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디 아카펠라 선교팀 ‘쉐마 인디아’”(원정하 목사의 인도 이야기 2016.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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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지난 1월 6일부터 14일까지 ‘쉐마 인디아 1기’ 단기 선교팀이 다녀갔습니다. 제 모교회인 옥토 감리교회에서 4년 만에 보내준 첫 팀으로, 힌디 찬양들을 아카펠라로 준비한 놀라운 팀이었습니다.
(가는 곳 마다 힌디 아카펠라로 찬양을!)

(‘크리슈나 스틸’ 슬럼에서도)

대체로 단순하거나 좀 우울한 분위기의 인도 찬양들도 중창과 아카펠라로 불려지자 의미는 전혀 상하지 않으면서도 훨씬 환하고 밝아졌습니다. 하지만 어두웠을 때 보다, 더 많은 분들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 옷을 입은 한국 청년들의 어색함 없는 힌디 아카펠라 찬양들. ‘쉐마 인디아’ 팀은 슬럼, 학교, 공장, 교회들 뿐 아니라 버스, 기차, 마차, 해변에서도 열렬히 환영받았습니다.
(뭄바이 마린 드라이브 해변에서도)


(비즈니스 사역의 현장, 오토스마일 카센타에서도)

(MK – 선교사 자녀 – 학교에서도)

이것을 위해 팀원들은 몇 주간 매일 모여서 뜻도 모르는 힌디 가사를 외우고, 악보화 되어있지도 않은 찬양들을 유투브로 듣고 기보해서 화음까지 만들어가며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카카오톡이나 070전화 등,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첨단의 방법으로 수시로 선교지와 커뮤니케이션을 했습니다.
(단기팀과 선교현장, 예전보다 쉽게 연결됩니다.)

저는 청년 시절, 단기 선교를 가면(01~11년도) 처음 가 보는 (그리고 아마도 다시는 못 올)곳에서, 현지어도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된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고 드라마를 하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현지어도 못하고, 지역 문화에 맞는 콘텐츠도 부족했으며, 선교지와의 커뮤니케이션도 훨씬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삶은 끊이지 않는 전도여행)

그나마 약간 억지로 제공된 듯 한 무대에서, 특송 비슷하게 주어진 15분, 그것을 위해서 몇 달을 준비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온갖 복장, 묵직한 CD플레이어, 무거운 예비 베터리들, 파손을 대비해서 복사해 놓은 여분의 CD, 거기에 때로는 기악 연주나 태권도, 부채춤 등을 대비한 각종 물품들까지 한 짐을 나누어 메고 다녀야 했습니다.
(마히마 기독 학교에서의 음악수업)

이렇게 해서 딱 한명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결코 헛고생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거룩한 낭비’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헛고생은 아니라고.. 그렇게 팀원들과 스스로를 설득하면서도, 더 나은 컨텐츠와 접근성, 그리고 연속성을 가진 사역을 하게 될 날을 간절히 기도해 왔습니다. 그것은 20대 내내, 저에게 ‘한’과 ‘각오’가 되었습니다.
(누가 현지인이고 누가 선교사고 누가 단기팀인지 구분이 사라지기를!)

요즘엔 상황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YWAM 등 선교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용감하게 시작했던 ‘단기선교’가 최근 15년 사이에 ‘여름수련회’처럼 많은 지역교회들의 연례 사역이 될 만큼 성장했습니다. 이제 단기 팀들의 경험적 성숙과 더불어, 컨텐츠도 점점 발달해 가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달란트 시장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 샤미트 나가르 슬럼)

(달란트 시장 사역, 윤한승 장로님 기증하신 마히마 유니폼을 함께 입고)

(사프나는 자기 달란트 전부를 주고 성경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런 흐름 속에서, 2001년도에 약 만 명 수준이던 한국인 선교사들은 15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고, 신세대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단기선교 경험이 있는 분들입니다. 이제 단기 선교 팀은 선교사와의 더 깊은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제가 단기선교 다니던 시절보다)더 탁월하게 준비되어 오기 시작했습
(선교사와 단기팀을 만나며 자라는 아이들은 복받은 아이들입니다.)


한국에서 온 청년들이 뭄바이의 슬럼과 공장에서 현지인도 깜짝 놀랄 힌디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인처럼 입고, 먹으며 함께 하는 것. 장기 선교사로 파송받기 전까지 열아홉 번의 전도여행을 하면서 간절히 소망했던 팀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식사 재정을 아껴 만화 성경을 사서 나누어준 쉐마 인디아 팀)



‘쉐마 인디아’ – 그들의 아카펠라가 울려 퍼진 곳들은 대부분 제가 정기적으로 수십 번 씩 갔었고, 앞으로도 갈 곳들이었습니다. 또는 이미 깊은 교제와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선교사님들의 사역 장소이기도 했구요. 아무 장비도 없이, 목소리 하나만으로 올려드리는 찬양 속에서, 정말로 어두운 슬럼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리고 현지인 청년 하나와 단둘이서 수없이 방문했던 때의 어둠과 어두움이 씻겨 짐을 느꼈습니다.
(슬럼에 사역에 옷을 기증해 주신 절제회에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금주 금연 브로셔도 나누었습니다.)


어떤 곳에서의 사역은 수십 번의 방문 끝에 열려진 추수의 현장이 되기도 했고, 다른 곳에서의 사역은 복음의 깃발을 꽂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때로는 외로운 성도들을 오랜만에 방문한 눈물의 위로 팀이 되기도 했습니다.
(쉐마 인디아 팀은 선교사 16가정에 각각 진라면 다섯개와 스팸 두개씩을 선물했습니다.)

‘쉐마 인디아 1기’ 팀원들 모두, 그리고 그분들을 위해 릴레이 중보기도와 금식으로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감곡 감리교회, 옥토감리교회 각 속회들, 그리고 페이스북 친구들, 카카오스토리 친구분들 모두..
(최맥 청년은 학비와 생활비를 후원하며 기도하던 ‘라니’학생을 직접 만났습니다.)

또한 팀이 만든 악보들과 음원이 차후의 인도 선교에도 훌륭한 도구로 쓰이게 되기를, 그리고 더 많은 한국의 성도들이 계속해서 이 땅을 밟아주기를 소망하며 편지를 마칩니다.
(좌측부터 김성배 간사, 김영수 전도사, 최맥 형제, 육소엽형제, 강순일 장로님, 우태옥 권사님, 김성희 집사님)

(그리고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진으로 섬겨준 오민식 형제)

(마지막으로 기도와 금식으로 함께해준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화!

PS.
이 영상은 쉐마 인디아 팀이 아주 종교적인 힌두학교(‘사이 홀리 페이스’스쿨)에 초청받아 사역하는 모습입니다. 첫 곡은 라이온 킹의 음악을 요한복음 3장 16절로 개사한 아카펠라이고, 마지막 곡은 인도의 애국가입니다.
https://youtube.com/watch?v=D40qWdXGgoc+

PS. 2
‘쉐마 인디아‘팀이 떠난 직후, ’푸네‘시의 장병욱 선ㄱ사님께서 인도하시는 재능기부 오케스트라 팀(팀장 배요셉 목사님)이 일정 중 3일간 뭄바이를 방문하셨고, 저희 사역지도 들러 주셨습니다. 아카펠라와는 또 다른 성격, 규모의 사역이었지만, 같은 하나님께 같은 영으로 드리는 찬양임을 느꼈습니다. 역시 깊은 감사들 드립니다.
(복음을 전하는 크로마 하프)


(팀을 이끌어 주신 장병욱 목사님)

(마히마 교회의 주일학교와 함께한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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