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 캄보디아 소유권 인정… 태국軍 철수]
양국 국경의 군사요충지 위치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가 캄보디아 손 들어줬지만 태국 반발로 최근까지 대치
태국 접경에 있는 캄보디아의 힌두교 사원 ‘프레아 비히어(Preah Vihear)’ 상공에 지난 9일(현지 시각) 태국 공군기와 헬기가 나타나 저공 비행했다. 이 소식을 접한 캄보디아군은 사원 주변에 진지를 파고 비상령을 내렸다. 이날 대치는 11일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결을 앞두고 양측이 무력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11일 판결 당일, 태국은 캄보디아 접경에 있는 북부지역 40여 초등학교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일제히 휴교령을 내렸다. 이 지역의 캄보디아 주민들도 참호를 파고 숨거나 피난을 떠났다고 AFP는 전했다.
이날 ICJ는 최종적으로 캄보디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962년부터 반세기 동안 ‘프레아 비히어’ 사원과 주변 면적 4.62㎢를 둘러싸고 벌어진 소유권 분쟁에서 만장일치로 “캄보디아 땅”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태국 병력은 이날 판결 후 사원 주변에서 일제히 철수했다.
산스크리트어로 ‘성지(聖地)’를 뜻하는 ‘프레아 비히어’는 11세기에 크메르 왕국이 힌두교의 시바 신에게 봉헌하기 위해 지은 사원이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양국의 분쟁으로 인명 피해와 유적 파괴가 끊이지 않았다.
20세기 초 캄보디아를 점령한 프랑스와 태국은 국경 설정을 위해 지도를 공동 작성했다. 당시 지도 표기상 이 사원은 캄보디아령이었다. 하지만 1953년 프랑스 군대가 캄보디아에서 철수한 뒤, 태국이 사원 일대를 점령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1959년 캄보디아는 ICJ에 “태국의 사원 점령은 부당하다”며 제소했고, 1962년 ICJ는 “사원의 소유권은 캄보디아에 있다”고 판결했다.
태국은 이 판결에 승복하지 않았다. 2008년 캄보디아가 이 사원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태국은 군대 배치를 늘렸다. 지난 2008년 이후 태국과 캄보디아는 이 일대에서 5차례 이상 군사 교전을 벌였다. 지난 2011년 4월에는 18명이 숨지고 사원 일부가 파괴될 만큼 격렬하게 충돌했다. 8개월간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뒤에야 양국은 그 해 12월 사원 주변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520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세워진 이 사원은 ‘천혜의 요새’로 불릴 만큼 군사적 가치도 높다. 1970년대 캄보디아 내전 당시에는 이 사원에 주둔한 정부군이 크메르루주 공산군에 대항해 최후의 항전을 벌였다.
태국과 분쟁이 계속되자, 지난 4월 캄보디아는 ICJ에 “1962년 판결을 재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7월 ICJ는 양국이 군대를 영구적으로 철수하는 대신 경찰이 국경 출입을 통제하는 ‘비무장지대’안(案)을 절충안으로 내놓았다. 캄보디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태국에서도 사원 소유권 문제는 잉락 친나왓 현 총리의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쟁점이 됐다. 야권과 반(反)정부 시위대는 “ICJ 판결에서 패소할 경우, 전국으로 시위를 확대할 것”이라고 공언해서 향후 태국 정세가 불안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