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무슬림에 대한 접근 – 공ooo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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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무슬림에 대한 접근

공 ooo 박사 

 1. 컴패션(compassion)의 눈으로

꾸란과 무함마드의 알라 개념은 메카와 주변 지역에 유행하던 하니프(단일신 추종자) 신앙을 이어받았고 단일신에 대한 여러 이름들 중에서 오직 알라를 중심으로 한 단일신론(타우히드)을 확립하였다. “하니프인 이브라힘의 종교를 따르라. 그는 다신 숭배자가 아니었다.”(수라 3:95) 아랍어 성경에서는 알라이외에 알랍브(주님), 일라히(나의 하나님), 말리쿠나(우리의 왕), 아부나 앗싸마위(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등으로 하나님을 지칭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본질의 요약이고 인간이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접촉점이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삼위일체(28:19) 하나님을 이슬람이 거부하였다. 기독교의 신 개념을 무슬림에게 바르게 전하는 데에는 신 개념 중심의 변증(theocentric apologetic)도 필요하게 되었다. 꾸란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거부하거나 무슬림이 잘못 해석하는 구절들이 있다. 꾸란에서 알라는 야훼(YHWH)보다 더 비인격적(impersonal)이다. 이슬람의 알라의 초월성(transcendence)은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의 성육신의 신개념을 수용하지 못하게 하였고, 이슬람의 알라는 피조물과 코이노니아(koinonia) 관계를 원하는 기독교 하나님과 다르게 규정되었다. 꾸란 그 자체를 알라가 준 기적으로 믿는 무슬림들은 꾸란의 가르침대로 이슬람 이전의 하니프(단일신) 신앙을 이어 받는 자가 이브라힘이고 그 이브라힘의 신앙을 잇는 자가 무함마드라고 정립하였다.

우리(알라)가 너(무함마드)에게 계시하였다. 무쉬리쿤(우상숭배자)이 아닌 하니프(단일신 추종자), 이브라힘의 종교(millah)를 따르라.”(수라 16:123)

무함마드는 초기에는 기독교에 대하여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곧 부정적인 견해로 바뀌었다(수라 9:29). 꾸란의 알라는 성육신(incarnation of God in Christ)할 수 없으며 꾸란은 그리스도의 신성도 부인한다. 알라는 이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마르얌의 아들이라고 하며 이싸를 신으로 모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춰가며 이싸는 신이 아니고 알라는 그런 아들을 절대로 낳지 않았다고 말한다. 민속 무슬림들은 오늘날 알라를 부적과 주술적인 목적으로 사용한다. 이슬람의 단일신론(tawhīd)이 신학적 신 개념을 포함하여 사회 정치적 개념으로 확대되면서 단일화(unity)를 무슬림들의 삶과 사회적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제 알라의 개념을 어원적, 역사적, 신학적인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어원론적 측면: 아랍어 알라는 아람어 알라하에서 왔거나 혹은 아랍어 알일라흐’(al+’ilāh)에서 왔다. 아랍 기독교인들은 다른 아랍어 자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강세음화(인두음화) 현상이 알라의 발음 중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이런 현상은 아람어의 음성적 특징에서 온 것이라고 하면서 아람어 기원설을 주장한다. 아랍어에 기원을 두었다면 꾸라이쉬 부족이 섬기던 최고신(supreme god)으로서, 무함마드는 당시 메카와 알히자즈 지역에서 일부 사람들이 숭배한 알라를 꾸란의 중심 개념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2) 꾸란의 텍스트 측면: “그들로 하여금 이 집의 주님(rabba hādha al-bayt)에게 예배하도록 하라”(수라 106:3)고 한 꾸란 구절은 알라가 이 집(메카의 카아바)의 주인이라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느 특정 지역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는다.

(3) 역사적인 측면: 무함마드의 알라 개념은 이슬람 이전의 하니프를 믿는 이브라힘의 단일신론을 승계한다. “우리의 신과 너희의 신이 하나다.”(수라 29:46) 꾸란의 알라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단일신론과 이슬람이란 독특한 종교적 환경 안에서 성경과는 매우 다른 개념으로 형성되었다. 아랍 기독교인 사용한 알라개념과 다르게 꾸란의 알라는 무함마드를 통하여 꾸란의 신 개념으로 확립되었다.

(4) 목회적인 측면: 민속 무슬림들은 알라를 부적과 주술로 사용한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과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 중에는 꾸란의 알라가 성경의 하나님이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괄적인 면(main line)에서는 동일하나 세부적으로는 서로 다른 뉘앙스를 갖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교회 안에서는 꾸란의 알라와 성경의 하나님이 다르다는 것을 구분해 줄 필요가 있다.

(5) 신학적 측면: 꾸란의 알라와 성경의 하나님은 본성에서 다르다. 꾸란은 성육신과 삼위일체를 믿는 자는 알라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kufr)라고 한다(수라 5:75-76). 아랍의 개신교 교회들과 아랍의 기독교 신학대학교는 신학적으로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이 다르다고 가르친다. 이슬람의 탄지흐(알라의 차별성)와 무슬림의 성육신 거부가 기독교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6) 해석학적 측면: 무함마드와 그 이후 무슬림들은 꾸란의 진정성을 증명하려고 성경의 일부 구절들을 인용하였다. 꾸란은 이싸가 죽었다고 하는 구절들이 있다. 그런데 꾸란 주석가들이 기독교인들의 성경과 다르게 해석하였다. 초기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이 성경 주석을 변질하여 성경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이해했으나 11세기 스페인의 이븐 하즘(Ibn Hazm; 994-1064)과 그를 따르는 무슬림들은 성경의 어휘가 교체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꾸란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수라 2:75‘yuħarrifūnahu(그것을 변질시키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텍스트가 변질되었다기 보다는 의미가 왜곡되었다는 뜻이다. 꾸란에는 ‘yuħarrifūna’(변질시키다)라는 단어는 수라 4:46, 수라 5:13, 수라 5:41에 나오는데 텍스트로부터 단어들을 왜곡시키다란 뜻이다. 해당 텍스트로부터 단어들을 왜곡시킨다는 말은 텍스트의 어휘 변질이라기 보다는 잘못된 주석(misinterpretation)을 가리킨다.

경전의 백성들아 너의 종교를 초월하는 일은 하지 말라 .. 셋이라고 하지 말라(수라 4:171)”.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이 여러 신들을 믿지 않고 오직 한 분의 신을 믿는다는 설명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꾸란 본문에는 삼위일체란 어휘는 없다. 단지 이라는 말만 나온다. 결국 이 을 알라, 이싸, 마르얌이라고 무슬림들이 잘못 해석하고 있다. 꾸란의 구절들과 꾸란 주석들이 성경적 진리의 빛으로 검증되고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이슬람의 알라는 성경의 하나님과 공통되는 내용도 있고, 서로 다른 부분도 있다. 그러나 선교적인 측면에서는 서로 같은 부분에 해당하는 공통점(common grounds)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익하다. 알라, 이싸, 알마시흐 등의 꾸란 용어가 챠드나 세네갈과 같은 아프리카에서는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에게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꾸란은 성경의 구속의 교리를 거부하였는데, 이슬람 이전에 이미 중근동에는 에비욘파, 영지주의, 도케티즘, 마리아 파 등의 이단들이 있었다. 그리고 샴 지역의 시리아 정교회는 메시아의 위격이 하나, 본성이 하나라 하고,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은 단성론을, 그리고 당시 아랍인들 중 알히라(현 이라크 일부) 지역은 네스토리아를, 아랍인 갓산조(현 시리아 일부)는 단성론을 따르고 있었다. 무함마드는 기독교인들보다는 유대인들과 접촉이 더 많았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 이후 중동의 기독교인들은 서구인들의 의식 속에서 사라져갔다.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수용한 교회들이 중동에서 수세기 동안 선교를 하지 않았고 다만 이단으로 낙인찍힌 교회들이 이슬람과 만나고 있었다. 무슬림들은 우마위야 조(661-750)때 공격적인 논증법(polemic approach)을 발전시켰고 이븐 하즘과 같은 무슬림 신학자들은 반기독교적인 논증을 일삼았다. 무슬림들은 이슬람 초기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으나 주로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10세기부터 이슬람으로 개종하라는 압력이 있었다. 13세기 중반 몽고가 아랍 지역에 들어오자 처음에는 기독교 공동체에 유익하였으나 몽고의 칸(Khan)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런 상황은 곧 바뀌었다.

꾸란 주석가들은 14세기까지 기독교에서 개종한 사람들로부터 구두로(가끔은 부정확한 내용) 전해들은 이야기를 꾸란 주석에 남겨 그 내용에 있어서 정확성을 기하지 못했다. 정작 무슬림들을 개종시킬 목적이 아니었던 십자군 전쟁(1095-1291)은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갈등을 남겼고 8세기부터 십자군 전쟁까지 점차적으로 아랍인 교회의 예전이 아랍어로 바뀌어 갔다. 칼케돈 공의회의 신조를 따르던 서방 교회는 칼케돈의 신조를 반대한 동방(아랍) 쪽으로 선교를 하지 않았다. 무슬림들과의 의사소통은 그렇게 중단되고 있었다.

주후 9-10세기 이미 아랍어 성경들이 아랍 무슬림들 옆에 있었고 우마위야조(661-750) 말기부터 이슬람력 325(10세기)까지 구두로 유대기독교 전승을 꾸란 주석에 활발히 사용하였다. 14-15세기는 중동의 교회들이 가장 어려운 때를 맞았다. 18세기와 19세기 몇몇 선교사들이 중동에 들어가 무슬림들과의 공개 논쟁을 했다. 그들은 서구 식민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변증법과 공격적인 논증법을 썼으나 복음 전달에는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무슬림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갖게 했다. 1970년대부터 이슬람근본주의로 인하여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기독교인들이 감소하였으며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 이라크 기독교인들이 중동을 떠나고 있다. 마론파 기독교인이 대통령인 레바논에서는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백만명이 해외로 이주하여버렸다. 요르단에는 쿨루나 피다카 무함마드’(kullunā fidāka, Muhammad; 무함마드 당신을 위하여 우리들이 몸을 바치겠다)라는 표어가 곳곳에 붙어 있는데 무함마드에 대한 어떠한 폄훼도 참지 않겠다는 각오가 들어있는 문구이다. 무슬림들 중에도 과격하고 극단적인 무슬림이 있고 세속적이고 문화적인 무슬림도 있다. 무슬림들의 무함마드에 대한 태도를 보면서 무슬림을 한 개인’(shakhs)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슬림들에 대한 접근을 살펴 보면, 상황화라는 용어가 1972년 신학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이래, 이슬람국가에서는 특히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상황화가 시행되었고 이싸 알마시흐를 믿는 공동체가 따로 생겨났다. 인사이더 운동이 새롭게 등장하였으나 2008년 이 모델은 아직도 모양을 다듬어가는 과정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다. 여타 사역이 허용되지 않는 지역에서 기관 모델은 아직도 필요하고 현지 교회 중심의 전통적인 모델과 우리의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대화는 여전히 유익한 모델이다. 그리고 무슬림들의 명예수치 문화에 근거한 패러다임과 무슬림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접근(felt needs oriented approach), 그리고 무슬림들을 향한 성육신 모델(Incarnational Model)을 사용한 복음 제시가 필요하다. 그것은 요한복음 1:14의 성경적 원리와 빌립보서 2:6-8의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삶의 양식과 태도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론(dogma of trinity). 성경의 무오성(infallible scriptures), 그리스도의 신성(divinity of Christ), 성육신 교리(doctrine of the incarnation) 등을 숙지해야 하고, 무슬림을 만날 때는 이런 교리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모범(living example)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꾸란에 상당히 애매모호하게 표현된 어휘들 즉, 알라의 아들, 루후, 칼리마, 알마시흐 등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슬림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하여 꾸란과 유사한 내용이 비교적 많은 누가복음을 제시하여 볼 수 있는데,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부각시켜주는 본문은 누가복음 15장이다. 2007년 우드베리와 슈빈(Shubin), 마크스(Marks)기독교인이 된 무슬림’ 700여명에게 실시한 연구에서,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한 원인들 중의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하늘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intimacy)를 갖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둘째,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한 의사소통에서는 한국인 선교사가 현지어로 된 성경을 현지말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더구나 탈 서구 신학과 탈 한국 신학은 물론 성경 본문을 선교 현장에 맞게 스토리텔링(storytelling)하는 것도 필요하다. 케네스 베일리는 중동인의 눈으로 본 예수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아바라고 부르신 것은 성도와 하나님 간의 깊은 인격적 관계가 있음을 확인해 준다고 하였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직유나 비유가 아닌 칭호이며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질적인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라 했다. 탕자의 이야기는 당시 문화를 뛰어 넘는 새로운 이미지의 아버지를 제시해 주고 있어, 무슬림들과 대화를 여는데 아주 적절한 본문이다.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모델은 아랍 기독 신학은 물론 아랍인의 눈으로 본 성경 읽기가 필요하다.

셋째, 꾸란을 중심으로 한 의사 소통에서는 기독교의 핵심교리를 포기할 수 없으므로 비판적 상황화가 필요하다. 복음은 불변하지만 이 복음을 제시하는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무슬림과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꾸란 구절들에 대한 연구가 계속 필요하다. 전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슬림들에게 상황화된 커뮤니케이션(contextualized communication to Muslims)을 하는 것인데 성경으로 가는 다리로서 꾸란을 사용할 수 있으나 꾸란에 권위를 부여하면 안 된다.

무슬림과 의사소통은 교리(doctrines)가 아니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가도록 우리가 돕는 것이다. 복음은 선포(proclamation)되어야 하고 시현(demonstration)되어야 한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이 설명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실제로 보여 지고, 우리의 삶과 무슬림의 삶이 만나는 유기체적인 관계(life-on-life organic relationships)가 이뤄지는 성육신 사역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컴패션(공감)의 눈을 갖고(Compassionate approach) 무슬림들을 존중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마음의 소통에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유일신 사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등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접촉점으로 한 전도가 절실하고 이슬람 문화와 무슬림 상황에 적합한 효과적인 복음 전달 방안이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2. 이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08년 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사이의 충돌 그리고 20091월 레바논과 이스라엘간의 포격 상황이 연일 알자지라 위성 방송에 보도되면서 이스라엘 반대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관제 혹은 자발적인 반이스라엘 시위가 무슬림들의 각급초등학교에서부터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확산되었다. 이슬람사회는 권력과 정치가 종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왔었고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무슬림이 참여한 테러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테러는 이슬람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슬람과 관련 없다는 이런 테러에 왜 무슬림이 관여되어 있는가?

2008년 한국에서 이슬람권 지도자들 간에 이슬람과 무슬림들에 대한 이해가 서로 나뉘면서 교회 안에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하나는 이슬람을 포용하자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슬람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전자는 한국에 무슬림들이 들어와도 혹은 들어오는 것을 우리가 막을 수 없으니 한국에 들어오는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자는 것이고 후자는 이슬람 자체가 테러 등 국제 사회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므로 가능한 방법으로 입국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견해가 갈등을 빚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이슬람의 다양성을 간과한 점이다. 이슬람이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양하고 복잡하여 이슬람 안에서도 무슬림들끼리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다. 무슬림 안에서도 꾸란의 어느 한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순니와 시아 파 간의 살상을 정당화하기도 하여 이런 살상을 테러로 보는 무슬림들도 있고 부당한 세력에 대한 저항으로 보기도 한다. 이를테면 오사마 벤 라덴이 테러리스트이지 무슬림이 아니라고 한 무슬림이 있는가 하면 오사마 벤 라덴이 이슬람의 영웅으로 묘사하는 무슬림들도 있다. 2008년 말 부시 미대통령이 이라크를 방문할 때 구두를 던진 이라크인 기자를 이슬람의 영웅으로 묘사하는 무슬림이 있는가 하면, 한 국가의 정상에게 구두를 던진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니라고 하는 무슬림들도 있다. 그러고 보면 이슬람권 지도자 간에 서로 의견이 나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슬람 사람들이 언론에 보도하는 내용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는 자꾸만 무슬림들의 주장에 편식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일부 무슬림은 한국인이 이슬람을 편견으로 본다고 하면서 정도를 벗어난 편향된 이슬람으로 호도하여 한국 안에서 균형된 이슬람을 갖기에 어렵게 한다.

심지어 기독교 목회자들과 신학교 교수들도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여러 선교사들로부터 광범위하게 듣기 보다는 자기 전제와 비슷한 의견이라고 생각되는 선교사나 강사를 주로 세워 이슬람의 이해가 자꾸만 편향된 시각으로 점철되어 급기야 공론화된 의견을 창출하지 못하고 서로 의견들이 대립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과거 이슬람 역사와 꾸란 등 이슬람 문헌들을 연구하여 보면 이 같은 대립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 그 원인을 밝히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슬람의 어느 한 면을 중심으로 논리를 세워 가면 그런 인식이 상당히 논리적으로 비쳐진다. 이것이 곧 이슬람의 다양성이 가져다 주는 폐해다.

한국 무슬림들이 과거 10여 년간 언론과 사회에 이슬람의 한 쪽 면만을 계속 반복하여 상당히 이슬람이 편향되었다는 인식이 일부 지성들에 의하여 제기되었던 것과 똑 같은 편향된 인식이 한국의 교회와 이슬람권 선교 지도자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동안 한국 교회 안에 이슬람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오래 축적되어 있었더라면 이런 문제들을 쉽게 풀어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두 번째 원인은 이슬람을 신학적으로, 선교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 결과가 서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슬람을 단선적으로 바라보면 각각의 의견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이슬람세계의 소수 무슬림들만이 과격 무슬림들로서 세계에서 테러를 일삼고 있을 뿐, 이슬람은 본래 중용과 관용을 모색하는 종교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무슬림들로부터 자주 듣는다. 무슬림들도 과격한 방법이 아닌 설득을 통하여 이슬람을 전 세계에 전하고 있으므로 과격한 한 두명의 무슬림들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은 무슬림들과의 신학적인 이슈 뿐만 아니라 무슬림의 개인적인 이슈, 사회적인 이슈, 그리고 정치적인 이슈들까지도 자세히 알아서 그들의 본심을 알 수 있는 언어세계관을 습득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슬림들 간의 분쟁은 곧 세계인들의 대미, 대 이스라엘에 대한 반응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고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 등지에서 발원한 이슬람 근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이제는 전 이슬람 세계로 퍼져 나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필자가 최근 몇 몇 이슬람국가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민속 이슬람이 점차 줄어들고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늘어난 것도 최근 이슬람의 동향을 대변해 주는 예이다. 사실 무슬림들이 행한 상당수 테러는 무슬림들이 이것을 저항이라고 말하는데 그 저항의 정당성으로서 그들은 자기 집에 들어온 침입자를 무력으로 막아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지금은 일부 이슬람 국가들이 이런 이슬람의 과격적인 이미지를 벗겨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등에서는 과격적이고 선동적인 설교를 하는 모스크 이맘들을 재교육하여 온건 이슬람화를 꾀하기도 하였다.

무슬림들 속에도 보수와 진보, 과격주의와 온건주의 등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이슬람의 테러는 무슬림들을 부당하게 취급한 서구에 대한 무슬림들의 반작용이라고 보는 학자들과 무슬림들의 테러는 이슬람 경전 꾸란의 일부 구절이 본래 테러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로 나뉜다. 전자는 테러 원인이 서구라고 하여 정치적인 이슈가 되었고 후자는 테러 원인이 지하드(이슬람식 전투)라고 하여 이슬람의 신학적 이슈가 되었다. 결국 이슬람의 신학적, 이데올로기적, 역사적, 정치적인 측면 중에서 어느 관점으로 이슬람을 보느냐에 따라 이슬람의 정체성이 달라진다고 하겠다.

세번째는 이슬람의 복합성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무슬림을 포용하자는 선교 지도자들의 의견은 선교 신학적으로 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의 정치적인 이슈는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한 테러를 뛰어넘어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자는 것이 이슬람의 본래 목적이라고 이슬람국가의 대학 교재에 실려 있다. 순수한 종교성으로 시작된 무함마드의 메카 계시를 떠나 꾸란의 메디나 계시에 들어오면 이슬람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확신을 제시한다. 그래서 무함마드가 메디나에서 처음으로 이슬람국가를 건설하였을 때 이슬람의 신앙은 본질적으로 권력을 잡는 것과 관련되었다. 이슬람의 이데올로기적인 도전은 정치적인 이슈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사건을 단순히 문명의 충돌이니 서구와 이슬람의 갈등이란 말로 단순화할 수 없다.

네 번째는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관계가 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커뮤니티와의 관계라고 보는 시각이다. 두 종교가 각기 다른 신앙인들을 만들어내고 이들이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기독교와 기독교 선교를 서구나 외세의 침입과 연계하여 생각하는 무슬림들은 기독교 선교를 이슬람 사회와 국가의 안녕을 해치고 이를 파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말은 무슬림들이 우리와 다른 언어와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슬림들의 언어를 다시 해독할 필요가 있다. 오사마 벤 라덴이 미국의 무역센터를 공격한 것이 한 개인의 허탄한 생각에서 한 것이 아니고 권력과 함수 관계를 알고 있는 이슬람 커뮤니티의 어느 한 단면이 빚어낸 작품이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이스라엘이 공격하자 전 이슬람 세계가 들썩들썩하였다. 그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우리는 이슬람 커뮤니티 안의 사람들로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당하고 있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으니전 이슬람 세계가 단결하여 이스라엘을 막아내자는 것이다. 무함마드 풍자 만화 사건도 무함마드에게 한 모멸과 조소가 곧 무슬림 각 개인을 조롱한 것으로 무슬림들이 인식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음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왜 이슬람이 그렇게 정치적인 종교로 우리에게 비쳐지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생애부터 이슬람의 가르침이 역사를 통하여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무함마드 생애 첫 12년간은 메카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그만두고 한 분의 신을 섬기라고 하는 것이 무함마드의 주요 메시지이었으나 그가 메디나로 간 뒤에는 예언자와 정치가로서의 역할로 바뀐다. 그 때부터 그는 무슬림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갔다. 결국 그는 메디나에서 이슬람 커뮤니티를 설립하기 위한 모든 율법적 내용이 알라에게서 직접 내려온 것임을 주장하였다.

무함마드는 메카 시대에 아랍인들에게 메시지를 가져다 준 메신저(messenger)이었으나 메디나 시대에서는 추종자들이 늘어나면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더와 나비(nabī: 예언자)로 자신을 부각시켰다. 꾸란의 메카시대 계시에는 무함마드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였고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메디나 시대 특히 후기 메디나 계시에서는 그의 설교를 거부하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실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더구나 메디나의 유대 부족들이 무함마드를 공격하며 그를 거부하자 이들 유대인들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메카 시대에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이슬람과 유사하다는 것을 강조한 반면, 메디나 시대에서는 무함마드를 유대인들의 예언자가 아니라는 유대인들의 거부에 이어, 기독교인들도 무함마드를 기독교의 예언자가 아니라고 하자 꾸란의 메시지는 기독교와 유대인들을 거부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무함마드는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독립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슬람도 기존의 기독교와 유대교를 떠나, 독자적인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모든 무슬림들이 기도 때마다 언급하는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세요라고 하는데 여기서 올바른 길이슬람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꾸란은 무함마드의 해석학적 이해가 담겨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꾸란 주석가들도 이슬람 역사상 첫 주석가는 무함마드라고 한다. 이슬람은 처음부터 무슬림 커뮤니티의 삶에 대한 관심이 모든 정치적인 이해 관계와 얽혀 있었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무슬림들이 무함마드의 모범을 따르게 되었다. 그래서 무함마드를 모욕하면 그것은 이슬람사회의 무슬림 삶을 모욕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단순히 무함마드가 새로운 종교의 예언자라기보다는 정치가로서의 삶도 살았다. 무함마드 이후 무슬림들은 종교와 정치가 하나가 되는 정교 일치를 추구하였고 비잔틴 교회들은 무슬림들이 만들어 놓은 딤마(피보호민의 지위) 제도에 종속되어 갔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정착한 뒤에는 메카에서 온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메디나 사람들과 다음과 같은 메디나 협약을 맺었다.

 

(1)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하나의 움마(커뮤니티)이다.

(2) 너희가 서로 의견이 달라지면 무함마드와 알라의 말을 참조하라.

(3) 바누 아우프(Banū ‘awf) 유대인들은 그들의 커뮤니티가 따로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종교가 있고 무슬림들에게는 그들 종교가 있다.

 

이 협약을 통하여 메카에서 온 무슬림들과 메디나의 사람들은 엄정한 사회적 계약을 통하여 모두가 동등하게 대해 주기를 기대하였으나 유대인과의 좋은 관계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당시 이슬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이어가도록 허락은 되었으나 우상 숭배자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이든지 노예가 되든지 죽음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했다. 그러나 이슬람이 확장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을 거절하자 기독교인과 유대인에게 허락한 피보호민의 지위를 배화교, 불교, 힌두교인에게까지 허용되었다. 피보호민(딤미)이었던 기독교인들은 무슬림 통치하에서 특정한 보호를 받는 대신 복종의 표시로서 특별세인 지즈야(사람의 머리 수대로 세금납부)를 무슬림 정부에 납부해야 했다. 그러나 가난한 기독교인들은 이런 세금이 매년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고 무슬림 남자들이 기독교 여성들과의 혼인이 증가되면서 기독교 가정들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꾸란 구절은 이슬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과 싸우라고 지시되었고 그 싸움은 기독교인들이 지즈야를 낼 때까지라고 계시되었다(수라 9:29).

아라비아에 살던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무함마드의 말대로 이런 딤마의 협약 하에서 특별세를 내고 무슬림과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고위관리나 군 장성 등 사회지도층이 되려면 무슬림이 아니고서는 안 되었다. 이것이 많은 비무슬림들로 하여금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 나즈란에서의 기독교인과의 협약이 있었음에도 무함마드의 말이라고 하면서 칼리파 오마르(634-644 재위)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아라비아 땅에서 쫓아내버렸다. 칼리파 오마르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라크 땅이 이슬람 통치하에 들어 온 뒤, 시리아의 기독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오마르 협약에 서명하기를 요구하였다.

(1) 우리(기독교인들)는 우리의 도시들과 주변 지역에 새로운 교회들과 수도원들과 수녀원들을 새로 건립하지 않으며 그 건물들을 다시 수리하지 않는다.

(2)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꾸란을 가르치지 않는다.

(3) 우리는 우리의 종교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하지 않고 우리의 가족 중 일부가 이슬람을 영접하는 것도 금하지 않는다.

(4) 우리는 안장을 얹고 타지 않으며 칼을 휴대하지 않고 어떤 류의 무기를 들거나 휴대하지 않는다.

(5) 우리는 어느 곳에 있거나 동일한 복식(옷입기)을 한다.

(6) 우리는 십자가나 우리의 책들을 무슬림들의 길거리나 시장에 전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만 아주 부드럽게 박수를 한다. 우리는 교회 예배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죽은 자 앞에서도 큰 소리로 곡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무슬림들 근처에 매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무슬림 들 바로 앞에 불빛을 비추지 않는다.

(7)우리는 무슬림들의 집보다 더 높게 집을 짓지 않는다.

 

유명한 아랍 역사가 이븐 칼둔(1333-1406)은 무슬림 커뮤니티에서 지하드는 종교적 의무라고 하였다.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는 이슬람 포교(다아와)는 전 우주를 대상으로 하며 모든 사람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기 위하여 설득 혹은 강요(by force)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인들을 카피르(kāfir)라고 하였다. 15세기의 이런 이슬람 우월정신은 오늘날 상당수 무슬림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내려와 이슬람이 어느 종교보다 우월하고 기독교인을 카피르로 보는 부정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더구나 역사를 거치면서 이슬람학자들은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주장을 확고히 함으로써 그 이후 무슬림들은 성경을 읽지 않게 되었고 종교간 대화는 한계성을 갖게 되었다. 이슬람 초기 카리지 파가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 칼리파를 카피르로 몰아 살해한 것은 이슬람 역사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븐 칼둔은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이 정치 권력(political power)에 대한 인식 차이는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신학적 차이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날 무슬림들은 비무슬림(기독교인을 포함하여)을 가혹하게 대하여야 한다는 사람들과 그들을 관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사람들로 나뉜다. 마치 한국에서 지금 무슬림들을 관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사람들과 이슬람을 대적하여야 한다는 양측의 대립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파키스탄과 같은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위와 같은 오마르 협약을 이슬람 국가에 살고 있는 비무슬림(기독교인)들에게 철저하게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튀니지 역사학자 무함마드 탈비는 딤마 제도는 무슬림들의 과거 유산으로 여겨져야 하므로 더 이상 그런 제도가 시행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슬람 안의 충돌: 종교와 정치 간의 갈등(The Struggle with Islam: The Conflict between Religion and Politics) 이란 책을 쓴 라피끄 자카리야(Rafiq Zakaria)는 그가 인도의 무슬림 커뮤니티에서 겪은 일을 기록하였는데 오늘의 이슬람 세계를 집권층과 신학자들 간의 끊임없는 싸움이라고 하면서 수세기 동안 이슬람 근본주의가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이슬람 정부와 저항해 온 것이라 했다.

이처럼 이슬람은 본래부터 종교와 정치색을 띄고 있었고 역사를 거치면서 정치와 지하드 등이 주요 주제가 되었으며 비무슬림에 대한 차별은 이슬람 사회에 그대로 잔존하게 되었다. 무함마드는 박해 받는 예언자로 시작하여 예언자와 이슬람에 대한 충성에 근거하여 이슬람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폭력 사용을 거부하시고 십자가로 걸어가시고 정의와 평화를 이뤄 가시었다.

다섯 번째, 이슬람에 대한 이해와 관점,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이슬람에 대한 균형된 관점과 세계적인 안목을 지녀야 한다. 그러려면 이슬람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이슬람국가에서 실제 무슬림과 살아본 경험이 필요하고 여러 이슬람 국가들을 다녀 보아야 하고 이슬람과 꾸란에 대한 깊은 학문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사실, 다양한 무슬림과 서로 다른 이슬람국가를 다녀보면 앞의 주장 중 무조건 감싸자는 주장과 배척하자는 주장 사이에서 그 어느 한쪽만을 지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슬람의 다양성은 이슬람의 역사를 되돌아 가보아야 한다. 무슬림들 중에는 꾸란과 하디스를 참조하여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하는데 기독교인들도 전 세계 무슬림들이 평화를 사랑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소수의 무슬림 전사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꾸란에 근거한 폭력 사용도 불사한다. 문제는 이슬람이 이 두 가지를 다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을 평화와 관용의 종교라고 하거나 이슬람을 악의 축, 사탄의 종교라고 하는 표현하는 것 중 전자나 후자 어느 하나만을 주장하는 것은 이슬람을 바르게 규정한 말이 아니다.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참 모습을 이슬람 초기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슬람의 참 모습을 전술한 바와 같이 이슬람 초기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메카 시대에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는 주로 온건한 내용으로서, 이슬람을 이브라힘의 종교와 관련짓는다. 이 때 무함마드가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랍 다신 숭배자들에게 알라만을 복종(islam)하라고 하면서 유대교나 기독교와 유사한 이브라힘의 종교를 따르라고 했다. 기독교나 유대교와 이슬람이 다른 것은 이슬람이 아랍어로 계시된 것만 다르다고 하였다.

무함마드의 초기 계시 내용만을 보면 이슬람이 온건한 종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나 무슬림들 중에는 오늘날 카피르(알라를 안 믿는 사람이거나 알라를 믿더라도 이슬람의 기도나 금식 등을 안 지키는 사람)들에게 지하드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가 인용하는 꾸란의 구절들이 폭력을 조장하고 있어 우리는 꾸란이 복합적이라고 규정한다. 이슬람의 복합성은 꾸란이 복합적이라는 것이 반영된 것이다. 꾸란의 메카 계시 혹은 메디나 계시 중 어느 부분을 인용하느냐에 따라 그들과 논리 전개가 달라진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새로운 종교를 세우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가난한 자와 죄인에게 은혜가 되었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을 막고 있던 종교인들과 종교기관에 대해서 예수는 혹독하게 대하였다. 미국 풀러 신학교의 마틴 악카드(Martin Accad)는 이슬람이 시작된 후 8세기부터 14세기까지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자료들을 살펴보았더니 이슬람평화라고 하는 의미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아랍어 사전을 보아도 이슬람복종이란 말이고 평화라는 말은 아니다. 그는 20019.11 테러 이후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는 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실을 보라. 2005년 일본에 거주한 외국인 무슬림들이 20만 명에 육박하였고 그 중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한국에도 2007년 한국인 무슬림 숫자가 35천명에 이르렀고 매년 이슬람국가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의 한국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입국하려는 무슬림들을 한국정부가 막는다면 역사는 한국이 무슬림들의 입국을 금지하는 등 인권을 무시한 나라라고 기록할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지금 무슬림들로 인하여 빚은 각종 사회적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이제서야 무슬림들이 그들 땅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를 한다. 무슬림들이 식민지 국가이었던 유럽 국가에서 그 사회의 하층민으로 살기 시작하였다. 유럽인들의 생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던 그들은 어느 한 지역을 중심으로 게토(getto)를 형성하며 살게 되었다. 여러 세대가 이어지면서 그들 게토 안에서 유럽인들에 대한 불신과 증오는 커져만 갔다. 그런 예는 유럽에만 있었던 게 아니고 레바논에서도 있었다. 히즈불라(hizb Allāh:알라의 정당)는 정치적으로 변두리(margin)에 몰리었던 무슬림들이었다. 그들이 무사 사드르(Musa Sadr)를 중심으로 오늘과 같은 과격세력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두 번 째 침입했을 때라고 하지만 실제는 그 이전부터 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후 고향을 잃고 조국을 잃은 설움으로 레바논 남부 즉 이스라엘 북부 국경 지대에 몰려 살면서다. 히즙 알아말(소망 정당)에서 시작된 히즈불라가 이란의 과격적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프랑스 식민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레바논 헌법에서 레바논 대통령은 기독교인,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 총리는 순니파 무슬림으로 규정되어 있어 헌법 제정 당시에는 기독교인들이 다수이었으나, 2009년 레바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 레바논은 전 국민의 43%가 시아파 무슬림이고 30%는 순니파 무슬림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오직 25%에 불과하다. 1975-1990년 레바논 내전 기간에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90만 명이 해외로 이주하였고 1990년 후반에는 10만 명이 해외로 이주해 버렸는데 이주민들의 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라. 한국의 교회들이 이슬람을 어떻게 바라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또 다른 해법은 이슬람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무슬림들이 쓴 이슬람의 역사와 아랍 기독교인들이 쓴 이슬람 관련 책들을 골고루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오직 무슬림들이 써 내려온 이슬람의 역사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역사관과 학문의 수준에 따라 그 진실은 달라질 수 있다. 그들 책들 중에 만일 이슬람을 오직 평화의 종교라고 하거나 혹은 이슬람을 오직 폭력의 종교라고 했다면 그 서술은 균형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교회 안에서 학문적으로 이슬람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는 것은 폭넓은 이슬람 연구의 장애가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슬람은 그 자체가 다양하고 무슬림 안에도 보수와 진보 간 극렬한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이 있다. 한국 사회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7년까지 기독교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한국사회의 여론과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1997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노무현 정권이 그 뒤를 이으면서 이 시기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의 사회사상적 특성으로서 보수를 친미반북으로, 진보를 친북반미로 구분한 것 같다. 이런 친북 반미 세력은 곧 반미 친이슬람 반기독교세력이 되어 한국의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학문적으로 이슬람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런 이데올로기적 대립에서 쉽게 질타를 당하면 이슬람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중단하게 된다. 만일 이슬람연구에서 이런 이데올로기 대립이 심해지면 한국의 교회와 신학자들은 바른 이슬람 이해바른 이슬람 대책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들을 듣게 될 것이다. 오늘의 한국의 교회와 신학자, 선교 단체의 이슬람 이해와 연구는 아직도 일천하다. 그들이 어느 정도 이슬람에 대한 축적된 연구와 선교 정책이 제시될 때까지 우리가 인내하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한국 무슬림들의 이슬람 연구도 아직은 세계적인 수준의 이슬람 연구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고 한국 무슬림들의 신학적 접근도 연구 부족에서 오는 문제들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

 

3. 한국의 교회, 꾸란의 어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국의 무슬림들이 성경의 <하나님, 성령, 예수, 마리아>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아랍어 꾸란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은 한국의 무슬림들이 이슬람식 내부자 운동을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고 레바논 근동신학교의 이슬람학자 존 후버(Jon Hoover)는 말한다.

꾸란의 알라와 성경의 하나님은 동일하지 않고, 꾸란의 루후 알꾸두스와 성경의 성령도 동일하지 않으며, 꾸란의 이싸와 성경의 예수도 동일하지 않고, 꾸란의 마르얌과 성경의 마리아도 동일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어로 된 최영길 번역의성 꾸란은 알라를 하나님이라고 번역하였고, 루후 알꾸두스를 성령이라 번역했고 이싸를예수로 번역하였다. 영어로 번역된 꾸란 번역서들은 알라를 God 혹은 Allah, 이싸를 Jesus 혹은 Isa로 번역하지만 꾸란의 루후 알꾸두스는 지브릴 천사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꾸란에는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가 없다고 하는 것이 전 세계 무슬림들의 공통된 주장인데 한국어로 된 꾸란 해설성 꾸란에는 하나님, 성령, 예수가 등장하고 있어 성 꾸란이 삼위일체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랍어 꾸란 원전은 성경의 삼위일체를 부인한다. 그러나 이 동일용어들은 사실상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아랍어 꾸란에 나오는 이싸는 헬라어로 하면 이수아라고 하고, 아람어로 하면 이슈아라고 하여 꾸란의 이싸와 다르게 사용되었다. , 꾸란에 나오는 마르얌은 마리아 혹은 미리암으로 번역된다. 아람인들은 성령을 루후 알까스뜨(거룩한 영)’라고 하였고 아랍인들은 루후 알꾸두스혹은 알루후 알꾸두스를 서로 번갈아 가면서 사용하였다. 아랍어 꾸란에는 전자를 사용하고 아랍어 성경에는 후자를 사용하여 전자는 지브릴천사를, 후자는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 구분한다.

한국 내에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무슬림들이 번역한 성 꾸란을 언급하여 삼위일체를 변증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만약 그들이 번역 따로, 해석 따로라면 이런 번역은 기독교인들을 속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주요 핵심 어휘들을 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슬람권에서 복음을 전할 때는 아랍어가 국어인 나라와 중남부 아프리카나 아시아처럼 아랍어를 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이미 상황화된 접근법을 사용한 나라들이 많아 하나님을 알라로, 예수를 이싸 알마시흐로, 성령을 루후 알꾸두스로, 혹은 알루후 알꾸두스로, 로고스는 칼리마로, 영은 루후로 번역하여 성경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어휘들이 갖는 성경적 의미는 무슬림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주어야한다. 가령 루후 알꾸두스는 지브릴 천사가 아닌 하나님이시며 거룩한 영이고 진리의 영이라고 성경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중남부아프리카와 동부. 서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는 꾸란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사람이 많지 않고 아랍어로 꾸란의 주석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한국 교회 안에서는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사용하는 이슬람만의 독특한 개념을 성도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으므로 이슬람의 용어와 기독교의 용어를 차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꾸란의 알라와 성경의 하나님이 어떻게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기 어려워하므로 교회는 목회적 차원에서 꾸란의 알라와 성경의 하나님이 서로 다르고 이싸가 예수와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지금 일부 선교사들과 선교 단체들이 겪는 문제는 이런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차이나 상황과 대상이 누구냐를 구분하지 못한 채 상황화하기에 급급한 것이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국의 무슬림들 혹은 국내 외국인 근로자나 유학생으로 입국한 무슬림들에 대한 교회의 접근법은 해외 무슬림들에게 접근하는 방법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또 한국 내 무슬림 선교와 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들에게 사용하는 상황화 접근도 상황이 달라지면 그 해법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 상황에 참여하지 않는 자도 상황화 신학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예를 들면, 한국에 살고 있지 않는 자가 한국적 신학을 할 수 있으며, 아프리카 사람이 남미의 어느 한 나라의 상황화 신학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대체로 그 대답은 부정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이슬람에 대한 관점이 다르면 태도가 달라지고 사역에 대한 결과도 달라진다. 이슬람과 꾸란에 대하여 어떤 관점과 태도와 접근법을 갖느냐에 따라 무슬림과의 만남도 다음과 같이 5가지 태도로 나뉠 것이다.

(1) 혼합적 태도: 혼합적인 입장은 모든 길은 메카로 통한다고 생각하므로 다문화 중심이고 다원적이다. 이들은 이슬람을 사회 정치적 현상으로 보는 태도를 가지며 비종교적인 대화 내용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이슬람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2) 현실적 태도: 현실적 태도를 갖는 사람들은 모든 종교들의 목적은 선과 윤리라고 생각한다. 커뮤니티 간의 관용이 증대되고 공통점을 중심으로 하는 대화가 강조된다. 커뮤니티 간의 관계 개선에 관심을 갖고 이슬람의 일반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3) 변증적 태도: 이슬람을 공격하기 보다는 기독교를 좀 더 분명하게 알려주려는 태도이다. 그리스도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무함마드와 무슬림들이 잘못된 길을 갔다고 말한다. 이슬람의 오류를 찾는데 관심을 갖고, 기독교만이 진리임을 밝힌다. 무슬림 개종을 위하여 변증법적 토론을 사용하나 일부만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대부분은 변론(argumentation)으로 치닫는다. 기독교를 방어적하는 변증법을 철저히 익힌다.

(4) 논증적 태도: 이슬람을 불신하고 공격하는 태도이다.

(5) 케리그마(복음 선포)적 태도: 하나님은 모든 종교적 제도를 초월하신 분으로 알고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말한다. 이슬람의 현상들 안에 일부 진리들이 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만 성취된다고 믿는다. 쌍방간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대화가 있고 복음을 적극적(positive)으로 선포한다. 상대에 대한 관용이 증대되고 무슬림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을 때는 공동체에서 빼내는 것을 피한다.

5가지 태도 중에서 혼합적 태도와 논증적 태도를 피하게 되고 그 대신 대체적으로 케리그마적 태도를 갖는다. 여러 무슬림들과 공적으로 만날 때는 현실적 태도나 케리그마적 태도가 좋고, 사적으로 만날 경우에는 케리그마적 태도나 변증적 태도가 좋다. 이슬람신학을 잘 아는 종교인에게는 현실적 태도를 갖는 것이 낫고 보통 무슬림들에게는 변증적 태도를 갖는 것도 무방하다.

교회 안에서는 다음과 같이 무슬림과 논증적인 태도를 갖는 것을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으로 나뉜다. 첫째, 무슬림과 논증적인 태도를 찬성하는 측은 무슬림들이 열띤 토론을 좋아하므로 논증법이 문화적으로 적절하고, 논증은 그들의 역사와 신앙과 경전과 관련된 어려운 문제들을 그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논증적 태도는 무슬림 사회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 사이에서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격려가 된다. 논증적인 태도는 그동안 약간의 긍정적인 열매를 낳았다. 둘째, 이슬람의 모든 현상을 사탄의 것으로 인정하고 이슬람을 속임수라고 하며 이슬람의 더 많은 약점을 찾아내므로 수세기 동안 상호 몰이해, 모욕, 냉소, 불신, 적대감이 증대하였다.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인 논증은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논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신앙이 공격을 받았다고 그들이 느낄때는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종교를 덜 존중한다고 생각하므로 진정한 대화를 갖기 어렵다. 논증적인 맥락에서는 신앙적 요인과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요인과 구별하여 무슬림과 대화하기 어렵다. 서로의 신앙을 공격하기 보다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사람(people)으로, 개인으로, 혹은 커뮤니티 간에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논증적인 태도가 가끔 좋은 결과를 맺기도 하나 더 자주 부정적인 결과를 빚는다. 결국 무슬림들에게 논증적인 태도는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므로 상황과 논의의 주제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

 

4. 무슬림들에 대한 적절한 상황화는 무엇인가?

 

한국 교회가 1980년대는 주로 한인교회 사역자들을 이슬람국가로 파송하였고 1990년대 상반기에 이르러서야 아랍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는 한국인 사역자들이 파송되었다. 그러나 아랍 이슬람국가에서 정작 무슬림들을 전도하고 양육하는 시기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발해졌다. 그동안 아라비아 반도의 사역자들보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 현지인 개종자들이 많았고 상황화에 대한 관심도 컸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슬람은 한국인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1980년대에 한국내 무슬림들이 꾸란을 한국어로 번역한 해설서들을 내 놓았고 총대주교가 1989년에 생겼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슬람학 연구는 주로 대학 교수들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20019.11테러는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이 이슬람에 대한 관심을 갖기에 충분하였다. 몇 무슬림들의 테러를 통하여 전 세계를 이슬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미국의 대 중동정책의 실수가 한 몫을 했다. 그리고 곧 이슬람에 대한 동정으로 바뀌어 갔다. 2004년에 이라크에서 한국인 피살과 2007년 아프간에서의 한국인 목회자 피랍과 살해는 이슬람 세계에 한국의 교회들이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과의 만남에서 한국인 사역자들이 좀 더 계획된 접근법과 준비된 모델 그리고 다년간 경험에 의한 전략들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무슬림과의 만남에서 계획된 접근을 위하여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살펴본 것이다.

첫째, 이슬람과 꾸란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슬람학은 방대하고 나라마다 이슬람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 이슬람세계를 전체적으로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꾸란은 물론 무슬림들의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일례로 무슬림들에게 환대가 유명하다면 무슬림들에게 베풀고 대접하는 것이 그들 문화에 적절할 것이다. 무슬림들이 금식을 하는 한달 동안 그들 앞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은 그들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무슬림들이 받아들인다.

둘째, 복음의 긍정적인 면을 제시한다. 무슬림들에게 너희는 전혀 모른다. 너희들은 모두 지옥 간다고 해서는 복음이 무슬림들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셋째, 무슬림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다. 복음을 실어 나르는 통로로서 그들과 좋은 관계를 먼저 갖는다. 그런 면에서 이슬람국가에서 노방전도는 바른 방법이 아니다. 무슬림과 좋은 관계가 형성되기 전에는 우상숭배 내지 다신 숭배로 오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또는, ‘삼위일체는 뒤로 미뤄두어야 한다. 만일 무슬림이 이 문제를 다시 물어보면 정중하게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말해둔다.

넷째, 우리의 삶을 통하여 복음을 전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간다. 우리가 먼저 무슬림에게 전할 것은 알마시흐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그들에게 나눠야 한다. 예수님이 참 인간이 되신 후 우리 가운데 사시고 식사도 하시고 기적을 베푸신 것처럼 우리도 그들 가운데 살면서 음식을 나누고 그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무슬림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우선 성경의 하나님을 잘 모르는 무슬림들에게 성경의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바르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꾸란에 나오는 알라 그 이상이다. 성경이 최대한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계시하고 있지만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 땅에 사셨고 종교적인 상징들에 대하여 거부하시고 그 분 자신이 사람들에게 직접 계시되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었는데 우리가 알지 못한 것은 우리가 무지하고 우리에게 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적인 소경이 되어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죄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빛이 누구신지를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1:10). 세상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새로 태어나는 영적 거듭남의 선물을 받아들여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1:12). 무슬림에게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새로 거듭나게 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꾸란에서 왜곡되었다는 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슬람에서 말하는 계시는 책(꾸란)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로고스이신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시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1:14)라는 말에서 육신(flesh)은 인성(human nature)을 의미하지 죄성이나 연약함을 가리키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본질에서 하나이시다. 육신이 되었다고 하여서 그리스도가 바뀐 게 아니다.육신이 되어에서 되어(became)’라는 말은 헬라어 에게네토’(egeneto)인데 성품에서 변화를 경험하여 새로운 상태로 들어갔다라는 의미이다.

꾸란 안에 메카 계시의 극히 일부에 우리가 알마시흐를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들어있음을 우리는 기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곧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는 아니다. 성경의 하나님과 꾸란의 알라의 속성이 비슷하다고 하여 우리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코란의 단일신 알라가 같다고 속단하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적절한 상황화는 한국 내 선교학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상황화는 요구되고 필요한 것이지만 상황화가 과할 경우 혼합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고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신학이 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상황화가 약할 경우 단일 문화적 태도로 상황(문화)의 차이를 고려함이 없이 일방적으로 말씀을 전할 수 있다. 문화가 다른 대상에게 말씀을 전할 때는 전하는 자, 받는 자, 또한 말씀이 갖고 있는 문화적 차이들로 인해 의사소통에 장애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바르고 적절하게 상황화 작업을 하지 않으면 말씀이 제대로 이해되거나 전달될 수 없게 된다. 하나님 말씀은 보편적 진리이며 시공간을 초월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원불변의 진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듣는 자들로 정확하게 그리고 적절하게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황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슬림은 그가 태어난 나라에 따라 사우디 인, 이집트인이 되었다. 이슬람국가에서 자라난 무슬림들에게 기독교로 개종하라고 하면 그의 문화와 전통을 버리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무슬림들이 한국 문화 속에 살고 있으므로 아직 이슬람화되지 않는 한국의 전통을 한국인 무슬림들이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국가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사역하는 방법과 국내에서 사용하는 한국인 무슬림이나 외국인 근로자에게 적용하는 상황화는 좀 다른 문제이다.

상황화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오시었는가를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전에 그 길을 예비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었다. 그러나 그가 오신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엠마오 도상에 있던 제자들이 그가 누구신지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바로 알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무슬림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기적과 가르침을 바로 알기가 쉽지 않다. 코란에서는 이싸 알마시흐가 그냥 인간에 불과하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행하신 일들은 그의 속성을 잘 표현해 준다.

이슬람이 태생적으로 선교적인 종교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이 본래 신앙(종교)과 정치가 결합된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이 전 세계로 퍼져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무슬림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성경과 꾸란을 비교하여 보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무슬림이 복음을 듣게 하는데 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요 우리 모두에게 참 영생과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무슬림들도 알라에게 가까이 가려고 한다. 무슬림들이 영적 차원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하여 꾸란과 이슬람 안에 성령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은 삶의 방식(way of life)이지 영적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동의 많은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이 너무 영적이고 유대인들은 너무 물질적이라고 말한다. 무슬림들에게 마시히(masīhī; 기독교인)가 되라고 하는 말은 무슬림들이 갖고 있는 전통과 문화와 가족을 버리라는 말이 되므로 중동 이슬람 국가에서는 사역자가 무슬림들에게 이 말이 무슨 의미로 사용하느냐고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가 무슬림들 속에서 상황화하려고 하는 것은 해당 무슬림이 복음을 받아들여 개인과 집단과 가족들이 변화(transforming)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풀러 신학교의 마틴 악카드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절차로 요약한다.

 

첫째, 예수를 구주로 믿는 신앙 고백을 그 무슬림 개종자가 고수하는 것이다.

둘째,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의 모범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만일 어느 무슬림이 평소에 모스크에 잘 다니다가 그 모스크 다니는 것을 갑자기 그만 두면 주위 무슬림들은 그가 선교사를 만나 모스크를 그만두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런 외국인 선교사는 그들을 속이는 자로 인식될 것이다. 무슬림이 예수를 구주로 믿었다고 해서 무슬림은 그가 예수를 믿는 믿음을 지키면서 그의 주위에 있는 무슬림들이 그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그들에게 우러나게 하는 것이 상황화의 주 목적이다. 하나님 나라가 그 무슬림들 속에 자라게 하려면 그 개종자가 그가 속한 공동체에 남아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그 개종자가 겨자 씨나 누룩처럼 처음에는 아주 작으나 그가 속한 사회와 제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상황화는 새로운 사회구조(social structure)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상황화 방법론에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나 한국적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상황화가 적합할지는 그 무슬림 개종자가 결정하게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상황화 작업은 해당 문화에 대하여 비판적인 자세를 갖고 언제나 성경에 비추어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그들 문화 중에서 어떤 양식을 따를지 안 따를지는 공동체 회원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선교사는 다만 코치역할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슬림 개종자가 자신이 속하였던 이슬람 공동체와 적대적인 관계를 갖도록 해서는 안 된다. 외국인 사역자가 이슬람을 증오하도록 무슬림 개종자를 부추겨서도 안 된다. 무슬림 개종자들은 기존의 이슬람 사회를 증오하고 이슬람을 폭력의 종교 혹은 사탄의 종교라고 하고 무함마드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면서 이슬람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 교회가 이슬람과 무슬림들에게 너무 엄청난 그리고 그들이 감당하기 버거운 용어를 사용하여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적대적인 관계를 만들어가서는 안 된다. 우리의 할일은 해당 무슬림 개종자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가 찾는 구도의 길과 신앙 여정에서 성경 말씀대로 그가 올바르게 나아가도록 그의 동반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영적 여행을 매일 매일 계속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무슬림들에게 도전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 사회에서 상황화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무슬림 개종자들에게 이렇게 이렇게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기독교인이 한국에 와 있는 무슬림에게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무슬림이다고 하면서 접근해서도 안 될 것이다. 만일 무슬림이 기독교인(Christian)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그가 어떤 의미로 크리스천이라고 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만일 그가 알고 있는 크리스천이란 말이 우리가 알고 있는 크리스천의 의미와 다르면 정중하게 바르게 구별해 줄 필요가 있다. 한국 내 상황화는 전적으로 해당 무슬림 개종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나서 그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유지하면서 우리 기독교인처럼 영적 여행을 할 수 있을지 그가 결정하도록 하게 한다. 무슬림 형제가 복음을 받아들이었으면 그가 기독 신앙을 지키면서 자신의 가족과 주위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데 자신의 역할을 찾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한국인들의 무슬림들에 대한 접근은 나라가 다르고 대상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 나라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역자들이 무슬림에 대한 접근에서 무슬림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모스크 기도에 참석하고 코란을 사용하고, 이슬람의 신앙고백을 암송하고 그리고 교회가 하나가 되느냐 등 논란이 되는 부분에서는 크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무슬림이란 용어 사용할 수 있는가?

한국인 중 무슬림에게 사역하는 사람이 무슬림에게 자신을 (이싸를 따르는) ‘무슬림이라고 소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슬림 배경의 기독교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이 용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둘째, 모스크에 가고 코란을 사용할 수 있는가?

무슬림들 중 기독교인이 된 사람은 모스크에 가거나 코란을 사용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더 잘 안다. 그래서 무엇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는 그가 결정하게 한다. 아프리카에서 일부 MBB들이 아직도 모스크에 나가면서 성경과 코란을 동시에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성경만을 읽고 배우며 다른 예수의 제자들과 교제를 하는 것이 영적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셋째, 이슬람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은 이슬람의 신앙 고백을 할 수 없다. 이슬람 신앙 고백의 첫 구절 알라 이외에 신이 없다가 오직 한 분의 신을 믿는다는 말로 해석하면 우리가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무함마드가 알라의 메신저라고 하는 이슬람 신앙고백의 둘째 구절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만일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무함마드가 알라의 예언자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마치 칼리파 알마흐디가 네스토리아 총대주교 디모데 1(823)에게 무함마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예언자들의 길을 걸었다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역자는 무슬림에게 무함마드는 알라의 메신저라고 하는 말 대신에 이싸 알마시흐는 알라의 칼리마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넷째,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는가?

필 파샬이 방글라데시에서 상황화된 접근으로 복음을 접한 MBB들의 모임이 기존의 교회들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 사역자들로부터 들은 바 있다. 상황화된 접근으로 모임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그들의 상황화적 접근에 수정이 필요한 것은 기존의 교회와 교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이 되기 위하여 막힌 담을 허무시었다(고전 12:12-27).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써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라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이유이고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속에 계속 성육신되시는 것이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5. 한국의 교회와 이슬람학 훈련 프로그램

 

성경과 코란의 뿌리가 같다고 하는 사람이나 이슬람의 알라와 성경의 하나님이 같다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정확히 모르거나 코란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무슬림과 의 공존을 주장하면서 코란의 알라와 성경의 하나님이 같다고 하는 사람은 성경의 메시지 핵심이 코란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므로 무슬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무슬림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구원의 메시지를 대상의 필요에 맞게 전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는 코란에는 없고 성경에만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무슬림을 대하지만 근본주의 무슬림과 온건한 무슬림을 구별해야 한다. 아랍 무슬림들 중에는 오사마 벤 라덴을 동정하는 무슬림들이 있고 무슬림들 중에는 극단주의자와 근본주의자(이슬람주의자)가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무슬림들은 해당 정부를 향한 테러를 하기도 하지만 외국인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테러를 한다. 무슬림들은 이런 극단적인 테러를 하는 이유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중 잣대로 국제 질서를 망가뜨린 것 때문이라고 하므로 테러 원인이 무슬림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무슬림들 사이에서 이런 극단적인 무슬림과 문화적인 무슬림들 간에 갈등이 있다. 그러나 이슬람의 궁극적 목적은 세계를 이슬람화하고 세계의 여러 종교를 지배하는 것이다.

한국의 교회는 무슬림 사역에 헌신한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그 훈련은 우리가 섬길 사람들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증거가 기본 동기가 되어야 한다, 그 훈련에는 통문화 역동성(Cross-cultural dynamics), 이슬람학(Islamics), 무슬림 속에서 적절한 기독교인의 증거 방법들, 전문 영역(개발, 교육, 의료 등), 성경 지식과 변증법, 제자 훈련과 기도(영성) 등이 포함된다. 한국에 기독교인의 다각적인 이슬람학 훈련 프로그램(Christian Islamics Training Program)으로서 1년 과정의 이슬람학 과정이 개설되어야 한다. 최소한 이슬람 지역에서 3년 이상 무슬림 사역을 한 자이고, M.DivTh.M 학위를 가진 자로서 현장에서 사역을 하면서 무슬림 사역의 학위과정(D.Min/ D.Miss in Muslim Ministries)을 이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면 더욱 적절하다. 그들이 사역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성경적으로 해결하는 해법을 개발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학위과정에서 개설할 강좌의 제목들을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Level(1): 기독교 신앙의 성경적 기초와 꾸란 형성과정, 이슬람의 교리와 기독교 진리, 이슬람 세계의 최근 동향, 한국의 이슬람과 잘못된 어휘 번역

Level(2): 이슬람 국가의 기독교인을 위한 목회적 관심, 영적 전쟁과 기도, 이슬람 역사와 기독교의 신학적 논쟁, 통문화의 역동성, 무슬림 세계관과 성경(다리와 장벽)

Level(3): 무슬림에게 효과적인 전도와 증거 방법들, 이슬람법의 기초와 무슬림 여성의 혼인제도, 꾸란의 바른 해석과 주석 연구, 7-9세기 초기 이슬람과 기독교의 만남

Level(4): 무슬림 환경에서 무역과 금융, 이슬람 근본주의의 강령과 테러, 이슬람 국가에서 딤미(dhimmi) 제도와 교회에 대한 악영향, 무슬림을 위한 성경의 스토리텔링

Level(5): 커뮤니티 개발과 해외 개발 단체 간의 네트워크, 이슬람과 기독교 여성의 지위와 권리, 민속 이슬람과 능력대결, 성경의 권위와 기독교인의 변증법

Level(6): 지역 교회와의 통합과 재사회화(resocialization)를 위한 개종자 교육, 이슬람법(샤리아)에 근거한 정치 제도 하에서의 기독교인의 삶, 성경과 꾸란 비교(성경의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교회론과 상황화, 개종, 윤리 등)

Level(7): 수피즘, 무슬림 속에서의 상황화, 이슬람 회의 기구(OIC)의 역할, UN의 인권 선언, 소득 발생을 위한 프로젝트로서 개종자의 직업 훈련

Level(8): 선교 현장과 한국의 필요에 적합한 논문 작성

이상과 같이 편의상 1단계부터 8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마다 최소한 4가지 주제를 설정하여 보았다. 한국 안에서 사역할 전문 요원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여 강의 내용과 주제를 수정할 수 있겠다. 위 주제들은 주로 해외 이슬람권에서 사역하는 데 필요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열거해 보았다. 이 같은 이슬람학 훈련 프로그램은 선교적(missiological)이고 목회적(pastoral)인 긴박성에서 실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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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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