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서방 군사개입 빌미 ‘게임체인저’ 될 수도
지난 4월 말 시리아 반정부군이 정부군 측의 화학무기 사용 의혹을 제기했을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것이 확실하다면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 모두에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극도로 경계해온 대량살상무기(WMD) 사용이라는 ‘금지선(red-line)’을 넘는 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21일(현지시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부근에서 화학무기 공격으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시리아 사태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시리아 위기의 진정한 ‘게임 체인저’가 되는 셈이다.
사상자 수는 엇갈리고 있지만 현지 구호단체들과 반정부군은 500~13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구호활동가들은 다마스쿠스 교외 구타 지역에 있는 아인타르마와 자말카, 조바르 마을에 새벽 3시쯤 화학무기가 실려 있는 로켓이 날아들었다고 전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아이와 여성들이며, 외상이 없다고 CNN방송 등은 전했다.
이미 지난 3월부터 시리아 정부군이 대도시 알레포 근교 등지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정부 측은 반대로 “반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쓰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유엔 화학무기조사단은 지난 18일 시리아에 입국해 조사에 들어갔다. 이번 사건이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이라는 주장에 대해 시리아 정부는 “전혀 근거 없는 소리”라며 국영방송 등을 통해 강력 반박했다. 영국 제인스 테러·봉기연구소 분석가 찰스 리스터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시점에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썼다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면서 “하지만 해당 지역은 반정부군의 거점인 데다 정부군과의 교전이 계속되던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20세기 후반 이후의 내전·분쟁에서 화학무기가 이처럼 대규모로 쓰인 것은 전례가 드물다. 미국은 화학무기를 핵무기, 생물학무기와 함께 대량살상무기로 규정하며 확산을 극력 막아왔다. 하지만 시리아는 화학무기 보유·사용을 금지한 어떤 종류의 국제협약에도 가입하지 않은 극소수 국가 중 하나다. 미국 정보회사 글로벌시큐리티는 2007년 시리아가 수백t 분량의 화학무기를 갖고 있으며 사린, 타분(GA), VX 등 맹독성 화학무기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세린, 하마, 홈스, 라타키아, 팔미라 등 5곳에 화학무기 생산시설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리아 내전이 2년 반을 넘어서고 사망자는 10만명을 훨씬 웃돌지만 국제사회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이스라엘·요르단·터키·이라크 등과 접경하고 있는 지정학적 복잡성 때문에 개입이 쉽지 않았던 탓이다. 인구밀도가 낮고 군사적 거점이 한정돼 있는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가 많아 ‘군사적 대응’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자국민 학살 뒤 공습을 가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시리아에 대해서는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미국과 유럽은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구호품 지원을 형식적으로 해오다가 올 들어 살상무기를 뺀 군수품 등의 지원을 늘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기 지원 등을 놓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시리아 정부 편에 서서 국제사회의 개입을 막았다.
이번 참사가 발생함에 따라 미국은 느린 대응으로 참사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게 됐다. 미국과 나토의 시리아 대응이 전격적으로 변화할지 주목된다. 1988년 이라크가 북부의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로 학살했을 때 유엔은 쿠르드 지역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강수를 뒀다. 시리아의 경우 정부군이 화학무기 사용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고 유엔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 미국과 나토가 군사행동에 나서기엔 여의치 않은 형편이라는 점에서 즉각적인 대응책을 내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