절한 대사, 예수님이 깜짝 놀라는 장면 등에 풍부한 표정과 감정을 넣으며 이야기하셨고,
어느새 할머니들과 저는 그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분과 딸을 위해 함께 기도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눈을 들어보니 평소에는 우리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던 옆집 아주머니가 뚫어지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수로보니게 여인의 예화가 그분의 가슴을 강하게 때렸던 것 같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히즈라’ 였거든요.
‘히즈라’는 거세된 남자로 여자 옷을 입고 여자로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주로 eunuch라고 부르죠.
대부분은 후천적인 수술을 통해서 히즈라가 되지만, 간혹 선천적인 성기장애(한국에서는 간단한 수술로 치료될 수 있는)때문에 히즈라가 되기도 합니다.
가끔은 게이, 혹은 몸과 정신이 완전히 남성인데 복장만 여자 옷을 입은 사람도 히즈라 공동체에서 받아줍니다.
(여행기 등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몸을 동시에 갖고 태어난..’ 운운 하며 소개를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남성인데 뭔가 부족하거나, 후천적으로 거세한 케이스가 절대 다수입니다.)
이들은 예전에 내시로도 활동 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 내시들이 남자 옷을 입고 남자 정체성을 가졌던 것과는 달리 인도의 내시들은 여자 옷을 입고 여성의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인도 곳곳에 아직 왕실과 궁전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제 궁정인으로서의 히즈라 역할은 거의 사라졌지요.
다만, ‘왕년에 우리는 존귀한 계층이었다.’라는 자부심만 살짝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조다 악바르’에도 히즈라 내시가 등장합니다.)
또 다른 전통적인 역할 중 하나는 아들을 낳은 집에 가서 한바탕 춤과 노래를 한 후에 아이를 축복기도 해주고 복채를 받아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로 ‘이 남자의 저주(불임, 불능 등)가 저와 저희 카스트에게로 돌려지게 하소서.’ 라는 기도를 합니다.
가끔 아기에게 성기 장애가 있거나 하면 자기들이 키우겠다며 빼앗아 오기도 하구요.
(“너 남자애가 그렇게 지지배처럼 굴면 히즈라가 잡아간다.” 고도 한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히즈라는 매춘과 구걸로 먹고 삽니다.
열차 안이나 신호 대기 중인 차량사이를 돌아다니며 구걸하곤 하죠.
히즈라는 일반 거지들보다 돈을 훨씬 더 잘 번다고 합니다.
저 대속적인 축복 기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말 기분 나쁠 때 히즈라가 치마를 걷어 보여주며 저주를 하면 재앙이 온다는 미신이 더 큰 이유입니다.
아주 약간의 영적인 존경을 받으며 엄청난 혐오와 멸시를 받는 이들. 아마 조선시대의 ‘무당’정도와 비슷한 사회적 위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젊어서는 매춘, 좀 나이가 들어서는 구걸을 하다가 나이가 들수록 주름이 자글자글한 추남의 모습이 되어서 슬럼 어딘가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이들..
그 중 한분이 오늘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희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수라지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히즈라를 향해서도 특별한 축복을 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성경에 eunuch에 대한 축복의 구절이 어디 있었죠?”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런 구절이 있어요?”, “이사야서에서 찾아봐요.”
저는 바로 스마트폰의 ‘성경과 노트’ 어플로 이사야서 eunuch를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56장 3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영어 본문으로는 eunuch가 확실했습니다. 하지만 히즈라 아주머니는 ‘나는 읽고 쓸 줄 아는 게 타밀어뿐이에요.’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타밀 지역은 여기서 서울서 도쿄만큼보다 더 떨어진 지역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마침 제 스마트폰 ‘성경과 노트’어플에는 타밀어 성경이 있었습니다.
“잠깐만요! 타밀어 여기 있어요!”
히즈라 아주머니는 돋보기안경을 찾아 쓰고 나와서
제 핸드폰을 들고 당신을 향한 축복을 고향의 언어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eunuch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eunuch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아주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다시 자기 집으로 가더니, 어디선가 얻었을 타밀어 기드온 성경을 찾아 갖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딱 봐도 신약밖에 없는 얇은 성경이었습니다.
“아까 그 구절 어디에 있었나요? 찾아주세요”
위기일발, 그러나 저는 그때 다시 스마트폰의 ‘성경과 노트’ 어플로 ‘eunuch’ 신약을 검색해서 본문을 수라지 목사님께 넘겨 드렸습니다.
이제는 숱한 심방으로 팀워크가 딱딱 맞는 수라지 목사님은 바로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신약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옛날 에티오피아 왕국에는 훌륭한 eunuch가 있었어요. 그는 왕궁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eunuch였습니다..”
그렇게, 내시가 ‘여기 물이 있으니 제가 세례를 못 받을 이유가 없지요?’라고 묻고,
빌립이 ‘당신이 마음을 온전히 해서 믿으시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부분,
또 내시는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습니다..‘ 라며 세례를 받는 부분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날, 저희는 처음으로 그 히즈라 아주머니 댁에 초대되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집은 B 아주머니의 집보다는 훨씬 넓지만 1m가 넘는 액자를 비롯해서 많은 우상 사진과 신상, 향로 따위로 가득찬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집에 주님의 복음이 임했습니다. 삭개오의 집에 찾아가신 예수님, 이제 저희들을 당신이 방문코자 하시는 집들로 보내주소서!
그 히즈라 아주머니가 주일에 꼭 교회에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타밀어로 된 신구약 성경을 읽게 되면 좋겠습니다.
꼭 기도해 주세요! 또 반두프 슬럼을 자주 가면서도 정기모임을 시작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모임 장소가 없기 때문이었는데,
그 히즈라 아주머니 댁이 예배의 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전에도 다른 젊은 히즈라가 종종 주일예배에 참석했었습니다.
또 심방 가면 다소곳이 앉아 안수기도를 받기도 했구요. 히즈라들은 가까이서 사귀어보면 마음도 여리고 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히즈라가 모욕당하는 것은 수도 없이 보았지만, 치마를 걷어 누군가를 저주하는 것은 딱 한번밖에 못 봤습니다.)
한번은 어느 결혼식에서 이명길 선ㄱ사가 히즈라 자매와 거리낌 없이 함께 춤을 춰주어 온 성도가 박장대소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히즈라 자매도 민망함이 없이 너무 행복해 했었구요. 그러나 아직 히즈라를 위한 사역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주님의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고, 저희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도록..
주님께서 저희를 보내셔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이 전파되며
눌린 자가 자유케 되고 주님의 은혜의 해가 전파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주님의 평화!
ps. 1
사진에서 문 뒤에 얼굴이 1/3정도 나온 분이 오늘의 주인공 아주머니입니다. 거울에 설교하시는 수라지 목사님의 얼굴이 살짝 비취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