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vs 러시아’ 대리戰… 우크라이나 사태가 부른 비극
[우크라이나 상공서 여객기 격추… 그동안 무슨 일 있었나]
크림합병 후 동부도 독립 요구
러시아, 접경서 親러 반군 지원… 최근 교전 격화돼 수백명 사망
나토, 지상군 파견하며 견제… 서방, 러 경제 제재 강도 높여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 격추는 서방의 지지를 받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親)러시아 반군 간의 교전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서방과 러시아의 패권(覇權) 다툼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해석도 그래서 나온다.
1997년 폴란드·헝가리·체코를 시작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잇따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러시아가 맞부딪치는 최전선이 됐다〈지도 〉. 2004년 서방이 지원한 오렌지 혁명(민주화 운동), 2010년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집권 등 우크라이나의 정치권력도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11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던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은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해 EU와의 협상을 전격 중단했다. 우크라이나는 2008년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 금융을 받는 등 경제 파산 위기에 몰리자 아르메니아·조지아 등 옛 소련 연방국과 함께 EU와의 관계 강화를 모색 중이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철강·초콜릿 수입 금지 등 무역 보복과 함께 천연가스 가격을 인상하거나 공급량을 줄이겠다는 압력을 가했다. 결국 야누코비치는 EU와의 협상을 전격 중단하고 러시아와 협력 강화를 선언했다.
하지만 야누코비치의 발언 이후, “다시 러시아 치하로 돌아갈 수 없다”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지난 2월 야누코비치는 결국 의회에서 탄핵을 당한 뒤 러시아로 망명했다. 러시아는 이 시위의 배후에 서방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다시 서방 쪽으로 기울자, 푸틴은 지난 3월 흑해 함대 주둔지인 크림반도를 무력 합병했다. 서방이 반발했지만, 푸틴은 러시아와의 합병을 원한 크림반도 주민투표 결과를 근거로 이를 일축했다. 이후 러시아계 주민이 50% 안팎인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도 중앙정부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러시아는 친러 시위대에 무기를 제공하고, 정체불명의 군인을 파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결국 지난 4월 소총 등으로 무장한 친러 시위대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등 동부 주요 도시의 관공서를 습격해 장악하고, 자체적으로 ‘도네츠크 공화국’을 선포했다. 러시아는 접경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해 친러 반군을 지원했다.
친러 반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사실상 장악하자, 나토는 지난 4월 말 지상군 600명을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 3국(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나토가 이곳에 지상군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또 폴란드에 전투기 12대를 배치하는 등 대(對)러시아 전력을 강화했다. 미국과 EU는 러시아 기업인과 고위 관료에 대해 자산 동결과 여행 금지 등 제재를 가했다. 그 여파로 서방의 러시아 투자금이 빠져나가면서 러시아도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다.
반군에 열세를 보이던 우크라이나 정부군도 지난 5월 친서방 성향의 사업가 페트로 포로셴코가 대선에서 승리한 후, 친러 반군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정부군은 지난 6일 슬라뱐스크 등 반군이 장악하고 있던 동부 거점도시를 잇달아 탈환했다. 반군은 최근 도네츠크 등 동남부의 러시아 국경 지역으로 후퇴했다. 이후 정부군과 반군 간의 교전이 격화하고 있다. 유엔은 지난달 25일 우크라이나 사태로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423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인명 피해는 갈수록 늘고 있다.
[파리=이성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