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선교의 아버지 리빙스턴 탄생 2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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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선교의 아버지’ 리빙스턴 탄생 200주년… 잠비아 리빙스턴기념장로교회 특별예배 현장2013.09.02 21:08 국민일보

그가 걸었던 아프리카 복음의 길, 따르겠습니다

1일 오전 9시30분(현지시간) 아프리카 잠비아 리빙스턴시의 리빙스턴기념장로교회. 영국의 선교사이자 의사이며 탐험가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1873·사진)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예배가 시작됐다.

성도들은 3시간여 예배를 드리며 170여년 전 미지의 땅 아프리카를 찾아 복음을 전했던 리빙스턴 선교사처럼 아프리카와 세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는 작은 불씨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스 간다 윌위 리빙스턴기념장로교회 목사는 설교에서 “선교사로서 그가 한 일은 아프리카의 길을 연 것”이라며 “그가 만든 지도를 따라 많은 선교사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교회 성도들은 리빙스턴을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한 고마운 선교사로 기억했다. 스티브는 “그의 개척자적인 삶은 지금의 아프리카에 위대한 복음의 업적을 이루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교회 인근 리빙스턴기념박물관에는 리빙스턴이 즐겨 쓰던 모자와 옷, 의약통, 총, 책, 가족사진, 그가 다녔던 지역을 표시한 지도 등이 가지런히 전시돼 있었다. 선교사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아프리카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했던 그의 치열했던 삶을 짐작케 했다.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한 리빙스턴은 가정형편 때문에 10세 때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에서 일해야만 했다. 그러나 17세 때 소명을 받고 대학에서 의학과 신학 등을 공부한 뒤 영국 런던전도협회의 파송을 받아 1840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아프리카로 왔다. 리빙스턴 선교사는 아프리카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노예무역의 처참한 실상을 영국 사회에 알리는 데 힘썼다. 의사로서 원주민들의 질병 치료와 예방에도 적극 나섰다.

원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말라리아 등 온갖 풍토병에 시달렸지만 덕택에 치료법을 발견하기도 했다.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잠베지 강, 빅토리아 폭포 등을 발견하고 ‘전도여행기’ ‘잠베지 강과 그 지류’ 등을 출판하는 등 아프리카 중부를 서방세계에 알린 ‘검은 대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탐험을 하는 동안 무수한 고난을 당했다. 사자에게 물려 어깨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평생 왼손을 머리 위로 올리지 못했다. 수렁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고 밀림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열병과 이질에 걸려 사경을 헤맨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고난을 당연히 짊어져야할 십자가로 생각하고 참고 이겨 나갔다. 그는 “오직 주님의 나라와 주님을 섬기는 것,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라’하신 주님의 말씀에만 가치를 두겠다”며 신앙을 고백했다.

리빙스턴은 영국 왕실로부터 은퇴 후 좋은 조건에서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부했다. 오히려 사랑하는 아프리카에서 죽겠다며 세간의 관심을 피해 더 깊은 숲속으로 찾아 들어갔다. 그의 제자들은 후일 침대 옆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숨져 있는 그를 발견했다.

리빙스턴을 통해 아프리카 선교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북아프리카를 제외한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 처음 선교사가 파송된 것은 로마 가톨릭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15세기 무렵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선교를 시작해 서부 아프리카에 선교부를 설치했고 자이레와 앙골라까지 확장했다. 개신교 선교는 1737년, 모라비안형제단 조지 슈미트가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것에서 시작했다. 19세기 유럽과 북미의 부흥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수많은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 활동했다. 아프리카 대륙 중에서도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에서 사역했던 리빙스턴의 이야기는 세계교회에 아프리카 선교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리빙스턴(잠비아)=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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