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스리랑카 산골소식

306
0
SHARE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2015년 마지막 산골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1. 목회
(1) 2015년 성탄예배 및 성만찬을 거행했습니다. 도시로, 도시로 일을 찾아 나간 교인들이 이날만은 고향인 홍차 산골로 휴가를 얻어 참석을 했습니다.
한국과 거의 비슷하지만, 이곳은 홍차 단지가 있기에 도시로 가서 일을 할 수 없는 자들만 숙명으로 알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2)지난 11월 하순 기독교 대한 감리회 본부 사회 평신도국 주최 해외 선교지에 재능 기부 하시는 분들이 인도를 거쳐,
비공식적으로 틸러리 감리교회에 오셔서, 교회 앞 벽과 지붕의 갈라진 틈을 수리하고 돌아갔습니다. 이제 비가와도 누수 현상이 없어져서 감사드립니다.

2. 지난 12일 교회 성탄행사를 거행했습니다, 이곳은 성탄행사를 성탄절 전에 합니다. 이 날만 되면, 교회 유치원 어린이들(30면중 두명만 빼고, 전부 힌두교도임)의 온 족보가 총동원되어 가족, 친척들이 오는데, 올해는 유달리 교회가 꽉 찼네요!!!!!.
이 년말 마다 교회로 오는 황금 어장에서 주님의 복음이 잘 전도 되도록 도와주시어서 감사드립니다.(사진)

3. 지난 12월 13일 홍차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국제 홍차 대회를 스리랑카 감리교의 홍차 노동자 선교회에서 주최를 하고,
제가 일을 하고 있는 이곳 틸러리 마을에서 개최를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문화 행사등을 거행하고, 홍차 노동자들의 자녀들의 학업성적 고취를 위한 다양한 축하 행사 등을 거행하였습니다.
본인과 초청자들의 격려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12세부터 시작해 60여년 동안 평생 홍차 잎만 따다 은퇴한 노동자들 중 최고 고령(92세)자에 대한,격려와 경의를 표시하기 위한 행사는 다채로운 행사를 거행했습니다. 현재 하루 약 8시간 홍차 잎을 따면 (18kg) 일당이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으로 계산하면 한화 약 3,500원이 됩니다. 일당(하루 8시간 동안 18 kilogram의 홍차잎을 따는 조건으로 1,000루피:(사진에 보는 1,000 이란 숫자) 세금 제외하면, 한화로 약 6,400원)을 올려달라고 해도 노동조합원들을 매수 하거나, 기타 등등.,
노동자들의 입과 귀를 막고 있습니다. 홍차 노동자들의 태생적 하층계급인 힌두교의 윤회라는 종교적 정신세계가 바탕인,그들의 삶을 교묘히 이용하기도 합니다. 참석자들은 회사 측으로부터 무언의 압박으로 말미암는 두려움 등등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곳 틸러리 마을은 약 148년 전 영국 식민지 때 영국 식민지 정부가 인도 남부 타밀 주의 힌두교 하층계급사람들을 홍차 노동자로 활용하기위헤 강제로 이곳 스리랑카로 데려와 이곳 틸러리(원래이름은 산지말라이) 산골짜기로 이주시키고 그분들의 후손들이 계속 노동의 악순환이라는 삶을 계속하고 있는 지역 중의 하나입니다.
현대의 문명을 누리기도(전기, 버스, tv등)하지만, 이들의 정신세계는 과거나 다름없습니다.(행사 사진)

4. 지난 12월 5일은 제가 스리랑카에 와서, 스리랑카 감리교에 소속이 되어 선교활동 및 목회를 한지가 정확히 20년이 된 날 이었습니다.
그 20년 중 15년간 선교사역 및 목회를 감당했던, 스리랑카 동부 바티콜로 지역에 위치한, 제가 처음 사역했던 왈라췌나이 감리교회에서 지난 주일(27일), 그 당시 정말로 스리랑카 정부군과 타밀족의 독립을 위한 군사 조직인 LTTE와의 내전으로 온 삶이 파괴 되고, 피폐된 상황에서도, 당시 저와 같이 동고동락을 했던 스리랑카 감리교 동부 타밀족 감리교 목회자들과 또 여러분의 도움으로 도와주고, 제가 도움을 받았던, 감리교 성도들이 준비한, 저의 스리랑카 선교 20주년 기념 예배를, 스리랑카 감리교 동부지역의 synod 의장 인 Terrence 목사의 집례 하에 축하예배를 드렸습니다. (행사 사진)

지난날을 회고 하면, 지난 20년 중 15년을 저는 두 종족간의 내전으로 한창이던, 스리랑카 동부 바티콜로 지역(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약 330km 에 위치함)의 한 복판에서, 선교사역을 했음은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곳에서는 일어난 일들은 어떻게 말로 잘 표현이 되질 않았기에, 보고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매일 낮과 밤 상관없이 양 진영 모두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전투로 말미암아 사리지는 생명들,다른 한편으로는 또 2004년 12월 26일(주일) 아침 8시 45분, 바로 코앞에서 밀려온, 해일로 파괴된 수많은 생명들! 제가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가장 섭섭했던 일 즉 그런 지역애서 활동한다고 시기와 질투 모함등등 일부 아주 몰지각한 이곳에 와 있는 껍데기 삸꾼들!!!!! 해일이 밀려오는 줄도 모르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준비하다 해일로 휩쓸려간 교인들…..등등 눈에 아직도 선합니다.

5. 기타
제가 현재 여러분의 도움으로 하고 있는 일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틸러리 감리교회 유치원: 올해 성탄행사를 지난 12월 12일 거행했습니다.(사진)
(2) 방과 후 수업은 현재 방학가간이고 대입수능고사를 치를 수 있는 자격 시험관계로 잠시 중단이 되었고, 내년 1월부터 다시 시작 합니다.
(3) 고 이도형 장로님 장학금은 내년 6월로 만기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4) 기독교 교사(자원)보조는 계속 지급하고 있습니다.(월 2,500루피) 약간 상향할 예정임.
(5) 간단한 의료 봉사는 제가 알고 있는 응급처치의 상식 범위 아래 행하고 있습니다. 이곳 홍차 단지 산골짜기의 환자들은 정부 병원에 새벽 4시 정도 가서 줄을 서야 9시부터 시작하는 의사의 진료를 첫 번째로 받을 수 있음.
(5) 스리랑카 감리교 누와라엘리야 지방(해발 1,890meter에 있는 도시)에는 월 2회 올라가 교회 예배 인도합니다.
(6) 이제껏 지원했던 던시난 감리교회의 교회 유치원 지원은 내년 일월부터 싱가폴 감리교회에서 지원을 하게됩니다.
지금 까지 도와주신 분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7) 일반 전도자 월 생활비 보조(월 3,500루피)
(8) 북부 전쟁이 끝난 후, 개발이 한창인 킬리노치 감리교 지방 전도사들 활동비 및 영어 교실 교사 봉급 지원.
(9) 물가가 지난 20년동안 엄청나게 올라갔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떄 5 루피하던 부엌에서 필수적으로 음식 만드는데 국처럼 사용하는 코코넛 한 개가 지금 은 50 루피이며, 한 개로는 하루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10) 힌두교는 잘 아시다시피 [hjp (쟈-디)라고 하는 카스트(사람들의 태생적 계급)가 아직도 이 홍차 노동자 사회에 존재해 있습니다,
이곳 홍차 노동자들은 전부 다 낮은 계급사람들인데, 그래도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은 다 있기에, 누구나 결혼을 할 연령이 되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찾게 됩니다.
최근 이 동네에 한 남자는 제게 찾아와 그런 계급을 따지는 부모가 싫다고 고백을 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토하고, 간 일이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삶에 대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계급 사회 속에서 더 나은 계급으로 올라가려는 이곳 사람들의 보이지 않은 정신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이 세상에 온 많은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저들과 다를 것이 있는지, 참 많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1) 올해는 전혀 예기치 않게 본인의 건강이 매우 약해지어, 여러 가지 힘든 한해였지만, 우리 주님과 여러분의 기도를 틍한 평안과 위로를 받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Facebook에 어는 분이 올려 놓은 말이 자꾸 생각이 납니다.
앞이 안보 일 때 할 수 있는 일을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 외에 없다!

이상 2015년 12월 마지막 산골 소식을 전해 드리며, 새해 주안에서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2015년 12월 28일
박종건 선교사 드림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