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한 선교사의 한 세대 앞서 내다보는 “미래 선교 준비 전략” ■
한국교회의 세계선교 2위는 30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앞으로의 30년을 만들고 있다. 선교운동과 열매는 마치 한국의 전통적인 온돌방 메커니즘과 흡사하다. 온돌방 바닥이 따뜻해지기 위해서는 불을 땐 후 열이 전달 되는 과정, 열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과정이 있은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바닥이 더워지고 공기가 따뜻해지기 시작한다. 또한 불을 지피는 것을 중단해도 한번 더워진 온돌은 지속적으로 일정시간 열을 유지한다. 불이 중단된 것을 아는 것은 온돌의 열이 식어가는 것을 감지할 때이고,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그것을 분명히 알게 될 때는 이미 냉각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오늘날은 소위 디지털의 문명시대, 인스턴트의 문화시대이다. 요즘은 영성도 인스턴트, 교회의 부흥도 인스턴트로 즉시 만들어지고, 즉시 뜨거워지고, 즉시 가라앉고, 즉시 사라지는 시대이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경험을 통해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온돌방의 원리를 생각해 본다면 선교의 메커니즘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선교는 인스턴트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준비되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져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성장하려면 우선 뿌리를 내리는 긴 시간이 있어야 한다. 오늘 가져다 심은 나무가 물 한 번 주는 것으로 바로 열매를 맺는 법은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계 2위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 것은 인스턴트의 결과가 아니다. 해방이후 교회의 부흥과 성장으로 인하여 선교가 성장할 수 있는 저변이 확대되었고, 소수의 선교사들이 나가 선구자로서 개척을 하였고 70년대 중반과 80년대 초반에 현재의 선임선교사들이 선교지로 파송을 받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선교 2위의 기반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선교의 출발은 30년 전에 본격적으로 그리고 이미 50년 전에 교회의 성장과 함께 준비되어지기 시작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한 세대가 흐르고 그 당시에 서구의 교회가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한국교회의 선교적 영향력이 확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하여 오늘날 한국교회가 파송한 14,000명의 선교사 파송을 자랑하며 편한 소파에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면, 그 여유로 인해 앞으로 30년 후의 한국선교를 소파에 파묻혀 앉게 하는 일이 반드시 생기게 될 것이다.
선교에도 메커니즘이 있다. 선교가 되어가는 구조나 작용원리가 있다. 영적으로 중요한 선교의 메커니즘은 선교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이며 운동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된 초점은 성령의 역사와 운동을 역사적인 면에서 보는 선교의 역사적 메커니즘을 말하고자 한다. 먼저 선교의 역사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면 지난 역사를 통해 배우며 분석하는 관점이 중요하다. 동시에 현실에 초점을 두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는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최소한 30년 미래를 보는 예견과 예지가 분명하게만 선다면 한국교회의 선교는 계속해서 희망을 갖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의 14,000명의 한국선교사 파송에 대하여 축제를 즐기며 계속 자랑을 하는 것은 이제 그만 중단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들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며 겸손함으로 차근히 준비해야 한다.
현재의 선교 2위가 된 것은 결코 인스턴트 식으로 오늘이나 최근에만 잘해서가 아닌 한국교회가 부흥회와 제자훈련으로 70~80년대 비약적인 성장을 한 그때부터 선교열매가 맺힐 수 있는 준비가 되어왔고 현재의 선교열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선교의 부흥은 교회의 부흥과 동시에 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선교의 부흥은 현재 일어나는 부흥이 지나고 나서 후에 나타나는 열매이다. 한번 시작된 부흥은 최소한 한 세대 동안에는 지속적으로 열매가 나타난다.
우리는 이런 실제의 예를 미국교회의 지난 부흥의 역사를 통해 오늘까지 지켜지고 있는 선교 1위의 배경을 알 수 있다. 미국교회의 영적각성과 부흥은 1720년, 1790년에 두 차례가 있었고 1830년에는 또 다른 부흥이 그리고 1858년도에는 기도의 부흥이 있었다. 그 외에도 지역적인 부흥이 1880년, 1900년도, 1940년도에 지속적으로 있었고 미국인들의 문화와 종교적인 삶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교회의 부흥운동의 결과가 학생자원운동으로 그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젊은이들이 선교사로 나가는 1800년대 초의 미국선교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영적각성과 부흥이 일어난 기간이 대개 한 세대간의 사이로 지속되었으며, 그 열매로 한국에도 미국의 선교사들이 오게 되었고 이때에 미국에는 YMCA, YWCA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런 열매는 150년간 계속되어 제3 세계에 주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미국교회가 되었다. 미국교회를 찬양하기 위한 예가 아니라 선교의 역사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선교의 메커니즘은 우선 한 세대의 기간을 주기로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를 통해 볼 때 선교는 인스턴트가 아니라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한다.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인스턴트 선교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아직은 세계선교의 1등인 미국의 교회역사를 거울삼아 보며 한국선교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미국교회의 역사를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영적부흥과 영적각성운동이 동시에 일어났다. 개인의 삶에 전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믿음이 필요한 사회환경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선교의 활력과 성장은 비서구 선교에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서구선교의 감소원인중 하나는 서구사회는 경제적인 안정으로 더 이상 기도로 먹을 것, 입을 것, 자는 것 등에 대하여 하나님께 구할 필요가 없어지고, 개인적인 삶에 하나님의 개입이 없어도 되는 사회가 되었다. 병이 나면 보험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하고, 차사고가 나도 보험으로 해결하고, 교육은 정부에서 기본으로 해결해주며 실업자가 되면 정부에서 실업수당을 주는 등, 점점 사회에서 하나님이 필요 없게 되어졌다. 이러한 경제부흥이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멀어지는 사회가 되게 만든 것이다.
선교의 메커니즘은 교회의 중심에 반드시 ‘하나님의 직권'(Great Commission) 이 있을 때 움직이게 된다. 선교가 감소되기 시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교회의 전도에 대한 열정과 목표가 매우 약하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도 국가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인 사회와 개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갈망이 약해지고, 서구교회처럼 교회들이 성장하며 점점 화려해지는 내부지향적인 교회로 변화되는 선교적 장애가 시작되고 있는가를 의심해야 한다. 지금 선교지의 많은 선교사들과 선교사역들이 지속되려면 한국교회는 영적각성과 부흥이 지속되도록 기도하고 노력을 해야만 앞으로 30년 후의 선교를 미리 설계하며 지속할 수 있다. 영적지도자들은 이제 앞서 다음 오는 세대를 준비해야 하며 최소한 30년을 미리 보아야 한다.
지금의 유아부, 유치부를 들여다보아야 하고 주일학교의 차세대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온돌이 뜨거워지는 것은 인스턴트가 아니다. 인스턴트는 바로 뜨거워지고 바로 식는다. 당장의 목회에 신경을 쓰다보면 늘 오늘의 문제에 묶여서 미래를 준비할 수 없게 된다. 차세대의 가슴에 ‘하나님의 직권’이 없다면 한국선교의 미래는 없다. 현재의 영적지도자들은 30년 전부터 시작된 선교부흥의 열매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30년 후에 오는 세대의 선교는 누가 책임지며 준비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