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한 반전이 있을까.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외교·군사 관련 기밀문건을 유출해 35년형을 선고받은 브래들리 매닝 일병, 아니 첼시 매닝 이병이 판결 선고 이튿날 여성임을 선언한 뒤 논쟁은 내부고발자에서 트랜스젠더로 옮아갔다.
미 육군과 매닝이 복역할 포트리븐워스 군교도소 측은 22일(현지시간) 교도소 내에서 정신과 치료는 가능하지만 성전환 수술이나 호르몬 치료는 지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연방 대법원의 동성결혼 금지법 위헌 판결이 있었던 최근까지 동성애자에 대해서조차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는 정책을 고수할 정도로 성적 소수자 문제를 금기시해온 군으로선 별 이상할 것 없는 반응이다.
매닝의 변호인 데이비드 쿰스는 매닝을 ‘그녀’로 지칭하며 여성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군 교도소가 성전환 수술을 허가하지 않을 경우 군을 상대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논쟁의 경과에 따라 군대 내 동성결혼 인정을 넘어 트랜스젠더의 권리 문제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매닝이 ‘여성선언’을 했지만 아직 성전환 수술을 받기 전이어서인지 22일 하루 미국 언론들도 매닝의 지칭을 다르게 썼다. ABC방송은 대명사 ‘그녀’를 쓴 반면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줄곧 ‘그’라고 지칭했다. CNN방송은 ‘매닝’이란 이름을 쓰며 대명사 사용을 피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내에서도 동성애와 달리 트랜스젠더 문제는 여전히 일반인들의 인식 정도가 높지 않은 편이어서 매닝의 여성 선언이 계몽적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권리 운동을 해온 이들 중엔 ‘왜 하필 매닝이고, 지금이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으로 성전환해 트랜스젠더 운동을 하는 네이비실 출신 크리스틴 벡(예전 이름은 크리스토퍼 벡)은 “나는 평등과 존엄, 존경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매닝은 정반대 행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매닝은 이라크 배치 시점인 2009년 말 성적 정체성의 변화를 감지했고, 이 얘기는 재판 도중 간간이 흘러나왔지만 매닝은 “인생의 다음 단계에 이를 때까지는” 브래들리란 이름을 쓰겠다고 지인들에게 말해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