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6만 도시에 20만 난민 우르르… “서방, 구호품 안 보내”

232
0
SHARE

시리아 코바니 난민들이 지난 17일 난민시설로 바뀐 터키 수루츠 중심가에 있는 한 결혼식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곳에서 거주하는 난민은 당초 1000명에서 지금은 600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생활하기에는 여전히 비좁다. 수루츠 | 하영식 분쟁 전문 저널리스트

ㆍ(2) ‘텐트도시’로 변한 수루츠

시리아 코바니의 전황이 장기화되자 코바니에 남아 있는 시민들은 계속 터키 쪽으로 월경을 시도하지만 터키 정부는 국경을 닫고 철통같은 경비를 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 10일 수루츠로 오기 며칠 전 코바니의 언론담당국장 오메르 알루스와 몇 차례 통화를 한 적 있었다. 수루츠에 도착해 그에게 전화를 하니 코바니 시민 270명과 함께 수루츠의 체육관에 갇혀 있다고 했다. 지난 5일 터키로 넘어오다 터키 국경에서 체포돼 구금됐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이들이 모두 풀려났을 것으로 생각하고 알루스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여전히 구금돼 있었다. 구금된 지 일주일이 지나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지 내게 “제발 석방시켜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의 요청을 모른 체할 수만은 없어 혼자서 체육관을 방문해 그곳을 지키고 있는 터키 경찰에게 접견을 요청했다. 터키 경찰은 체육관을 가리키며 “그들은 위험한 테러리스트들”이라면서 위협적인 언사로 내게 돌아갈 것을 강요했다.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말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오후 쿠르드 정치인들과 변호사들이 구금된 코바니 난민들과의 접견을 시도했다. 그 결과 아이들과 부녀자 40여명은 석방돼 수루츠에 남았고, 난민 60명은 코바니로 강제 송환됐다. 지난 16일 40명이 다시 코바니로 강제 송환됐으며, 110명은 여전히 가족들이 머무는 수루츠에 풀어줄 것을 요청하며 단식농성 중이다. 난민들을 접견한 변호사 바란(27)은 “현재 체육관에 수용돼 있는 난민들이 테러리스트라는 증거가 있으면 이들을 즉각 구속하고, 증거가 없으면 무조건 석방시켜야 한다”면서 “터키 정부가 목숨을 건지기 위해 국경을 넘은 난민들을 구금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지역으로 되돌려보내는 행위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 “테러리스트 뒤섞여 있다” 난민 중 일부 강제 송환

“미 제국주의자 탓” “IS 탓” 난민·토착민 격한 언쟁도

수루츠 중심가에서 200m 남쪽으로 내려가면 결혼식장으로 사용하던 낡은 건물이 나온다. 지금은 난민 수백명이 생활하는 거주지로 바뀌었다. 필자가 지난 17일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마침 난민들의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정문을 들어서자 마당에는 난민들이 그릇을 들고 두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원봉사대원들은 큰 국자로 난민들이 들고온 그릇에 콩스튜와 밥을 담아주고 있었다. 한 여성은 자원봉사자에게 음식을 더 담아줄 것을 요구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당초 이 작은 결혼식장에는 난민 1000명이 숨 쉴 틈도 없이 들어차 생활하다 400명은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공간이 조금 늘어나 겨우 숨 돌릴 틈이 생겼다지만 여전히 600명이 생활하기엔 비좁은 공간이었다. 이곳 난민촌을 관리하는 비니지(36·여)는 “현재 쿠르드인들이 보내온 구호물자로 코바니에서 온 난민들을 돕고 있지, 외국에서 온 구호물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텐트도시’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작은 병원이 위치하고 있다. 병원 마당은 이미 난민들로 들어차 있고, 복도에는 진료를 받기 위해 수십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국도 처방전을 들고 약을 기다리는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 진료실에서 팔을 다친 아이가 울면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쿠르드인 의사 아흐멧(29)은 난민들을 돕기 위해 이스탄불에서 와 무보수로 봉사하고 있었다. “의사는 턱없이 부족한 데다 난민들은 하루 종일 몰려드니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지금 수루츠는 중심가이든 한적한 곳이든, 빈집이든 공사중단 상태에 있는 집이든, 공간만 있으면 코바니에서 넘어온 난민들이 들어차 있다. 중심가의 시청 바로 옆 건물에도 난민들이 들어차 있고, 이곳에서 1㎞만 걸어나가도 도로 양편에는 텐트도시가 건설돼 있다. 그곳으로 이르는 길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모두 난민의 아이들로 봐도 무방하다. 

텐트도시의 텐트들은 모두 같은 모양과 크기다. 수십개의 텐트가 한곳에 모여 있어 몇 개의 마을을 모아놓은 것과 같은 규모다. 전날 많은 비가 내려 텐트 사이의 길은 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텐트에 3대의 대가족 십여명이 함께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텐트 내에 장막을 둘러쳐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 사용하는 가족도 보였다. 물이 부족하다 보니 위생 문제가 가장 크게 부각되고 있다. 어린이들이나 부녀자들은 시간만 나면 물통을 들고 물을 길어오는 게 하루 일과였다. 

수루츠 중심가에 위치한 전기용품 가게는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전쟁 특수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리드반(48)은 코바니에서 3주 전 이곳으로 넘어왔다. 기계를 손보는 기술자였던 그는 지금은 실업자 신세다. 가진 돈도 거의 떨어져가고 있다고 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고 밝힌 그는 열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열명의 자녀를 부양하는지 물었다. “자기들 먹을 건 알아서 가져온다”고 미신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난민 신세가 된 건 “미 제국주의자”들 때문이라고 미국을 비판했다. 그러자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가게 주인은 칼로 목을 베는 시늉을 하며 “알라 아크바!(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면서 “목을 베는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때문에 당신이 이곳으로 피란온 게 아니냐. 지금 쿠르드 민족이 믿을 곳이라고는 미국밖에 없다”고 고성을 질러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이들의 언쟁은 난민들과 토착민들 사이에 높아가고 있는 긴장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0만명의 난민들이 코바니에서 탈출해 수루츠로 넘어온 상황에서 인구 6만의 수루츠는 이미 난민들을 수용할 한계를 넘어섰다. 주할 에크네즈 수루츠 부시장은 “난민들이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다”고 말해 난민 문제에 대한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그는 “쿠르드 난민들을 돕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국가들은 많지만 정작 국제적인 손길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정부는 정치적 실리의 계산을 떠나 지금이라도 쿠르드 난민들을 위해 과감하게 문을 개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영식 | 분쟁 전문 저널리스트>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