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선교의 개발 Development of Korean Pattern of Mission – 조동진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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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선교의 개발
Development of Korean Pattern of Mission

프롤로그: Prologue

NCOWE 준비위원회가 나를 제5회 세계전략회의 첫 번째 발제자로 초청하기로 했으니 허락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은 지난 6월 3일 내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아시아선교협의회 대회 준비위원회을 모이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6월 5일 서울에 돌아와 6월 4일자로 발송된 공식 메일을 통해서 비로소 나에게 주어진 제목과 시간, 그리고 이번 회의의 표어와 주제, 목적과 목표를 기록한 간략한 전략회의 개요를 함께 받았다. 그러면서 발제 강연원고는 6월 11일까지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나의 이 발제강연 원고는 이처럼 단기간의 촉박한 일정 가운데 준비되었음을 먼저 밝힌다.

이전 회의의 표어는 “하나님의 선교행적 찾기”이다. 나는 이 대회 표어가 오늘 한국 교회 선교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시도해야 하는 중요한 과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아주 유효적절한 표어라고 믿으며 이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선교 행적(行跡)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친히 성취하신 선교의 발자취(God’s footsteps of achievement of mission)라고 정의할 수 있다.

또한 이번 대회의 총 주제는 “125년 한국 교회와 선교, 그 벤치마킹 모델 만들기”이다. ‘교회와 선교의 벤치마킹 모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와 선교의 표준(標準) 또는 기준(基準)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모델’이란 어휘가 ‘본’ ‘원형’ ‘표본’이라는 원래의 뜻보다 훨씬 광범위한 의미를 가진 상업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므로, 이 원고에서는 ‘패턴(pattern)’이라는 술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패턴이란 ‘원형’ 또는 ‘표본’이라는 뜻과 함께 ‘모범’ 또는 ‘귀감(貴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번 대회가 한국 교회 선교의 벤치마킹 모델을 만들기를 의도한다면, 그것은 선교의 원형 및 표본, 나아가서는 모범과 귀감이 되는 벤치마킹, 곧 표준을 만들자는 시도라고 믿는다.

이 대회의 목적과 목표를 보면, 한국 교회 125년의 역사와 에딘버러세계선교대회 100년의 선교역사에 대한 성찰과 분석을 통하여 한국적 선교모델을 정립하고 한국형 선교전략의 개발을 통해서 선교의 글로벌 협력전략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1] 따라서 나의 발제는 이러한 대회의 주제와 목표를 근간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I. 세계 2,000년 선교역사에 나타난 대표적 선교모델들
Representative Patterns which Appeared in the History of World Mission

선교역사학자들은 2,000년 기독교 선교역사 중 AD 312년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칙령(Milano Edict) 이후 1,700년간의 선교역사의 모델을 다음 몇 가지로 열거하고 있다.

A. 네스토리우스의 네스토리안 선교모델
Nestorian Pattern of Mission of Nestorius

선교역사학자들이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은 AD 5세기 초 로마의 데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시대의 콘스탄티노블 메시아교회 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 (Nestorius)의 동방선교이다.

네스토리안 선교는 AD 430년부터 시작되었다. 네스토리우스는 수리아 안디옥파의 수장이었다.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소집한 제 1회 에베소공의회에서 마리아의 신모(神母)설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성(兩性姓), 즉 참신이시요 참인간이라는 교리를 주장하는 네스토리우스를 거부하는 알렉산드리아파가 승리하여,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요, 예수는 참 하나님이요 인간이 아니라는 단성설(單性說)이 정통교리로 채택되었다. 네스토리안 선교는 네스토리우스가 올비른 그리스도관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노블에서 이단으로 추방되면서 시작된 선교이다. 네스토리안 선교는 페르시아에서 크게 교세를 확장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대륙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크게 교세를 확장시켰고 바다 건너 조선반도 동남쪽 신라의 서라벌까지 이르는 소위 실크로드 선교의 대장정을 이룬 역사상 가장 광대한 선교적 모델로 꼽힌다. [2]

네스토리안이 당나라에까지 온 것은 AD 618년이었고 신라 서라벌까지 온 것은 7세기 말인 AD 670년경이었다.
네스토리안 모델은 정착선교가 아닌 계속적인 순회이동(itineration)으로 복음이 미치지 못한 곳으로 계속 퍼져나가는 것이었으며, 기독교를 그 나라 민족의 종교로 토착화시키는 선교였다고 할 수 있다.

B. 익나시우스 라욜라의 제스윗선교 모델
Jesuits Mission Pattern of Ignatius Loyola

선교역사학자들은 마틴 루터와 요한 칼빈의 종교개혁으로 위기에 처한 로마 가톨릭교회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준 익나시우스 라욜라의 제스윗선교회 (Jesuits: Society of Jesus) 모델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한다.

익나시우스 라욜라(1491-1556)는 자신의 병상에서의 영적 체험을 통하여 영성훈련(Exercitia spiritualia)을 선교훈련의 기초로 삼았다. 제스윗 선교의 기본은 ①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무조건 따르는 전적 헌신 ②거룩한 인격의 완성, ③높은 도덕적 삶, 전적인 헌신과 인내, 그리고 ④기도와 금식과 고행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예수처럼 살아가는 것이었다.

제스윗 선교사들은 한번 떠난 후에는 결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주님께서 가라고 명하셨을 뿐 갔다가 다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일은 없다고 주장한다.

제스윗의 선교사역은 유,초,중,고,대학과 신학교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사람 만들기를 통한 모든 민족의 사회와 국가를 가톨릭화한가는 것이었다. 선교역사학자들이 꼽는 제스윗 선교의 대표적 선교지도자는 프랜시스 자비에르(Francis Xavier, 1555)와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1606)이다. [3]

C. 할레대학과 진젤돌프 백작의 모라비안 선교모델
Moravian Mission pattern of Count Zinzendorf and Halle University

선교역사학자들이 꼽는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메카는 1691년 설립된 독일의 할레대학교였다. 진젤돌프 백작(1700-1760)이 할레대학교에서 선교의 소명을 받은 후 자신의 영토와 재산을 헌납하여 만든 모라비안형제단Moravian Brotheren)은 신앙공동체적 선교모델이 되었다.

할레대학교(Halle University)는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의 경건주의운동과 선교운동의 본산지로 덴마크할레선교단(The Danish-Halle Mission)을 통하여1705년, 그러니까 윌리암 케리가 인도로 떠나기 87년 전, 인도의 동남쪽 마드라스(Madras) 근처 코로만델(Coromandel)해안의 크랜퀴바 (Tranqueber)에 선교사를 정착시켰다.

진젤돌프의 선교모델은 모라비안형제단 신도들을 모두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준비된 군사로 만들기 위하여 엄격한 신앙훈련을 시켰다. 그는 먼저 기도의 사람을 만들어 자기의 소유를 완전히 부정하는 신앙과 삶의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했다. 진젤돌프는 복음전파를 위하여 가장 먼 곳까지 보내 어둠의 세계의 민중들을 참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을 그의 선교의 목표로 삼았다.

D. 서구 기독교 대각성운동과 D. L. 무디와 존 R. 모트의 세계선교 모델
Great Awakening of Western Christendom and Mission Pattern of D. L. Moody and John R. Mott

영국의 요한 웨슬레(John Wesley)와 미국의 휫필드(George Whitfield)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19세기의 대각성운동(Great Awakening)은 1886년 7월 D. L. Moody가 이끈 매사추세츠 마운트 허먼(Mount Hermon)에서의 대학생을 위한 여름성경학교의 200여명의 대학생들이 세계선교에 헌신서약을 함으로 서구교회 전체에 세계선교의 불길을 일으킨다.

무디의 무릎 앞에 꿇어앉은 200여명의 선교 헌신 대학생들의 맨 앞에는 코넬대학교의 존 R. 모트(1865-1955)가 앉아 있었다. 그는 무디의 전도와 선교열정을 이어받아 20세기 서구교회 선교운동의 기수가 된다. 모트는 1910년 에딘버러세계선교대회 준비를 위해서 1901년부터 1909년까지 세 번이나 세계 일주를 하면서 한국도 세 번이나 방문한 세계선교 연합운동의 창도자(advocate)이다.

존 R. 모트는 1907년 일어난 한국의 대부흥운동을 직접 목격하였다. 그는 그때 망국의 위기에 처한 한국인들의 대부흥운동을 목격하고 역사에 남을 위대한 예언을 하였다. 그것은 “20세기가 다 가기 전에 한국은 동양의 기독교 수도가 될 것이다 (Within this century, Korea will become the capital of Christianity in the Orient)”라는 유명한 예언이었다. [4] 금세기 안에 한국 교회가 세계선교에서 동양을 대표하게 될 것이라는 이 예언은 에딘버러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 앞에 뚜렷한 역사적 현실로 나타났다.
그러나 존 R. 모트의 서구세계 중심의 세계선교 패턴은 20세기가 저물면서 막을 내리고 비서구세계가 세계선교운동의 새로운 세력으로 나타나 역사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것이 2010년 현재 세계선교의 새로운 현실이다.

여기 열거하는 네 가지 패턴은 기독교 세계선교 역사 2,000년의 여러 선교모델 중 대표적인 성경적 선교의 표본 모델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선교의 근본적 사명에 충실하고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도적 선교원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뚜렷한 선교 패턴, 즉 모델이 창출된 시기에는 이러한 선교운동에 동기를 부여한 뚜렷한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a) 네스토리안의 반 천년(half millennium)에 걸친 동방선교에 동기를 부여하고 기초를 닦은 창도자는 콘스탄티노플 메시아교회 대주교였다가 마리아 신모설 거부로 이단으로 몰려 추방된 네스토리우스이다.
b) 꺼져가는 등불 같던 로마 가톨릭교회에 새로운 불씨를 일으킨 제스윗선교회의 동기부여자는 익나시우스 라욜라였으며, 제스윗 선교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성취한 사람은 프란시스 자비에르와 마태오 리치였다.
c)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불씨를 일으킨 곳은 독일 경건주의 지도자 양성의 메카였던 할레대학교였으며, 첫 번째 프로테스탄트 선교단체는 덴마크의 데니쉬할레선교단(The Danish-Halle Mission) 이었다. 모라비안형제단의 선교운동의 동기 부여자는 진젤돌프 백작이었다.
이러한 선교 모델과 동기 부여자들의 출현은 사도적 선교 패턴의 동기 부여자가 사도 바울이었다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d) 존 R. 모트를 20세기 서구 선교운동의 기수로 하는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는 1886년 D. L. 무디의 영적 계승세력이었으며 지난 100년간 20세기 서구 선교운동의 패턴이었다.

그러나 서구세계 선교운동은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 (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탄생과 1961년 국제선교협의회 (IMC: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가 WCC에 흡수되면서 황혼기로 접어든다.
1966년 서구 복음주의선교세력의 휫튼선언과 베를린세계전도대회에 이어 1974년 로잔세계복음화국제대회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복음화(evangelization) 대신 인간화 (humanization)와 세속화(secularization) 운동으로 나락에 빠져든 서구 기독교 선교세력의 부흥을 시도하지만, 서구 교회의 쇠락과 꺼져가는 선교세력을 되살릴 힘은 없었다.

성령께서 이러한 역사의 전환기를 ‘교체의 시간’으로 만드시고 비서구세계 교회를 21세기 세계선교의 새로운 모델로 역사의 맨 앞자리에 서게 하셨다.

II. 사도적 선교원형과 한국 교회 초기 선교패턴의 동질성
Homogeneity of the Apostolic Mission and
Early Korean Pattern of Mission

망국의 위기에 처한 한국 민족은 나라 밖으로 흩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 한국 전래 당시의 역사적 환경과 흩어진 무리들이 복음을 생명말씀으로 받아들여 이를 열정적으로 “흩어진 동족(diaspora)”에게 전파한 초기 한국 교회의 선교패턴은 사도행전 8장의 흩어진 무리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한 역사과 동질적인 것이다.

초기 한국 교회의 전도와 선교 패턴은 사도적 선교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성령의 인도하심이었으며 민족 자생적인 것이었다.

A. 사도적 선교의 원형
Genes of Apostolic Mission

(1) 사도적 선교는 나라 없는 무리, 가난한 무리, 그리고 핍박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무리들의 선교였다.
(2) 사도적 선교는 약하고 억압받는 민족들이 강하고 부한 민족, 그리고 여러 민족을 통치하던 로마 제국 권력을 향한 선교였다.
(3) 사도적 선교는 계속해서 모든 민족과 언어와 문화에로 이동하는 순회(itinerant)선교였다.
(4) 사도적 선교의 중심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기다리는 종말론적 선교(eschatological mission)였다.
(5) 사도적 선교는 선교가 곧 순교로 이어지는 선교였다. [5]

B. 초기 한국 교회 선교의 원형
Original Pattern of Mission in Early Korean Church

(1) 억압받고 버림받은 나라 잃은 민족들의 선교였다.
(2) 나라 밖으로 흩어진 무리들이 두루 다니며 전파하는 선교였다.
(3)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자원하여 나서서 전파하는 자원선교였으며 자비량선교였다.
(4) 먼저 자신을 헌신하고 자기 소유를 아낌없이 바치는 선교였다.
(5) 핍박과 옥에 갇힘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적 선교였다.

이러한 한국 교회 선교의 원형은 한국에 교파 선교사가 입국하기 훨씬 전에 중국 동북부의 영구(營口)와 우장(牛壯)과 고려문(高麗門)과 서간도(西間島) 지역에 흩어져 살던 한국인들이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존 로스의 성경번역의 동역자였으며 성경 배포를 위한 자원봉사자들이었다.

한국인에게 처음 세례를 베푼 사람은 1885년 한국에 들어온 교파 선교사가 아니라 그보다 7, 8년 전에 서간도의 옛 고구려 수도 집안(輯安)에서였다. 한국인의 첫 교회는 국내 황해도 소래가 아니라 나라 밖 중국 땅인 고구려 옛 수도 집안의 이양자(李養子)라는 마을에 있다. [6]

한국 교회 선교 패턴은 1874년부터 1911년까지 37년 동안 중국 동북부 요령성과 길림성, 흑룡강 3성과 시베리아와 일본 땅에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를 위한 선교로 계속된다.

이 한국 교회 형성 초기 37년 선교 패턴은 망해서 없어진 나라를 떠나 흩어진 디아스포라들을 위한 자생적(spontaneous) 자비량선교였다.
역사적 기록에 나타난 것들만 해도 요령성과 길림성, 흑룡강성에 흩어진 무리를 위한 자민족 평신도 자비량 전도인이 100명이 넘는다. 또한 그들이 만주 땅에 세운 교회의 수는 200교회가 넘는다. [7]

1910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개최된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한 한국 주재 미국선교사 사무엘 마펫 (Rev. Samuel A. Moffett)은 한국인들의 특별한 선교패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떤 지역을 완전히 복음화 시키는 일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그 나라 전도자들에 의해서만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오늘날 다른 어떤 나라에서보다도 오직 한국에서만 그러한 교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 내가 처음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 도시나 주변 지역에 그리스도인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평양에만 9개의 큰 교회가 있고 평양 15마일 반경 안에 50개의 교회가 세워졌다…. 현재 한국 전지역에 2,500개 이상의 교회가 있고 그리스도인만 살고 있는 마을도 수백 개에 달한다.”
“이러한 교회성장의 비결은 무엇보다 첫째로 교회가 성경을 열심히 배우는 까닭이다.”
“그 둘째는 교회가 자립, 자급하는 교회라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는 그 어느 교회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선교사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이 없다. 자기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교회 설립은 그 어떤 교회도 자기 힘으로 자신들의 헌금으로 세운 교회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믿고 있다. ”
“우리 선교부 관할지역에 세워진 840개 교회 중에 교회 건축을 위해 선교사의 돈을 요구한 교회는 단 한 곳도 없다. 다만, 몇 큰 교회건축에 선교회가 자진해서 얼마를 지원했으나 그 금약은 전체 건축비의 3분의 1도 안 되는 적은 돈이었다. 선교회 산하의 1,052 한국 교회 일꾼 가운데 94%는 한국 교회가 그 생활비를 전담하고 있고 선교부 직할에 있는 6% 전도의 직원들만이 선교회의 재정 지급을 받는다.”
“세 번째로 선교사는 교회 지도자의 훈련과 교육의 책임을 져야 한다.” [8]

사무엘 마펫은 에딘버러대회 토론시간에 “선교는 외국 돈을 쏟아 부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만일 외국 선교비의 원조로 그 나라가 복음화가 좀 더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성취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수백만 불씩이라도 쏟아 부어라. 그러나 한국에서 일하는 우리는 확실히 외국 돈이 한국 복음화 달성을 위해 한국에 돈을 마구 쏟아부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한국 주재 선교사 사무엘 마펫의 간증처럼 한국 교회의 선교패턴은 결코 외국 돈을 쏟아 붓는 선교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개발해야 될 <한국형 선교>는 무엇인가?
제이차대전 이후 혼탁해진 물량주의 서구선교에 오염된 오늘의 형태는 한국 선교의 초기 원형이 아니다. 우리는 현대의 원형을 상실한 희미해지고 빛이 바래버린 한국적 선교의 원형패턴을 재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발’이란 무엇인가? 오래 전부터 내재해 있는 원래의 모습을 분명하게 다시 나타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한국 선교의 미래를 바르게 이끌 수 있는 길이다.

III. 세계선교의 기초로서의 신구약 성경
New & Old Testament as the Foundation of World Mission

A.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 나라 선교의 근원이며 대법전이며 모든 시대의 선교의 종합계획이고 또한 전체 설계도이다.

하나님 나라 선교의 역사는 구약성경 창세기로 소급해 찾아야 한다. 우리는 아담에서 노아,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 그 이후의 역사서와 예언서 구약 전체 기록에서 하나님 나라 선교의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읽을 수 있다.

B. 신약성경은 인간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원전(canon)이다.

(1) 사복음은 하나님 나라 선교의 기초(foundation)이다.
(2)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 선교의 총론(introduction)이다.
(3) 사도서신들은 하나님 나라 선교의 각론(itemized details)이다.
(4) 요한계시록은 하나님 나라 선교의 결론(conclusion)이다.

C. 세계선교의 명제로서의 하나님 나라 선교
Kingdom Mission as the Theme of World Mission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예언“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왔느니라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마 3:3)이 하나님 나라 선교(Kingdom Mission)에 대한 신약성경 선언의 시작이다. 이어서 40일간 광야의 시험을 끝낸 예수께서 마가복음 4장 17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Repent, Kingdom of Heaven is at hand)”라고 꼭같은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 선교를 선포하셨다.

또한 사도행전 1장 3절에 보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셨다.(He spoke about the Kingdom of God)”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하심을 바라보는 제자들에게 “갈릴리 사람들아,… 하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감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Men of Galilee, … this same Jesus, who has been taken from you into heaven, will come back in the same way you have seen him go into heaven).”(행 1:11)고 천사들이 약속한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내가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할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섰다 (a great multitude that no one could count, from every nation, tribe, people and language, standing before the throne and in front of the lamb)” (계 7:9) 는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확인한다. 계시록 마지막 장에는 예수께서 친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Yes, I am coming soon)”고 약속하셨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 선교는 복음의 기초이며 시작인 동시에 그가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으로 하나님 나라 선교의 완성의 선포가 선교의 대명제이다.

한국형 선교의 개발은 세계선교 대명제(Great Theme)인 하나님 나라 선교의 완성을 위한 선교 패턴의 회복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발제자의 간략한 서술로서도 신구약 성경이 세계선교의 기초이며 결론임이 증명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성경에 기초하지 않는 선교는 더 이상 하나님 나라 선교일 수 없고, 성경적 원리에서 벗어난 어떠한 선교이론이나 전략 또는 방법도 우리가 따라가거나 모방하거나 그랬던 과거 역사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IV. 한국형 선교 개발을 위한 로드맵
The Road Map for Development of Korean Pattern of Mission

한국형 선교의 개발을 위해서는 한국 교회 초기 선교패턴이나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성경적 원리에 기초하였는가를 점검함으로써 계승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선별해 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분명히 초기 한국 교회 선교패턴은 성경적 표준의 실천에 충실하였으며 그것이 세계교회 앞에 입증되었다. 그러나 초기 50년 한국 교회 선교패턴의 역사와 1938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한국 교회 선교의 양상은 타협과 혼란과 의존과 모방과 서구선교의 추세와 흐름을 쫓는 오류와 탈선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전승해야 하고, 무엇을 물리치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성경적 기준에 따라 결단해야만 한다.

A. 서구선교 패턴의 종착점
Final Destination of Western Pattern of Mission

제2차 대전 이후 서구선교는 방향을 상실하고 스스로‘선교사 철수론(Missionary Moratorium)’을 제창했다. 영원한 구원(eternal salvation)이 거부되고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을 강조했다. 인간의 죄보다 사회적 구조악(evil structure of society)을 외치면서 선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매몰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교회의 의미가 하나님의 교회로서보다는 인간화(humanization)를 위한 인간들의 사회적 집단으로 변질되었고 결국 교회의 세속화(secularization)를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9] 한편 서구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들은 1966년 이후 하나님 나라 선교의 기초를 회복하기 위하여 세계선교의 학문적 연구와 개발에 열을 올렸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선교이론과 전략들은 세속 학문적 발견들을 선교를 위해 원용하는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19세기부터 제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서구 복음주의 선교사들은 선교지 사람들을 나라도 없는 토착민들(natives)이라고 불렀다. 제2차 대전이 끝나 탈식민지 시대에 들어서자 Natives는 Nationals로 바뀌었다. 1970년에 들어서면서 또 다시 서구 선교학자들은 선교대상을 Peoples로 부르기 시작했다. Peoples란 소외된 민중을 의미한다.

나의 사랑하는 선교역사학자 랄프 윈터가 Peoples Movement를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선교대상으로 Unreached People을 주장하게 되고 Frontier Mission을 강조했다. Frontier 역시 서구인들의 정복적 전략용어이며, 특히 미국에서는 서부 개척지대를 위한 개척정책을 위해 써오던 용어들이다.

우리가 서구 선교학자들의 선교학 용어 선택이 매우 부적절하거나 조심성이 없는 것을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수용하고 그 정책 또한 받아들여 우리의 선교전략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결코 한국적 선교모델을 창출해 내지 못한다.
한국적 선교패턴은 사도적 선교패턴을 힘써 지켜 나가려는 성경 중심의 선교원리에 입각한 올바른 선교패턴을 만들어내려는 탐구자적 노력으로서만 개발될 수 있다.

B. 올바른 한국 선교를 위한 GPS
GPS for the Right Way of Korean Mission

한국 교회 선교는 지금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에 서 있는가?
GPS는 자신이 지금 있는 지구상의 위치를 확인해 주는 시스템이다. 한국 선교의 올바른 패턴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교회 선교운동이 지나온 행로와 현재의 위치를 재점검해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불안정성과 혼미와 비만증, 그리고 모든 병적 증상들을 바르게 진단하는 임상학적 조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20세기 후반 서구선교의 석양기에 새로 일어나기 시작한 비서구 선교세력이 서구 식민지선교의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고 모방해 온 50년의 역사를 해부하고 분석하고 조사하고 연구하는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서구 종속적 선교이론이나 전략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성경적 원리와 사도적 선교패턴에 기초한 우리 자신의 새로운 선교신학과 선교이론과 전략과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적 선교의 패턴은 “선교, 사도적 방법으로(Mission, Apostolic Way)”를 기초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향한 종말론적 선교 로드맵을 위한 네비게이션(navigation)을 개발함으로서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참 고 도 서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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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estorius” Encyclopedia Britannica, Retrieved January 29, 2010.
[3] Kelvin Knight, ed. Catholic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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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정현, 「한국의 첫 선교사」, (서울: 계명대학교 출판부, 1982)
[7] 「韓國예수敎長老會史記」, (서울: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 1924)
[8] The Union Seminary Magazine, Vol. XXII, (October-November, 1910), pp. 226-235.
[9] David B. Barrett, George T. Kurian, and Todd M. Johnson,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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