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부족합니다.”(원정하 목사의 인도 이야기 2016. 2. 20)
찬미 예수님.
벌써 몇 달째, 집에 물이 잘 안 나오고 있습니다. 원래 뭄바이는 인도에선 물이 풍족한 지역에 속합니다. 하지만 작년 몬순에 비가 너무 안 왔고, 그로 인해 저희 지역 사람들은 몇 달 째 ‘시간물’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급수 시간 공지. 수시로 업데이트 됩니다.)
요즘엔 아침에 세 시간, 점심에 한 시간, 저녁에 두 시간씩 물을 줍니다. 그러다가 가끔 점심 급수가 안 나올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아침, 저녁의 급수 시간이 조금씩 늘거나 줄기도 합니다. 급수량의 변동을 알리는 통지문이 붙을 때 마다, 저와 이웃들은 만감이 교차합니다.
심지어 억만장자들이 사는 부유한 아파트들조차 수도가 공급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런 곳들은 반상회(인도에서는 ‘소사이어티’라고 합니다.) 차원에서 유료 급수차를 계속 불러 와서 삶의 질을 불편 없이 유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사는 아파트는 철저하게 제한 급수입니다.
(사설 유료 급수차. 부러워라..)
그러다 보니, 아무리 피곤해도 물 나오는 시간에는 빨래와 설거지, 아이들 씻기기, 온 집의 수도꼭지를 따라다니며 물 받아놓기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만남 중이라도, 시간이 되면 가족 중 한명은 물을 받으러 집에 돌아가야 합니다. 이래저래 저녁에 사역 외의 스캐줄을 만들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애써서 온수기를 달아놓았지만, 온수로 씻는 것은 어렵습니다. 제가 사역 다녀온 사이에 통에 받아둔 물로 씻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샤워기 대신 바가지로 샤워를 한 지 벌써 석 달이 넘었습니다. 무릎 높이의 바케스에 물이 차 있다 해도, 허리 높이의 세면대 보다는 불편합니다. 손을 씻으려면 한 손으로 바가지를 잡고, 한손 씩 씻으며 교대를 해야 합니다. 세수는 더 힘이 듭니다. 머리만 감거나 발만 씻는 것은 물이 많이 드니, 차라리 조금 아껴서 샤워를 하는 게 낫습니다.
(물이 나오면, 일단 받아야 합니다.)
또 물이 나오는 시간, 즉 수세식 변기가 작동하는 시간에는 빨리 용변을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용변 한 번에 귀한 물을 반 바케스 식 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되도록 집 밖에서는 볼일을 안 보려고 했는데, 요즘에는 비교적 물 사정이 좋은 집을 방문하거나, 혹 백화점이나 좀 좋은 식당에 들르면 제일 먼저 용변을 해결하는 품위 없는 습관이 생겼습니다.(심지어 사지 않을 때도 화장실 때문에 들르기도 합니다.)
물이 하루에 세 시간 밖에 안 나왔던 최악의 시절에는 바케트 안에서 바가지로 샤워를 하고, 이미 몸을 씻은 비눗물을 두었다가 그 물로 용변을 처리한 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요즘엔 그 정도는 아닙니다.
(출처, 프랜즈 인도 네팔 2012년판, 근데 저는 여행중이 아닌데..)
저는 매주 서너 번 정기적으로 슬럼을 방문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빈민들과 함께 식사(밤 열시 이후에, 맵고 기름진 비위생적인 음식을 손으로)를 합니다. 사역의 특성상 종종 설사를 동반한 가벼운 열병에 걸리곤 합니다.(위생 및 영양상의 이유로) 때로는 가족들도 체력이 떨어지면 유행성 감기에 걸리는데, 역시 설사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아까운 물들이 더 빨리 소모됩니다. 가족의 건강과 화장실의 물이 이중으로 스트레스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슬럼에서의 식사)
한번은 손님이 오셨는데 씻으실 물이 없어, 20리터짜리 정수기 생수 한통(70루피 = 1500원 정도)을 사서 통에 부어드린 적도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돈이 있다고 슈퍼에 생수를 두세 통씩 주문할 수는 없습니다. 빈 통을 반납해야 다른 통을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라, 친한 구멍가게에 부탁하여 딱 한번 배려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귀한 생수로 씻을 물을 마련했습니다.)
다행이도, ‘코팔카르네’등, 재래시장과 서민 거주지가 모여 있는 인구 밀집지역들은 물이 비교적 잘 나온다고 합니다. 아마 그쪽에서 더 나올 표가 많아서 정부가 신경을 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급수차를 부를 수 있는 상류층(경제적 힘이 있는 이들)과, 표가 많이 나올 서민층(정치적 힘이 있는 이들)은 이 재앙을 살짝 벗어난 것이죠. 그 동네(코팔카르네)에서 3년을 살았던 저로서는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야 물 나오는 시간에 받아나 두면 되지만, 좀 더 힘든 삶을 사는 옛 이웃들과 성도들에겐 물이라도 24시간 나와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비참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방문하는 슬럼들, 텐트와 판잣집의 주민들은 그 나마의 제한급수도 못 받습니다. 돈도 없고, 최소한의 교육도 못 받고, 투표도 거의 하지 않는 슬럼 사람들은 나라에서도 잘 신경쓰지 않습니다. 원래도 더러운 지하수를 물동이로 지고 나르던 이들이, 가뭄엔 어쩔 수 없이 더 먼 곳까지 오가야 합니다.
(네룰 슬럼 수돗가, 가뭄 전의 모습입니다.)
일전엔 근처 슬럼에서 아픈 장면을 보았습니다. 원래 그 슬럼은 수도꼭지가 딱 하나 있고, 그 앞에 각 주민들이 가져온 수백 개의 물통이 줄을 서서 물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거기 줄 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거기에 붙어서 물통들의 줄을 관리하며 대신 담아주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 물을 가져갈 때가 되었다 싶은 아낙내들이 대화를 나누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가뭄은 그 지하수도조차 말려버렸고, 고장 난 수도꼭지 옆에는 깨지고 버려진 물통 수십 개가 그 앞에 쌓여있었습니다. 그 참담함에 울어버릴 뻔 했습니다. 아이들 중에는 머리를 못 감은지 한 달이 넘었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마실 물이야 어떻게든 구할 수 있는데 씻고 빨래하는 것은 아주 힘들어졌다고..
(가뭄 때의 수돗가. 이 사진을 찍으며 울어버릴 뻔 했습니다.)
저희의 작은 불편함을 넘어, 더 큰 슬픔 맞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 속으로 계속 들어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가뭄이 끝나고, 몬순(6월~9월)이 오면, 퍼붓는 빗속에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웃게 되기를. 이전엔 빗속에서 체통 없이 춤을 추는 인도인들에게 어색함을 느끼기도 했고, 때로는 객기로 뛰어들어 동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두 손을 모으고 진심으로 함께 기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께서 은혜의 단비를 골짜기마다, 그리고 영혼들마다 내려주시기를.
부디 2016년의 몬순이 풍성하고 생명력이 넘치기를 기도해 주세요.
주님의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