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난민 보호커녕 탄압한 탓, 유럽의 수치”
[프레시안 이승선 기자]
이탈리아 남부 해역에서 아프리카 난민 500여 명을 태운 배가 3일 밤(현지시각) 침몰해 임신부와 어린이를 포함한 300여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실종자 대부분도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건은 이탈리아 정부는 물론, 아프리카 난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무관심이 낳은 ‘예견된 참사’라는 자성의 목소리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디언>은 “이번 사건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즉각 난민 문제에 시급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은 “이번 사건은 무고한 생명들에 대한 일련의 학살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엔리코 레타 총리는 4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 3일 밤 발생한 이탈리아 남부 해역 난민선 전복 사고로 난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사진은 사고 해역 인근 람페두사 섬 해안가에 아프리카 난민들의 시신이 줄지어 놓여있는 모습.. ⓒAP=연합뉴스 |
“해안가 일대가 공동묘지처럼 참혹하게 변했다”
난민이 떼죽음을 당한 해역 인근 람페두사 섬 해안가에는 시신들이 줄지어 놓여있는 끔찍한 광경이 연출됐다. 이 섬의 주시 니콜리니 시장은 “마치 이곳이 공동묘지 같이 참혹한 모습”이라면서 “아직도 추가 인양된 시신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유럽의 남부 해역으로 아프리카와 중동으로부터 수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건 이주를 하다가 죽는 일이 반복됐다. 국제인권단체들은 내전 등 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지역의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고 해도, 난민이 해상 이주를 시도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수아 크레포 유엔 이주민 인권 특별보고관은 국제 이민에 관한 유엔총회 토론 자리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비정규 이주민들에 대한 탄압 일변도 정책이 이번 참사를 야기한 것”이라면서 난민에 대한 국제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불법이민으로 취급하는 정책을 비판했다.
장클로드 미뇽 유럽의회 의장은 “유럽의 관문 앞에서 비극적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이런 수치스러운 사건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도록 구체적이고 시급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비극적인 이번 사건이 국제사회의 행동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젤리노 알파노 이탈리아 부총리는 “이번 사건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의 재앙이라는 점을 깨닫기를 바란다”고 말했으며,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국제사회, 특히 유럽연합이 주축이 돼 행동에 나설 결의를 해야 할 절대적인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교황 “치욕이라는 단어가 마음으로 느껴진다”
지난 4월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의 흑인 각료로 임명돼 화제를 모은 세실 키엥게 국민통합 장관은 “누구의 탓을 말할 때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서로 연대해 행동에 나서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이번 사건같은 비극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합하자”면서 “치욕이라는 단어가 마음으로 느껴진다”고 국제사회의 협력을 촉구했다.
이번 사건이 과정에 대해 알파노 부총리는 “수용한계를 넘은 인원들을 태운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엔진이 멈추자 누군가 구조신호를 보낸다면서 불을 피우면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불길에 놀란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배가 전복됐다는 것이다.
사고가 난 배에 탄 난민들은 에티르티아와 소말리아 출신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2012년 500여 명의 난민이 이탈리아 남부 해역으로 밀항을 하다 사망하거나 실종됐으며, 2011년에도 1500명 이상의 난민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