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선교의 이해와 실제
백신종 선교사 – 전 캄보디아 파송
1. 서론
한국교회는 설립초기부터 선교하는 교회로 시작하였다. 한국 땅에 선교의 씨앗을 뿌린 구츨라프나 토마스 선교사는 짧은 기간 복음을 소개하였지만 그들의 영적 영향력은 한국사회에 뿌리내려 한국 땅에 첫 선교사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그리스도를 알고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해 있었다. 이처럼 세계열강을 향하여 굳게 닫혀있었던 한국 땅에 뿌려진 단기선교의 충격(impact)은 대단한 것이었다.
1907년 한국선교가 시작 된지 13년이 되는 해, 한국장로교 독노회(Presby)가 설립되었을 때 평양신학교 출신의 7명의 신학생을 안수하게 되었다. 이때 이기풍 목사는 당시 문화와 언어가 본토와 달랐던 제주도의 선교사로 자원하였고 노회는 기쁨으로 승인하여 이 목사를 파송하였다. 한국교회는 이기풍 선교사 이외에 그를 돕는 이관선, 김창문, 김현철, 김홍련, 최대진, 최대선 등 다양한 신분의 선교사들이 단기적으로 제주도 선교를 도왔다 (Park 1999b:54-55).
이러한 선교인력의 지원은 산동과 블라디보스톡, 태국 등 해외선교초기까지 계속되었으며 일제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선교에 동참했던 한국교회의 선교는 한국동란과 함께 급격하게 후퇴하였다. 하지만 성령의 축복가운데 70, 80년대 한국교회 선교는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가속되었으며, 1990년대 사회환경의 변화와 국제화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단기선교가 재개되었다.
1980년대 초기 한국교회의 단기선교는 주로 파송교회 목회자들의 선교지 순방을 통한 목회적인 차원에서 시작하였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대학생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서구 스타일의 단기선교 팀이 등장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한 단기선교의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웬만한 지역교회 중 단기선교를 다녀오지 않은 교회가 없을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하지만, 지역교회에서 단기선교를 준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첫째는 지역교회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준비 없이 단기선교만을 위해서 선교를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단기선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기사역을 마친 한 선교사는 ‘단기선교의 무용론’을 주장하며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외화를 낭비하는 단기선교를 중단하고 그 비용으로 선교사를 도울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오늘날 지역교회의 단기선교를 위해서는 선교에 대한 성경적인 토대와 단기선교에 대한 선교신학적인 구조물이 필요하다.
둘째 대부분의 지역교회에는 선교에 전문성을 가진 지도자들이 많지 않다. 지역교회의 단기선교는 장기선교에 헌신된 선교사 후보생들이나 선교목회자가 주도하여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이처럼 선교에 관심과 열정을 가진 헌신자들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가 아닌 청년들을 중심으로 단기선교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단기선교를 통해 교회가 선교적인 관점을 개발하고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따르게 된다. 또한 한인교회는 교회조직상 매년 각 위원회의 구성을 재편하는 상황에서 선교분야의 전문가를 키워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형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는 단기선교를 단순한 선교동원 내지는 선교교육의 일환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전략과 사역방법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수많은 단기선교 팀들이 선교지를 방문하지만 대부분의 팀이 준비하고 사역하는 내용에 있어서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선교단체 역시 단기선교를 운영하면서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 번째는 대부분의 선교단체가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면서 단기선교를 하고 있지만, 단기선교를 통해 얻은 선교헌신자들과 선교의 열매들을 지역교회와 함께 나누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교는 교회를 세우고 선교는 교회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기선교를 통해 지역교회의 선교의식을 개발하고 선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인적자원을 공급하는 일이 선교단체의 역할이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대학생 선교단체들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많은 젊은이들을 지역교회에서 빼내어 단체사역과 해외선교에 투입함으로 한국의 지역교회의 허리를 약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이 90년대 중반이후 훈련된 선교단체의 지도자들을 지역교회에 재파송함으로 무마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한 선교전문가들의 수는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두 번째는 선교단체에서 조차도 단기선교를 하나의 사역과 전략으로 전문화시키지 못하고 장기선교사를 발굴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재 장기선교사로 파송된 선교사의 90%가 단기선교 경험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접근이 당연하다. 하지만, 단기선교에 참석했지만 장기선교사로 헌신하지는 않는 다른 90%의 단기선교 헌신자들을 감안할 때 그들에게 의미있는 또한 선교현장에 전략적인 열매를 맺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교회와 선교단체 단기선교의 한계점을 보완하여 전문적인 선교사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기선교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전문적인 전략을 중재하여 시간적인 한계를 극복하여 최대의 효과와 열매를 맺도록 협력해야 할 것이다.
배경 (Background)
단기선교를 계획하는 한인교회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단기선교에 관련된 자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영어로 30여종의 논문과 단행본이 출간되어 있고 APPENDIX I 의 ‘단기선교 관련 논문 및 단행본’ 참조. 전문기관에서 단기선교 전문간행물 Bill Perry가 설립하여 발간하는 Short-Term Mission Today (Pasadena, CA)가 있다.
을 발간하고 있지만 한글로 된 자료는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단기선교를 선교의 부속품처럼 생각하여 전문적인 연구와 투자를 꺼려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가운데 한국교회의 단기선교는 해를 거듭할수록 또한 많은 교회가 참여할수록 지속적인 문제(issues)들에 부딪치고 있다.
이러한 지역교회의 문제들을 인식한 한국 선교사들과 선교 전문가들은 지역교회를 돕기 위한 단기선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선교단체에서도 단기선교 프로젝트를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한미 선교단체 몇 곳에서 단기선교에 대한 연구와 프로그램 개발에 힘쓰고 있다. 미주지역에서는 Seed International의 박신욱, Son Ministry의 김정한, OMF-KAM의 Paul Kim 등의 사역자들이 지역교회의 단기선교를 돕고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주는 것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단기선교에 대한 선교학적 접근은 엄두를 못내고 있다.
본 연구는 선교단체와 전문기관이 지역교회의 단기선교를 돕기 위해서 연구하는 가운데 단기선교에 대한 선교학적인 접근을 통해 단기선교를 선교학에 있어서 하나의 현대선교전략분야로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하여 지역교회의 단기선교 프로그램의 정착을 돕고 선교단체로 하여금 지역교회의 단기선교 프로그램을 돕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문제 (Research Problem)
본 연구는 단기선교사역을 위한 선교학적 토대를 마련하여 한인교회의 단기선교에 대한 이해를 돕고 지역교회와 선교단체가 효과적으로 단기선교를 준비하고 사역하도록 돕는다.
연구질문 (Research Questions)
본 연구는 위와 같은 연구문제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할 것이다.
1. 단기선교란 무엇인가?
2. 한인교회 단기선교의 문제(issues)가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3. 단기선교의 선교신학적(성경적, 역사적, 상황적, 전략적)인 토대가 무엇인가?
연구목표(Goal)
본 연구의 목표는 한인 단기선교의 동향을 분석하고 한인교회와 한인선교단체의 단기선교를 분석하여 한인단기선교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선교학적인 디딤돌[礎石]을 놓는 것이다.
중요성 (Significances)
본 연구는 개인적으로 지난 7년 간 단기선교와 관련된 사역을 해온 필자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장기선교사로 파송받는 시점에서 앞으로 단기선교사와 단기선교팀들과의 효과적인 협력사역을 강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한인교회에게는 단기선교를 준비하는 지역교회와 이를 돕는 선교단체에 단기선교에 대한 이해와 실제적인 사역 방법을 제시하여 ‘준비된 단기선교’를 감당하도록 도울 것이다. 또한 아직까지 선교에 동참하지 못하는 교회들이 단기선교를 통해 선교적인 교회가 되도록 돕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단기선교에 대한 실제적이며 동시에 학문적인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선교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단기선교를 돌이켜 보고 이제까지 단기선교에 관련해 저술된 연구논문과 관련서적들을 정리하여 선교학적인 토대를 다지고 단기선교를 선교신학의 한 분야로 확립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연구의 한계 (Delimitations)
본 연구는 몇 개의 제한된 한국교회와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단기선교 흐름을 파악할 것이다. 따라서 대량의 설문과 통계에 근거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하지만, 단기선교에 관한 타 선교단체 혹은 연구자료와 필자가 한국에서 가장 큰 교단의 단기선교를 책임 맡아 사역한 자료를 바탕으로 신뢰할만한 자료에 기초하여 연구를 저술할 것이다.
필자가 몇 해 동안 단기선교사로 사역해 보았지만, 장기선교사로는 사역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장기선교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단기선교에 대한 관점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2. 다. 단기선교의 정치 사회적 배경
* 갈라디아서 4:1~7을 읽고 “때가차매”라는 표현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세계는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도시화로 인한 인구의 과잉집중과 잉여 노동력의 문제, 전통가치관의 파괴 등의 사회적인 문제가 대두되었으며, 대중매체의 발달은 몰자아적(???r)이고, 획일적인 가치관을 창출해 냈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은 단기사역의 가능성들을 더욱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한국의 경제성장과 정부의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로 인하여 사역의 문은 더욱 활짝 열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단기선교의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자.
바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하나님의 때가 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갈 4:4). 교회사가인 퍼거슨은 갈라디아서의 “때가 차매”라는 말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시대적인 배경가운데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당시 로마제국의 통치로 인한 교통의 발달, 언어적인 통일을 지적하고 있다 (Ferguson 1993:579-580). 아래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대선교에 있어서 단기선교가 대두되고 그 사역의 효과가 증가하는 요인 역시 바로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환경적인 요인이 상승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화(Urbanization)
산업혁명과 더불어 일어나기 시작한 도시화(urbanization)의 물결은 근대사회에 이르러 다양한 도시의 병폐들을 만들어 내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탈 도시화(de-urbanization)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심각한 문제들을 토해 내었다. 이러한 사회현상학적인 관찰을 떠나서 선교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도시화의 병폐들은 치유의 복음을 든 선교사들이 찾아가 막아내야 할 복음의 접촉점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현대사회 도시화의 결과들은 다양한 선교사역에 도전을 주고 있다. 도시화에 따라 현대사회는 첫째로 전통적인 사회규범을 잃어버리고, 서구화를 촉진하였다. 둘째로는 대부분의 도시 구성원들은 지방의 지역사회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로 사회적인 안정감을 상실한 채 살아가게 된다. 현재 남아있는 선교 주력지는 대부분 모슬렘이나 전통 가치관등으로 형성된 강력한 세계관의 지배를 받는 지역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분위기에서는 기독교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이지만 도시화의 영향으로 전통 가치관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분위기 하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서구화의 영향으로 서구 문화와 다양한 정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한 복음증거의 문이 열리고 있다.
또한, 도시는 대부분 지방의 거주자들이 이주하여 도시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역사회에 뿌리 내렸던 사람들이 도시에서 그 뿌리를 잃어버리게(uprooted) 됨으로 불안과 불신의 분위기가 팽배해 지게 되었다. 따라서 각박한 인심과 불안감이 친밀한 대인관계에 대한 욕구를 유발시키기 때문에 관계를 통한 전도의 기회가 많아졌다. 또한, 일단 지역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사회구성원은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에 쉽게 적응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새 이주자들에 대한 사역의 기회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대중매체(Mass Media)
날로 발전하는 첨단기술과 경제구조의 덕으로 현대사회는 세계의 급변하는 모습을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세계대부분의 국가에서는 CNN 등의 세계뉴스(world news)를 통하여 세계의 사고(v2)소식뿐 아니라 문화와 유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영화, 홍보비디오, 전통문화 소개 등 다양한 영상물의 제작으로 세계는 타문화권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도서와 전자통신을 통해서도 많은 정보들이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인 정보에 의존하기보다는 이제 실제적인 타문화권의 노출을 원하고 있다. 실제로 10/40 창안에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밀려오는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이며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외국인을 대하는 현지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서구의 식민지였던 비서구 지역에서는 한국, 일본 등 같은 아시아계의 여행객들에게는 보다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아시아의 변화는 대중매체를 통하여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가지게 되어 그 이상의 호기심이 생겨나게 된데 그 변화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또한, 대중매체는 강력한 사회여론 형성의 매개가 된다. 특히, TV의 영향력은 막강하여 광고나 방송을 통하여 전달된 지식이 절대적인 가치기준을 형성하는 기현상을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대중매체 신봉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사역의 가능성을 열어 선교의 다양화를 가져옴으로 전파선교의 장을 열게 되었다. 또한, 중국 등 사회적인 접근 제한지역에는 전파수신기나 성경, 신학도서 등을 전달하는 사역이 중요한 단기사역으로 대두되고 있다.
교통의 발달(Transportations)
100년 전만 해도 일반대중들이 해외를 여행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해외여행의 주 수송수단이 선박이나 육로였던 만큼 오랜 시간을 소요해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쉽게 세계곳곳을 다닐 수 없었다.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가 그의 선교지인 인도에 도착한 것은 영국을 출발한지 6개월 만이었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선교란 평생을 투자해야 하는 사역이었다.
하지만, 초고속철도와 항공 등 대중 교통이 발달하면서 세계는 그야말로 지구촌이 되어가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전 세계 어느 국가이든 30여 시간 내면 도달할 수 있으며, 60여 시간 안에 가지 못할 지역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교통의 발달과 대중화는 ‘선교사들의 발’이 되도록 하나님이 당신의 마지막 세대를 위해 준비하신 것이 틀림없다.
해외여행(Short-term Visitors)
한국은 1980년대 말에 이르러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여행객이 해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 중견 여행사의 통계에 따르면 자사를 통해 해외에 출입국 하는 내국인 연간 만 여명에 이르며 이들이 사용하는 항공료만도 50억 원 대에 이른다고 밝힌다. 한국관광진흥공사는 1992년에 이미 해외관광으로 인한 손실이 년간 수 십 억 원대에 이른다고 보고하고 있다. 실제 본 교단내의 개인이나 교회에서 해외선교훈련을 떠나는 인원만 해도 연간 약 1,2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며, 이들이 사용하는 비용은 약 10 억 원대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Baeq, 1996). 이러한 막대한 비용지출은 해외여행의 자율화와 맞물려 시작되었고, 곧 교회 내에서는 단기 해외선교훈련 혹은 비전트립 붐(vision-trip boom)이 일기 시작되면서 가속화되었다.
선교지의 무분별한 방문은 현지의 선교사들에게 막대한 사역지장을 초래한다. 또한, 훈련되지 않은 단기선교사들의 잘못된 태도(home-culture behaviors)로 현지인들과 갈등을 일으켜 장기선교사의 사역에 지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삶으로써의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의 모습을 단시간 관찰하고 오보하는 방문자들에 의해 많은 선교사들이 매도되기도 한다. 이러한 단기해외선교훈련의 단점들은 전문적인 훈련과 사역자의 전략적인 배치를 통해 보완될 필요가 있다.
이민세대(Immigrations)
한국교회의 선교자원 중 중요한 인적자원의 하나는 해외이민세대들이다. 이민 1.5세들이나 2세들은 이미 다중언어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어 다양한 직업전선에서 선교가용자원으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미국신학교에는 많은 1.5세나 2세 교포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현재 해외 한국동포가 약 400백만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해외동포에게 복음을 전하고 현지의 언어와 문화에 해박한 이들이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양육한다면 훌륭한 선교전략이 될 것이다. 이민세대 선교사들(선교현지의 교포들)은 선교지에서 의사소통의 문제가 없기 때문에 단기사역에 있어서도 많은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Government)
90년대에 이르러서는 단기선교의 가능성으로서 정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10/40 Window 내의 많은 국가들이 공식적인 선교사의 입국을 환영하고 있지 않지만, 다민족 국가의 정부가 막강한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국가개발을 위해 도로를 확충하고, 각 민족이 사용하는 다중언어를 제한하고 공용어를 교육하는 정책은 단기사역자들에게는 큰 유익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경우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전에는 단기간에 방문할 수 없었던 오지에 까지도 도로가 확충되어 단기간의 여행이 용이해졌으며,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다민족집단들이 언어통일정책을 통하여 국가의 공식언어(만다린)를 사용하게 됨으로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등 많은 다민족국가들은 국가 공용어를 교육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강력한 모슬렘 국가들이나 접근 제한지역이었던 국가들이 관광수입이나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문호를 개방하고 많은 외국인을 수용하는 것도 단기선교사역의 새로운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렇듯 단기선교사역은 이 시대의 새로운 선교동향(trends)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 ‘하나님의 때’(갈 4:4)를 따라서 오심이라는 바울의 영적성찰과 같은 전망일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에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마 24:14), 시대적인 배경을 준비하신(manipulated)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때를 따라 자신을 종의 형체로 낮추시기까지 순종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순종하길 원하신다.
단기사역자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활용한다면 다양한 선교지에서 장기선교사들의 사역능률을 배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각 지역교회별로 진행되는 단기해외선교훈련이나 비전트립 등은 교단이나 선교단체의 루트를 통하여 그 훈련의 초기부터 사역의 전반적인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또한, 선교지의 정보와 사역의 필요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고 보다 선교지에 도움이 되는 효율적인 사역을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인교회 안에 이러한 수많은 단기선교 사역 팀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파송할 연구기관들이 생겨나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단기선교사역은 다가오는 21세기의 전략적인 선교운동으로 훌륭하게 사용될 것이며, 장기선교사와의 협력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세우는데 큰 역할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라. 단기 선교의 장점
현대선교에 있어서 단기선교는 다방면에서 유용하며 단기선교는 장기 주재 선교가 용이치 않은 지역에서 장기 선교의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특별히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선교사들이 기후와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장기간 동거하며 선교사는 것이 어려울 경우에 단기선교는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단기사역은 장기선교사가 겪는 여러 장애들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선교전략이 된다. 또한, 장기선교에 비하여 기동성과 전문성이 확보되기에 중, 단기적인 선교전략을 수행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일반적으로 단기선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장점을 가진다.
사회문화적 장벽 (Socio-Cultural Barriers)
현대 선교사들은 근대과학의 발달로 예전과 다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선교에 있어서 처음 10,000 킬로미터는 비교적 쉽지만, 마지막 10 센티미터가 어렵다’(Hesselgrave 1991)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오늘날 선교지에 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지만 다양한 문화적인 장벽들이 선교사들과 현지인들 사이에 놓여 있다. 선교사가 현지에 가서 이러한 문화적인 장벽에 부딪치는 과정(culture shock)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① 단기선교사역은 장기선교사가 경험하는 문화충격의 과정(관찰-참여-좌절-적응)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좌절의 기간 비교적 경험하지 않고 사역자체에 중심을 두고 최대한의 능율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② 선교 현지인들은 외국인 선교사가 오랫동안 자국에 거주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을 가질 수 있지만, 단기선교의 경우 여행자의 위치에서 방문하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보다 쉽게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위의 표에서 우리는 a, b, c의 세 시기를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교지에 처음 도착하는 초임선교사들은 새로운 환경으로 인한 여행자 시기(a) 혹은 관찰기를 맞게 된다. 이 기간에는 선교지의 모든 이국적인 환경에 매료되어 있는 흥분기이다. 적절한 판단보다는 들뜬 분위기에 사로잡히기 쉽고 현지인들을 쉽게 신뢰하고 때로 배신당하기도 한다.
개인차가 있지만, 약 12개월-20개월이 지나면 좌절의 시기(b)를 맞게 된다. 이 기간은 현지인들에 대한 저항기로 그들의 문화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언어가 익숙하지 않음으로 의사소통의 문제 등으로 인해 심한 좌절과 문화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선교사는 이때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현지인 언어 멘터(mentor) 등을 통해 현지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24개월 정도가 지나면 현지에 점차 동화되어 적응기(c)에 접어든다. 이때부터는 현지인을 이해하고 현지의 그리스도인들과 협력하여 사역할 수 있게 된다. 현지인들도 선교사를 이해하고 신뢰하게 되어 언어문제만 해결된다면 보다 효과적인 사역을 추진할 수 있다.
현지인들은 선교사에 대한 경계심을 푼 이후에도 이들에 대한 문화적인 저항감 내지는 동질화(identify)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기도 한다. 실제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오래 거주하다보면 현지인들은 선교사들이 자국문화에 동질화될 것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모문화를 가진 선교사가 타문화권에서 현지인과 같이 완벽하게 동질화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단기선교사역자들은 이러한 문화충격과 적응의 부담감을 적게 가지고 비교적 여행자와 같이 선교현지의 기후와 문화를 관찰하며 때로는 즐기면서 단기간 효과적으로 선교사역에 임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지정학적 장벽 (Geographical Barriers)
선교지 중에는 특수한 기후로 인하여 – 사막의 열풍이나 혹독한 추위 등 – 선교사가 오랫동안 거주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또한, 습지나 풍토병이 만성적으로 창궐한 지역, 홍수나 지진피해가 막심한 지역등 선교사가 장기간 거주할 경우 건강악화가 우려되는 지역도 있다. 이러한 지역에는 비거주 사역이나 단기사역을 통한 선교활동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환경뿐 아니라 다양한 알러지(allergy)등 개인적인 체력요인에 의해서도 선교사들이 장기간 거주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러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단기사역을 통해 개인의 체력을 관리하면서 사역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선교전략의 편이성 (Easiness of Mission Strategy)
단기사역은 기동성을 요하는 선교프로젝트들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에 적합하다. 사실 장기선교사들은 사역의 지속성 때문에 다양한 사역을 구상하거나 많은 일을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단기 사역자들은 때와 사안에 따라 기동성을 가지고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인 활용도가 높다.
예로 각지에 흩어져 있는 미전도 종족을 정탐하는 일은 장기선교사가 다 감당 할 수 없다. 이러한 사역은 단기간 이동이 용이한 단기 팀이 전문적인 정탐훈련을 통해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현지의 지하수를 개발하는 일을 위해서 선교사가 지질학을 연구하고, 수원탐사기를 구입하여 수맥을 찾아 실제로 땅을 파는 일을 수행한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재정의 투자를 필요로 한다. 선교사가 모든 일을 추진하려 하기보다는 전문적인 지질학 요원들이 팀사역을 한다면 총체적인 선교건축(mission building)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팀 및 협력사역 (Team Ministry)
장기선교사는 선교지의 필요에 따라 의사가 되기도 하고, 교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정비사나, 보건사, 이발사가 되어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선교사가 모든 자격과 기술을 갖춘 수퍼맨이 되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과 재정을 투자해야 하며 현실상 모든 것을 갖추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선교지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전문사역 팀을 적절히 파송하여 장단기선교사의 협력을 도모한다면, 21세기의 한국교회의 선교사역은 놀라운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선교는 전문적인 장기선교사들에 의해서만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선교가 지상교회의 중차대한 보편사명인 만큼 선교의 기회가 모든 지상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개방되어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선교사들은 현장에서 다양한 사역의 필요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이러한 필요를 파송교회나 기관에 요구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그곳에 자신을 도울만한 전문적인 사역자들이 없거나, 혹은 전문인들이 있어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자신의 사역을 돕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선교는 팀 사역을 통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성취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우방기(Ubangi)에 선교사로 갔던 티투스 존슨은 아프리카 대륙이 기아와 질병으로 신음하는 것을 보고 고국에 돌아와 의사가 되어 다시 선교지로 갔다. 하지만, 급변하는 현대의 선교사들이 6-8년 동안 의사 면허증이나 다른 전문직의 자격증을 갖기 위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본국에서 전문기술에 숙련된 단기사역자들이 선교지의 필요에 따라 투입되어 협력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선교전략이 된다. 이 마지막 시대의 선교사역은 유능한 선교사 개인의 사역보다는 다양한 선교자원의 협력을 통하여 완수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선교사를 돕는 지원부대로서의 단기사역의 개발은 한국교회의 과제인 것이다.
교회의 영적갱신 (Revival of Local Churches)
듀안 엔더슨 (Duane Anderson)은 “적당한 단기선교 경험을 통하여 교회의 구성원들을 갱신시키므로 세계 속에서 갱신의 불을 부칠 수 있다”고 말한다 (Anderson 1992: 9). 단기선교 경험은 자원자들로 하여금 장기 주재 선교사가 되도록 불을 붙여줄 뿐 아니라 헌신된 교회 지도자들을 일으켜 국내전도와 해외선교를 위하여 후원하고 기도하는 영적인 일에 힘쓰게 만들어 준다.
로봉린 박사는 기독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단기선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단기선교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나는 많은 단기선교 팀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정규선교사인 내가 하기 힘든 전도활동들을 했으며 나는 단기선교에 참여한 분들로부터 영적인 도전들을 받았습니다. 단기선교에 참여하는 분들은 또한 그들의 비전을 확인할 수 있고 사역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유익을 얻게됩니다” 라고 말하였다 (로봉린 1998: 17) 그는 선교회들이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 생생한 경험을 나눌 프로그램을 짜고, 목사들은 선교 자원들을 개발하기 위하여 단기선교 팀을 후원할 것”을 제안하였다 (1998: 17). 단기선교 팀은 진행되는 선교사역에도 신선하고 역동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장기 선교사들의 영성을 개발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들 가운데 하나이다 (Park 1999b). 단기선교를 통하여 선교 지망자들이나 선교사 후보들이 다른 문화권을 접하고 자신들의 사명을 이해하게 된다. “단기선교 여행이야말로 그런 일을 하는데 실제적이고 빠른 일이다”(Forward 1998: 31).
마. 결론
이제까지 현대선교의 동향을 통해 단기선교의 성장과 그 중요성을 살펴보았다. 또한 단기선교에 대한 다양한 정의 – 연대기적, 인식론적, 존재론적, 선교전략적 정의 – 를 통하여 단기선교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동시대 그리스도인들의 헌신과 참여를 증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전략으로 부각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미 언급한 대로 단기선교는 사회문화적, 지정학적 장벽을 넘어서서 기동성 있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정예의 전략이며 파송하고 참여하는 교회에도 영적인 부흥의 촉매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과 유익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는 단기선교에 대한 선교신학적 – 성경적, 역사적, 상황적, 전략적 – 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본 장에서 제시한 단기선교의 이해를 배경으로 다음 장에서는 단기선교의 성경적 토대를 놓을 것이다. 단기선교라는 주제를 가지고 또다시 성경 전체를 논의한다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며 논문의 한 장(chapter)으로 다룰 수 있는 주제도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단기선교의 핵심적인 맥락을 신구약의 제한된 본문에서 논의하고 단기선교를 위한 이해, 훈련, 실제 사역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도출할 것이다
2. 단기선교의 이해
가. 현대 선교의 동향
한국교회는 선교로 시작되어 초기부터 선교에 동참하는 성경적인 교회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회는 교회설립 초기부터 계속해서 해외선교사를 파송하였지만 198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로 급성장하였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선교중심의 교회로 성장하게된 데는 사경회/부흥회 중심의 말씀운동, 폭발적인 교회성장, 경이적인 경제성장, 여행 자유화, 그리고 세계 거의 모든 나라와의 외교관계 수립등 교회의 영적 요인과 한국사회의 상황적 맥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Park 1999a:9,10).
2001년 3월 14일자 기독신문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세계선교협의회의 퇴근 통계) 한인선교사 수는 9,133명이며 3,049명이 아시아에서, 1,130명이 북미지역에서, 1,125명이 유럽에서, 597명이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584명이 중남미에서 활동중이며 이들 중 1042명 비공개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9천 여명에 육박하는 장기선교사(long-term Missionary) 외에도 이들을 방문하며 함께 사역하는 한인교회의 많은 단기선교사와 단기사역 팀을 고려하면 한국교회의 선교는 가히 세계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근래 한국의 경제사정 악화로 단교선교에 참여하는 교회와 선교단체의 단기선교사 수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지역교회들과 선교단체들로부터 각 나라에 단기선교 팀들이 나가서 사역을 하고 있다.
특히 근래에는 해외 이민교회의 선교관심이 증가하고 많은 교회들이 단기선교에 참가하고 있다.
현대선교의 동향 (Trends of Modern Mission)
한인교회뿐 아니라 미국의 교회 역시 단기선교의 증가현상을 보이고 있다.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의 선교학 교수인 헤셀그레이브(David J. Hesselgrave)는 북미주 현대선교의 동향을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선교) 후보자들은 평생사역 보다는 단기 사역을 훨씬 더 선호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현대 선교의 가장 뚜렷한 특징중의 하나일 것이다. 현대 개신교 선교의 가장 중요한 동향은 단기선교사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선교핸드북? 제13판에 의하면 (1986년에 파송된) 67,200명의 북미선교사들 중 거의 43%가 단기선교사들이라고 한다. . . 또한 1990년대 중반에 가면 단기선교사의 숫자가 장기선교사들 보다 많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Hesselgrave 1988:45).
헤셀그레이브 교수의 지적은 이미 90년대 초반에 이루어 졌으며, 1996년에는 북미주에서 파송된 69%의 선교사가 단기선교사로 사역하였다 (Siewert 1997:74). 이는 장기선교사의 두 배가 넘는 수치이다. 이러한 단기선교의 증가비율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으며, 아래의 그림 1을 보면 1998-1999년에 웨슬리안 선교부(Wesleyan World Mission)에서 파송한 장기선교사는 19명인데 비해 단기선교사의 수는 192명으로 10여 배에 달하는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Olson 2000:23). 미국의 남침례교단은 1996년 한해에만 75,000의 단기선교사를 파송하여 해외에서 사역토록 하였다 (Forward 1998:14). 단기선교 사역자들이 이러한 증가는 지역교회의 참여와 학생선교운동을 통하여 더욱 가속되고 있다.
단기선교는 봉사자 자신과 선교현지, 파송교회 모두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동시에 여전히 많은 제한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1993년부터 1994년까지 필리핀의 단기선교사로 봉사하면서 여러 단기선교 팀을 만나보았다. 또한 교단 선교부에서 단기선교훈련의 책임을 맡아 일하면서 20여 회의 단기선교를 다녀오면서 나름대로 단기선교에 대한 생각을 형성하게 되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철저한 준비를 해온 단기선교 팀들은 선교지에 많은 유익을 줄 수 있지만 훈련되지 않은 팀의 단기선교사의 경우 오히려 선교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그다지 유익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파송하는 교회 역시 훈련되지 않은 단기선교사들이 현장에서 잘못 배우고 관찰한 것을 그대로 교회에 전달함으로 교회적으로도 선교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필자가 선교현장에 단기선교 팀 을 인솔하면서 그들을 안내하는 현지 선교사들도 단기선교의 중요성, 목적, 방법 등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어서 단기선교 팀의 사역을 선교지 시찰이나 여행 등으로 마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지에 있는 선교사들은 단기 선교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을 귀찮게 생각하고 자기들의 정규사역 계획을 망가뜨리는 사람들로 간주하곤 한다. 때로는 선교사들이 단기선교 팀을 안내하느라고 기진맥진해지기도 한다. 만일 한인교회 지도자들과, 현지 선교사들, 그리고 단기선교에 임하는 사람들 자신들이 단기선교의 중요성, 목적, 역할, 그리고 효과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철저하게 준비한 후 더불어 잘 사역한다면 단기선교는 한인교회의 선교발전 뿐 아니라 세계 복음화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단기선교의 정의
위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단기선교에 대한 도서와 연구논문이 30여종 출간되었다. 저자들은 서로 자신들의 관점에서 단기선교를 정의하고 있지만, 10편의 논문이 거의 모두 다른 정의를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단기선교라는 것이 실제 사역은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정의할만한 객관적인 기준이 적절히 연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기선교에 대한 이제까지의 연구를 통해 필자는 3부류의 정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그것은 연대기적 (chronological), 인식론적 (epistemological), 존재론적 (ontological) 정의이다. 이러한 정의가 저자들이 주장한 것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단기선교의 이해를 잘 보여주는 구분이다. 여기에 필자가 제안하는 것은 선교 전략적 (mission strategic) 정의이다. 단기선교의 선교 전략적 정의는 단기선교를 하나의 유형으로 통합하지 않고 각 사역의 형태와 내용에 따라서 6가지로 구분하여 정의하는 것이다.
연대기적 정의 (Chronological Definition)
첫 번째 단기선교에 대한 정의는 연대기적 정의이다. 말 그대로 ‘단기’라는 단어를 시간적인 의미에서 바라보고 단기선교를 정의한 것이다. 더글라스 밀함 (Douglas E. Millham)은 그의 논문 ‘단기선교: 교회를 동원하는 모델’ (Short Term Mission: A Model for Mobilizing the Church)에서 말하기를 단기선교의 정의가 표준화되지 않았지만 단기선교는 사역 연한 면(chronological sense)에서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직업적인 선교로서 “장기”사역 기간은 일반적으로 4년을 잡는다. 그러므로 단기선교 기간은 다양한데 4년보다 짧은 것을 말하며, 짧게는 한 두 주에서 길게는 3년까지를 단기선교 기간으로 잡는다. 흔히들 단기선교라고 말할 때 2년이나 그 이하를 말한다 (Millham 1988: 22).
이러한 연대기적 정의는 Westfall(1987), Anderson(1992), Jones(1993), Gwendolyn (1996), Fung(1999), Wilson(2000) 등이 단기선교에 관한 자신의 논문에서 사용하였으며, 대부분의 선교단체나 지역교회에서 단기선교를 이야기하고 이해할 때 시간적인 의미에서 연대기적 정의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식론적 정의 (Epistemological Definition)
단기선교에 대한 두 번째 정의는 인식론적 정의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목적론적 정의(teleological definition)라고 할 수 있다. 즉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단기선교를 정의한 것이다. 대부분의 선교단체는 단기선교를 장기선교를 돕는 하나의 도구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목적론적인 정의라 할 수 있다. 지역교회에서 단기선교와 비전트립을 나누는 경우 대개 이러한 정의를 통해 사역의 내용이나 목적에 따라 구분한다.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선교학 교수인 헤셀그레이브(David Hesselgrave)는 단기선교를 장기선교와 사역의 시간적인 면에서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현대 선교의 동향 중 주목되는 두드러진 사역으로 정의한다 (1988:45). 듀안 앤더슨은 “단기선교여행은 단체나 개인이 분명한 영적인 목적을 가지고 10일부터 3개월 정도의 기간동안 짧게 외국을 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Anderson 1992:19). 즉, 짧은 기간 선교지를 방문하여 사역하더라도 분명한 복음증거의 영적목적을 가지고 사역에 동참하는 경우 단기선교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를 종합하면 단기선교는 선교운동과 학생자원운동의 열매로 얻게된 현대선교의 두드러진 현상이며, 분명한 복음증거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영적 목적을 가지고 짧은 기간 선교지를 방문하여 사역에 임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기선교는 기간이 얼마나 되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어떠한 목적과 사역을 위해서 가느냐 그리고 어떠한 영적 흐름가운데 진행되느냐가 중요하게 된다.
존재론적 정의 (Ontological Definition)
단기선교에 대한 세 번째 정의는 존재론적인 정의이다. 밀함(Millham)은 ‘단기선교(사)는 전임 선교사역에 대한 결정은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한 발짝 내디딘 사람들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1992:18). 밀함은 단기선교사를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이 일을 위해 존재하기 시작한 그리스도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그리스도인을 정의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즉 단기선교는 구원받은 감격과 하나님 나라의 시민 된 권리와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의 삶 속에서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지만 수동적으로 현재의 삶에 뭍혀 살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날의 임재를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해외이건 국내이건, 일선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건 이 일을 위해 돕고 기도하는 일이건 삶의 목적과 방향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있다면 그 사람은 선교사인 것이다.
선교전략적 정의 (Strategic Definition)
이상의 학자들은 단기선교를 단기(short-term)라는 어원적인 면에서 혹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신학적인 면에서 정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새 밀레니엄에 들어서면서 단기선교 사역은 보다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단기선교는 다양한 목적과 사역방법에 따라 세분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같은 단기선교이지만 목적과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잣대를 가지고서는 이 모든 다양성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단기선교가 단회적으로 선교지를 방문하는 것인지 반복적으로 방문하는지에 따라 분류되어야 한다.
(1) 단회적 단기선교 (Onetime Short-Term Mission)
단회적인 단기선교는 비전트립(ST1), 단기사역(ST2), 전문인 단기사역(ST3)으로 구분한다. 단회적인 단기선교의 경우 선교사역의 일차적인 목적은 선교지의 필요보다는 단기선교 참여자의 성장이나 파송교회의 유익이 고려되는 경우가 많다.
비전트립(ST1)은 특별한 사역목적을 세우지 않고 1-3주정도 선교지를 방문하여 하나님께서 개인 혹은 교회를 향해 주시는 비전을 발견하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비전트립은 선교현장보다는 개인의 비전이나 교회의 선교비전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를 방문했을 경우 비전트립을 통해 선교사의 삶을 이해하고, 선교현장의 필요한 기도제목을 발견하고 돌아와서 함께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비전’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미전도종족을 입양하기 전에도 비전트립을 통해 입양종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선교의 비전을 품을 수 있다. 물론 선교지 정탐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세워졌다면 그것은 단기사역으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장기선교사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단순한 선교훈련을 위해 선교지를 방문한다면 이것 역시 훈련을 통해 사역의 비전을 발견하는 비전트립(ST1)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단기사역(ST2)은 몇 주에서 3년 정도 특정 선교지에서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장기선교사와의 협력을 통해서 구체적인 선교전략을 수행할 수 있으며, 장기선교사의 사역을 돕는 ‘Mission Builder’로써 필요한 사역을 그때마다 도울 수도 있게 된다. 또한, 단기사역을 통해 단기선교사는 구체적으로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이해하게 되며 장기선교사로써 사역을 계획할 수 있게 된다.
전문인 단기사역(ST3)은 전문직종에 대한 지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의 팀을 구성하고 선교지를 방문하여 전문적인 사역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인 단기사역은 전문인 단기선교와 같은 맥락이지만 전문직종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사역한다는 점과 사역지 방문이 지속적인 사역이 아니라 단회적이라는 점에서 구분한 것이다.
(2) 반복적 단기선교 (Repeating Short-Term Missions)
반복적인 선교의 경우 사역이 중심이 된 실제적인 선교이며 단기선교(SM1), 전문인 단기선교(SM2), 비거주 단기선교(SM3)로 구분한다. 반복적인 단기선교는 선교지에 지속적으로 단기선교 팀을 파송하여 중장기적인 선교전략의 수행이 가능하므로 일차적인 목적이 선교지 중심(field-centered)이 된다.
단기선교(SM1)는 개인 혹은 지역교회가 특정 선교지를 정하여 매년 반복적으로 방문하여 선교하거나 선교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이러한 SM1 단기선교사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LA 온누리교회에 출석하는 K 장로의 경우 년 2-3차례 중국을 방문하여 조선족 가정교회와 탈북자들을 돕고 있으며, 와싱톤 중앙장로교회의 M 장로 역시 년 3-4차례 탈북자들이 거주하는 중국의 길림, 연변, 연천지역에서 현지 그리스도인들을 입양하여 SM1 사역을 하고 있다. 단기선교는 한 지역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것이며 개인 혹은 교회가 매년 선교지를 바꾸어 여러 지역을 방문하면 비전 트립(ST1) 내지는 단기사역(ST2)이 될 것이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의 청년부는 3년 동안 태국의 치앙마이에 단기선교팀을 6차례 파송하여 대학가를 중심으로 사역 베이스를 구축하고 4년차에는 선교사를 파송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사례를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서울 동도교회 역시 미얀마에 97, 98년 단기선교팀을 파송하여 현장에서 사역하는 장기선교사와 함께 교회개척사역을 진행한바 있다.
전문인 단기선교(SM2)는 특정 전문직종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매년 한 지역 혹은 여러 선교지역을 돌며 전문사역을 통하여 선교하거나 선교하는 일을 돕는 것이다. 전문인 단기선교의 경우 장기선교사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전문적인 기술을 통해 선교현장의 사역을 도울 수 있기 때문에 한 지역에 제한되기보다는 여러 선교지에 전략적으로 투입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전문인 단기선교는 ‘전문인 선교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문인 단기사역’(ST3)과 구분된다. 한국의 의료선교회, 치과의료선교회, 한의사 선교회, 오병이어 선교회, 사랑의 봉사단 등은 이러한 전문인력들을 단기선교에 동원하여 전문 사역이 필요한 여러 선교지를 순회하면서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비거주 단기선교(SM3)는 정치적 혹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한 지역에 정착하여 거주하지 않으면서 년 수 차례 방문하며 선교하는 것이다. 현대 선교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많은 제삼세계의 피선교국들이 선교사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민주주의 혹은 기독교 국가라고 하는 많은 나라들까지도 요즈음 외국 선교사들에게 선교사 비자를 주지 않고, 외국인들이 자기네들의 땅에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선교사역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추세이다.
현재 남아있는 선교지의 대부분은 선교사의 입국을 거부하는 ‘창의적인 접근지역’(creative access area) 혹은 ‘저항지역’(resistant area)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이러한 지역에 선교사 비자를 받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이 지역에 거주하며 살지는 않지만 방문비자(tourist visa)를 통해 단기간사역을 위해 반복적으로 방문하면서 선교하는 ‘비거주 선교사역’(non-residential missionary)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단기선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이 비전략적이고, 비효율적인 선교가 아닌 매우 효과적인 현대선교의 전략으로 대두되고 있다. 단기선교는 단순히 장기선교와 사역의 시한 면에서 비교하여 고려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대 위임령(Great Commission)이라는 대 명제 아래에서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선교사역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하는 기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사역을 통하여 지상명령의 목표를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면 남겨진 과업을 수행하는 효과적인 선교전략으로 연구될 수 있을 것이다 (Park 1999b)
3. 단기선교의 성경적 기초
가. 구약의 기초
먼저 선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장기선교와 단기선교를 구분하는 것이 사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진정한 장기선교사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삶의 터전을 옮겨 타지역에 뿌리내리고 살면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의 능력을 계시하는 사람들이다. 아브라함, 에스더, 다니엘, 요셉등과 같이 평생을 이방의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이야 말로 장기선교사의 모델이다. 반면에 단기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을 때 자신의 삶의 환경을 떠나 제한된 시간 제한된 사역을 위해서 일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이루어 가는 단편적인 사역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삶을 기간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정의되고 수 많은 사역자들이 참여하는 단기선교의 성경적인 모델을 굳이 찾는 이유는 성경을 통해 오늘날 단기선교의 이해와 실제적인 사역방법에 대한 교훈을 도출하고 적용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가장 귀중한 시간을 사용하여 지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πορευθεντε? ουν μαθητευσαντε παντα τα εθνη)는 사명을 주는데 사용하셨다 (마 28:19). 땅위에 있는 교회와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주님의 이 지상명령(Great Mandate)을 수행할 의무가 있다. 전임선교사 (Full time missionary)로 혹은 장기선교사로서 자기들의 전 생애를 바치는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만이 주님의 지상명령을 준행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Park 1999b).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소명을 통해 사역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경적인 관점에서 단기선교의 초석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전생애에 걸쳐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함으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구약의 단기선교 (Short-Term Missions in the Old Testament)
오랫동안 학자들은 구약성경에서도 신약의 선교와 동일한 선교를 명령하고 있는가를 고민해 왔다. 그리고 몇몇 선교학자들은 구약의 본문에서 훌륭하게 선교의 명령을 도출해 내었다. 피터스(George W. Peters)는 성경전반에 걸쳐서 선교의 원리를 지상교회와 연결하여 도출하였으며, 풀러신학교의 글라서(Arthur F. Glasser) 교수는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지상교회의 선교과제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섭렵하여 연구하였다. Larkin과 Williams는 이러한 구약의 선교와 중간기 유대교의 선교, 초대교회의 선교를 토대로 신약성경 각권을 선교에 대한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처럼 선교는 신구약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로 성경신학적인 관점에서 연구되고 있다. 필자는 구약의 선교를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간략하게 제안하고자 한다.
선교와 시간 (Time and Mission)
단기선교의 예를 구약성경에서 찾기 앞서 선교와 시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 단기선교에 대한 관점의 각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흑암과 혼돈가운데 가장 먼저 시간을 창조하셨다 (Kidner 1967:43). 이 시간 역시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져왔으며 (롬 8:19-20), 인간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스리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시간의 제한을 받으며 속박된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키드너(Kidner)의 말대로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마지막 순간 (in the end)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마지막 순간이 인간의 타락으로 결정된 것인지 아니면 태초 (In the beginning)에 이미 결정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 마지막 순간은 하나님의 심판과 보상의 날로 결정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선교는 바로 이 마지막 순간을 기쁨과 영광의 순간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사역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사역을 그 손으로 직접 창조하신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사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생각한다면 그것이 장기사역이든 단기사역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역의 영향력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실제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단기간 사용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에서 사역의 시간이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늘 부각되고 있다.
예기치 않은 선교사들 (Unvoluntary Missionaries)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타문화권 장기선교사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이방민족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신현(Theophany)을 선포한 사람들이었다. 요셉은 비록 형제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어 미디안 상인의 손을 거쳐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갔지만 그의 고백대로(창 45:7,8)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요셉의 말대로 그의 이주는 이후에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열국 중에 드러나고 그 이름이 선포되기 위한 서곡(prologue)이었언 것이다.
나아만 장군의 집에 팔려 갔던 이름도 나오지 않는 어린 계집아이 역시 아람의 군대장관이 영적으로 변화하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신 복음의 메신저였으며, 에스더와 다니엘 역시 평생 이방의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증거한 메신저들이었다. 이처럼 성경 속에 나오는 장기선교사의 개념은 모두 평생을 이방의 민족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선교할 민족을 찾아가기보다는 하나님의 주권가운데 이주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여호와의 능력을 선포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교사는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대로 선교지에 나아가야 한다. 단기선교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장기든지 단기든지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나아간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람들의 삶을 회복하고 놀라운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단기선교사로 나가기에 앞서서 깊이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내가 혹은 우리 팀이 어느 곳으로 가기 원하시는지 발견해야 한다. 영적전쟁의 총사령관이신 하나님의 명령없이 전장으로 나아가는 군사처럼 어리석은 군사는 없다.
전문인 단기선교 (Professional Missionaries)
둠브렐 (Dumbrell)은 성막이 첫째는 타락한 세상의 회복을 상징하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회복을 세상에 선포하는 ‘계시증거의 도구’라고 하였다 (1990:147-149). 따라서 성막의 건축자체가 하나님을 세상가운데 선포하는 선교사역이었다. 실제로 성막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를 이동하면서 주변의 많은 민족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었다.
필자는 선교로써의 성막건축 과정에서 오홀리압과 브살렐을 주목한다. 이 두 사람은 실제 이스라엘의 이동과정에서 하나님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장막전문가로써, 금속세공 전문가로써 성막건축을 위해 일년간 집중적으로 사역한 사역자들이었다. 그들의 사역이 실제 하나님의 영광 자체를 드러낸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성막의 건축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드러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전문인 선교의 틀을 제공한다 말할 수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단기선교가 직접적으로 선교하는 일에 동역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세상가운데 드러내는 ‘계시증거의 도구’로써 아름답게 사용될 수 있다.
한 부류의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이었다. 모세로 대변되는 선지자 그룹들은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목동이나 이방의 술관장, 궁정관리등 전문적인 일을 하면서 특별한 계시의 말씀을 선포한 전문인 단기선지자들이었다.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 하나님의 자기계시와 계시의 말씀이 있기 전까지 자신의 생업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인도하심대로 사역에 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선교사의 자질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전문인 선교사들은 첫째 자신의 직업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섬기며 증거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든지 아니면 둘째 직업은 생계의 수단이고 직접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었다. 오홀리압과 브살렐은 그들이 가진 재능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성막을 건축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이 땅에 드러내는 간접적인 사역을 감당한 반면 바울의 경우 후자로써 장막을 깁는 일을 하며 선교비를 마련하여 단기간 각 도시의 유대인 회당을 방문하여 그곳을 중심으로 직접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였다.
단기선교사 요나 (Jonah, the Short-Termer)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은 아니다. 요나의 경우 타문화권 이방의 니느웨 성에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타의적인 선교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고 다시스로 도망하는 배에서 심한 풍랑으로 회개하고 깊은 물 속으로 던져졌다.
삼일간 물고기의 뱃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소망 없이 우상가운데 죽어가는 자라도 여호와를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욘 2:4,8-9) 니느웨로 향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나의 사역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걸어서 삼일길이나 되는 큰 성을 하루동안만 돌며 복음을 선포하였지만(욘 3:4) 좌우를 분간치 못하는 십 이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욘 4:11) !
요나의 사역이 이처럼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요인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지시대로 사역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선교현장에서 집단개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인협력의 역사일 것이다. 반면에 단기선교가 효과가 없다면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지시대로 사역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신약의 기초
순드클러는 신약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의 선교에 놀라운 파라다임 쉬프트(Paradigm Sift)가 일어남을 지적하고 있다. 즉 구약에서의 원심적선교(centripetal mission)가 신약성경에서는 구심적선교(centrifugal mission)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선교개념의 변화는 장단기 선교에 대한 개념에도 영향을 주었다. 구약에서의 장기선교는 원심적인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하나님의 보내심 가운데 이방민족 혹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사는 가운데(being)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이었다. 단기선교의 경우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위해서 특별한 시간 특별한 사역을 위해서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구약에서 타지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일을 위해서 평생을 드리는 사람들 – 제자들과 믿는 사람들 – 이 등장한다. 이들은 복음을 들고 평생 사역했다는 점에서 장기선교사였다. 하지만, 한 곳에서 평생을 머문 것이 아니라 제한된 시간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곧 다른 곳으로 또 이주했다는 점에서 단기선교의 특징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신약에 이르러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목표로 주어졌으며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일에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단기선교사는 이 일을 위해 전략적으로 특정한 시간 특정한 지역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이 된다.
예수님의 단기선교 (Jesus’ Short-Term Mission)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세례 요한과 연결되어 있다. 출생의 신비뿐 아니라 사역의 내용과 그 메시지까지도 유사한 점을 보여준다. 누가는 세례요한이 ‘죄사함을 얻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고 증언하면서 (눅 3:3), 그의 글을 마치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마지막 지상명령 역시 ‘그의(자신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 (눅 24:47)을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증인이 되라고 부탁하셨다고 말한다. 마태는 세례요한이 전한 메시지의 핵심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였으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 역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 4:17)라는 동일한 메시지 였음을 전한다. 또한 요한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듣고 오히려 ‘예수의 제자가 되었음’(요 1:37)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신구약의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는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모두 3년간의 단기사역이었다. 예수님과 6개월의 나이 차 밖에 안나는 세례요한은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던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20대 후반에 광야의 선지자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사역 후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인 30세 경에 헤롯에 의하여 목베임을 당하였다. 예수님 역시 이 땅에서 30년간의 삶을 사시고 3년간의 공생애 기간동안 하나님의 나라와 회복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분의 영향력과 영적 파급력은 타락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킬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단기선교학교 (Short-Term Training of Jesus Christ)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땅위에 계시는 동안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3년 동안 함께 다니시며 제자들을 훈련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이 3년간 훈련은 앞으로 제자들이 평생 복음을 들고 전 세계를 누벼야 할 사명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훈련의 시간들이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단기간에 유대인들에게 선포하기 위해 제자들을 파송하는 장면을 기록한 마태복음 10:1-23에서 우리는 몇 가지 단기선교의 성경적인 원리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열두 제자를 부르사 권능을 주시니라’ (1절) 예수님은 단기사역을 위해서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셨다 (empowering). 예수님은 이 능력이 성령의 임재와 더불어 임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행 1:8).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선교일선에 설 선교사로써 성령충만과 성령의 임재를 통한 능력을 받지 못했다면 이것은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영혼을 위협하는 반복음적인 일이 될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5-6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기간 사역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집중해야 할 선교의 대상을 일깨워 주셨다.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이 예수님의 명령이 유대인에 대한 편애라고 지적하며 예수를 민족주의자로 치부하려 한다. 하지만, 이 명령은 제자들을 훈련하시면서 앞으로 전세계의 모든 민족을 향해 복음을 증거해야할 제자들에게 단기선교의 분명한 대상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면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넘어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게 될 것이었다.
셋째 ‘천국이 가까웠다 병든자를 고치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주라’ (7-8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한 사역의 내용을 알려 주셨다.
단기선교사는 분명한 사역의 목표와 기술을 가지고 가야 한다. 장기 선교사의 경우 선교지에 살면서 사역을 개발하고 확장할 수 있지만, 단기선교사에게 분명한 목적과 능력이 없다면 사역에 참가하는 단기사역자나 현장의 선교사뿐 아니라 선교현지인들에게도 도움보다는 많은 어려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사역에 필요한 적절한 기술을 습득하고 개발하여 선교지의 필요에 따라 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 ‘금이나 은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가지지 말라’ (9-10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역자의 권리를 누릴 것을 요구하신다. 일하는 일꾼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모험하지 않는 자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의 진수는 ‘벼랑을 뛰어내리는 용기’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으로 내가 벌어 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것을 가져다가 쓰라!
이것은 선교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기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선교사든 현지인이든 폐를 끼치지 말고 실제 사역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단기선교 팀은 신세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돕고 축복과 은혜를 끼치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러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다섯째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6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선교의 동기와 선교사의 인격을 가르치셨다. 이 본문은 유대인의 속담을 이용하신 본문이다.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동물 중에 가장 지혜로운 동물이었다 (창 3:1). 하지만 이 지혜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반역하였던 것이다. 본문의 말씀은 단기선교사들이 뱀의 간교함을 닮으라는 것이 아니라 선교현장에서 뱀을 대적하기 위하여 뱀과 같이 지혜롭게 대처하라는 것이다. 비둘기 처럼 순결하라는 말은 동기와 의도의 순수성을 의미한다 (Hill 1972:187). 선교에 헌신하면서 복잡하게 세상의 것을 계산하지 말고, 헌신의 동기 뒤에 숨겨진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선교사의 인격적인 통합 즉, ‘integrity’ 인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선교훈련을 통하여 제자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훈련받았으며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복음을 선포하고 초대교회를 세우는 일에 놀랍게 쓰임받게 되었다.
초대교회와 단기선교 (STM in the First Church)
초대교회는 땅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삶을 증거하라는 지상명령을 받았으나 유대인들의 시기와 로마정부의 핍박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전력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지역에 세워진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으며 대핍박이 임한 후에는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중동 전역에 흩어져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집사였던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선교여행을 하던 중 이디오피아 관리를 만나 짧은 시간에 복음을 전하여 세례를 베풀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방인으로 취급되던 사마리아인들 가운데 단기로 사역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령을 받게 하였다 (행 8:14-17). 또한 베드로는 단 한 차례 고넬료 집안을 방문하여 그와 그의 친속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행 10: 17-48). 이처럼 초대교회에 일어난 단기선교와 사역의 열매의 공통점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있다. 베드로 (행 10:19)와 빌립 (행 8:26,39)의 사역의 중심에는 성령이 직접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사역을 명령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단기사역은 오늘날 단기선교팀 역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얼마든지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키시고 있다. 단기선교팀이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계획과 프로그램에 주도된다면 이러한 놀라운 결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단기선교사 바울 (Paul and His Short-Term Mission Team)
흔히 바울은 선교지에 주재하면서 오랫동안 사역한 장기선교사로 생각을 하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는 어느 한 지역에서도 2년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선교지에 머무는 기간은 몇 주에서 몇 달 혹은 몇 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그가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단기선교사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자신뿐 아니라 함께 동역한 디모데를 단기간 동안 빌립보에 보내어 그들의 믿음을 세워주도록 하였고(빌 2: 19-24), 디도를 단 기간 동안 각 성에 보내어 가서 아직 다하지 못하고 남겨놓은 일들을 하고 장로들을 세우도록 하였다 (딛 1:5). 이러한 점에서 바울은 단기선교의 전략을 통하여 여러도시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했던 것이다. 바울과 함께 사역한 바나바의 사역 역시 단기간의 방문과 교육을 통한 선교였다. 바울이 이러한 선교의 모델을 어디에서 배웠을까?
초대교회 단기선교의 모델(STM Model of the First Church)
바울의 단기선교 모델은 한 지역의 중심도시를 방문하여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먼저 유대인을 전도하고 이들과 함께 이방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단기선교의 모델은 바울이 ‘기둥같은 사도’ (갈 2:9)라고 표현하는 베드로의 사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누가는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욥바에 사는 다비다 (도르가)라고 하는 이방인 신자를 기적적으로 살린 기사를 전하고 있다 (행 9:36ff). 베드로는 교회의 핍받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방문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교육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사도행전 12장에서 야고보의 순교사건 이후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였다 (행 10:17). 바울은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했다고 전하고 있으며 (갈 2:11), 초대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이방의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로마에 가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베드로는 예루살렘뿐 아니라 여러 지역을 방문하며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고 권면하여 예수님의 분부대로 교회를 세우는 일을 감당했던 것이다 (마 16:16).
다. 결론
하나님의 창조는 ‘시간의 창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간이 처음부터 제한을 가졌던 것인지 아니면 영원과 함께 존재하도록 고안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된 ‘태초’는 종말을 향해 치닫게 되었다. 타락과 심판의 틀 안에서 인간은 제한된 시간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돕는 일에 부름 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감당해야할 선교적 세계관(Missional Worldview)이다.
구약에서 장기선교사는 하나님의 주권가운데 이방민족과 더불어 살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을 계시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단기선교사들은 개인의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특정한 시간 특별한 일에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신약에서의 선교개념에 변화가 생기면서 장단기선교에 대한 개념 역시 변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으로 인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일에 부름을 받았으며 그들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이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장기선교사는 이일을 전임직업(full-time vocation)으로 삼아 특정지역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며 단기선교사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서 이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이다
4. 한국 교회사속의 단기 선교
가. 한국을 복음으로 섬긴 서양선교사들 (Western Missioanries)
한국교회 역시 세계의 여타교회와 마찬가지로 선교로 시작되었고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선교와 교회의 관계는 불가분의 상호관계에 있으며 이 관계가 떨어질 때 선교나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서 그 기능과 목적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다양한 단기사역과 전문인 선교가 전략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조말기 한국사회와 처음으로 접촉한 프로테스탄트 교인은 네델란드의 벨트브레(John J. Weltvree: 한국명)와 하멜(Hendrick Hamel)이었다. 박연은 한국식의 이름이 보여주는 대로 한국에서 오래 살아서 네델란드 말을 잊어버리고 한국에 동화되었으며 복음을 전하는 일 조차 하지 않았다. 하멜은 한국의 종교와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표류기에 기록하였지만 선교의 영향력을 남기지는 못했다.
한국에 첫 복음의 씨를 뿌린 선교사는 칼 구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였다. 그는 1826년 네델란드 교회의 파송으로 사이암[태국]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하여 현지의 중국인들과 어울리면서 놀라울 정도의 중국어 실력을 닦았다. 의사며 동시에 네델란드 상선의 선목(chaplain)으로 온 그는 리빙스턴과 마찬가지로 복음과 상역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민경배 1982:133-134). 그는 제주도와 한국의 서부해안을 3개월간 항해하면서 한국어를 익혔고 서두르지 않고 ‘언젠가 복음의 문이 열릴 것’을 기다리며 때를 기다렸다 (민경배 1994:135). 하지만 그의 단기방문은 단회적으로 그쳤으며 한문으로 된 성경책을 이곳 저곳에 나누어주며 신앙이 자생하도록 하였다. 구츨라프식 선교의 영향력은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에 한국인에 의해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개종하는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한국선교역사에 있어서 영적인 큰 획을 그은 선교사는 영국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런던대학을 졸업한 로버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였다. 그는 당시 많은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상선을 타고 중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중국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중 우연히 한국에서 일어난 카톨릭의 수난을 듣게 되었고 그는 세관직을 사임하고 즉시 상선을 타고 1995년 9월 한국의 서해안에 도착하였다. 두 달 반 동안 한국어를 익히고 성경을 나누어주면서 서울에 가려 했으나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중국 만주의 피즈우에 표류하여 결국 북경으로 돌아갔다. 토마스 목사는 1866년 26세의 나이로 제네럴 셔먼호의 성서공회소속 선교사로 탑승하여 한국을 향하였다. 하지만, 병인양요와 프랑스군과의 대치로 긴장한 한국군이 발포한 포에 셔먼호는 침몰하였고 대동강을 헤엄쳐 가까스로 한국 땅을 밟은 토마스 목사는 한국 병사에게 성서를 건네주다가 순교의 피를 흘리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서구의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 땅을 밟기 전에 이처럼 단기간에 걸친 선교의 노력들이 있었으며, 이러한 단기간의 영적인 충격(spiritual impact)은 한국인들이 복음을 듣고 자생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장기선교사가 입국하기 시작한 1884년 이전에 한국에는 수 십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토마스에게 성경을 전해 받은 변방의 병사에 의해 개종하였거나 의주 상인으로 복음을 들여온 서상윤 등에 의해서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장기선교사가 주재하기 시작한 1885년 이후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단기간 방문하여 한국선교를 위하여 협력하였다. 물론 당시의 단기선교라는 것은 이미 선교에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문이 닫힌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전문적인 일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한국교회사를 기록하는 역사가들은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을 지적하면서 빼놓지 않고 존 네비우스 (John L. Nevius)의 사역을 언급한다. 한국교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네비우스의 선교정책이었다. 이것은 성경공부를 통해 현지그리스도인을 양육하고 3자 원칙을 실현하는 선교 방법론(“자치,” “자립,” “자전”) 이었다. 서양선교사이건 한국교회 지도자이건 간에 대부분 그들의 선교 전략으로서 이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1890년 한국의 젊은 장로교 선교사들은 산동성 주재 선교사 네비우스 박사를 초청하여, 그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선교사역을 시작해야 할 것인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가르쳐 달라고 청하였다. 네비우스는 단지 두 주간 동안만 서울에 머물며 젊은 선교사들을 가르치고 상담을 하여주었다. 그리고 그 젊은 선교사들은 네비우스의 계획을 자기들의 선교 전략으로 채택하였다. 네비우스가 짧은 기간 동안 머물렀지만 그의 영향은 놀라운 것이었다 (Park 1991:88,89).
나. 초기 한국선교사들 (Korean Missionaries)
한국사회가 처음으로 성경을 받아보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중국을 방문하고 복음을 믿게된 의주 상인들에 의해서였다. 한국인으로 처음 세례를 받은 이응찬, 백홍준, 이승하, 김진기, 서상륜 등은 상인의 신분으로 중국을 드나들면서 성경 번역을 돕고 번역된 성경을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와 여러 지역을 돌며 배부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Park 1999a:36-39).
한국교회는 선교운동을 시작한 초기부터 단기선교를 실시하였다. 평양 여선교회가 제주도에서 사역하는 이기풍 선교사를 돕도록 몇 년간 이관선 전도사를 파송하였고 이관선 외에도 많은 단기선교사들이 이기풍 목사와 제주도 선교를 위하여 협력하였다. 풀러 신학교의 박기호 교수는 그의 연구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평양 여선교회는 이관선 전도사를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하여 1908년부터 1913년까지 사역케 하였으며 평신도 선교사 김창문과 평안도 남학교에서 파송된 김현철이 학생선교사로 1909년에 제주도를 방문하였으며, 김홍련이 1915년, 최대진 목사와 최대선 목사가 1916년 일년간 제주도에서 사역했고 장덕상 목사가 1917-1918년까지 김창국 목사가 1917년에서 1923년까지, 이창규 목사가 1923년, 이도종 목사가 1931년에 (제주도에서) 사역하였다 (Park 1999a:55).
대한 예수교 장로회 독노회에서는 1909년 한석진 목사를 3개월 간 일본 동경에 파송하여 일본에 있는 한국인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곳에 교회를 조직하도록 하였다 (Park 1991:48). 그리고 길선주 목사가 중국 산동성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도와 부흥회를 인도하기도 하였다. 시베리아 선교초기인 1921년 7월에는 정재덕, 박상우, 서영복 등이 김덕수 선교사와 협력하였으며, 김영학 목사가 1923년부터 3년간 블라디보스톡의 연한촌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였다.
이처럼 한국교회 초기의 단기선교는 주로 본국교단과 선교부에서 해외에 필요한 사역을 위해 파송하였으며 단기선교사들 역시 짧은 기간 사역하면서 분명한 목표와 사역을 가지고 있었다. 근래의 단기선교는 이에 비해 분명한 목적과 사역계획 없이 무작정 선교지를 방문하는 경향이 짙다. 이것은 외국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동기가 되거나 선교에 대한 무지가 단기선교사의 배경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제 전문적인 연구와 전략을 마련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도래하도록 협력하는 단기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해외의 그리스도인들과 현지인들을 섬기기 위하여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국토가 초토화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면서 이러한 선교적인 열정은 식지 않았다. 박기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한국교회의 선교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특히 한국전쟁기간 동안 주춤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그 비전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한국동란이 끝난 후) 1956년에는 태국에 선교사 부부 두 쌍을 보냈다. 또한 계화삼 목사는 1957년에 총회선교부에 의해서 대만에 파송되었다 (Park 1999a:124).
동란이후 본격적으로 타문화권 해외선교사들이 파송되면서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한 관심은 증가하였으며 파송교회를 중심으로 선교지를 방문하며 해외선교를 이해하는 수준에서 단기선교가 재개되었다. 그럼에도 동란이후 해외선교 시기에 있어서 단기선교의 침체 이유는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사역의 대상에 따른 협력의 한계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해외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였기 때문에 단기선교사로써 단기간 동역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타문화권 선교가 시작되면서 단일언어와 문화권에서 성장해온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언어와 문화적인 장벽이 단기선교라는 전략에 큰 장애로 놓이게 되었다.
둘째는 사역자체의 한계 때문이다. 타문화권 선교의 경우 실제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는 일이 더디게 진행되기 때문에 시급하게 동역자나 함께 사역할 단기선교사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본부와 파송교회에 단기선교사를 요청하는 일 자체가 시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순일 목사는 한국전쟁이후에도 선교현지의 한인교회로부터 지원받거나 자비량으로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이민세대 선교사가 활동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다. 한인단기선교운동(Korean Short-Term Missions Movement)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에 단기선교의 붐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미 언급한대로 70, 80년대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성장과 80년대 경제적 발전, 88년 서울올림픽 이후의 해외여행 완화조치등 일련의 환경조성과 더불어 ‘선교한국’ (Mission Korea)대회와 같은 학생선교운동(Student Mission Movement)의 영향으로 지역교회와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단기선교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지역교회의 단기선교 프로그램은 주로 교단선교부를 통해 제공되고 있다. 교단의 선교부가 주도적으로 팀을 구성하고 훈련하기보다는 지역교회에서 구성된 팀을 훈련하고 지역교회가 단기선교팀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일을 돕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사역했던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의 경우 1994년 ‘청년학생 선교훈련원’(YMTC)가 설립되기 전까지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단발적으로 실시하던 단기선교를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파송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12개의 지역 선교훈련 센타를 통해 지역교회의 단기선교팀과 선교헌신자들을 훈련하고 있다. 합동측 선교부는 1998년 교단산하 선교국에서 자체적인 총회해외선교회(GMS)로 독립선교부의 형태를 갖추면서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한 평신도/단기선교훈련원을 여러 지역에 설립하였다. 이러한 지역교회 선교프로그램의 확장을 통하여 교단산하의 많은 교회에서 단기선교의 붐을 주도하고 있다.
1988년 IVFC의 한국지부에서 어바나 대회를 모델로 시작한 한국형의 학생선교대회인 ‘선교한국’(Mission Korea) 대회는 9개의 대학생 선교단체와 10여개의 선교기관이 선교한국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선교한국은 지난 12년 동안 참가자와 선교헌신자 모두 10배로 성장하면서 많은 한국의 많은 젊은 청년들이 선교하도록 동원하였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학생시절부터 단기선교를 통하여 선교의 비전을 키우고 있다.
특히 지난 1998년과 2000년 선교한국대회에는 4천명에 이르는 청년학생 참석자들이 선교사로 헌신하였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단기선교를 통해 선교경험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실제 필자가 1998년 선교한국대회 기간동안 선교부스를 방문한 120여명의 선교헌신자들을 상담하면서 대부분의 피상담자들이 이미 선교사로 헌신하였으며 단기선교를 통해 선교지를 경험 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라. 결론
한국교회는 새 밀레니움에 선교 2세기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시점에 서있다. 이미 파송된 9천 여명의 장기선교사 이외에도 이들과 함께 동역하고 방문하는 수 만명의 단기선교의 물결은 이미 한국교회의 설립초기부터 흐르는 선교의 열정이 열매 맺힌 것이다. 1990년대부터 한국교회의 단기선교는 새로운 운동으로 부각되고 있다. 교단을 중심으로 한 지역교회의 단기선교와 대학생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학생선교운동’ 모두가 한국교회로 하여금 선교하는데 집중하도록 자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다음 장에서는 교회와 선교의 관계를 다시한번 고찰해보고 ‘선교하는 교회론’ (Missional Ecclesiology)에 대하여 논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하여 지역교회가 단기선교를 통하여 선교의 의식을 고양하고 선교사를 지원하고 평신도 선교지도자를 양육하는 것이 곧 선교적인 교회를 건축하는 일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5. 선교적 교회론의 정의
가. 교회’의 어원적 정의(Etymological Definition of Church)
필자는 7년 동안 지역교회의 단기선교팀과 다양한 선교헌신자들을 훈련하면서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에게조차도 선교적인 교회론(???을 이해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교회론을 연구하려면 먼저 수 많은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 본질은 무엇인가? 교회는 세상에 어떠한 사명을 갖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현대에 이르러서야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장식은 1920년부터 40년간 독일어로만 발간된 교회론 관련논문이 6,000여 편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교회론의 연구에 힘입어 본 장에서는 간략하게 선교하는 교회(Missional Church)로써의 정의와 본질, 기원을 살펴보고자 한다.
‘교회’(church)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퀴리아콘’(κυριακον)에서 온 것이다. 사실 신약성경에 두 번 사용된 이 단어는 직접적으로 교회를 가리키지는 않았다. 고전 11:20에서는 주의 만찬을 가리키고 있으며, 계 1:10에서는 주님의 날을 지칭한다. 신학자들은 교회(church)의 직접적인 어원보다는 의미론적인 어원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주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마 16:18)고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단어는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였다. 이 단어는 구약의 개념과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카할’(qahal)과 ‘예다’(edah)라는 두 단어이다.
위에서 언급한 네 단어 – kuriakon, ekklesia, qahal, edah – 를 역사적인 순서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교회 : 구약의 용어
구약성경에 교회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 역’(LXX)의 전통을 따라 구약의 두 단어, 즉 ‘카할’과 ‘예다’를 교회라는 단어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1. 카할
신학자들은 구약에서 교회를 의미하는 단어의 기원을 ‘카할’(부르다)로 설정하고 있다. 이것은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 역'(LXX)에서 이 히브리어 ’카할‘은 헬라어 ’에클레시아‘로 번역하고 있는 번역상의 역사적 경향에 기인한다. 클라우니(L. Clowney)는 ‘교회의 이야기가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시작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옳은 지적이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강조하여 왔는데, 구약의 이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이다. 특별히 시편 22:23에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의적 회중(cultic congregation)으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있다.
사전적으로 카할은 ‘대회’, ‘집회’(convocation) 혹은, ‘회중’을 의미하며, 특별한 모임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켰으며,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천사(시 89:5)와 일반 군중(창 28:3; 35:11)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점차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가 되었다.
2. 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라는 의미로 사용된 또 하나의 단어는 ‘예다’(회중)인데, 70인 역에서 이 단어는 주로 ‘회당’(συναγωγη)으로 번역되었다. 이 회당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장소이다.
이 단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다. 때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키기도 했지만(왕상 8:5; 시 1:5; 시 82:1), 벌떼(삿 14:8), 악인의 반역무리(민 16:5)등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단어는 교회의 직접적인 어근으로 관심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교회: 신약의 용어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교회’(εκκλεσιαν)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마 16:18). 그리고, 의미적으로 볼 때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토대로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칭하는 ‘주’라는 단어에서 오늘날 영어의 교회(Church)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1.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은 교회(church)라는 용어가 신약의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라는 단어에 기원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단어는 전치사 ek(밖으로)와 동사 kaleo(부르다)로 구성되었다. 즉 ‘밖으로 불러내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특별한 목적을 위해 모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바울시대 이후에 이 단어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새 이스라엘, 하나님의 참 교회를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슈미트(K. L. Schmidt)는 바울시대 이전에 이미 이 단어는 유대인의 회당(συναγωγη)으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였다고 지적한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몇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첫째는 정치적인 회합(행 19:39)이나, 무리 지어있는 군중(행 19:32, 40)을 의미하는 세속적인 용례이고, 둘째는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모인 이스라엘 회중(히 2:12-시 21:23)을 가리킨다. 이 경우에는 군중이라는 첫째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에 유대적 개념이 추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는 교회라는 의미이다. 이 경우 교회는 회중으로서의 교회(고전 11:18), 공동체로서의 교회(마 18:17; 행 5:11; 고전 4:17; 빌 4:15 등), 가정 교회(롬 16:5; 고전 16:19), 보편적 교회(마 16:18; 행 9:31; 고전 6:4; 12:28; 엡 1:22등), 지역교회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2. 교회(Church)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가리킨다.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엡 5:23)인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 ‘Church’는 중세 영어에서 chirche로 표기되었으며, 이는 독일어의 Kirke(교회)에서 차용한 단어이다. Kirke는 헬라어의 κυριακη에서 온 단어로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께 속한’(κυριακον)이라는 의미로 두 차례 사용되고 있으며, 오늘날 교회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교회가 기독론적 교회론의 이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교회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임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나. ‘교회’라는 성경적 단어들 간의 연속성
위에서 살펴본 ‘부름 받은 공동체’로서 교회에 대한 이 신구약의 단어들은 놀라운 연속성을 보여준다. 콘첼만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이 단어(εκκλησια)는 그리스도인들이 70인경에서 받았다는 것과 또한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가 평행선을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 폭넓은 견해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콘첼만, 신약성서신학, 김철손외 공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2), p. 51
바울이 주로 사용한 이 단어는 건물개념을 가리키기보다는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믿는 자들의 공동체’(共同體)를 의미한다.
물론 예수님 역시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실 때 가시적인 건물보다는 신앙 공동체를 의미하셨다고 볼 수 있다. 마 16:20, cf. 마 16:18
이것은 예수님 자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동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어원을 구속개념과 관련된 ‘하나님의 백성’ 개념으로 설정하는 것은 타당하다. 신학상의 교회관(敎會觀)은 주로 이 ‘공동체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연구된다. 이것은 신약교회의 새 언약의 공동체적 특징을 수용하고 구약에 있어서도 의미론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바른 교회관 정립을 위해서는 신약에 있어서 가시적인 교회건물에 대한 바른 연구와 이해 역시 필요할 것이며, 구약의 가시적 성막과 성전과의 관련성(關聯性)을 통해 그 의미를 밝혀야 할 것이다. 또한, 이미 연구된 성전과 성막의 기독론적 해석을 교회론 연구와의 연속선상에서 조명(照明)해야 할 것이다
다. 교회의 정의
교회에 관한 개혁교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개념은 의심할 바 없이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된 인간의 몸’을 의미한다. James Bannerman, The Church of Christ, vol. 1 (Canada: Still Water R. Books, 1869, reprinted 1991), p. 14
영화된 육신과 연합된 이 몸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된다. 이 기본적인 ‘우주적이며, 불가견적인 그리스도의 교회’(the universal invisible Church of Christ)로부터 다양한 개념들이 도출된다. 제임스 배너만(James Bannerman)은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교회는 ‘가견적인 조직체’이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서 보존하는 조직체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되며 유지된다. 사도바울이 서신서의 각 서두에서 교회를 지칭할 때 그것은 가견적 조직교회를 지시하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지역성’을 가진다. 그래서 전 우주적인 성격을 갖는 교회로서보다는 일정지역에 존재하는 교회로서의 의미(意味)를 가진다. 이 교회는 특별한 지역에 세워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 의해 형성된다.
셋째, 교회는 ‘예배공동체’ 이다. 신약성경에서 발견되듯이 교회란 한 곳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이다. 이것은 개개의 지역교회에 모인 신앙공동체를 의미한다.
넷째, 교회란 ‘지역적인 연합체’이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의 지역적인 연합을 이루는데, 몇 개의 교회가 하나의 권위와 질서 아래 모인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쓴 서신서가 한 도시의 여러 교회에게 쓰여진 것으로 보아 교회의 연합성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거대한 ‘영적공동체’이다. 이것은 불가견적인 교회이다. 개혁주의자들은 교회를 가견교회와 불가견 교회로 나누고, 불가견 교회는 오직 택자들만으로 구성되며, 교황을 포함한 개인은 가견교회에 속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Elwell, EDT, p. 231; 이에 대하여 Bannerman은 ‘로마 캐톨릭은 조직체로써의 가견교회만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불가견교회는 부정하거나, 실제적으로 다루지 않고, 오직 교회의 개념을 교황을 중심한 가견교회에 한정시킨다’고 평한다. Bannerman, p. 16
그들은 가견교회에는 택자들과 불택자들이 공존하지만, 불가견교회에 속한 택자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알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가견교회보다는 불가견교회를 더 비중있게 다루는 것이다. 하지만 카톨릭은 이 가견교회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벌콥은 교회의 정의에 대한 개신교와 카톨릭의 견해간에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벌콥, op. cit., p. 298
카톨릭의 교회는 교회의 신자들이 아니라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회 등 교권자들의 단체를 의미한다. 그들은 ‘교훈하는 교회’로서의 교권자들과 ‘교훈받는 교회’로서의 신자들의 공동체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개혁교회는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교통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는’ 교회관을 갖게 된 것이다
라. 교회의 기원
교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주장되고 있다. Saucy, op. cit., p.57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교회를 신약시대의 독립적인 산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주로 교회의 기원을 신약과 구약의 정경적인 배경에서 찾으려는 노력에 동의하고 있다.
교회의 기원을 구약에서 찾으려는 배너맨(Douglas Bannerman)은 ‘교회는 모든 세대의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의 모임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에 기원하며 그것이 교회의 첫 시작이 되었다’ D. Douglas Bannerman, The Scripture Doctrine of the Church, (Grand Rapids: Eerdmans, 1955), p. 43
고 주장한다. 퀴퍼(R. B. Kuiper)는 이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교회는) 아담과 제정한 하나님의 언약(창 3:15)을 믿고 행해온(exercised)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고 주장한다. (R. B. Kuiper, The Glorious Body of Christ, (Grand Rapids: Eerdmans), p. 21-22)
구약에서 교회의 기원을 찾으려는 관점은 하나님과 인간간의 언약 관계속에서 교회의 실체를 이해한다. 즉,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언약을 통해 부름받은 공동체라고 정의된다.
놀랍게도 교회의 기원을 구체적인 성막과 성전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가견적인 조직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불신과 플라톤적 이분법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스데반은 구약의 성막을 ‘광야교회’(행 7:38)라고 칭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신약교회의 성도들이 구약의 성막과 자신들의 교회간에 일련의 연속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교회의 기원을 구약의 가시적 성전인 성막과 성전, 그 이전 족장시대에 제단에서 발견하려는 것은 이상한 노력이 아닐 것이다.
신약에서 교회의 기원을 찾으려는 학자들 중에도 다양한 학설이 제기된다. 존스톤(George Johnston)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친히 교회가 되셨다’ George Johnston, The Doctrine of the Church in the New Testament (Cambridge: Univ. Press), p. 46-47
고 주장하며, 교회의 기원을 그리스도에게서 찾는다. 다른 학자들은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신 이후에 교회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며, 세대주의자 중의 일부는 교회의 시작이 사도 바울의 사역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J. C. O’ Hair, A Dispensational Study of the Bible (Chicago: O’ Hair, n.d.), p. 32
신약에서 교회의 기원을 찾으려는 제 학자들의 공통점은 일반적으로 성령과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구원사역과 관련된다. Saucy, op. cit., p. 57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사역을 완수해야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성령약속, 특히 성령이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는 사역적인 약속(요 14:26)에 기인한다. 교회의 사명은 성령의 임재(고전 3:16; 12:13)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이다. 헤들런드(Hedlund) 역시 교회의 기원을 신약의 오순절에서 찾는다. (Hedlund, op. cit., p. 315)
그는 신약의 교회가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교회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헤들런드가 교회의 기원을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보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신약의 오순절 강림으로 부름받은 공동체는 새로운 선교적인 사명을 갖게된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두 번째는 ‘남은자 사상’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구약의 희미한 교회를 신약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세우신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기원을 성령의 역사와 구속사역에 관련시킨다면, 우리는 구약에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추적함으로 교회의 기원을 보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듀퐁(Dupont)은 신약의 오순절과 구약의 시내산의 하나님 강림사건간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그는 오순절의 성령강림이 ‘구약의 시내산 오순절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타나심(theophany)의 재연’ 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Jacques Dupont, The Salvation of the Gentiles, John Keating trans. (N.Y.: Paulist Press, 1979), p. 40; 재인용 Hedlund, p. 303~304 –
그 특징으로 큰 소리(행 2:2, 6; 출 19:16), 불꽃(행 2:3; 출 19:18), 방언(행 2:4; 출 19:19)등을 들고 있다. 이것은 구약의 시내산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건축 명령을 받기 직전인 것과 오순절 사건이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초대교회 형성 시점이라는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성령을 교회의 기원으로 이해한다면 보다 오랜 창조의 장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창조시의 모습은 당시 온 우주가 하나님의 완전한 성전(聖殿)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이전에는 온 동산이 – 전 지구가 – 하나님의 성전(聖殿)이었다. 하지만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이제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새예루살렘 성전을 소망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 성전과 성막 건축이 성령의 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성령의 사역이 이스라엘의 제의적인 형태에서도 발견되는 것을 감안하면 구약전체가 교회론의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견적인 교회기구는 무시하고, 교회의 개념을 ‘그리스도와의 성숙한 교제를 나누는 영적인 실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만을 주장한다. – Saucy, op. cit., p. 98 –
이러한 정의는 교회론에서 많은 신학자들이 가견교회의 기원을 구약의 불가견적 공동체 개념이나, 물리적인 개념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에 국한하여 정의하려고 하는데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가견적인 교회와 그 조직이 분명히 언급되고 있으며, 그들은 교회의 기원을 구약의 성전과 성막에서 찾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다. 예를 들어 스데반(행 7장)과 바울은 교회개념을 이스라엘의 성전개념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제3장에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교회의 본질이 ‘하나님의 구속언약’에 있다면, 성막과 성전의 제사를 통해 구속이 주어진 구약적인 배경에서 교회론의 연구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기원을 공동체라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역사가운데 점철된 가현적인 교회, 성전, 성막과 그 이전의 제단을 통해 살펴봄으로 보다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현대교회는 조직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바른 시각과 신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성경적인 교회관의 선교적 본질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6. 단기 선교의 실제
가. 한인교회 단기선교의 문제점들 (Issues of Korean Short-Term Mission)
이제까지 논의한 시대적인 배경과 아울러 한국교회와 해외의 많은 한인교회들은 다방면으로 단기선교사역에 참여해 왔다. 하지만,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단기선교에 참여하면서도 실제 단기사역의 효과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단기선교 프로그램을 잘 개발하지도 못했다. 단기선교와 관련한 문제(issue)들은 대개 단기선교사 혹은 팀과 파송교회, 현지의 선교사들이 가진 단기선교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선교현장에 대한 연구부족에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단기선교 팀들이 가지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비전 없는 비전여행 (Vision Trip without Vision)
단기선교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선교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선교란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 그 계획 (하나님의 나라)을 위해 삶을 투자하는 것이다. 단기선교 역시 이러한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 있는 것이다. 많은 한인교회 청년들은 매년 단기선교의 형식으로 비전여행을 떠나면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자신의 삶을 향하신 비전을 깨닫지도 발견하지도 못하고 있다. 단기선교에 참가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만 짧은 시간 선교현장에서 사역하면서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사역의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획일화된 사역모델 (Undeveloped Ministry Model)
수년동안 단기선교를 전문적으로 해온 일부 교회나 선교단체의 단기선교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한국의 단기선교 팀들은 선교지에 나가기 전에 선교현장을 연구하고 그 지역의 필요가 무엇인지 발견하려 노력하지도 않고, 사려 깊게 단기선교 계획을 수립하거나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는다. 또한 선교에 대한 사전훈련을 받지도 못하고 선교지의 문화나 상황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만 관심의 초점을 두고 있다 (박기호 1999b).
또한 한국교회의 단기선교 팀들은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 단기선교 팀들 가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준비와 훈련없이 도착한 팀들은 간단한 현지어를 배우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대부분 영어조차도 할 줄 몰랐다. 대부분 찬양 몇 곡을 부르고, 드라마를 연출하고 전도지를 배포하는 것이 그들이 하는 거의 대부분의 일이었다. 따라서 단기선교 팀들은 현지 선교사의 사역한계를 넘어서 선교할 수 없게 된다. 물론 해외의 한인교회의 경우 언어, 특히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역자들이 많아서 현지인들과의 접촉이나 복음증거에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해외의 한인교회 역시 사역의 내용 면에 있어서는 한국교회의 단기선교 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년에 수 많은 단기선교팀들이 선교지를 방문하지만 모든 팀이 동일한 프로그램과 사역을 가지고 온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이 팀을 위해 매주 혹은 매달 집회를 갖고 교회에 모이는 현지 성도들을 생각하면 좀더 사려 깊은 준비와 훈련을 통해 현지 교회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준비와 선교훈련의 부족 (Lack of Preparation and Mission Training)
한국교회는 일반적으로 단기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선발하는 좋은 절차와 적절한 훈련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단기선교 팀을 구성하고 마치 여행사에서 관광객을 유치하듯이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을 모집하는 일에만 모든 신경을 쏟다보니 자연스럽게 훈련이나 선발의 중요성은 반감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기선교의 성패에 있어서 선교훈련은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요인(factor)이다 (Baeq 1998:11-23). 선교는 곧, 영적전쟁이다. 세상의 전쟁을 준비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훈련과 준비가 필요한데 하물며, 인간의 영혼을 담보로 한 영적전쟁은 말할 나위 없다. 물론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이 전쟁의 대세는 이미 아군에게 기울었지만, 여전히 최전선에서는 사단의 속임과 방해공작 속에 교란되고 실패하는 선교사들과 선교팀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될 것이다. 이 전쟁은 본질적으로 이미 끝난 것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영적인 모순을 잘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할 일을 남겨 놓으셨다.
단기선교를 위한 선교훈련의 첫 번째 목적은 단기선교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공통의 비전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쿤스는 이 비전이 그룹의 동기와 사역목표를 점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필자는 사역적인 면에서의 비전뿐 아니라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비전을 나누는데 있어서 선교훈련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훈련의 둘째 목적은 선교훈련을 통하여 사역자들이 마음을 열고 선교현장의 문화와 현지인들을 대하도록 해주기 위함이다.
훈련의 세 번째 목적은 실제적인 사역의 경험을 개발하여 현장에서 다양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하기 위한 것이다.
네 번째 선교훈련의 목적은 일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훈련하기 위함이다. 함께 모여서 찬양하며 예배하면서 영적인 가치와 태도의 변화가 생겨야 한다. 다섯 번째 목적은 실제 선교여행에 대한 일정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의논하기 위해서이다. 선교현장에서의 일정과 사역내용을 사전에 모든 사역자들이 숙지하고 있다면 현장에서 사역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문화 가운데서 봉사하고 가치를 배우고 태도를 이해하는 훈련을 위해서이다.
앤더슨 (Anderson)은 그의 논문에서 흥미로운 조사를 하였는데 그는 선교교육이 없는 교회와 있는 교회를 비교하였다. 두 그룹 다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현지 인물이었다. 두 지도자 그룹의 가장 큰 차이는 이미 프로젝트를 도와본 경험 면이었다. 프로그램도 그 그룹은 전도와 구성에 있어서 보다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선교지로 나가기 전 오리엔테이션, 전도기회, 그리고 개인적인 참여에 있어서 프로그램을 가졌을 때 더울 매력적이 되었다 (Anderson 1992:51-53).
훈련 프로그램은 단기선교의 질과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자질 있는 선교사들을 선발하고 적절한 훈련을 받도록 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파송해야 한다. 적절한 준비가 없이 나가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라고 볼 수도 없으며 진심으로 현지인들을 위하는 일도 아니다. 참가자들을 훈련할 때 피훈련자들의 인격과 몸가짐, 영적인 성숙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현지인들에게 있어서 실제 단기선교사역의 기술적인 면보다는 단기선교사 혹은 팀들의 행동과 태도가 더 크고 장기적인 영향을 남기기 때문이다 (Millham 1988:79).
현지 선교사/선교부의 문제 (The issues of host Missionaries/Missions)
성공적인 단기선교의 열쇠는 현지 선교사의 준비이다. 선교사는 차를 몰고 가는 운전사와 같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차를 가지고 와도 운전에 따라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 즉, 현장의 선교사는 단기선교팀의 구성과 성격을 잘 이해하고 현장의 장기적인 사역과 협력하여 도움을 얻을 만한 사역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준비 없이 그저 단기선교 팀을 받아 자신의 사역을 홍보하거나 도움을 받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역을 설명하는데 그친다면, 선교에 대한 지역교회의 모처럼의 투자와 열정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지역교회 지도력 문제 (Church Leadership Issues)
지도력 문제는 한국 단기선교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팀의 방향은 지도자들의 자질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지도력 문제의 하나는 담임목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므로 그가 얼마나 마음의 문을 열고 도와주느냐에 달려 있다. 동시에 교회 안에서 선교지도자들 (장로, 집사, 선교부원)은 선교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지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선교경험을 가지고 보다 나은 사역을 하기 위하여 문제점을 바로 파악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또 다른 결정적인 문제는 단기선교를 책임 맡은 사람의 지도력 결핍문제이다. 흔히 교회가 선교부의 장로나 집사를 임명하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팀을 잘 이끌만한 지식도 경험도 없다. 그들은 흔히 정신적인 후원자들로 그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매년 정기적으로 단기선교의 책임자를 교체하는 교회의 행정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지역교회의 어느 누구도 전문가로 성장할 수 없다
나.효과적인 단기선교를 위한 제언 (Practical Suggestions for Effective STM)
잘 준비된 단기선교팀은 파송하는 교회와 사역자들 자신, 선교현지 모두에 유익을 줄 수 있다. 이것은 1-2주의 단기선교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기도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었느냐에 좌우된다. 단기선교사역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필자는 지역교회와 선교사역자 개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자 한다.
파송교회 (Sending Church)
단기선교사를 파송하는 지역교회는 단기선교사들을 선발하고 훈련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지역교회 지도자들에게 몇 가지 제언을 당부하고자 한다. 이러한 책임을 잘 감당하면 교회로써도 많은 영적, 인적자원의 유익(benefit)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1. 단기선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 (Have Faith in STM)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현지 선교사들과, 단기 선교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단기 선교에 대한 믿음을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단기 선교에는 몇 가지 장점들이 있다.
단기 선교는 선교사 비자를 받지 못할지라도 단 기간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앤더슨이 말한 대로 “단기 선교의 경험을 적절하게 사용하므로 교인들을 갱신시키고 세계를 갱신시키는 불을 붙일 수 있다” (Anderson 1992: 9). 단기선교 팀은 자기들의 사역 경험을 통하여 선교사로서의 비전을 갖거나 확인할 수 있다.
단기 선교 경험은 자원자들로 하여금 장기 선교사가 되도록 격려할 뿐 아니라 아직 헌신되지 않은 지도자들로 하여금 세계선교에 대한 안목을 갖게하여 국내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참여하도록 한다.
2. 사역자 선발 및 훈련 (Selection and training of workers)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훈련하여 사역하게 하였던 것처럼 한국교회는 선교지도자들을 선발하고 훈련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선택을 바로 하지 않으면 훈련이 무의미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단기 사역을 위하여 아무나 선교지로 보내서는 안 된다. 헌신되고 자질을 갖춘 사람들을 내 보내야 할 것이다. 선교훈련은 선교에 관련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 선교훈련을 통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구체적인 준비 (Preparation)
단기선교 팀은 가능한 한 자기들이 찾아가는 사역 대상 민족, 언어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상 민족에 맞는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야 한다. 또한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싸우는 영적 전투임을 알고 스스로 기도할 뿐 아니라 교회내에서 단기선교를 위한 중보기도자들을 모집하고 훈련해야 할 것이다.
4. 선교사들과 현지 지도자들과의 협력 (Cooperation with missionaries and local leaders)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성공적인 단기 선교는 사역 대상국에 있는 선교사들 및 현지인 지도자들과의 협력이 열쇠이다. 선교지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그들이 가져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없다. 단기선교 팀들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시간표를 잘 짜야한다. 갑작스런 방문으로 현지에서 사역하는 정규선교사들의 정규사역에 지장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5. 전문적인 선교단체와의 동반사역 (Partnership with Mission Agency)
한국교회의 단기선교 팀은 수년간 단기선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사역해온 선교단체에 가담하여 단기 선교를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특별히 지역교회의 경우 매년 단기선교를 실시하지만, 매년 사람들이 바뀌기 때문에 사역의 노하우가 집적되지 않는 단점을 전문선교단체를 통해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미주에만 해도 전문적으로 단기선교를 도와주는 단체가 Come Mission, The Seed International, Son ministry 등이 있으며 국제 선교단체에서도 지역교회의 단기선교를 도와주고 있다.
6. 차세대 지도자를 개발하라 (Develop Next Generation Leaders)
지역교회는 선교목사를 두고 선교사역을 조직적으로 담당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특히 미주지역에 있는 한인교회들은 이중언어를 구사하고 이중문화를 가진 차세대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다. 한인 1.5세와 2세들은 세계선교를 위한 훌륭한 자산이다. 자원을 투자하여 그들을 교회에서 단기선교를 통하여 훌륭한 일꾼들로 개발하여야 한다.
파송선교단체 (Sending Mission Agency)
전문적인 선교단체의 경우 전략적인 단기선교를 위해서 지역교회와 선교사의 교량역할을 하며 주도해 가야 할 것이다. 많은 선교단체들이 선교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모아 단기선교를 진행하는 것도 좋지만, 오히려 지역교회를 돕고 지역교회를 훈련하여 단기선교를 담당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상승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선교단체는 지역교회와 같은 수준에서 단기선교를 진행해서는 안될 것이다.
1. 교회와 경쟁하지 말고 교회를 도우라 (Not Compete but Help Local Churches)
일부 선교단체는 지역교회의 단기 선교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은 틈새를 통해 지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단기선교를 경험할 수 있도록 여름 단기선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참가자들 중 선교에 헌신한 일꾼들을 선발해서 선교단체의 인적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한인교회 역시 선교단체와의 경쟁적인 위치에서 단기선교를 개발하고 사역해 왔다.
지역교회와는 달리 선교단체는 단기선교에 대한 노하우를 집적할 수 있으며 파송된 선교사들과 연결된 선교사역을 개발할 수 있다. 반면에 지역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선교단체는 다양한 선교 프로그램을 지역교회에 제공하고 지역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선교단체가 추구하는 전략에 투입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단기선교 프로젝트를 진행 할 수 있을 것이다.
2. 장단기 협력사역을 개발하라 (Develop Short-Term Ministries)
단기선교를 통해 선교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하더라도 결국 이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관리하며 결실을 맺도록 하기 위해서는 장기선교사의 역할이 요구된다. 또한 단기선교 프로젝트의 경우 선교현장의 사역에 몸담고 있는 선교사들이 전반적인 안목으로 계획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따라서 선교단체는 파송한 장기선교사와 더불어 단기선교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구체적인 준비방안을 교회에 제공함으로 협력사역의 중재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3. 프로그램을 제공하라 (Provide Mission Training Program)
지역교회에서 단기선교 전문가를 양성하고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는 많은 재정과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투자의 가치는 있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교회가 선교전문가를 키우기보다는 교회행정에 의해서 선교담당자를 교체하는데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1-2년 마다 선교담당자를 교체하기 때문에 실제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교회에서 단기선교를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선교단체는 이러한 교회의 실정을 감안하여 지역교회에 적절한 단기선교 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역교회가 효과적으로 단기선교를 감당하고 자료를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4. 단기선교를 네트워킹하라 (Network the Short-Term Mission Teams)
선교단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단기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들을 네트워킹하는 것이다. 단기선교를 네트워킹하는 것은 선교의 자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선교지의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파송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각 지역교회의 단기선교 노하우를 집적하여 새로 단기선교를 시작하는 교회를 돕고 전문적인 선교전략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단기선교 사역자 (Short-Term Missionary/Team)
단기선교에 참가하면서 해외의 이국적인 환경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나 영적 자기만족을 위한 목적을 갖는 다면 이는 하나님 나라의 막대한 시간과 재정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다시 한번 단기선교의 동기(motivation)를 점검해 보라. 만약 자신의 동기가 하나님 앞에서 만족할만하지 않으면 다음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선교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마음에 새겨두길 바란다.
1. 배우는 기회로 삼으라 (Take the opportunity as learning occasion)
단기선교는 준비와 사역의 전 과정이 배움의 기회 바울은 디모데 에게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라고 조언하고 있다. 사람들의 가치는 문학을 통해 대변된다. 동서양의 종교적인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 중 서양의 것으로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들 수 있으며 동양의 것은 고은의 “소설 화엄경”을 꼽는다. 천로역정의 주인공인 크리스찬은 길을 떠나 하나님의 도성에 가기 위해 모든 역경과 유혹을 뿌리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화엄경의 주인공인 소년 선재는 길을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배움의 과정에서 도를 깨우치게 된다. 물론 화엄경의 선재가 들어선 길은 목적지가 없는 방황의 길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태도에 있어서 바울이 가진 종교적 삶의 태도는 동양적인 것에 더 가깝다고 볼 수있다.
이다. 지역교회나 선교단체가 주관하는 단기선교훈련을 통하여 사역자들은 선교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중보기도법,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해야 한다. 단기선교를 통하여 정말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만 깨달아도 이미 모든 것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적으로 단기선교를 통하여 선교 지망생들과 후보자들은 다른 문화를 접촉하고 선교를 이해하는 기회를 갖게될 것이다. 다른 민족을 이해하고 선교의 폭넓은 관점을 갖기 위하여 할 수 있으면 여러 나라에 가서 사역 경험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선교지의 문화뿐 아니라 모문화와 선교현장의 문화의 사이(in-between place)에서 살아가는 선교사들의 제3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도 있을 것이다.
2. 헌신의 기회로 삼으라
90년대 파송된 장기선교사의 90% 정도는 단기선교의 경험이 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단기선교를 통하여 선교사로써의 부름을 확인하고 장기선교사로 헌신하였다. 단기선교는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부르시는지 신중히 고민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재헌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3. 영적성장의 기회로 삼으라
단기선교는 무엇보다 낯선 문화와 환경가운데서 또한 영적으로 고립된 가운데 오직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사는 법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필자는 수 십 차례 단기선교팀을 이끌면서 무엇보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 사는 법을 배우는 기회가 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도와 응답이라는 역동적(dynamic)인 관계가운데 영적으로 성장해 나간다. 단기선교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가장 기본적인 필요(need)에 처하게 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기도로 해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법을 통하여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단기선교 지도자 (STM Leadership)
단기선교팀의 지도자로 그룹을 섬기는 일은 지도자 개인의 영적생활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써의 리더쉽을 훈련하는데도 매우 유익한 도움이 된다. 또한 개인적뿐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단기선교를 통해 훈련된 지도자들을 교회사역에 투입함으로 많은 유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단기선교팀을 이끌고 현장에 나가는 단기선교 지도자로써 어떠한 기본적인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몇 가지로 살펴보겠다.
1. 단기선교의 수레바퀴를 이해하라 (Understand the Short-Term Mission Wheel)
단기선교는 다양한 요인들로 구성된다. 아래의 그림 6은 단기선교의 수레바퀴를 표현하고 있다. 먼저 단기선교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세 요인을 파송교회(SB: sending body), 선교현장(MF: mission field), 단기선교팀(STM)의 ‘단기선교 피라미드’라고 부른다. 즉 파송교회가 보낸 단기선교팀이 선교현장에서 사역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만으로 단기선교의 피라미드를 굴려나갈 수는 없다. 이 단기선교 피라미드에 강력한 파워(power)를 전달하는 핵심 축은 바로 성령(HS: the Holy Spirit)이시다. 선교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과 역할은 절대적이어서 이 피라미드를 운행해 전진하는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단기선교의 피라미드만 가지고 단기선교를 운영해 나가는데는 불필요한 에너지의 낭비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삼각형의 수레바퀴를 굴린다고 생각해 보라!).
성령의 사역을 유연하게 하는 것이 바로 단기선교 피라미드를 둘러싼 선교사(M1:missionary)와 단기선교 지도자(M2: moderator)의 원(圓)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교사와 단기선교지도자는 성령이 주도하시는 단기선교팀의 사역을 돕는 역할인 것이다. 단기선교지도자는 단기선교팀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의 준비와 훈련을 책임지고 선교현장에서는 선교사가 단기선교팀을 훈련하고 사역을 주도해 가는 일에 책임을 맡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단기선교의 수레바퀴를 이루는 모든 요인들이 제자리를 잡을 때 하나님의 선교는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가운데 놀라운 가속력을 받게 될 것이고 거대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확장시키는 놀라운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2. 섬김는 리더쉽을 개발하라(Develop the Servant Leadership)
단기선교 지도자는 단기선교팀의 모든 문제를 지시하고 인솔하는 권력자(power leader)가 아니다. 단기선교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한다.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의 팀으로 엮어내는 것이 바로 지도력의 미학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팀웍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지도자는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분야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리더쉽을 발휘하도록 돕는 조정자(coordinator)가 되어야 한다.
북한의 5대 군사정책 중의 하나는 ‘모든 인민의 간부화’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지도자가 될 수 있게끔 훈련하고 조정하고, 섬기며 돕는 역할이 바로 단기선교 지도자의 역할인 것이다. 단기선교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서 전문적인 책임감을 지게 되면 팀 전체적인 협력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 한 사람이 모든 권한을 지게 되면 지도력의 공백이 생기게 되며 팀웍도 깨지게 된다.
3. 하나님을 위한 사역이 아닌 하나님과 사귐에 열매맺게 하라
선교현장에서 단기간 주어진 사역을 진행하다보면 사역으로 인하여 진정으로 중요한 부분을 놓치기 쉽다. 단기선교팀의 지도자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며 역사하시는 것을 바라보도록 돕는 것이다. 지도자로써 모든 사람들의 환경과 참여동기를 알고 개인이 단기선교 사역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사역이다.
4. 하나님 선교(Missio Dei)의 관점을 개발하라
단기선교 지도자로써 자신이 맡은 단기사역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교계획을 거시적인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팀의 사역만 바라보는 미시적인 안목은 늘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신학과 선교역사, 사역현장의 교회역사와 선교열매 등 거대한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 결론
21세기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환경을 돌아볼 때 단기선교라는 도구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서 준비하신 도구라는 사실을 부인할 만한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 이미 많은 지역교회와 선교단체에서 단기선교를 실시하고 있지만, 단편적인 선교지 방문이나 선교체험 프로그램 정도로 생각하고 엄청난 하나님의 재정과 시간을 사용해 버린 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청지기적 자세가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에 교회들에게 맡기신 엄청난 축복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이때 한 달란트 가졌던 게으른 종과 같이 책망받지 않기 위해서 지역교회는 모든 성도들에게 부으신 축복을 점검하고 이 은혜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한인교회의 단기선교를 점검해 볼 때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비전, 1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단기선교의 사역모델, 적절한 훈련과 준비, 지역교회의 선교지도자 개발등에 미비한 점을 보여왔다. 지역교회뿐 아니라 선교현장에서 장기선교사로 사역하는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단기선교팀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축하기보다는 자신의 사역지를 홍보하거나 현지교회에 과시하는 수준에서 단기선교팀을 이용하지는 않았나 생각된다.
21세기 하나님께서 지역교회에 부으신 축복을 건설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파송교회는 단기선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지원해야 할 것이며, 단기선교 사역자들을 발굴하고 훈련하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또한 구체적으로 단기사역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교회적인 차원에서 도와주고 현지선교사들과 전문 선교단체와 협력해야 한다. 선교단체의 경우에도 지역교회와 경쟁적인 차원에서 단기선교를 운영하지 말고 오히려 지역교회의 단기선교를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파송한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장단기 선교협력 프로젝트를 개발해서 지역교회가 효과적으로 단기선교에 동참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선교단체는 오랜 단기선교의 경험을 통해 적절한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역교회에 제공하면 지역교회의 선교전문가를 양성하고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단기선교에 참가하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단기선교를 단순한 해외 여행이나 선교지 방문으로 생각하지 말고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개인의 삶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사역의 훈련과 영적인 성숙을 통하여 단기선교를 인도하는 지도자로 성장해야 한다. 단기선교 지도자는 단기선교의 사역구조와 전략을 하나나님의 나라 차원에서 이해하고 섬기는 지도력을 통해 단기선교에 참가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깊이 있는 만남을 통해 그분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7. 결론과 제안
이상에서 우리는 단기선교의 다양한 정의, 단기선교의 장점, 성서적 근거, 한국교회사에서의 실례와 단기선교의 문제점들을 생각해 보았다. 단기선교는 장기선교의 독특하고 효과적인 보완책이다 (Park 1999b). 우리는 성경을 통해 단기선교의 근거뿐 아니라 원리와 방법 등을 도출할 수 있다. 특히 신약에서 예수님과 베드로, 요한, 빌립, 바울, 바나바, 디모데 그리고 디도의 사역을 통해서 단기 사역의 훌륭한 예를 발견할 수 있다.
단기선교는 현대사회의 발달에 따른 효과적인 선교전략으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세계선교를 위한 엄청난 열정과 인적 물적 자원이 있으나 단기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먼저 지역교회와 관련선교단체 지도자들이 단기선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현대선교에 있어서 전략적인 사역이라는 확신을 가져야한다. 지역교회는 단기선교 후보자들을 바로 선발하고 훈련하여야 하며 단기선교 지원자들은 영적으로, 지적으로, 물질적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선교단체는 이미 파송된 장기선교사와의 연구를 통하여 장단기선교의 협력을 통한 전략적인 복음증거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단기선교 팀은 선교지에 가기 전에 선교지에 대한 연구조사를 통해 가장 효과적이며 실현 가능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영적전쟁의 최전방에 나설 준비를 하기 위해 현지에 있는 선교사들 및 현지교회 지도자들과 긴밀한 협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이 있는 전문적인 선교단체와 협력하여 사역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리고 단기선교를 사역의 기회로만 생각하지 말고 배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보다 효과적인 사역을 위하여 이중언어와 이중문화를 가진 한인 1.5세와 2세 젊은이들을 한인교회와 세계선교를 위한 일꾼들로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