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권 한국교회 선교전략 – 태국 신홍식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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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권 한국교회 선교전략

태국 신홍식선교사

들어가는
  

                                             

불교권은 크게 세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스리랑카,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으로 구분되는 소승 불교권(Theravada
Buddhism)과 한국 일본 중국 베드남 으로 구분되는 대승 불교권(Mahayana Buddhism)과 그외 몽고 티벧 부탄 등으로 구분 되는 신비 불교권(Tantrayana Buddhism)이라 하겠다. 다같이 불교권이라고 하지만 교리적 차이외에 지리적 차이가  있다. 북으로는 몽고로
부터 남 으로 자바섬에 이르기 까지
, 동으로는 일본에서 부터 서쪽의 중앙 아세아 까지 퍼저 있고 기후 역시
 열대에
     한대에 이르는 만큼 극도로 다를뿐만 아니라 특히 대승불교권과
같은 광범위한 지역에는 타 종교들도 다분이 섞혀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이들 불교권에 적용할 만한 획일적인 선교 전략을 세우기란 매우 힘들다
.
그리고 한국선교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은 신비 불교권 보다 국민 대부분이 불교의 정통교리를 숭상하고 있는 소승불교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것을 전제로 한다
. 그 중에서도 사회주의적 전제 정치하에 전도와 교회 개척이 자유롭지 못한 지역보다는
자유민주주의 정체하에 정통적 불교권임에도 타 종교활동이 자유로운 태국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면서 불교권 선교전략의 기초적배경을 삼고저 한다
.          

I. 선교세력투입과 활동현항

태국은 인구면에서 동남아 소불교권
전체의 반을 차지하고 있고 한국선교 역사도 가장오래 되었다
. 기독교 전도와 교회 설립도 자유로와 전략수립의 견본지역으로 는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한다(아래 표를 참조).기독교 태국선교의 배경을 생각하고 한국교회의 선교현항을 
먼저 살펴 보자.

 

소승불교권국명

인     

불교인

기독인

각국선교사

한국선교사

태국왕국

6,500

90

0.5%

1,000

500

캄보디아

1,000

87%

1%

700

400

라오스

500

60%

0.8%

100

70

미얀마

5,000

90%

6%

150

70

합    

13,000

          

1,950

1040

 

*시리랑카는 지역적으로 떠러저
있고 인구
2,000만중 소승불교인이60%이나  한인선교사 투입이  태국보다 훨씬  뒤진

지라  표애서는 삭제하였고 베드남은 인도차이나 지역에 속하여
있으나 대승불교이므로 표에서는 역시 빠젔다
.

 

                                                                                                                                                   

. 태국선교의 배경                                                                                     

타이 족은 본래 Nanchao 왕국(AD650-1253)이란 이름으로 남 중국에 자리잡고 있다가 Mongol군에 의해 밀려 지금의 태국 땅으로 들어와
Chao Phraya
강 상류 계곡 일대의 Mon족 땅을 점령하고
1238
년 그 지역의
Khmer세력을 몰아내고
Sukhothai
왕국(1238-1378)을 세웠고 그후
Ayuthaya
(1378-1767)Thonburi(1767-1782)를 거쳐 현 Chakkri (1782-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1932년에는 입헌 군주 제도를
도입하여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일명
Siam족이라 불리우는 왕국이다.

종교는 정령숭배를 겸한 소승불교 신도가 90%를 차지했고 이슬람 신도가 8%,
기타종교가 2%로서 원주민 Mon족과 북쪽
산족들의 토속종교와 근래에 이민 온 중국 인의 민속신앙이 있다
.

이런
태국에 기독교가 들어 온 것은
1662년의 로마 카톨릭 교회였고 그 후 1828년의 개신교였다.
루터교회 Gutzlaff선교사와 London
Missionary Society
Tomlin 선교사로 시작된 개신교
선교는 계속 보강 되어
1831년에 American Baptists
와 미국 회중교회의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
for Foreign Missions
이 들어 왔고 1840년엔 미국장로교회가
별도로 선교부를 조직
Buell 선교사 를 파송하였고, 20
세기에 들어와서야 여러 선교 단체가 태국선교에
참여하였다
. 영국의 The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1903)을 위시하여 The United Christian Missionary Society(1903), The
Christian Missionary Alliance(1929), The World Wide Evangelization Crusade (1947),
The Finnish Free Foreign Mission(1948), The Southern Baptist Mission (1949),
American Churches of Christ Mission(1949),
 The New Tribes Mission(1951), The Christian Brethren
Mission(1952), The Marburger(1953)
이 한국교회의
태국선교에 앞서 들어와
선교의 밭을 갈고 있었다
.

. 한국교회 태국선교의 현항

한국교회의
태국선교는
1955424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선교부가 최찬영 목사와 김순권 목사의 태국선교사 파송식을 거행하므로 태동 되었다. 그러나 한국동란 직후 여권발급이 어려운 때라 김순권 목사는 여권을 받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최찬영 선교사만 그 다음 해에
여권을 발급 받아 출국하여 태국에 도착하였고 불과
6개월의 격차로 김순일 선교사가 김순권 목사를  대신하여 총회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같은 해11월 하순에 태국 땅의 뜨거운 열기에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한국 교회의 태국선교 개척기를
열게 되었다
. 이같이 시작된 태국선교는 다음의 4단계 곧 (1)
국제교회간 상호협력 (1956-1970),
(2)
복음 신앙 선교단체의 선교승계 (1970-1980), (3) 선임선교사중심의 선교 단체형성 (1980-1990) (4) 21세기전후 하여 선교단체증가와
팀 사역개발
(1990-2005)등의 단계를 거쳐 희년을 맞은지도  4년이 지났다.  

오늘의
한국의 태국선교세력은 선교사
 
220여 가정과 독신 선교사 50여명이 태국의 복음화를 위해 정열을 쏟고 있고 좀더 나가 지난
10
년간은 인도차이나(태국 베드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지역내 선교사들이 협의회를 구성하고 해 마다 나라들 을 순회하며 영적무장과 아울러 공동과제에 대처하기 위해 선교대회를 계속해 오고
있다

현재까지의
사역활동상항을 종합해 본다
. 신학교사역을 소개한다. 태국 에는
신학교와 교역자양성기관이 현재 모두
53개가 있다. 그 중에 기독교신학교육
협회에 가입된 학교는
40 여개, 그 중 한국 선교사가 설립한 신하교가  6개이고 행정직과 교수 사역 등으로 관여 하고 있는 기존 신학교는 4개로 모두 10이다 위의 학교들 중 정부로부터 학부를 겸한 대학원 인가를
 받은 학교는 파얍대학교의 메킬버리 신학부 와  기독대학교의
방콕 신학원
(B.I.T.)  2곳 뿐이다. 이상의 신하교에 년간 배출 신학 졸업자가 200명내외 이다.


교회개척사역도 활발이 움지기고 있다. 현지교단에 속하여 협력사역을 하고 있는 션교사들은 교단의 보호와 협력 그리고 현지인의 조언 등으로 사역의 효능성을 높이고 있다.
반대로 현지의 교단이나 단체의 법적협력 관계없이 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선교사들도 많다. 각자 소신대로 하느니 만큼 사역추진면에서 유리한 점도 많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하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성과도올린다
. 때로 현지인 사역자들과 쓰라린 인간관계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적지않은 선교사들 가운데는 처음 부터 지방 도시나 산족들에게로 들어가 개척사역을 시작하고 있다. 한가지 기쁜 현상은 현지 태국 교회도 다수가 교회개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교회개척에 자체적으로 힘을 기우고 있다 는 사실이다.
최근4, 5년간 신교 3개 교단이 연합하여
펜챁이라는 이름으로
무반() 마다 복음전도,  땀번() 마다 제자 양육,  암퍼()
마다 교회설립이라는 구호를 외치 며 총력을 기우리고 있다. 이로 인해 방콕과 근교에 새 교회들이 많이 개척되고 있다.


체육 특히 축구나 그 밖에 각양 전문인 선교도 할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사회 각층의 호응도도 좋다. 기숙사 사역이나 윤락여성들을 위한 직업 보도사역 선교활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근래에 와서는  태국의 제2도시 같은
곳에는 한국 선교사들이 주동이 되어 교파를 초월하여
체마이 성시화 운동과 같은 대형 전도집회도 해 마다 계속하며 복음으로 불교도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II. 당면한 선교과제와 장애요인들

한국교회의 21세기 불교권 선교전략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선교에 대한 평가가 기초가 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래에 다섯 가지 긴급한 분야에 대해 점검해 보고저 한다. 먼저는 선교사역에 관련된 과제,
선교지의 종교적 문화와의 과계성, 선교 인원과 사역의 윤리성, 불규칙한 재정지원 문제 등에 대한 현주소를 알아보자. 

    . 선교사역에
 비쳐진 과제

선교사역에관련된 과제로서 두가지 잇슈를 들수 있다. 본국 파송교회에 관한 것과 선교의 궁극적 목적에 관한 것이다.

         1. 파송교회
위주의 선교사역

선교의 위임령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으나 제자들은  교회를 대표하여 받았으므로 결국 교회에 주신 것이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교실천의 주체가 될 뿐 아니 라 선교의 결과에 책임까지 져야한다. 따라서 교회는 선교 대명을 순종함에 피동적 인 자세는 바람직 하지 못하고 생사를 가늠하는 수술대에서 집도하는 의사와 같은 심정 으로
장단기 계획을 세우고 능동적으로 선교사역에 임해야 할 것이다
. 이것은 선교를 하는 교회가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어떤 모양으로 선교명령을 수행할 것이냐 에 있다. 교회가 선교일선 지휘관과
같은 모습으로 비처저서는 않될 것이다
. 삼군통수권을 가젔다고 해서 대통령이 각군 참모총장을 제쳐 놓고 직접
연대장 과 대대장과 같이 일선 장병들의 전투를 지휘하려는 모습이 선교지에서 나타난다
. 선교사들이 얼마되지
않았던 초기에는 혹 그러 할 수 있었겠으나 수십년의 일선경험이 있는 선임 선교사들이 있는 현재는 선교사역의 방향과 지휘는 선교전문인이나 전문선교단체
에게 위임하여 선교의 효능을 극대화 할 수 있어야 되겠다
. 마치 이드로가 모세에게 자문했던 성경의 위임원리
와 같이
, 신약의 초대교회의 7집사 선택에서나 안디옥 교회의 바나바와
바울 일행 에게 선교를 위임한 일에서 볼수있었던 것 같이 말이다
. 중요한 것은 교회와 선교인 단체간의 돈독한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 그를 바탕으로 긴밀한 사역 관계를 수립하되 해당 선교단체의 운영만이 아니라 각
선교지마다 복음돌파가 이루워 지도록 협력하고 선교 일선사역의 타당성과 목적등을 사실에 근거 연구하고 적극적인 의견 표명과 아울러 실효성있는  참여가 절실하다
.

단기선교 팀의 활용도 심사숙고하여 선교지의 사역에 기여하도록 할 것이다. 선교비죤이나 헌신에 좋은 결과를 가저옴은 물론 일선 선교세력과 긴밀한 연락으로 사전에 잘 계획하고 실효를 거둠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 본인의 경우 단기 팀으로 인해 많은 사역의 열매를 걷우게 되여 감사한다. 바라기는 단기 팀사역교회와 선교단체 간의 긴밀한 협의를 거처 이루워지도록 한국선교의  질적발전을 위해 새로운 전략의 수립이 있었으면 한다.
선교대회도 선교일선의 사역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여야  한다. 공통적으로 잘 적용할 수 만 있다면 선교의
시대적 요구에 민감하게 하여 선교사역의 세계적 또는 지역적 흐름에 적응할 수 있어 유익한 선교의
  한 날개가 될 것이다선교운동이 절실할 때 선교동원의 차원에서 한국선교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 이 문제도 이제는 선교의 균형면에서 깊이 있게 연구하여야 할 단계에 왔다는 느낌이다.
선교 대회가 선교의 전부가 아니니 만큼 선교대회 공해라는 말을 들을까 조심스럽다.

2. 복음화에 대한 정조준과제

선교는 왜 하는가? 파송교회나 파송을 받은 선교인원이 함께 선교실천과정 에서 한 번 쭘은 물어 보아야 한다.  선교의 목적을 몰라서가 아니다. 선교라는 피상적인 것에 매달리다 때로는 곁길로 빠저 들어 선교의 핵심을 분별 못하고 있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구속사(Heilsgeschichte)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파송사역에 대하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고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 하시고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20:21-23)고 하면서 선교의 궁극적 목적에 언급하였다. 누가는 “죄 사함을 얻게하는 회개가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고 죄 사함 받는 선교목적에 힘을 더하였다. 마가는 그 같은 목적을
성취케 하는  방법으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 을 전파하라.”
고 하여 복음전파만이 선교목적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긴급하고도 독득한 수단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    하노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 하였고 에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
.”  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선교는 어떠한가?  지난 40년동안 선교세력이
2만에 이르는 놀라운 확장으로 세계선교에 기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그러나 양적성장에는 질적저하가 따르기 쉽기에 모두 경계할 일은 선교란 미명 하에 복음외에 다른 것에 의존하면서 선교한다고 하여 본래의
목적에서 이탈하거나 그런줄 도 모르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 일선장병에게 주워진 소총은 쏘라고
지급 되었지만 무턱대고 발사하라고 준 것이 아니고 표적에 적중토록 하여야 하는 사명이 있듯이 선교사로 파송 받고 나가 선교지 국가나 인접국다에서 무슨 사역이던 관여 한다 고 해서 선교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역은 그 사역여하를 막론 하고 복음전파와 연결되여 소중한 구령의 열매가 매처저야 하고 선교사로서의 윤리적 범주를
벗어 나지도 않아야 될 것이다
. 현 선교인원의 절반이상이 각양 전문인이라는 것은 총력선교 라는 면에서 얼마나
기뻐할 일인지 모른다
. 더 많은 전문인 선교사들이 선교들판에 투입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사역과 관련을 맺고 언제나 말씀사역 의  보조사역으로 자신의 위치를 자리 매김하여야 할 것이다.
선교학자  George W.
Peters 박사 역시도 선교사는 말씀사역의 소명 또는 말씀사역에 관련된 보조자(의사, 간호사, 교사, 기술자 또는 사회복지가)의 소명을 받은자라야 한다.” (A Biblical
Theology of Missions
p.298) 라고 했다.

. 불심에 비처진 과제

선교사의 전달하여야할 메시지와
그의 삶이 불교권의 사람들의 마음과 눈에 어떻게 들리고 어떻게 보이는가

두가지 분야에 대하여 생각하고저 한다.

         1. 영성과 이성의 조화과제

   불교계 의학도Luang Suriyabongse
박사는 과학과 불교는 완전히 일치 한다
하였고
(Buddhism in the Light of Modern Scientific Ideas pp.288-89) 불교의 근대화 주창자들은부처는 불도의 변증에 강력한 이성의 힘의 필요를 가르 첬다고 한다(Kitagawa, J. M. and Reynolds, Frank,Theravada
Buddhism
p.46). 개개인의 삶이 바퀴처럼 끊임없이 윤회(samsara) 하는 것도 휘발류가 타고 있는 한 바퀴가 돌아 가듯 kamma 로 불리우는 의지적
행동으로 끊임 없이 다시 태여나고 그 삶의 모습이 결정되는데  그 모습은
12개의 인과관계의 사슬로 되여 있다고 한다.






















첫 사슬은 무지인바 사물의 참 모습에 대한 무지이다.
 특히 苦 (dukkha)의 시작과 소멸에 관한4대진리(ccattari ariyasaccani)
에 대한 무지이다. 이같은 무지로 인해 의지
가 이러나고 그 의지를 인해 의식이 생기고
이 의식을 통해
심물’(mind and matter)이 조성되고 이
심물을 인해
육감이 생기고 이 육감을 통해 접촉이 이러 난다. 이 접촉으로 감각이 생기고 이 감각을 통해 욕심
(tanha)이 이러 난다.욕심이 생기면 그에 대한 집착이 따르고 그 집착으로 생성과정에 이르고 마침 내는 갱생곧 다시 태여 나고 그다음은
그 다시 태여 난 것의
老死가 따른다고 한다. 2 사슬은 현세의 삶의 근원 (전생)이요 그 다음 다섯은 지금의 삶(과거의 존재와 행동 의 결과)이요 그 다음 셋은 내세의 삶을 향하여 순간 순간 움지기고 있는 현금의 삶이요 마지막 두 사슬은 장래의 삶을 규정할 현재의 활동을
말한다
. 이같은 바퀴의 삶의 중요 한 동력은 두개다. 무지와 욕심으로서
무지는 현 존재의 근원이요 욕심은 현 활동의 근원이 된다
. 이상과 같은 원인과 결과의 추리가 삶의 배후을
이루고 있는 반면에 개신교 전도자의 배경은  이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역사을 기대하며 이적적인 탈출을 모색 한다
. 구속과 구원의 도리가 그렇고 삶의 현장에서 드려지는 기도가 그렇다.
이로 인한 두 진영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신자와 불신자 사이 만이 아니라 같은 기독교인 사역 동역자 사이 에도 일어난다.
기독교 사역도 선교사는 이적적인 사역결과에 박수를 보내는 반면 현지인 사역동역자들은 평범한 자연적이고도 계획성 있는 사역
발전을 더 좋와 한다
. 보혈의 능력을 전하는 것 보다는 예수의 성자적 삶에 더 역점을 두고 위로 부터의 기적적인
공급보다는 인간의 선심을 바탕으로 충분한 예산에 의한 사역을 더 선호한다
. 장기전략에 참고할 중요한 상항이라
사료된다
.

2. 정적표현과 동적표현의 마찰

 개신교의 멧세지는 신도들로 하여금 피 전도인 앞에서 펄펄 뛰도록 한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요 노소를 막론하고 언제 세상을 떠나게 될찌 모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다고
하지만 그 시각을 모르는 우리 로서는 빨리 믿게하는 것이 안전하기에 조용 조용 언제까지나 참고 기다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 이에 비해 불심 은 어떻한가? 불도의 최종목적은 세상에 다시 태여나지 아니 하고 열반(nibbana)에 들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更生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무지와 욕심 에서의 탈피가
불가피함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가 아닌가
! 그런데 불가 에서 는 그것이 가능 하다고 본다. 마치 열기의 수치가 높아지면 냉기의 수치는 낮아지고 열기가 내려가면 냉기는 올아가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고통이 ‘0’이된다는 것은 희락이 ‘100’이 된다는
것이므로
의 근원되는 욕심을 ‘0’에게 까지 내려 가도록 힘 쓰는 것이 불가의 목표다. 여기에서 개신교 선교사의 동적인 전도열의와  불교수도자의 정적인 목표간에 마찰을 경험한다.
어떻게 해야 멧시지의 동적요소를 유지하면서 정적인 접근을 시도할 수 있으며 정적 불심에 동적 멧시지를 품게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  이는 한국선교사가 극복
해야 할 과제이다
. 본인 자신도 초기 전도시 동네마다 찾아 다니며 확성기로 또는 모아 놓고 복음을 전하던
때 보다 오후시간 차분하게 희생적 사랑을 배풀 며 조용하게 닥아 서면서 일대 일로 전도 할 때 좋은 성과를 걷을 수 있었다
. 절벽 벼랑 끝에 앉아 노는 아이를 본 어머니가 자기 아이의 아찔한 위험을 보는 순간 가슴이 불탈 지라도 아이가 잡힐 때까지조용 조용히
닥아설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과제일 것이다
.

    . 선교인원과
 사역의 율리성

먼저 선교인원간에 지켜야 할 윤리성을 들수 있다. 파송단체(본국교단이나 선교단체) 또는 현지사역단체(현지교단이나 현지사역단체)와의 약속과 서약에 대한 이행책임은 선교사이기기전에 기독교인의 기본윤리에
속한다
. 선교사 개인으로도 그렇겠 지만 단체 간에는 더더욱 중요하다. 더욱이 파송 교회와 선교단체간, 선교단체와 현지 교단이나 사역단체간의 윤리적 책임과 신뢰성
구축은
21세기 한국선교발전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다. 책임과 신뢰관계가
성립되지 않고는 한국선교는 성숙할 수가 없다
. 파송시 하나님과의 서약도 가볍게 여겨서는 않될 것이지만(시편15;4) 선교지의 사역 단체와의 계약도 그렇다. 하나의 거처야 되는 요식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풍토로서 는 
임기응변의 땜질 선교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오늘의 소승불교권에서는
홀로 개척 하여야 하던 원시선교형태는 지났다
. 현지에는 이미 힘께 동역할 만한  현지교단이나 사역자가 있다, 이같은 유리한 조건을
최대한으로 살려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호 약속이행이다
. 약속이나 계약이행은
불교의 인과보응에 바탕을 둔
, 존중되어야할 중요한 사회윤리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있어 부끄러움이 없었는가?  한번은 자성해 볼만한 문제이다.


다음은 사역수행 과정에서 지켜야할 윤리성이다. 선교사역을 수행한다는 이름으로 현지의  법적요구를 외면하거나 관계법을 준수치 않는다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사회의 일반적
관행에 어긋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사역수행과정에서 불법으로 일을 추진하였다고 하면 하나님앞에 떳떳 하겠는가
? 가령 신학교 설립과정 에서 정부시책에 위반되고 지역내 신학교육협회에서도 인정치 아니하는 학위를 수여 한다 든지 교회부속기관을 편법으로
운영을 한다든지 특히 정치적 제한지역이 아닌데 도 비자없이 사역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기독교율리를 성실하게 실천하여야 하는 자 에게는 심사숙고를
요하며 믿음의 결단을 요한다
. 한거름 더 나가 한국사회서는 무방 하나  태국사회율리로는 문제가 되는 일은 현지사회윤리에 상반되지
않토록 주의를 기우려 행할 것이다
.


    . 재정지원의  무계획성

재정을 필요로하는 선교 프로젝일 경우 불교권에서는 온전한 재정확보를 요구한다. 한국교회의 경우는 때로 재정예산이 사전에 확보되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일을 시작하고 추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떨 때는 은행융자를 내서라도 모험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태국에서는 그 같은 전예를 거이 찾기  힘들다 .  그러므로  재정긴장을 피하려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재정의 지원책이 필요한즉 작금의 재정지원방법에 개선이 요구 된다
. 현재의 지원체제로는 장기계획이 어렵다.
물론 하나님만 믿고 나가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선교사역은 교회의 한 옵숀사역이 아니기에  교회의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지원계획이 수립되여야 하고 이같은 계획은 관계 선교 단체와의
협약을 거처 이루워 지도록 할 것이다
.  따라서 선교사 한 사람을 파송할 경우 생활비와 차량, 주택과 활동경비만이 아나라 교회개척이나
청년 대학생 사역 등
 3,4년 후에
착수할 수 있는 사업을 염두에 두고도
  파송되어야 할 것이다. 신학교 사역 같은 것은 한 두교회가  할수 없음으로 같은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들이 참여하는 연합사역으로 발전시키고
현지교회와  해당 선교단체간의 협의아래 장기지원이 되도록
  할 것이다. 태국지역
전체 선교사들에게로 보내지 는선교비가 엄청날 것이므로  연합적인 노력을 진작시켜
 한국 선교사들의 신학교육의 영쇄성을 벗어 나게 되기를 바란다

.

III. 한국불교권선교의 장래방향과 전략

        오늘의 당면한
과제와 장해요인들을 생각할 때 한국교회 불교권
  선교전략은  6개 분야
곧 선교주체인 교회
, 소승불교권 전도, 신학교육, 교회개척전문인 사역,
선교지 한인교회로 나누워 생각하고저 한다.

    . 선교주체교회의  전략적 재정비

교회가 선교위임령을 받았다는
것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 그러나 교회의 선교주체성 이해에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 편은 교회가 직접 나서야 한다면서 선교지 선택에서 선교사들의 선교사역의 형태에 이르기까지 진두지휘 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은
주체성은 주장하면서도 책임성과 실제성이 결여된 경우라 하겠다
. 주체적교회 로서의 기능에 대한 전략적 재정비가
필요하다
.

첫째 선교부흥운동이다. 더 많은 교회가 세계복음화에 나설 수
있도록 선교각성이 교단의 노회나 지방회 중심으로 전환할 때라고 생각된다
. 교단적 차원 에서는 선교정보와 훈련
선교지 연구와 개발등에 집중하고 선교사역의 지휘권는 개 교회의 사역을 감독하는 노회나 지방회에 넘겨야 할 때가 왔다
. 그러할 때 산하 교회들 의 선교동원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교단본부에 지위권이 있는한 교단적
차원의 모습은 그렬듯 하게 보일 수 있겠으나 개 교회 선교개발에는  실제성이
없고 개 교회 중심의 선교형태를 탈피할 수 없다
. 개 교회 목사위임이 노회중심으로 이루워 지듯 선교사임명과
파송도 교단차원의 자격심사를 거친자로 노회나 지방회 중심으로 행해저야 할 것이다
.

둘째 단기선교 팀 운영에 대한 전략적 고려이다. 선교실천에서 중요한 것은 논에 물보를 대듯 구원의 복음이 어두운 선교지의 영혼들에게로 흘러 들어 가도록 하는 데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단기선교 팀 역시도 사역목적을 이에 마추고 사전에
해당 신교사들이나 선교단체와 긴밀한 협의와 산전조율을 거처 사역의 충돌을 피하고
  타 문회권 사역의 특수성을 충분히 익히고 현지에 적절한 사역들을
준비하여 보낼 것이다
. 더 나가 단기선교도 아주 유익한 선교수단이니 만큼 선교지의 복음전파나 교회개척 사역에
실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야 하겠다
.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적이고 조직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단기선교
팀원들이 사전에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전문기관 이 교단이나 선교단체별로 설립된다면 크게 도움이 될것이다
.

셋째 각종선교대회에 대한 전략적 고려이다. 선교진흥차원의 선교대회는 선교사들 보다는 한국교회 선교개발을 위해 필요할 것이나 대형대회의 선교운동보다는 실제적 선교교회개발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 선교지에서의 선교대회 는 선교지역의 국가적 차원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지역민의
관심사에 대해 해당지역의 현지인 전문가를
  강사로 하는 연구차원의 세미나 형식의 모임이 일선선교를 보다 정착 케 하는 일에 일조를 더하리라 생각한다. 태국의 경우 선교사가 참석하여야하는 회의나 대회를 살펴 본면 태국주재 선교사협의회, 지역별
지회수련회 중앙회 수련회 외에 인도차이나 선교사 대회가 있고 거기에 교단별 본국선교대회와 선교지역별 선교포럼등 뿐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국제회의
등을 포함하면 어떤경우에는
1년에 두 세번 회의 참석차 출타하여야 하는 뜬 기분을 느낄때가 있어 우려되기도
한다
. 선교운동기를 탈피 하고 일선선교가 정착될 수 있도록 모두가 이일에 협력할 것을 제안한다.


    .불교권에서의
접촉점 문제

타문화권 선교에서 늘 유념하여야할 수칙은 피선교지 국민이 어떻게 하면 복음을 쉽게 받아 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이 점에 소승 불교권에서는 접촉점 잇슈가 중요하다. 복음의 내용전달과 전달자의 삶에 관한 접촉점 발견이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먼저 복음전달
곧 컴뮤니케이숀에서의  접촉점을 생각해 보자
.

         1. 
컴뮤니케이숀상의  접촉점

복음전달 시 흔이는 겁듭나라고 권한다. 소승불교권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의 바람은 다시 태여 나지않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불교의 4대 진리 가운데 첫번째 진리 라고 할수있는 dukka는 두가지 요소로 이루워 지는데  변화 무상을 의미하는 anicca  자아의 부정을 뜻하는anatta로서 정확히 말해 개신교 에서의 타락으로 인한 고통과는 내용이 다르다. 그러나 개신교의 멧시지가운데
뜻이 제일 유사한 것이여서
  전도의 접촉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 그 다음으로 태국 일반인의 근접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예수의 생애가운데 수없이
나오는 귀신의 존재이다
. 부처는 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태국의 불교도의 대부분이 귀신의 존재를 믿고
두려워 한다
. 성령의 권능으로 귀신을 제어할 수 있다고하는 멧세지는 불교인라면서도 귀신의 존재를 믿고 두려워
떠는 정령숭배 대중전도에 훌륭한 접촉점을 제공하고 있다
. 실지로 성령으로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게 될 때 그것을
실증하게 됨으로 전도의 효과을 극대화 할 수 있다
.


         2.  선교인원의 삶의 접촉점

불교권 전도에 잊어서는 않되는 접촉점이 있다. 복음 전수자의 삶이다. 겸손하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는 삶이야 말로 불교인에게
가장 강력한 접촉점을 제공한다
. 기독교의 교리를 모르고 서양종교의 하나 라고 믿고 종교는 다 좋다고 하는
견점에서 볼때 전도자의 삶 외에는 기독교를 대변할 것이 없고 그들의 삶을 가늠하는
  잣대는 욕심을 버리고 검소하게 고행을 자처하는 승려의 삶
외에는 없다
. 이런 점에서 고난의 역사속에 시련을 아는 한국선교사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할 수 있으나
오늘의 물량선교는 좋은 접촉점을 희석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염려 스럽기도 하다
. 불교권 선교전략의
하나로 감정을 제어하고 절약과 검소한 삶을 몸에 익히는 훈련을 필수조건으로 할것을 제안한다
.


    . 사역전문성 조장을 위한 신학교육

본인은 39년의 태국선교사 생활중 현재까지 30년간을 방콕신학원의 신학 교육에 몰두하면서 방콕과 근교16개 처소에 교회를 개척 지원하고 있다.
한가지 이상 한 현상에 자신도 놀라는 것은 졸업생가운데 교회개척에 헌신하려는 학생이 아주 소수 라는 것이다.한 번은 안타깝게도 2년동안이나 개척자 한사람 만나려 애써 찾다가 겨우 만난적도 있었다.
물론 교회 개척사역이 쉬운일이 아닌데다가 긴장과 불확실을 원치 아니 하는 불교문화에 젖은 습성으로 그러리라 이해는 하지만  오늘의 신학교육에도 결함이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러므로 열대성 불교문화를 고려할 때 처음 부터 하고자하는 사역별로 전문성을 살려 교육을 하는것이 바람직 하다.
섬길 교회나 기관이 있는 기독교 환경에서의 사역자 양성과정과 섬길 교회가 적거나 막연한 지역환경에서의 사역자양성 과정이
같다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그대로 방치될 수는 없는 일이다
. 전문성 조장을 위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 졸업생가운데 여학생이 반이상이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문이 자기가 배운 과목과는 거리가 먼 분야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 교회개척 전문과 기독교 교육 전문을 위한 교과과정이 달라야 한다는 점과 각종기독교
기관의 행정사역자와 교역자양성 전문사역자을 위한 교과과정이 같다는 것도 시정 되어야 한다
. 한마디로 현지의
필요에 상응하는 신학교육이 장기전략의 일환으로 고려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 교회개척을
위한 전략

태국교회는 근간에 와서 교회개척을 절감하고 3개 기간교단이 연합하여 초
교단적으로
  “암퍼()마다 교회라는 구호를 외치며 교회개척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 다음에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두가지 교회개척전략에 대하여 언급하고저한다.

1. 현지인 개척자 단 형성

교회개척사역 초기에는 어쩔 수 없이 하나의 교회로 시작할 것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자리가
잡히고 새로운 개척을 위한 재정지원이 가능하다면 첫번 교회는 현지인 사역자에게 과감하게 위임하고 2 3차로 교회를 개척하여 현지인 교회개척단을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기러기가 혼자 날라가는 것보다는
여럿이 날라야 몇배로 힘이 덜 든다는 것 처럼 교회개척자가 자신외에 자기와 같은 사역자가 있다는 데 큰 위로가 되고 고독때문에 오는 많은 문제도
구릅안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유리한 점이 있다
. 특히 교회개척은 장기간의 소요사역이므로 개척에서 자립할 때까지
혼자서 힘들게 견딘다는 것은 욕심으로 인한 내부 갈등을 피하려는 불교문화에서는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 같은 교단 선교사들 간에는 물론 이려니와  타 교단 선교사 와도
신앙노선이 허락하는 한 힘 쓸 일이다
. 현지인 개척자 한 사람만 데리고 사역하다 가  현지인 동역자의 사임으로 곤란을 격는 선교사가 있는가 하면 십년간 한 교회를 개척 하던
현지인 개척전도사가 몇번이고 사임하려 하였지만 개척단의 여러 동료 개척자들을 인하여 견딜 수 있었다는 놀라운 간증을 들었다
, 현지인 개척단 형성이 새로은 교회개척 전략으로  강하게 떠오르고
있다
.


        2. 교회개척사역
입양운동

개척교회의 수적증가와 자립을 목표로 하는 장기지원을 위해서는 교회개척 사역의 파라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한 선교사의 개인선교비로는 하나의 교회를 개척 하기도 벅차다. 교회개척 입양운동이 절실하다.
교회개척을 중점적으로 잘하는 선교사 가 있는 지역에는 그 선교사를 통해 한 두 후원교회가 경비를 맡아 교회의 선교 프로젝
으로 입양하고 해당선교사에게 양육권을 위탁하는 개척전략의 전환이다
. 선교지의 교회 개척
Project를 입양한다고 할 때 교인들의 과심도를 증대할 수 있어 좋고 단독선교사 를 파송하고 교회를 개척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 기다리기 보다 실질적으로 즉시 선교지 복음화에 참여하게 되여 좋고 위탁받은 선교사 편으로도 좋은 것은 개척교회가 느러나 사역의 보람을
더 하게 되고  피 선교지 사람 앞에도 현지인 사역자가 교회를 개척하게 되니
언어소통은 물론 문화적인 면에서 사역자와 교인간에 거리감을 없이 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 무엇보다도 헌지인 개척자에게 안정감을 주어 자발성을 유발하게 됨으로 자립의 기간을 주릴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를 단독으로 파송할 때와 달리 두서너 교회가 연합으로 쉽게 교회를 개척할 수 있어 선교하는 한국교회의 증가 에도 기여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
  

 

. 전문인 역활 확대                                         

이 천국뷱음이 모등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24:14)선교의 마즈막 주자로서의 한국교회는  총력을 기우려 아직도 남아 있는 미완성 세계선교 과제를 끝내야
한다
. 이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한국 교회는 동남아 불교권에 많은 평신도 전문인 선교 인력을투입하였다.
이같은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한가지 전략적 측면 에서 제안코저하는
것은 전도와 교회 개척을 주로 하는 선교단체와의 협력이다
. 전문인 선교사들이 각자의 전문인 사역을 수행하는
가운데 자체적으로도 교회를 설립하겠지만 전문인 보조사역의 극대화
 
을 위하여 초 교파로나 초 선교단체로 특수전도단체나 교회개척 전문단체와 일정한 기간 사역계약을 맺고 필요에
따라 전문인사역을 할 수 있다면
, 딱딱한 규율보다는 흐슨 한 삶을 선호하는 불교인들에게 복음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줄 것이다
. 교회밖 앗 불신자들에게 는 기독교에 대하여 다처진 마음을 열도록 할 수 있고
교회 안의 사람 들에게는 땩딱하다 고 여겨지는 신앙생활에 즐거움을 더하게 될 뿐 아니라 일선 보병 부대를 지원하는 포병부대와 같은 역활로 교회성장에
크게 기여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

    . 선교지 한인교회의  전략화

선교지에 세워진 한인교회의 선교적의미는 지대하다. 선교지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단순한  디아스포라
사역 이외에
  선교지에 와 있는 한인성도들로
하여금 현지 선교사역에 동참하게 하고 뿐만아니라 진행중인 각종 선교 사역의 선교자원으로 개발 또는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은 한인교회 대 현지인교회 라는 교회 대 교회선교를 통해 헌지교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 교회 단위 선교전략면에서 높이
평가 를 받고 있다
.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 기독교총회에 속하여 한 멤버 교회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동으로 보여 주워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교회로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누가 무어라 하지 않는 상항에서라도 솔선 수범한다는 것은 소
()를 희생하여 대()를 살리는 희생으로 간주하게 되어
 불교 문화사회에서는 높은 덕성으로 평가와 인정을 받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
한 가지 좋은 예로는 방콕에 위치한 태국한인교회를 들 수 있다. 이 교회는 태국기독교총회
7노회에 소속하여 총회가 결의한10% 상회비를 정확히 계산하여 보냄으로 노회산하
  교회의 상회비의무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하였고 년간
  상회비 총액이 최고
액수에 달함으로 태국교회 입교인들의 헌금의무를  높이고 있다
.

 

맺는 말

소승불교권의 반세기여의
한국교회선교를 바탕으로 당면한 과제와 문제를 짚어 보면서 앞으로의 선교전략에 대하여 본인의 의견를 피력하였다
. 전체적이거나 완벽하지 못한다고 인정한다. 지난 39년간의
현지사역 경험과
10여가정에서 2만여명  으로 성장한 한국선교세력의 놀라운 성장을 현장에서 지켜 본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축복 에 감사하며 선교의 주체인 한국교회의 선교의 앞날을 염려하는
NCOWE V 참석자 앞 에 이글을
제출하는 바이다
. 금번 대회가 선교현장의 복음화 제반 사역 뿐 아니라 선교지에 세워진 교회들이 다시 세계선교에
동참하는 날이 오게 되기를 소원한다
. 감사합니다.

 

신홍식 : 예장총회G.M.S.
원로선교사, 세계선교동역기구(W.M.P.)대표,
현 태국선교사

            현 태국기독대학교
방콕신학원 교수
,
선교전공 신학박사(T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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