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열심히 기도로 동참해 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전도여행 다녀온 보고를 드려야 겠습니다. ^^
저번주 주일 저녁부터 어제(26일 새벽)까지 7박 8일 동안 콜라푸르 지역 전도여행을 잘 다녀왔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출발 하기 전 저희 마히마의 팀에는 이런 저런 어려움들이 있었고, 또 저희 선ㄱ사들 역시 정착과 재정착, 비자 연장 등 쉽지 않은 상황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먼저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나머지를 해 주시는’ 주님을 믿고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을 향해 떠났습니다.
청년이 열 여섯명, 그리고 수라지 목사님과 공숙자 목사님, 저, 이렇게 열 아홉명은 왕복 1100키로미터를 버스로,
그리고 콜라푸르 근교의 시골과 오지들을 700키로미터 도합 1800키로미터를 차량으로 이동하며 쉬임 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희 마히마 팀은 한국의 단기팀들로부터 배운 여러 무언 드라마들도 활용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극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큰 달란트를 갖고 있습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면 먼저 전기를 설치하고 찬양을 크게 틀거나 연주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모이면 복음적인 내용의 코미디 단막극을 상영, 사이 사이에 강력한 메시지의 설교, 마지막에는 기드온 출판사의 성경을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죠.
때로는 (어른들이 모이는 것을 기다리며)어린이들을 모아 성화 드로잉이 되어있는 그림들과 조각 색연필들을 나누어주고 색칠 공부 대회를 열어 상을 주기도 합니다. 하루에 평균 150Km를 이동하며, 두 마을에서 세 마을씩을 이렇게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떤 마을에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쉬브 세나’(시바신의 군대)라 불리는 강력한 근본주의 젊은이들이
“자이 시바지, 자이 바와니!(시바 신 만세, 여신 만세!!)” 또는 ”짜뜨라바티 시바지 끼 제이!“
(차트라바티 시바지 – 힌두교를 보호했던 것으로 유명한 마라티의 전설적 왕- 임금님께 승리를!)을 외치며 우리를 방해하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거의 돌이 날아올 분위기에서 미련 없이 철수를 했는데(마10:23), 서너 명의 청년들이 오토바이로 우리를 계속 추적하기도 해서 약간 긴장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면 ”우리 선조들은 박해가 왔을 때 보호하심이 아니라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다!“(행4: 29~31) 라 외치며 다시 짚차 두 대 위에 성경 박스들을 싣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고원지대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우리들을 환영하여, 심지어 힌두교 신전 건물 내부에서도 공연하고 설교한 적도 두 번이나 됩니다. ‘와, 이 사람들이 다신교라 기독교에 대한 개념이 없나 보다.’ 라고 이야기를 하자, 현지인 사역자는 ‘무슨? 바로 얼마 전에도 이 마을에서 우리 중 한명이 집단 구타를 당하고 쫒겨났는데!’ 하더군요. 저는 엠프와 전기가 설치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옛 선ㄱ사들처럼 오카리나로 ‘가브리엘 오브에’(넬라 판타지아로 더 유명해진 곡이죠)나 인도 애국가, 또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의 곡을 연주하며 사람들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보통 풍요로운 평야지대의 사탕수수 농가들은 ‘쉬브 세나’티셔츠를 입은 사람도 많고 힌두교 색채가 더 강하지만,
황량한 고원지대에서 양 치고 불루베리 따며 사는 하층민들은 훨씬 마음이 열려 우리를 황송해 하며 받아들이곤 했습니다. 물론, 고지대인만큼 찾아가기는 더 힘들고 멀었죠. 우리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마지막에 떠날 때 마다 나무 아래, 동네 우물가에 둥굴게 모여 나누어 받은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지역들은 원래 GEM이라는 인도 자생 선ㄱ단체의 간사들이 열심히 사역하는 지역입니다.
이 친구들은 성경책 한 권 갖고 오지 마을마다 다니며 과격하게 복음을 전해 왔는데 그들이 얻어맞고 박해 받은 이야기는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랍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이 우리와 함께 다니며 벼르고 벼르던 마을들마다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며, 우리가 간 후에 방문했던 마을들을 다시 재 양육하려면 정말 바쁘겠다고 기뻐하더군요!
그리고 자신들도 한 지역에 한 두명씩 보내는 것 뿐 아니라 여러 지역을 순회하는 우리 같은 순회 전도 팀 하나를 조직해야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저와 수라지 목사님도 언제든지 당신들을 돕고, 당신들의 팀 조직과 훈련도 도우러 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또한 한 마을이라도 더 사역하고 가자며 원래 일정에서 하루를 전격 연장했습니다.
저는 7일 내내 종일 금식을(음료는 마셨지만)하며 따라다녔습니다.
어차피 거의 출연할 일도 없고, 법적으로 설교나 전도지 나누어 주는 것도 할 수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여호수아의 싸움을 위해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세의 역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처음 3일째까지는 무척이나 힘들었는데, 갈수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임재를 허락하셔서 많은 역사를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날씨도 남인도의 5월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선했구요. 아침 저녁으로 팀원들이 식사할 때 그늘을 찾아가서 중보기도 하고, 간혹 제가 오카리나라도 연주할 필요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역시 사역 중에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한명 한명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또 두고 온 마히마의 가족들과 한인 선ㄱ사님들을 위해서도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3일째 이후로는 평안과 기쁨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금식의 맛을 알아버린 기쁜 전도여행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청년들 중에도 금식하는 이들이 나와 제가 기도할 때마다 바로 옆에서 제가 성경 펴면 자기도 성경 펴고 ^^; 제가 기도하면 자기도 기도하며 그림자처럼 힘이 되어준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제 뭄바이에 돌아왔습니다.
저는 간혹 죽을 먹으며 보식을 시작했지만, 기도할 게 아직도 많고 금식의 기쁨도 너무 커서 할 수 있는 한 소식하며 기도를 계속 해 나가려 합니다. 이명길 선ㄱ사 역시 난두르바에서의 교회건축 사역을 마치고, 펀잡에서 태권도 선ㄱ 훈련을 받고 토요일에 뭄바이에 돌아왔습니다. 25일 토요일은 이명길 선ㄱ사의 생일이기도 했지요. 손정아 사모와 두 아이, 그리고 장모님은 저 없이도 무사히 잘 지냈었구요. 이제 저희 가정과 이명길 선ㄱ사, 이규학 목사님 가정, 또 새로 온 손재호 목ㅅ님 가정의 정착과 비자 연장, 팀의 하나됨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뭄바이에 돌아오니 밀린 일도, 기도해야 할 일도 산더미입니다. 또한 저희의 지도자이신 수라지, 공숙자 목사님의 가정을 위해서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그분들의 영적인 보호 아래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모두가 선ㄱ사로서 항상 구령의 열정에 불타, 하나님께서 전도할 문을 열어주셔서 더 많은 전도여행을 일생에 하게 하시고, 인도의 모든 마을에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해 주세요.
지금까지의 인생 중 가장 영광스럽고 행복했던 한 주를 마치고, 여러분의 기도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ps.
사진은 우리가 철수할 때 나무 아래에서 기드온 성경을 보는 마을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진들은 페이스북 비밀그룹 사진첩으로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ps. 2
그리고 저와, 인도 선ㄱ ㅅ들을 위해 기도하는 오프라인 중보기도 모임이 있습니다. (인도 비전그룹)매주 토요일 오전 열시 반에 서울 4호선 상계역(또는 7호선 중계역) 근처 옥토 감리교회에서 12년째 모이는 중입니다.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은 김영수 전도사님(01064896926)이나 정덕영 목사님((01056565812)께 연락 주세요! 맛있는 점심 매주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