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야. 분명 너보다 더 잘하는 아이들이 온다. 출전자의 절반은 첫 게임에 져서 탈락하지. 그럼 그동안의 모든 훈련, 장거리 여행 등은 다 수포가 된다. 만약 대진 운이 안 좋으면 첫 경기에 최강자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도, 너에겐 최소한 한 번의 공격 기회가 있다. 인사하고, 심판이 ‘시작!’이라는 소리를 내자마자 바로 2m 전방의 상대 선수를 빠른 발차기로 가격해라. 아마 상대는 뒷차기로 받겠지. 하지만 상대의 뒷차기보다, 같은 발차기만 3주간 수련한 네 ‘빠른발차기’가 더 빠를 거다. 그 한 번의 공격을 위해, 넌 수천번을 차야 한다.”
저와 수지가 진짜 시합때와 같은 거리로 마주봅니다. 그리고 심판(이명길 선ㄱ사)가 인사를 시키고, “시작”이라고 외치자마자 바로 빠른 발차기로 선제공격을 하게 합니다. 이것을 한주 넘게 계속 반복시키니 그 기술 하나는 점점 빠르고, 정확하고, 강해집니다. 그렇게 30번 차고 20초 휴식, 이렇게 세 세트(90번)을 찬 후에는 2-3분 휴식, 그렇게 세 번을 반복시켜 매일 270번을 차게 하고 있습니다. 중간 중간의 짧은 휴식 시간에는 태권도 시합 동영상들을 보여주며 상황 설명, 전략 설명, 이미지 트레이닝을 병행합니다.
“첫 발에 상대가 안 맞으면 어떻게 해요?”
“발 바꾸거나 위치 바꿔서 다시 빠른 발 차.”(연습 실시!)
“상대가 공격하면요?” / “그때 쓸 뒷차기는 다음 두주 동안 매일 300번씩 찰거다.”
“으 – 악 ㅠ0ㅠ”
이렇게 현제 2주차 훈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발차기를 할 때 자기 다리 무게도 버거워 하고, 윗몸일으키기도 몇 개 못하던 아이가 발차기 270번을 차고 윗몸일으키기도 처음의 세배를 하는 것을 볼 때는 참 뿌듯합니다. 무엇보다 수지가 힘든 훈련을 즐겁게 참가해 주니 재미있고 기쁩니다. 저 스스로도 선수로서 뛰어났던 적은 없지만, 트레이너로서로서의 달란트는 또 다른 것이구나 싶기도 하구요. 감히 ‘히딩크 감독도 선수 시절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니까.. ’라는 생각까지 해 봅니다.
우리는 이렇게 델리 대회의 메달을 향해 매일 강행군을 하고 있습니다. 선수가 힘들지 코치는 체력소모가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해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저도 마치 출전하는 사람처럼 온 몸의 근육이 배기고 쑤십니다.
수지가 메달을 따면 학교에 큰 명예가 됩니다. 그리고 상품이 현대자동차라는 소문도 있습니다.(대회 스폰서가 현대자동차입니다.) 우리 사역이 꼭 필요로 하는 0순위 물품이죠. 게다가 제자의 수상 경력은 저희가 앞으로 태권도 선ㄱ사로서 비자를 갱신하고 연장할 때 중요한 스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대회를 통해서 누구를 만나게 될 지, 어떤 사역의 문이 열릴지는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참 재미도 있고, 열정도 솟아오릅니다.
하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제 달란트, 그리고 제게 친숙한 분야와 전혀 다른 ‘태권도’라는 영역이 부담스럽습니다. 솔직히 저에게 태권도사역은 가장 긴장되는 시간입니다. 인도인 중에는 우리보다 단이 높은 사람도 많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괜히 실력이 들통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평생 열심히 수련해 봤자 한계가 너무 뚜렷하구요. 도복만 입고 나가면 ‘마스터 마스터’하는 외치며 따라오는 아이들.. 한국인 마스터와 사진 찍겠다고, 저보다 훨씬 실력 좋은 이들이 줄을 서는 것은 어떻구요. ‘아.. ㅜㅜ 내가 진짜 태권도 고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 게 한 두번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힌 일입니다.
YWAM에 친숙한 저희가 C.C.C에서(TIA는 CCC산하 단체입니다.)파송장을 받게 된 것도, 운동 싫어하며 말하고 글 쓰는데 익숙한 제가 자그마치 태권도 선ㄱ사라는 것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서, 저는 종종 이런 질문을 드려봅니다.
“왜 때로는 제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 못하는 것으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가끔은 이러한 주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정하야. 그래야 내가 너의 어떠함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겠니?”
저는 아마도 한국 선ㄱ 100년 역사상 가장 실력이 부족한 태권도 선ㄱ사일 것입니다. 국가대표를 무수히 길러낸 TIA의 정식 파송장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는, 아마 거의 기적적인 존재가 아닐까요.
하지만 일반인의 손에 들린 천만원짜리 미술용품보다, 피카소 손에 들린 몽당연필이 더 아름다운 그림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결국은 내가 어느 정도인가가 아니라, 누구의 손에 들려져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몽당연필이고 싶습니다. 특히 태권도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능력 위에 능력으로, 제 생각보다 더 크신 주님.
그 주님을 기대하며, 한걸음씩 나아갑니다.
주님의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