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하 목사의 인도 이야기 –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석정이(2013, 6월 셋째주)

319
0
SHARE
이번 주에는 장모님께서 귀국하셨습니다. 

인도까지 오셔서 한달 간 께 함께해 주신 장모님. 손자들도 돌봐 주시고, 김치와 불고기도 많이 만들어서 동료 한국인 선ㄱ사님들까지 나누어 주신 김순자 권사님께서,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자고 일어나서 할머니가 없으면 너무 슬플까봐, 늦은 밤에 고생 고생해서 석정이를 공항까지 데려갔습니다. 할머니와 손 흔들며 씩씩하게 헤어져서 집에 돌아왔다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는 넓지도 않은 온 집안을 다니며 ‘할미,, 할미.. ’를 찾으며 울었습니다. 복도에서 무슨 소리라도 나면 현관 앞으로 달려 나가기도 하고.. 그래서 아기를 달래던 아내까지 친정엄마가 그리워 함께 울어버리는 슬픈 순간이 있었습니다. 

요새 석정이는 핸드폰으로 친할머니(제 어머니 이평숙 사모님) 사진을 보여주면 사진에 뽀뽀를 하고, 역시 할미, 할미.. 를 부릅니다. 엊그제는 고모(제 여동생 원정인 선생)와 잠시 통화를 하고 나서 아직 말도 잘 못하는 두 살짜리 아기답지 않게, 뭔가 아련한 그리움에 싸인 표정으로 한참을 앉아있기도 했습니다.전화로 귀국하신 장모님을 바꿔드렸더니 손짓 발짓을 하며 ‘우어 우어 할미 할미 우어 히히 우어 어엉.. ’하고 뭔가 부지런히 이야기하는데.. 귀여우면서도 차마 계속 바라보기 어려웠습니다. 

아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겁니다. 

또 한번은 자기를 귀여워 해 주시는 공숙자 목사님께 제일 아끼는 젖병과 아기 담뇨를 내밀며 ‘할미..? 할미..?’라고 부르더군요. 그런데 한참을 행복하게 봐 주시던 공 목사님이 잠시 뭘 가지러 나가시자마자, 석정이가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젠 이별 자체가 두려운가보다.. 
부모로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사실 신학생시절, 전도여행 중에 정말 안타까운 선ㄱ사 자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며칠간 같이 살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이도 있었고, 우리가 있어도 소 닭 보듯 티브이에서 고개도 안 돌리는 아이도, 정성스럽게 준비해 간 선물도 건성으로 받고 눈도 안 마주치던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슬픈 작별과, 간이라도 빼줄 듯 사랑하다 열흘 만에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던 단기 사역팀의 배신(?)을 격었던 것일까 하는 마음도 듭니다. 


선ㄱ사의 자녀들만이 갖는 이별의 정서.. 
그리고 우리 석정이도 그 아픈 길에 들어섰다는 게 이제 실감이 납니다. 

아무것도 섞지 않은 순수한 슬픔. 저는 그 맛이 생소하지 않습니다. 

제 탈북 청소년 제자들은 듣고 나면 며칠을 기도하지 않고는 소화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갖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거나 꼭 껴안고, ‘선생님도 알아, 사랑해.’ 라는 말을 공허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배나 많은 아픔이 필요했습니다. 

신학생 시절, 막 사모님이 돌아가셔서 일곱 살 난 아들과 함께 일시 귀국하셨던 한 선ㄱ사님이 기억납니다. 그냥 텅 빈 표정으로, 역시 말 한마디 없는 아들을 끌어안고, ‘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고 하시던 그 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전도단 시절에는 인도 땅에서 자녀를 잃으신 이귀영 간사님의 눈물을 보았고.. 
또 사랑하는 동생(최창호 형제)을 인도 땅에 묻고, 잠시 이벤트적인 추도 열기가 지나간 후 몸부림치며 슬퍼하던 최종호 선ㄱ사님을 만났었습니다. 저희 감리교단 노원 지방에도 아들을 몽고 땅에 묻고 당신도 사모님과 노구를 이끌고 선ㄱ사로 나가신 김여일 목사님께서 가까이 계셨고요. 

양화진에 가면 수많은 어린이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조선 땅에서 아이를 잃고, 그 아이들을 이 땅에 심은 선ㄱ사님들, 그 파란 눈의 천사들이 흘린 눈물로 젖어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사실 그 헤어짐, 그리움의 무게는 아직도 그려지지 않습니다. 차마 각오하기에는 너무 큰.. 

눈물을 흘린 만큼만 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분명 충성을 바친 만큼만 외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피를 흘린 만큼만 주장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요즘 선ㄱ사라는 말이 쉽게 쓰여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엔 찬양 사역자라고 한 걸, 찬양 선ㄱ사, 영상 사역자는 영상 선ㄱ사, 청소년 사역자도 청소년 선ㄱ사, 군대가는 청년도 군 선ㄱ사.. 선ㄱ사 대 풍년 시대입니다. 물론 모두가 선ㄱ적인 마인드로 살아야 하겠지만, 이제는 낭만적인 열정을 넘어 뭔가 세련됨까지 느껴지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선ㄱ사의 삶은 핑크빛 길이 아니라 핏빛 길입니다. 
저는 이제 먼 길의 첫걸음을 내딛었을 뿐입니다. 두 살짜리 아들과 아내의 눈물에서.

사실 세상에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거나, 조국을 떠나거나, 나그네가 되거나, 병에 걸리는 것 같은 비극과 아픔이 무궁 무진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악한 정권 때문에, 이상한 종교나 철학 때문에.. 등 이유도 여러 가지지요. 

하지만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그 슬픔 속으로, 
겸손하게 순종하여 들어가는 것이 선ㄱ사의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흘려진 눈물은, 
절망 속에서 흘려질 수많은 눈물을 그치게 할 것입니다. 

두 살 난 어린 아들은 생애 처음으로, 주님 때문에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앞으로 잃어야 할 것들을 잃어가는 먼 길을 온전히 완주하게 하시고, 
그 대신, 주님께서 잃어버리신 영혼들이 찾아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주님의 평화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