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하 목ㅅㅏ의 인도 이야기 – ‘ B 할머니 이야기'(6월 첫째주)

309
0
SHARE

965464_662650920415868_1226144625_o.jpg

찬미 예수님! 

벌써 열흘정도가 지나갔군요. 라오스에서 아이들이 납치된지.. 전직 새터민 학교 교사로서, 당연히 우리 학교에 입학 했을 아이들이 북송된 후로는 그 아이들을 위해 많이 기도하고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아이들 중 몇은 제 제자 중 하나의 친구들입니다. 

나이로나, 신앙으로나, 관계로나, 분명 제가 섬기던 하늘꿈 학교에 왔을 아이들이죠.. 계속해서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또, 인도 선ㄱ사로서 잠시 북한 이야기를 해도, 좀 이해해 주세요. 

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는 인도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겠습니다. 그것이 인도 선ㄱ를 위해 기도해 주시며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겠지요.

많은 게 정리된 한 주였습니다. 
화요일에는 장모님을 모시고, 차를 한대 랜트하여 봄베이 시티 투어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부터는 학교 출근(아이들 방학은 아직 한주 더 남았지만 교사는 출근),
언어 공부 시작, 집 주인과 만나 계약 연장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 시작, 심방 시작 등 
일상모드가 여러 면에서 재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특히 학교가 개학을 맞이하여 페인트칠도 해야 하고, 너무 오래되고 더러운 책상도 바꿔야 하는데 견적이 약 200만원정도 나와 공숙자 목사님과 저희가 고민이 컸던 차에, 절대로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하신 한 페친 자매님께서 1000불을 후원해 주시는 바람에(바로 학교로 토스!) 급한 문제가 해결되는 감사한 일도 있었습니다. 

장모님은 다음주 월요일 밤 비행기로 가시는데, 그 전에 김치와 피클도 담궈 주시고 이런 저런 정리들을 해 놓아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가슴이 짠합니다. 저희의 인도에서의 새 출발을 행복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물론 슬럼 심방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B 할머니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힌두교에는 데바다시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남인도에서는 ‘엘루마’라고도 합니다. 초경 전의 아이들을 성적으로 매력있게 보는 이상한 문화 + 입 하나라도 덜려는 가난한 사정 + 힌두교 신앙이 만든 괴물같은 제도죠. 부모들이 열살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들을 힌두교 신전에 바쳐서 브라만들이 성 노리개로 삼는, 정말 구역질이 나는 제도입니다. 

B 할머니는, 우리교회에 같이 다니시는 G 할머니와 한 마을에서 같은 날에 엘루마로 팔려버렸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무엇을 격고 있는지도 모르며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다가 열 서너살 쯤 되어 ‘퇴물’이 되어 신전에서 마피아에게로 팔렸습니다. 

그리고 뭄바이 사창가에서 진짜 매춘부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B 할머니에게도 사랑이 찾아옵니다. 

인도 전통무술 ‘깔라리 파이트’의 고수였던 한 마피아가(이제부터는 그냥 ‘엉클’이라고 표기) 봉 하나를 휘어잡고 올라와 그 슬럼을 평정해 버린 것이죠. 그리고 B 할머니를 자신의 여자로 삼아버린 것입니다. 저도 약간 봉술에 일가견이 있는지라, 엉클네 집에 심방가서 흥미있게 그 봉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300년간 물려받은 된 거라고 합니다. 

원래는 2미터 쯤 되었을 봉이여러 해 닳아서 1미터 50정도밖에 안 되더라구요. 양 쪽 끝에 코브라 모양의 쇠 코어가 감겨있는, 멋있고도 무시무시한 봉이었습니다. 원래는 하얀 색이었을 봉이 구리같은 빛을 무시무시하게 내며, 관리도 엄청 잘 한듯 반질반빌 했습니다. 300년간 그 봉에 맞아서 죽은 사람은 몇이었을까요? 

제가 만났을 때 엉클은 나이 70대에 몸무게가 250키로 가량 되어, 이제 침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만, 젊은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빛에서는 보스의 풍모가 엿보였습니다. 당신이 봉술 연습을 하지 않은지가 이제 10년 쯤 되었다고 하시는데(즉, 50대 후반까지는 매일 수련을 하셨다는 뜻), 이제 자기 아들은 이 길을 걷지 않는 만큼, 이 봉은 내가 죽으면 함께 묻어달라고(힌두교 – 화장, 기독교 – 매장) 하더군요. 

아마 젊어서 죽도록 수련하던 몸이, 나이가 들면서 약간 게을리하다가 확 망가진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무림의 용어로 ‘주화 입마’라고 하던가요.. 아무튼, 아직 엉클이 전성기셨을 때, B 할머니는 행복한 아내로 살았습니다. (최근에는 복음을 받아들여 남편을 전도하기까지 했지요.) 

하지만, 엉클과 B 할머니는 그토록 서로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매춘 생활의 휴유증으로 인해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엉클은 괜찮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어서 다른 여자 만나서 아이를 가지라고 했지요. 엉클은 뒤늦게 결혼을 했고, 집안에서의 지위는 당연히 B 할머니가 첫째 부인, 새 부인이 둘째 부인이였습니다. 

근데 그러다가 새 부인이 아이들을 낳기 시작하며 조금씩 집안에서의 위치가 역전이 됩니다. 아직 힘이 있던 엉클은 슬럼 안, 집 가까운 곳에 방 두칸을 마련하여 한 칸은 B 할머니가 살게 하고, 한칸은 새를 놓아 B 할머니가 최소한의 생계(월세 한국돈 4만원 정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심방을 가면 B 할머니 댁에서 있다가, 가기 전에 잠시 엉클네 들려 인사하고 가곤 했는데, 이미 저를 처음 만날 때 쯤에는 움직이지 못하셨던 엉클은 B 할머니의 방문을 너무나 기쁘게 맞이하곤 했습니다. 둘째 부인은 한번도 뵌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알아서 자리를 피해 주셨던 듯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엉클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찾아갔었습니다. 간단한 심방을 마쳤는데, 그때 분위기가 벌써 B 할머니는 가족 중에 아무것도 아닌, 그냥 늙은 첩 같은 대접을 받는 듯 했습니다. 하객들 중 누구도 B 할머니를 신경 쓰지 않다가, 겨우 저희 외국인 하객과 교회 청년들이 오니까 좀 맞아주는 분위기였어요. 

(저는 그날 둘째 부인을 처음 봤습니다. – 그분은 울면서도, 남편이 자기가 죽으면 코브라 봉을 저에게 주라고 했었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전달이 잘 안되서 부하들이 관에 같이 묻었답니다. – 태권도 사역에 잘 쓸 수 있었는데 ㅠㅠ 암튼 저는 선ㄱ사로서 봄베이 반두트 슬럼의 코브라 봉의 계승자(?)가 될 뻔 했었던 것입니다. ^^;)

그 장례 이후로 3주간 교회에 나오지 않아서 몇몇 청년들과 공목사님과 함께 심방을 갔었는데, 산전수전 다 격었던 B 아줌마가 우는 겁니다.. 

‘난 아들도 없고, 딸도 없어, 고향도 없고, 남편도 없어.. ‘ 꺼이 꺼이 우는데 마음이 너무 상하더군요. 우리는 그렇게 위로했습니다. ‘왜? 인드레쉬도 당신 아들이고, 조나(원목사)도 당신 아들이고, 아이작(이명길 선교사)도 당신 아들이지..’ 그날 심방은 그렇게 울다 끝났습니다. 

이제 정말 아무도 찾는 이 없는 가난하고 불쌍한 할머니가 되어버린 거에요. 그래서 신경 써서 기회 될 때마다 방문하고 쥐들이 오가는 슬럼에서 차려주시는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드리곤 했었는데, 이번 수요일에는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둘째 부인이 찾아와서 B 할머니에게 울며 사과를 했다는 겁니다. 사실 둘째 부인이 너무 무겁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남편의 뒷바라지가 너무 힘들어서 빨리 죽도록 힌두교 마법사를 고용했었다는 거에요. B 할머니 영향으로 엉클도 대충 기독교인이었기에, 둘째 아내도 아주 명목상으로는 기독교인이기는 했는데 말이에요. (장례식도 기독교식이었음) 아마 저주 굿 비슷한 걸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쩌면 독약같은 게 처방되었을 수도 있고.. 인도의 빈민들 간에는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심방을 마치고 갈 때, 수라지 목사님 손에 50루피(한국돈 천원)를 쥐어주기에 이게 뭐냐니까 엉클이 죽기 전에 ‘왜 목사님들이 심방와서 돈을 주냐? 앞으로는 니가 줘야 한다. 라고 했었데요..’ 그 코브라 봉 건도 그렇고.. 엉클이 나를 사랑하고 기억했구나 싶었습니다. 

그 집을 심방할 때는 항상 30이 안 되 보이지만 몸이 골을 데로 골은듯한 현직 매춘녀 한명이랑 한 50쯤 되어 보이는 여장 남자(히즈라) 한명이 함께 와서 말씀도 듣고 기도도 받다가 식사 나올 때 쯤 사라집니다. 

모르는 아저씨 손에 끌려가며 엄마 아빠를 부르짖던 일고 여덟살 된 어린이,
자기가 무슨 일을 격는지도 모르면서 브라만 남자들의 노리개가 된 열두살 소녀, 
신전에서 쫒겨나며 마피아들의 손에 의해 매춘굴에 던져진 슬픈 청소년,
연인의 오토바이 뒷자석에 앉아, 나에게도 이런 행복이 있구나 하던 연인,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자신의 몸을 한하며, 애써 웃으며 남편에게 첩을 권하던 아내, 
새 부인이 낳은 아기를 바라보며, 짐을 싸서 슬럼의 한구석으로 옮기던 중년의 여인.. 

B 아줌마의 깊은 눈을 응시할 때는, 그 모든 장면들이 내가 격은 일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마피아, 포주, 전통무술가, 신전 창녀, 마법사, 늙은 히즈라(여장 남자), 둘째 부인.. 각각의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어떤 두려움과 슬픔들이 묻어날까요? 

이렇게 다양하고 슬픈 배역들의 이야기 속에 목사와 선교사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아리고 또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새터민들과 3년을 함께 호흡하고 왔기에, 사랑하는 법을, 
슬퍼하는 법을 먼저 배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저는 주님의 귀한 백성들 가운데 있습니다.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주님의 평화 

PS. 

엉클과 B 할머니의 가장 예쁘고 행복했던 시절의 유일한 사진 한장입니다. 
B 할머니네 동네, 기도하는 B 할머니와 집 내부..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