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논문은 이윤식박사(Ph.D 문화인류학. (사)인도연구원, 수석객원연구원)가 쓴 인도 카스트 에 관한 10페이지 소논문입니다. 저자의 허락을 받아 올립니다. 인도선교에 관심이 있는분들과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띠와 인도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에 관한 소고
이윤식
1. 들어가는 말
인도의 교회역사와 선교역사 속에서 자띠, 곧 카스트는 매우 큰 중요성을 갖는다. 카스트라는 주제는 사도 도마로부터 시작되는 인도 교회의 출발에 있어서도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었고, 현재 인도교회의 큰 주제를 이루고 있는 인도교회개척운동과 미전도종족 사역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이슈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재 인도 기독교인들의 80% 이상은 카스트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볼 때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s)와 지정 부족(scheduled tribes)에 속하는 불가촉천민 출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인도 사회 안에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져오는 것을 생각할 때 인도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에 있어서도 카스트라는 요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Oommen 2000, 111).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인도 영화 속에 나오는 기독교인의 이미지는 고기를 즐기고, 술에 늘 취해 있는 사람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랄프 윈터는 인도의 사역 현장안에서 종족 그룹의 개념이 카스트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을을 언급하면서 ‘최대동질집단’의 개념을 이야기하였고, 도날드 맥가브란은 인도의 집단개종 역사를 고찰하면서 카스트를 중심으로 ‘동질집단 회심운동’의 개념을 주창하였다 (랄프 윈터 외 2010). 그러므로 우리가 인도 교회와 선교를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카스트의 개념과 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랄프 윈터가 말한 ‘종족무지’의 함정에 빠지는 오류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 선교사들이 동참하고 있는 교회개척운동과 미전도종족 사역에 있어서도 카스트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나타난다. 많은 선교사들이 카스트 제도가 사탄적인 것이라고 이해하면서 카스트 제도가 속히 무너질 수 있도록 기도제목을 나누기도 한다. 어느 선교사는 인도의 빌리지에서 카스트를 중심으로 주거지역을 삼는다는 것을 20년 만에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카스트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 못한다면 인도에서의 사역은 물론이고 자신학과 자선교학을 정립하는데 있어서도 혼돈을 겪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인도의 교회와 선교 역사 속에서 유럽 선교사들은 카스트를 어떻게 이해하였는가를 살펴보면서 인도에서의 자띠의 의미가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나아가서 자띠와 관련하여 인도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여 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인도 선교의 현장에서 자선교학(自宣敎學)의 정립을 위하여 꼭 필요한 기초작업이 될 것이다.
2. 인도교회 역사에서 나타난 자띠 관련 이슈들과 유럽선교사들의 자띠의 이해
‘인도 교회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사도 도마는 카스트 제도에 관한한 적대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사도 도마는 께랄라 지역에서 브라만들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복음을 전하였고 만 명이 넘는 브라만들을 세례주었다고 전해진다. 사도 도마의 선교 이후 형성된 시리안 기독교인들도 카스트 제도에 대하여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을 살펴보면 인도의 초기 선교에 있어서 외부에서 들어온 선교사들은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사실은 신분제도가 만연했던 2천 년 전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로마 카톨릭 선교시대가 열리면서 포르투갈 선교사들에 의하여 카스트 제도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당시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바라보며 인도에서 “실천되고 있는 ‘미신적인’ 믿음들을 비난하였고 신자들에게 만약 그들이 돌발적으로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을 접촉하게 되었다면 손을 씻거나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Lee 2008, 51). 포르투갈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 선교사들은 초기 사역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인도 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고 카스트 제도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 선교사들은 점차적으로 카스트 제도를 우호적으로 바라보면서 종교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인도 사회의 중립적인 사회구조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선교사들에 의해서 개척된 교회 내에서 카스트에 따른 예배당 좌석 배치를 인정하였고, 성례를 행할 때도 상층 카스트가 먼저 떡과 포도주를 섭취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드 노빌리(Roberto de Nobili, 1577-1656)의 경우에는 힌두교의 탁발승과 같은 복장을 하고 브라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다른 하층 카스트들과의 접촉을 고의적으로 회피하였다. 상층 카스트들이 신성한 실을 몸에 지니는 것과 같은 힌두교적인 관습을 일부 허락하기도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파랑기(Parangi)가 아니다. 나는 파랑기의 땅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들의 인종과도 접촉되지 않았다. 나의 교리가 붙들고 있는 거룩하고 영적인 법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카스트를 잃어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가도록 하지 않으며, 그 법은 자신의 집안의 명예를 해롭게 하는 어떤 행위를 하도록 권유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Forrester 1980, 15). 이러한 맥락 속에서 드 노빌리는 캐톨릭 교회 안에서 유럽 선교사들 중에서는 최초로 적응(adaptation) 또는 순응(accommodation) 정책을 도입하면서 “카스트는 복음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고 교회 안에서 약간의 수정을 통하여 유지할 수 있는 시민의 기관”이라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Forrester 1980, 15).
18세기 이후 유럽에서 온 대부분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카스트에 대해서 가졌던 태도는 매우 부정적이고 공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앵글리칸 감독이었던 헤버는 각 교회에서 카스트의 구별을 즉각적으로 말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은 것을 알았고 오히려 인도 목회자들과 선교사들 사이에 열띤 논쟁만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시기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가졌던 카스트에 대한 인식은 1850년에 열렸던 마드라스 선교사 대회(Madras Missionary Conference)에서 여실히 나타나는데 이 대회에서 유럽의 선교사들은 카스트를 “인도에서의 복음의 진보에 가장 큰 장애물들 중 하나”로 선포하였다(Forrester 1980). 이러한 인식은 카스트가 기독교의 원칙에 위배되고 그래서 교회 내에서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선교사들 가운데 불러일으켰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선교사들은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집단 개종보다는 상대적으로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갖는 상층 카스트들이 많이 선택하는 개인적인 개종을 강조하였다. 낮은 카스트 출신의 개종자들은 개종 이후에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견고하게 지키고자 하는 목적을 취함으로써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윌리암 캐리의 경우, 초기에는 카스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우호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으나 카스트 때문에 세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부정적인 태도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는 카스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중적인 전략을 가졌다. 첫째는 우상 숭배와 전체적으로 연계하는 것들 중에서 핵심적인 것이 카스트 제도라는 인식을 갖고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고, 둘째는 인도 교회에서 카스트에 근거한 습관들을 완벽하게 배제하는 것이었다 (Forrester 1980, 25-6). 윌리암 캐리에게 있어서 카스트 제도는 우상 숭배의 전반적인 시스템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영역이며, 도전과 방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사악한 제도로서 이해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대부분의 유럽 선교사들이 인도 문화를 전반적으로 적대시하는 태도를 갖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할 수 있다.
3. 자띠의 사회학적인 의미와 오리엔탈리즘의 영향
유럽 선교사들이 카스트 제도를 전반적으로 사악한 것으로 이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카스트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카스트 제도의 역사적, 사회학적인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먼저 카스트 제도의 기원에 관한 근거는 인도의 최고(最古)의 경전인 리그베다에서 나오는 창조의 신화와 관계가 있다. 즉 브라만은 창조주의 머리에서, 크샤뜨리아는 창조주의 어깨에서, 바이샤는 창조주의 넓적다리에서, 수드라는 창조주의 발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랑스의 인도학자 드몽은 카스트 제도를 정(淨)-부정(不淨)의 원리에 기초한 불평등한 사회계급 제도로 이해하고 있다 (Dumont 2004).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카스트 제도를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또는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하는 측면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카스트 제도가 형성된 역사적 배경과 카스트 제도의 사회, 경제, 정치적인 성격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에 대한 초기의 연구는 초기에 인도를 방문하였던 사람들, 예를 들면 여행자, 선교사, 식민지 시대의 행정가들과 관리들에 의하여 행해졌다. 이러한 사람들에 의한 카스트 제도의 연구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리우는 서양 중심의 동양의 이해를 낳게 되었고 이러한 이해는 카스트를 기껏해야 브라만들을 종교적으로 공경하는 것이나 변질된 미신 따위로 확신하는 결과를 낳았다 (Cohn 1987, 145).
그러나 카스트 제도의 역사적인 기원을 살펴보면 카스트가 직업의 발달과 더불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특정 카스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특정 직업을 공동으로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는 아리안들의 인도 아대륙으로의 유입과 더불어 사회가 발달하면서 노동의 분업화로 말미암는 많은 직업군이 생겨남으로써 직업에 따른 사회 구성원들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서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겪으면서 인도 사회의 근본적인 제도로서 발달하게 되었다. 사회의 발전과정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질 때 노동의 분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직업군에 따른 사회 구성원들을 구분하는 것도 경제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카스트 제도의 정치적인 성격은 퀴글리(Quigley, 1993)의 호카르트 이론(Hocart theory)에서 나타난다. 호카르트에 의하면 카스트 제도는 하나의 정치 시스템으로서 브라만 사제가 아니라 왕이 최고의 정점에 올라와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호카르트는 위에서 언급한 드몽의 정–부정 이론에 반대하여 언급하기를 “왕들이 첫 번째 카스트인 이유는 왕들의 역할이 우주적 질서를 새롭게 하는 제사를 명령하는 것이며, 그래서 전체 사회의 복지를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Quigley 1993, 117). 호카르트의 이론은 카스트 제도의 정치적 성격을 새롭게 조명해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이론을 여러 학자들이 찬성하고 있는바, 덕스(Dirks, 1989)는 카스트 제도를 이해함에 있어서 정치로부터 종교를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며 다음과 말하였다:
‘정치적인’ 영역에서 ‘종교적인’ 영역의 근본적인 존재론적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체계와 행위들이 우리가 정치적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것의 근본적인 특징이라는 것이다…. 왕권이 종교를 포함하는 것 이상으로 종교가 왕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두 가지 서로 다른 형태—왕의 소유한 세속적인 권력과 브라민이 소유한 신성한 권력—가 있는 것이 아니다. 왕들과 브라만들은 똑같이 특혜를 입었지만 모든 존재들이 독특하게 동일한 존재론적 기원으로부터 부여받은 세계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신성함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Dirks 1989, 60).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인도학 학자인 버나드 콘은 차마르(불가촉천민)와 타꾸르(브라민) 카스트간의 갈등을 연구하면서 차마르 카스트가 산스크리트화 과정을 통해서 상층 카스트의 문화적인 요소를 받아들이면서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평등을 위해 투쟁을 벌였던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Cohn 1987, 255-83). 이러한 사실은 카스트 제도 자체가 그 기원에서 내포하고 있는 종교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를 이해함에 있어서 종교적인 영역으로부터 정치를 분리한 것은 전반적으로 식민주의의 영향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 점에 있어서 덕스는 “카스트와 카스트를 인도 사회의 중심부로 만들어 놓은 식민지의 민족학 때문에 영국은 인도 전체를 간접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Dirks 2001, 80). 이 점에 있어서는 인도의 역사학자 베일리도 동의하고 있다. 베일리는 말하기를 “왕이 인도의 도덕적 질서와 가치의 체계에서 정상에 있었으며 브라만들은 왕과 다른 권력자들의 종속적인 고용인으로서 종교적인 또는 종교의식적인 전문가로서 여겨졌다”고 말한다 (Bayly 1999, 22-23). 남인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따밀 나두 출신의 빤디안도 언급하기를 “식민주의는 카스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를 가능케 하는 것을 형성함으로써 브라만과 비(非)브라만의 정체성을 만든 주요한 사건이었다. 이것은 당장에 식민지가 된 남인도에서 비(非)브라만의 새로운 정체성을 위한 ‘생성의 정치’를 촉진하였고 이것을 강요하였다”고 말한다 (Pandian 2007, 7). 버나드 콘은 나아가서 왜 영국의 식민주의자들에 의하여 인구센서스가 행해졌으며 그로 인한 결과가 무엇이었는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많은 영국 관리들은 카스트와 종교가 인도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사회학적인 열쇠가 된다는 것을 감지하였다. 그들이 잘 다스림 받기 위해서는 카스트와 종교에 관하여 정보가 체계적으로 수집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동시에 카스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센서스 운영이 시작할 참이었고, 군대는 군인 카스트의 성격에 대한 가정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Cohn 1987, 242-243).
몇몇 학자들은 현재 인도에서 지정부족(schedueld tribes)이라고 불리우는 ‘부족’의 개념이 생겨난 것도 식민주의의 발상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마투르라는 학자는 주장하기를 “1931년 이전에 인도의 센서스 관리들이 종교적인 구분을 매우 강조하였고 분류와 열거의 목적을 위하여 ‘부족’이라는 범주를 도입하였다”고 한다 (Mathur 1972, 429).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부족을 비롯한 브라만이 아닌 카스트들로 하여금 새로운 질서 속에서 옛 계급을 타파하기 위한 정치적인 노력을 시작하도록 격려하였다. 이런 사실들을 살펴보면 영국의 유명한 식민지 정책인 ‘분열과 통치’ (Divide and Rule)라는 정책이 효과적으로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카스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전통적인 오리엔탈리즘과 식민주의에 근거한 정치적인 의도에 의하여 상당히 영향을 받아 왔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4. 자띠와 인도 기독교인들의 정체성
이제 인도 기독교인들은 카스트를 어떻게 이해하였으며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왔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인도와 같은 문화다원주의 사회에서 ‘정체성’이란 “특정 사회적 그룹을 다른 사회적 그룹들과의 관계성에서 구별짓게 만드는 특성과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Marshall 2006, 293). 인도의 사회학자 조드카(Jodhka)는 정체성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는 근본주의자적인 관점이요, 둘째는 열려있는 관점이다 (Jodhka 2001:26-27). 첫 번째 관점은 공유된 역사와 공동의 조상과 같은 공유된 문화에 의해서 문화적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입장이고, 두 번째 관점은 문화적 정체성을 문화적인 차이를 의식적으로 동원하는 과정으로서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문화적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결정되므로 끊임없는 변화를 겪는다는 입장이다. 첫 번째 관점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고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입장은 문화적인 정체성이 의식적인 동원이요, 사회적인 구성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꾸리엔(Kurien 2002)의 종교적인 정체성 연구에서도 정체성이 특정한 맥락에 따라 적당한 견해를 선택하는 것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임을 밝히고 있다.
종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민족성(ethnicity)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데 인도에서 민족성을 결정짓는 요소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즉, 카스트, 종교, 언어, 지역의 네 가지 요소들에 근거한 사회적인 맥락에 의해서 개인의 정체성이 결정지어진다는 것이다(Oommen 1992, 2002). 특별히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갖는 특이한 성격들 중 한 가지는 카스트가 다른 종교를 갖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대로 “카스트는 비(非)힌두교인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카스트를 부인하고 카스트에 반하는 신학과 이데올로기를 천명하는 힌두교가 아닌 종교들 사이에서도 카스트는 일반화되어 있다”(Tharamangalam 1996, 263). 이러한.사실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울 때 자띠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인도에서 수십 년간 전국적인 규모로 카스트 그룹을 조사한 ‘인도 인류학 서베이’의 리서치에서도 특정 기독교 교단에 속한 신자들을 하나의 자띠나 하부 카스트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Lavania 외 1998).
인도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사도 도마때부터 신앙의 전통을 전수했다고 알려진 시리안 기독교인들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은 가장 먼저 복음을 받아들였고 인도 최초의 교회를 구성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시리안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브라만 출신들이었고 농업, 무역, 군인의 영역에서 봉사를 하였다 (Mundadan 1989, 155). 그들은 카스트 제도와 경제적인 지위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다른 상층 카스트에 속한 힌두들과 일상적인 접촉을 갖기 위해서 그들이 실천하고 있던 불가촉성을 비롯한 카스트 제도 내에서 지켜지는 일반적인 법규들을 준수하였다. 그들이 가졌던 기본적인 생각은 하나님께서 여러 종류의 카스트 그룹을 창조하셨으며 그들은 그들의 소명과 직업에 의해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시리안 기독교인들의 집단은 그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마치 카스트 그룹과 같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Forrester 1980, 98). 께랄라 출신의 사회학자 비쉬바나탄은 “시리안 기독교인들이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부분들로 나뉘어져 있는 카스트의 전체 조직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것이며 서로에 대하여 그리고 힌두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에 대하여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 (Visvanathan 1993, 2). 오늘날도 께랄라 브라만들은 결혼 문제에 있어서 종교는 달라도 카스트는 다를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브라만 출신의 기독교인들과 결혼을 허용하는 것이 낯선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회의 근본적인 체계로서 존재하는 카스트 제도의 틀 안에서 시리안 크리스천들은 종교적인 신념을 유지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고, 나아가서 카스트 제도 안에서 존경을 받으며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돌이켜볼 때 오늘날 인도 기독교인들의 정체성 형성을 위해서 그들이 잊고 있었던 중요한 준거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초기의 이러한 입장은 15세기 이후 캐톨릭에 속한 포르투갈 선교사들과 개신교 선교사들이 카스트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갖게 됨으로써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특별히 유럽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례를 받을 때는 명백하고 공개적으로 카스트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세례를 원칙적으로 받을 수 없다고 경고를 받을 정도였다 (Forrester 1980, 118).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낮은 카스트 출신의 개종자들과 상층 카스트 출신의 개종자들 사이에서 상반된 태도를 불러일으켰다. 낮은 카스트 출신의 개종자들은 개종을—기독교로 개종한다고 해도—카스트 제도로부터 벗어나서 새롭고 보다 융통성이 있는 사회질서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하는 동기가 있었다. 그래서 따밀 나두에서는 수드라 출신의 크리스천들이 카스트 제도를 종교의 문제가 아닌 문화의 문제로 여기고 자신들의 카스트 집단에 속한 사람들과 사회적 접촉을 유지하면서 자신들보다 더 낮은 카스트 출신의 크리스천들에 대하여 사회적 우월감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반면에 상층 카스트 출신의 개종자들은 힌두이즘을 포기할 경우에 자신들의 본래적인 사회적 지위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다른 개종자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하였고, 국가적인 르네상스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카스트를 폐지하고 기독교를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대다수 인도 크리스천들이 카스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관계로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인도 교회 내에서 유럽 선교사들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들은 선교사들을 비판하면서 주장하기를 선교사들이 인도 문화와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인도의 문화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이해와 동정심이 부족하고, 인도의 독립 운동과 더불어 국민적 감정이 거대하게 급상승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반면에 카스트 제도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도 이어져 갔다. 특별히 인도의 독립 이후에 인도인 교회 지도자들은 카스트를 공격적으로 대하기 시작하였다. 1982년에 있었던 ‘캐톨릭 감독대회’에서는 “카스트가 차별과 카스트 심리구조에 끼치는 결과적인 영향력과 더불어 기독교 안에서는 설 자리가 없음을 명백하게 기술한다….카스트는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를 위반한다”고 언급하였다 (Tharamangalam 1996, 284).
오늘날에도 인도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카스트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카스트제도에 대한 상반된 태도는 계속해서 양립하고 있다. 특별히 불평등우호정책이라고 불리우는 레저베이션의 영향으로 카스트는 정치적인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다. 나아가서 카스트에 의한 정체성의 형성이 더욱 견고하게 되면서 카스트에 기초한 교회 정치가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카스트주의는 인도 교회의 정치 현장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Caplan 1989). 따밀 나두의 예를 들어보면 한 교파에서 63%를 차지하는 달리뜨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은 3.09%밖에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고 있다. 낮은 카스트 출신의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 정치에서 배제되는 사회적 현상 때문에 결국 ‘달리뜨 크리스천 운동’이나 ‘달리뜨 신학’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Weber 2007).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마드라스에서 상층 카스트 출신의 목회자들에 대한 연구에서 그들이 카스트 제도는 부인하지만 자신들의 카스트 그룹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적 습관들, 예컨대 결혼지참금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Caplan 1989). 인도 교회에서 나타나는 또 한 가지 경향은 종교적인 분파가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카스트 제도로 흡수되어진다는 것이다. 로빈슨이 언급한대로 “어떤 커뮤니티 안에서는 교회가 카스트를 중심으로 한 지위의 차이를 드러내고 유지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Robinson 2003, 73). 이런 사회적 맥락 속에서 카스트가 교회 정치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있고, 따밀 나두에서는 ‘한 카스트 교회들’이라는 개념까지도 나타났다.
선교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북인도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회개척배가운동과 미전도종족사역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카스트에 의한 정체성을 갖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교회개척배가운동과 미전도종족사역에 있어서도 카스트라는 종족그룹이 매개체가 되어서 다른 구성원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다른 종족 집단에게로 복음이 확산되는 것에 있어서는 카스트의 장벽이 상당한 방해물이 된다는 것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북인도는 백만 명 이상의 종족 그룹이 159개이며 그중에 미전도종족 그룹이 133개로 알려져 있다(세계기도정보 2011년). 이 지역에서 교회개척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은 부족벨트(tribal belt)를 중심으로 하는 부족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지역이다. 라자스탄 지역에서 특별히 12세기 이후에 원주민들이었던 빌(Bhil) 종족과 라지뿌뜨로 불리우는 아리안들의 대립으로 빌 종족이 산악지역으로 쫓겨나는 민족적인 아픔을 지녀오고 있었다. 19세기 이후 이러한 민족적인 상처를 가지고 있는 빌 종족 가운데 강력한 교회개척운동이 일어났고, 빌 종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반스와라군(郡)은 ‘크리스찬 왕국’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들 부족들은 자신들이 아리안들도 아니고 드라비다족들도 아닌 본래의 원주민들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Doshi 1992, 16). 그래서 이들 부족교회는 같은 부족 출신의 크리스천들을 돕기 위한 협의체로서 ‘크리스천 부족 연합회’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수고하면서도 다른 카스트 집단들, 특별히 상층 카스트 그룹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데는 매우 소극적이고 상당한 사회적 장벽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집단개종(people movement)’이라고 알려져 있는 달리뜨 집단개종 운동의 가장 큰 특징들 중 하나는 카스트 그룹의 집단 개종에 의한 급격한 양적 증가라고 할 수 있다 (Webster 2007, 60).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급격한 양적 증가로 말미암아 그들의 사회적인 지위와 정치적인 힘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달리뜨 크리스천들의 입장에서 개종은 “개혁과 소생의 방법이며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Webster 2007, 71). 집단 개종을 통하여, 특별히 낮은 카스트의 사람들은 사회적, 물질적 조건을 개선하고 자신들에 대한 존엄성과 자기존중을 계발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영국 식민시대 때에 개종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사회적 신분상승과 서양화의 과정을 경험하였다. 인도의 사회학자 로빈슨이 언급한대로 “개종은 분명히 종교적 신념들과 생각들에서의 변화 이상을 포함한다….개종은 때때로 더 큰 사회적 변환 과정의 일부”였다 (Robinson 2003, 65). 이 당시에 많은 부족들의 경우에서도 그들은 서양의 선교사들을 법정과 행정관청에서 도와줄 수 있는 중개인들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크리스찬화(Christianization)라는 개념은 특정 카스트 출신의 개종자들에게 있어서는 산스크리트화(Sanskrtization)라는 개념으로 어느 정도 인식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스트에 의한 인도 기독교인들의 정체성 확립은 인도 교회 내에서 지속되고 있는 사회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로빈슨이 언급한대로 “교회 내에서 축제를 벌이는 과정에서 권리와 특권을 배분하는 것에 카스트가 작용을 한다. 힌두의 문화적 코드가 다른 영역에서도 공유되는 것이다” (Robinson 1998, 20). 이런 점에서 기독교인들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서도 카스트가 아직도 중대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5. 나가는 말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도교회의 역사 속에서 유럽 선교사들 가운데는 카스트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부정적이고 공격적이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카스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했으며, 특별히 이러한 인식은 식민주의 시대 하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카스트 제도가 인도 사회 안에서 매우 부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스트 제도는 하나의 사회제도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적인 역동성을 지니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인도 기독교인들은 카스트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해 왔으며 이러한 정체성은 인도 아대륙에서의 교회개척배가운동이나 미전도종족사역의 성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때 자선교학의 입장에서 인도 교회가 바른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선교사들 스스로가 카스트의 역사적·사회적 의의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카스트에 기초한 정체성을 세워나가는 인도 기독교인들에게 대하여 무조건 비판적인 시각만을 세울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인도 교회의 성장과 더불어 그들이 인도 복음화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성을 가지면서 선교사로서의 사역의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수고와 노력이 지속될 때 복잡한 인도 선교의 현장 속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바른 자선교학의 기초를 쌓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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