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기사>
“칼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내가 그 칼날을 향해서 나아가리다. 누가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나에게는 오직 ‘일사각오’일 뿐이니라.”(주기철 목사의 설교 <오종목의 나의 기원> 중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며 “일사각오”의 순교의 길을 걸었던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가 성탄절 안방을 찾아왔다. KBS1TV는 25일 오후 10시 성탄 특집 다큐멘터리 ‘일사각오 주기철’을 방영했다.
‘소양(蘇洋)’ 주기철 목사는 오산학교에서 세례를 받은 후 ‘기독교를 철저히 신앙한다’는 의미로 이름을 바꿨다.진해 웅천에서 평북 정주 오산학교로 유학을 떠난 주기철은 졸업 후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1915년 ‘조선예수교대학’ 상과대 2기로 입학했지만, 안질이 심해져 낙향하고 만다. 이후 1919년 만세운동을 벌이다 헌병대에 연행되기도 했으며, 이듬해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주님 가신 길’을 뒤따르기로 한다.
1922년 조선예수교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한 주기철은 당시 지역별로 찢겨 있던 학교 분위기를 일신하고, 양산읍교회에서 조사(지금의 전도사)로 사역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지만, 함께 공부하던 이들 중에는 장로회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안 가결을 선포한 홍택기가 있었다.
한편 ‘일사각오 주기철’은 주기철 목사의 아들 주광조 장로가 지켜봤던 시대의 풍랑과, 일본의 거대 권력 앞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주기철 목사의 삶을 다큐드라마로 재구성했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 주기철 목사는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가족을 뒤로한 채 신사참배 반대라는 일사각오의 길을 오롯이 걸었던 아버지를, 당시 13살이었던 아들 주광조는 원망했다. 가족을 희생시키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아버지가 지키려 했던 신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70여 년 전 가시덤불 같은 시대상황 속에서 고난을 겪었던 아버지 주기철과 아들 주광조의 이야기는, 오늘날 가해자의 땅 일본에서 주기철의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아버지와 그 아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일본인 스미요시 목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쓰나미가 덮친 후쿠시마로 떠났다. 그의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은 70여 년 전 일제에 저항했던 한국인 주기철 목사였다. 아들 스미요시 겐은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라는 유산을 만나면서, 자신의 아버지 스미요시 목사를 이해하게 된다.
권혁만 PD는 “한국교회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믿음의 선배 주기철 목사는 죽음으로써 신념을 지켰고,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일제에 항거했다”며 “광복 70년인 오늘날, 주기철 목사가 흘린 피와 나라를 사랑의 마음은 신념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