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선교사 파송 20년… 캄보디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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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선교사 파송 20년… 캄보디아를 가다] (1) 선교 전초기지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2013.12.11 02:33

“신학교 세워 현지인 목회자 양성하자!” 선교지서 하나된 한국 장로교 화합의 산물

식민지배와 잔혹한 내전, 킬링필드로 고통 받은 땅 캄보디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인 선교사가 파송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전 국민의 95%가 불교도인 선교의 불모지이지만 조금씩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가 세워졌으며 선교사들과 현지 목회자들은 캄보디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며 국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캄보디아 선교의 현장을 3회에 걸쳐 들여다본다.

지난 4일 오전 11시30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CPTI·Cambodia Presbyterian Theological Institute) 마당에서는 점심시간임에도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주제는 ‘목사의 필수 덕목’. 목회학석사과정 2학년 디나(Dyna·25)씨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해박한 성경 지식’ ‘리더십과 포용력’ 등 곳곳에서 다른 학생들의 의견도 들렸다. 이들은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운 듯 입에 음식을 담은 채 토론을 이어갔다.

목회연구과정에 재학 중인 바루(Baru·30)씨는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3∼4시간을 달려 학교에 온다. 1교시 수업을 위해서는 새벽에 출발해야 하고, 교통사고의 위험도 몇 차례 겪었지만 그는 “학교에 오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꿈은 영향력 있는 목회자가 되는 것이다. 이곳에는 바루씨처럼 캄보디아의 복음화를 꿈꾸는 학생 100여명이 공부하고 있다.

CPTI는 한국교회 화합의 산물이다. 한국선교사들은 1993년 캄보디아에 처음 파송된 후 전국에 흩어져 교회 개척 등 사역을 감당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진행된 사역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점차 협력 필요성이 대두됐다. 2003년 7월 9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통합, 고신 등 7개 장로교단 23명의 선교사들은 화합을 다짐하며 캄보디아장로교공의회를 설립했다. 선교사들은 현지인 지도자와 평신도를 키워 이들이 자국민을 위한 교회를 개척토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선교방법이라는데 동의해 2004년 10월 5일 CPTI를 개교했다.

CPTI는 처음에 학부 신학과 연수과정을 시작으로 2008년 목회연구과정, 2009년 학부 신학과와 신대원 과정을 개설했다. 2010년에는 교육학과, 2011년 교회음악과, 올해는 유아교육과를 신설했다. 지난해에는 캄보디아 종교부로부터 정식 인준을 받았다. 올해까지 101명이 졸업했으며 현재 재학생은 108명이다.

CPTI 전호진(73) 총장은 “학부 학생들은 신학 공부 경험이 짧기 때문에 2학년까지는 기초적인 성경과목에 중점을 두고 영어, 음악, 문학 등 교양 과목을 함께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학부 신학과 3학년이 되면 학교 수업을 1년간 중단하고 ‘필드 미니스트리(Field Ministry)과정’에 나선다. 본인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전도사로 섬기거나 교회를 개척하기도 한다. 구약학을 가르치는 이윤수(예장고신) 선교사는 “현장 사역을 경험케 하면서 학생들을 한 번 더 검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CPTI의 최종 목표는 현지인들의 신앙 자립화다. 전 총장은 “캄보디아는 총 인구 1400만 명 중 95%가 불교 신자로 기독교 신자는 1%에도 못 미치는 13만 명에 불과하다”며 “캄보디아 전역에 3000여 교회가 있지만 정식으로 안수 받은 목회자는 찾아보기 힘든데, 앞으로 CPTI를 통해 캄보디아에 체계적인 목회자 공급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7월 캄보디아장로교 독노회가 설립된 자리에서 CPTI 목회연구과정 졸업생 4명이 목사안수를 받았다. 전 총장은 “내년에는 10명이 목사 안수를 받을 예정”이라며 “앞으로 10여년이 지나면 캄보디아에 외국인 선교사 수는 현격히 줄고, 현지 목회자들에게 선교리더십이 이양될 것”이라 전망했다.

한편 CPTI는 매년 증가하는 학생을 수용하고, 원활하게 교육할 수 있도록 건물을 새로 짓고 있다. 이를 위해 총 300만 달러(약 33억원)의 공사비를 모금 중이다. 2014년 말 완공될 예정인 신축건물은 프놈펜 4번국도 서쪽 15㎞에 위치해 있으며 대지 4만504㎡(1만2273평), 건축 연면적 1만838㎡(3284평)의 3층 규모다. 250여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와 교수 아파트, 교직원 식당을 겸한 학생회관 등 부대시설도 마련된다.


[한인 선교사 파송 20년… 캄보디아를 가다] (2) 가난과 질병, 상처 보듬는 교회들

2013.12.12 01:29

“캄보디아 기적은 예수로부터…”

캄보디아에는 올 12월 현재 319곳의 단체에서 파송된 600여명의 한국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다. 이들 선교사는 캄보디아 곳곳에서 가난한 이웃과 방치된 어린이들을 돌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김창훈(50) 선교사는 지난달 말 씨엠립(Siem Reap)에 다녀왔다. 식수가 부족한 마을에 우물 두 개를 파주기 위해서다. 이곳은 앙코르와트가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캄보디아 제1의 관광 도시지만 현지인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식수가 없어 흙탕물을 떠먹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부모에게 버림받아 거리에 방치된 아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김 선교사는 예장합동 세계선교회(GMS) 소속으로 2000년 파송됐다. 그가 중점을 둔 것은 ‘믿음의 사람을 키우는 것’이었다. 프놈펜에 조그만 건물을 하나 얻어 대학진학을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숙소로 제공했다. 그들과 틈날 때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렸다. 학생들이 경제적, 심리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으면 발 벗고 나서 도왔다. 삶을 통해 전도가 이뤄졌고, 열매는 풍성했다. 11년간 13명의 청년들이 목회자가 돼 모두 교회를 개척했다.

에이즈 때문에 부모를 잃고 방치된 어린이들을 위해 2006년에는 씨엠립에 쉼터를 마련했다. 3∼4살부터 17살까지 20여명이 찾아왔다. 쉼터 이름을 ‘소망의 집’이라 붙였다. 사역팀을 상주시켜 성경을 가르치고 영어와 미술 등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굶주림 탓에 장래 희망을 갖는 것이 사치였던 아이들이 이제는 교사, 의사 심지어는 총리가 되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인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을 접한 현지인들의 선교활동도 활발하다. 캄보디아침례교 소속 투온(Toun·60) 목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1993년 한인 선교사로부터 처음으로 복음을 들었다. 투온 목사는 “예수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오가던 선박에서 일하면서 가끔씩 배의 기름을 훔쳐 부당이익을 취했던 일이 생각나며 눈물과 회개기도가 나왔다”고 회고했다.

이후 수시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던 중 “이 나라가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는 응답을 들었다. 곧바로 일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진학해 목사안수를 받았다. 교도소와 빈민가를 누비며 쌀과 선물을 나눠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전했다. 핍박이 심했다. 반감을 가진 이들이 그를 도둑으로 몰아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투온 목사는 “다행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한인 선교사들이 앞장서서 도움을 줘 위기를 극복했다”고 했다.

그가 세운 프놈펜 침례교회에는 현재 250여명이 출석하고 있다. 동역자들과 힘을 모아 프놈펜과 베트남 국경지역에 10여개 교회를 개척했다. 투온 목사는 “정확한 숫자는 알 수는 없지만 캄보디아 전역에서 현지인 목회자들이 사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먼저 복음을 접한 만큼 책임감을 갖고 민족 복음화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프놈펜(캄보디아)=글·사진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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