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하 목ㅅㅏ의 인도 이야기 ‘두 번의 잔치’(2013년 6월 셋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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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청년 ‘지뚜’의 형님이 결혼하게 되어 저와 청년들이 달려갔습니다. 그 형제의 집은 뭄바이에서 가장 질이 낮은 슬럼 중 한 곳에 있었습니다. 이번 결혼식이 올려진 ‘두르바’ 슬럼은 거대한 매춘굴에 인접해 있고 높은 인구밀도와 최악의 위생 상태를 자랑하는 곳이지요. 관광객이나 땅 밟기 팀은 죽어도 들어갈 수 없는 동네입니다. 제일 좋은 양복을 차려 입은 이명길 선ㄱ사와 정치가들이나 입는 흰 인도 정장에 까만 조끼를 입은 저는 ‘외국인들이 이 밤에 이 골목에 발을 들여놓으며 살기를 바라다니 ^_^;’ 따위의 농담을 주고 받으며 용감하게(사실은 친구들 뒤를 졸졸 따라) 들어갔습니다. 저희가 들어가자 식이 열리는 좁은 마당, 1층, 2층, 옥상 위나 철제 계단 위에까지 바글데는 온갖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더군요. 

결혼식 음식은 다 식은 튀긴 빵(뿌리), 그리고 치즈(빠니르)가 아주 간혹 눈에 띄는 묽은 콩 카레가 다였습니다. 맛도 없는 걸 몇 번이나 더 권하는 청년들. 저와 이 선ㄱ사는 미리 양 조절을 해서 첫 접시를 담았습니다. 그래야 두 번 정도 ‘더 달라’고 해서 대접하는 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거든요. 기쁜 얼굴로 배가 터지게 먹어줘야죠. 지금은 몬순 기간이라 매일 밤낮으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그래서 결혼식도 아주 뜸합니다. 굳이 이 기간에 한 건 예식용 천막이나 의자 등의 대여료를 아끼기 위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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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들 한가운데 들어가서 땀과 비에 범벅이 되도록 춤을 추며 신랑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말쑥하게 빼입은 외국인 둘이 열심히 춤을 추니, 열광적인 환호성과 함께 춤판이 달아오르더군요. 순백의 가운을 입고 장엄한 오르간 소리 속에서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을 받으며 성찬을 보좌하던 젊은 목사는 완전히 사라지고, “여기 조금 뚱뚱한 빈민 한명 추가요!” 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나이 이 몸매에 10대 20대 청년들과 밤새도록 박수를 받아가며 춤을 출 수 있다는 것도 영광이다! 농담을 해 가면서요. 

그러나 드디어 우려하던 상황이 터졌습니다. 슬럼의 지붕들 사이로 어설프게 쳐 놓았던 탠트들이 폭우에 늘어지면서, 결국 곳곳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폭우가 계속 오자 우리 춤판의 바로 밑에 있던 하수구가 터져 역류하기 시작하여, 식장에는 시큼한 시궁창 물이 발목까지 차고 만 것입니다.(이것까진 예상 못했죠 ㅠㅠ) 어지간해선 위생문제로 까다롭게 굴지 않고, 결혼식의 춤판을 물리지도 않는 이 친구들조차 다들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제가 제 결혼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신랑과 신부에게는 평생에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 그 춤판이 유전에서 석유가 솟아나듯 식장 한복판에서 뿜어 나오는 시궁창으로 흐지부지되다니.. 그래서 이명길 선ㄱ사와 눈짓을 교환하고, ‘포화 속으로’가 아니라 ‘진탕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그나마 센들이지만, 구두를 신은 이명길 선ㄱ사는 정말 곤란 했을 텐데.. 그리고 저희 둘과 신랑 동생(지뚜)가 죽도록 춤을 추는 가운데, 다른 친구들도 첨벙 첨벙 뛰어들어 감동의 2차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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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한명 한명 포옹하며 헤어질 때, 신랑 사촌(아띠난드)이 정말 진지한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혼식에 왔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차를 갖고 있던 사람 편에 저희를 집까지 보내 주었습니다. 

집에 들어와서는 옷을 벗어 세탁기에 던지고.. 선풍기에 에어컨까지 키며 생각했습니다. 저 친구들은 저기서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데.. 나는 잠깐 있다 와서 에어컨 쏘이며 인터넷 하는구나.. 그렇게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삼일 후, 6월 20일에는 아내가 선ㄱ사로서, 인도에서 첫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카드로 뭄바이에 있는 모든 감리교 선ㄱ사님들(4가정)을 모셔서 제일 좋은 쇼핑몰에서 맛있는 점심 뷔페를 대접하고, 선ㄱ사 자녀들(석정이까지 넷)에겐 비싼 헬륨풍선(하나에 150루피)을 하나씩 안겨서 정말 정말 비싼(3분에 1인당 100루피) 장난감 기차까지 태워주었습니다. 아내의 인도에서 첫 생일인 만큼 오래 모은 비상금을 털어 아내에게 예쁜 금목걸이도 해 주었구요. 존귀한 분들의 축복기도를 받고, 황송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아내와, 존경하는 선ㄱ사님들을 위한 것인 만큼 아깝지는 않았지만, 며칠 사이를 두고 치러진 두 개의 잔치가 너무 격이 크지 않나 하는 아픔이 살짝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행사를 마치고 행복한 피로감에 쌓여 집에서 쉬고 있던 밤늦은 시간,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우리 마히마 교회의 청년들이 케익과 감자튀김, 콜라를 사 들고 깜짝 파티를 온 것입니다. 

Happy birthday to you ~
Happy birthday to you ~
Happy birthday dear SAMONIM ~Happy birthday to you ~

We are glad God made you ~
We are glad God made you ~ 
We are SO~~~~ glad God made you~
Happy birthday to you~’ 

수라지 목사님, 공숙자 목사님, 그리고 결혼식에서 함께 춤을 췄던 청년들, 콜라푸르 전도여행의 전우들, 숱한 슬럼 심방의 동반자들.. 그 얼굴 하나 하나가 다 모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두 번의 생일 축하를 받았습니다. 정말이지 녹초가 되었지만, 이게 정말 사람 사는 맛이지 싶더군요. 기억해주고 찾아와 준 친구들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번에는 밤이 늦어 춤판을 벌이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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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결코 선교전략이나 지역사회계발 계획을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언어도, 성품도, 경험도 부족합니다. 할 수 있는 건, 반겨주는 이들을 찾아가는 것 정도입니다. 저를 아끼시는 분 중에는 ‘야! 인도의 엘리트들이나 떠오르는 중산층을 잡아야지 슬럼에서 뭐하는 거야! 그것도 낭비고 영적 허영이야!’ 라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서른한살에 벌써 엘리트나 중산층 찾아가면, 60대에는 체력도 안 되고 엄두도 안 나서 슬럼에는 못 갈 것 같습니다. 환갑을 맞이하신 우리 아버지(원성웅 목사님)께서 폭우를 맞으며 슬럼에서 춤추시는 건 저도 잘 상상이 안 되거든요. 그러나 지금 이 사람들을 만나면 나중에 다른 이들을 만날 수도 있고, 또는 이들의 삶이 바뀔 수 도 있고.. 아니면 계속 가난한 사람들과 있게 되더라도 해오던 거라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속편하게 생각해 보려 합니다. 

이렇게 저희 가정은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행복합니다. 
항상 기억해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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