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에서 순직하신 허운석선교사님 추모의 글 -김철기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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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교동역자님들께 올립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께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을 드립니다.

 

10 4, 제가 허 선교사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아마존
선교지에 들어 왔습니다
. “허 선교사는 아마존에 한줌의 재가 되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나?
 
아마존에 한줌의 재로 남기 위하여 이 땅에 선교사로 왔었나?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  

 

 

아래는 CGN TV 직원들이 인터뷰를 할 때, 동네 주민들과 교인들이 소개한 허 선교사의 삶에 대한 증언들입니다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 이곳,
선교지, 신자와 불신자 모든 이들의 가슴에 사랑의 화신으로 아마존에 돌아온 허 운석
선교사
.”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큰 차이를 갖고 살았던
, 한 인간.”  

 

자신의 것을 다 쏟아서,
모든 것을 다 나눠준 진정한 그리스도인.”  

 

진실로 인디오 형제들을 깊이
사랑했던 두려우면서도 자애로웠던 영적인 어머니
,”  

 

기독교를 반대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옥토로 변하게 하고 선교의 문을 열어 놓은 하나님의 전사
.” 

 

“30년을 이 동네에서 살았지만
인디오형제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처음 보고 내가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고 회개에 이르게 한 하나님의 사람
,”  

 

자신이 죽음과 투쟁을 하면서도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사명을 완수한 그리스도의 제자
.”

 

평생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십자가의 삶을 살아낸 십자가의 일꾼
.”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새벽을
깨운 기도의 본을 보인 기도의 용사
.”

 

인디오 형제들로부터 높은 권위자들까지
모두를 사랑한 귀한 분
.” 

 

박해와 멸시와 천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도 용서하고 사랑하고 중보한 바다같은 성품의 소유자
.” 

 

끝까지 인디오 형제들을 사랑하여
유골을 이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 죽음으로 더 큰 사랑을 보여 준 사랑의 증인.”




이곳, 선교지
인디오 형제들
, 브라질인 정치가들, 카톨릭 교인들, 많은 이들이 CGN TV 직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허 선교사를 추억하며 허 선교사가 살아낸
22년의 헌신이 너무나 고귀하게 이곳 선교지 사람들에게 각인 되어진 것을 보고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돌려드렸습니다

 

더불어 저희 선교지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Sao
Gabriel da Cachoeira) 시청에서 허 선교사가 이 도시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한 것을 기념하여 저희가 거주하는
지역의 큰 도로인
  다바루 길(Estrada
de Dabaru)을 후치 선교사 길로(Missionaria Rute) 개명한다고
알려왔습니다
. 그래서 허 선교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역사
속에 그 이름이 길로 명명되므로 길이길이 남겠습니다
.

 

각 사람들과의 인터뷰의 증언과 이 도시의 배려가 저와 저희 자녀들 수산나와 지훈이에게 큰 위로가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는 것처럼 허운석 선교사가 9 12 주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신촌교회 장으로 장례를 준비하여 주신 신촌교회와 오창학 원로목사님, 조동천 당회장 목사님, 조문하여주신 신촌교회 교우들께 그리고 함께 협력하여 주신 총회 세계선교부 총무님과 목사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전혀 모르는 분들이 선교사 설교들을 들으시고 또는 유투브(Youtube) 통해서 듣고 은혜를 받으셨다면서  찾아와서 조문하여 주셨습니다.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주시고 위로의 메세지를 보내주신, 성함을 기억하지 못하는 성도님들께 그리고 특별히 선교사 장례식장에 조문을 오셨다가 날밤, 영감을 받으셔서오직 그리스도 때문에라는 찬양을 작곡 작사하셔서 아침 일찍 장례식장에서 불러주시고 신촌교회 발인예배 찬양하여 주신 신경훈 전도사님과 찬양 , 편곡을 도우신 장지영 자매님께 마음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저희는 9 14 신촌 장로교회에서 발인예배를 드리고 화장을 하여 9 30 한국을 출발하였습니다.

뉴저지에 들리면서 가스펠 휄로우 교회(성현경 목사님)에서 허운석 선교사 추모예배를 드리드록 선처하여 주시고 뉴저지 지역의 성도님들께 인사를 있도록 허락하여 주셔서 목사님과 가스펠 휄로우쉽 교회에서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미국 리노에서 비행기로 하루 길을 오셔서 추모예배에 참여하여 주신 김백석 목사님, 최무림 목사님, 예배순서들을 맡아주신 성현경 목사님, 코너스톤 교회 오진영 목사님, 은혜와 사랑교회 소기범 목사님, 드림교회 김남석 목사님, 감동적인 조사를 낭독하여 주신 장석렬 박사님, 소프라노 최경순 집사님 그리고 선교사 추모예배에 참여하여 주신 선교사를 사랑하셨던 여러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10 3 뉴저지를 떠나 마나우스에서 4 소형 비행기를 대절하여 선교지에 들어왔습니다. 공항에서 선교사의 귀환을 충격으로 반기며 신학교 성가대가 강하고 담대하라 찬양을 시작으로 환영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신학교 채플로 옮겨 인디오 형제들과 브라질인 유지들 400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 장례식 예배를 드리며 성령님의 위엄과 임재가 강력하게 임하셔서 예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평생 잊을 없는 감동과 도전을 주고 인디오 형제들과 브라질인  형제들의 오열속에 선교사 유골을 신학교 내에 안장하였습니다.

 

10 4 선교사 장례식 예배 설교를 위하여 매년 10 넘게 아마존에 와서 함께 사역하여 주신 미국 샌디에고 삼일교회에서 아마존에 주신 손찬식 목사님, 1991년부터 친구고 동역자며 가족으로 지낸 쌍빠울로에서 오신 김태현 장로님 내외, 신실한 동역자이신 주호걸 집사님, 저와 선교사를 삶의 모델로 살아간다는 브라질리아에서 와준 윌리암 아마라우(William Amaral) 현역군인 중령 형제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

 

그리고 한국 장례식부터 시작하여, 함께 한국을 출발하여 뉴저지에서 추모예배 선교사와 아는 지인들과 인터뷰를 하며 아마존 장례식까지 전체 모든 일정을 저희와 함께하고 일주일을 아마존에 머물며 촬영하도록 오성환 피디와 김재경 촬영감독을 아마존에 파송하여 주신 CGN TV 유재건 대표 이사님과 피디, 촬영 감독에게도 크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선교사는 2006 10월말 안식년으로 한국에서 개월을 보내고 한국을 떠나기 , 건강검진을 하는 중에 폐암이 발견되고, 브라질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던 11 6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하였습니다. 수술 , 담당의사가 5년동안 아마존에 가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 하였지만 아마존으로 돌아와서 사역하면서 6개월에 한번씩 나가서 검사를 하였습니다. 그런 중에 선교사는 2009 9월부터 저희 신학교에 일어났던 회개운동과 부흥에 도화선이 되어 밤마다 기도회를 주관하였고 부흥의 결과로 인하여 선교지 땅이 치유되어 한번도 열리지 않던 망고와 다른 과일들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010 , 암이 재발되고 혹독한 통증과 함께 투병을 시작한 선교사는 양시영 내과 (동부광성교회 안수집사님) 광양자 치료의 도움으로 통증이 2011 3 통증이 없어졌습니다.  광양자 치료와 비타민 요법등, 보험으로 처리되지 않는 고가의 치료들을 선교사를 위하여 무료로 치료하여 주신 집사님께, 주님의 풍성한 보상을 간구합니다. 더불어 연희동에 위치한 김호배 외과(원천교회 장로님), 수와 클리닉 권오숙 원장님, 대체 의학 전문가, 제주도 최사라 전도사님 대전의 안정태 집사님께서 선교사를 깊은 사랑과 은혜로 도와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선교사가 투병을 시작하고 주님께로 돌아간 , 지금까지 간곡한 눈물의 중보기도와 치료비, 음식과 선물, 각종 도움을 주시며 선교사와 저희 가족에게 힘이 되어 주셨던 여러 교회와 여러 동역자님들, 하나님의 사람들께 평생 동안 감사하며 축복하겠습니다

 

선교사는 광양자 치료로 통증이 없어지자 2011 4 중순부터 6월중순까지, 10월중순부터 12월중순까지 두번, 선교사로 아마존에 다시 돌아와서 시간이 넘게 새벽기도 설교를 하고 오전에 사도행전, 모세오경, 로마서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쌍빠울로 주호걸 집사님이 후원하신 신학교 식당 건물 건축하는 것을 감독하고, 졸업식 공연할 성가 칸타타를 연습시키고, 신학생들과 사역자들에게 권면하며 조언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형제들을 섬기고 사랑하며 두번째 아마존에 왔을 때는 신학교 식당 건물을 완공하고 항암 약을 받으러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것을 쏟아 인디오형제들에게 주고 , 한국에 돌아갔을 , 폐암이 복부로 전이되어 심각한 상태로 악화되었습니다.

 

제가 남편으로써 33년을 부부로 함께 보내면서, 선교사는 제가 만나 모든 그리스도인들 세상에서 최고로 뜨겁게 순전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아내로써, 아이들의 엄마로써, 선교사로써 선교사는 마지막 숨을 멈추는 순간까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한점 흐트러짐 없이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십 사세에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불꽃같이 일어나 주님께 받은 사명,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행함에 있어서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아마존 인디오 형제들을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선교사는 평생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삶으로 살아낸 십자가의 증인이었습니다. 폐암이 재발되고 암과 투병하면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그렇게 사모하는 천국에 속히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컷었지만 남겨질 가족들과 약하고 고통 받는 성도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그렇게 힘든 항암치료들과 다른 치료들을 받으며 자신을 주님께 의탁하였습니다.

 

매일 마약성 진통제를 수십 알씩 복용하며 몸을 가눌 없을 만큼 혹독한 통증을 안고 살면서도 설교초대를 받으면 주저하지 않고, 마치 전혀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힘차고 생명력 넘치는 설교를 하면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살도록 도전하고 격려하고 책망하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아픈 중에도 누구와 만나거나 전화를 받을 때에, 항상 밝은 목소리로 장시간 통화를 하며 말씀 사역을 하고 본인은 괜찮다고 하여 고통 중에라도 주님의 손을 들어드리는 믿음의 장부였습니다.  

 

특별히 2006 11, 폐암이 발견되면서부터 선교지에서 그리고 교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 설교를 금지 당하는 핍박을 받았지만 모두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간절히 중보하며 평생을 꿈꾸며 소원했던 주님과 온전한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 내고 60세를 살고 주님께로 돌아갔습니다.

 

남겨진 제가,  이곳 아마존에서 간곡히 저희 동역자님들을 위하여 중보 함은, 선교사를 만났던 분들과 설교를 들으셨던 모든 분들이 선교사가 평생을 걸어갔던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며 주님과 연합하고 일치하셔서 천국에서 같이 뵙기를 소원합니다.   

 



(2013 6 벽제 수목원에서)     

 

사명은 생명보다 소중하다.”
고 리빙스턴 선교사가 말했다고 합니다. 허 선교사는 주님께로 떠났지만 저는 아직
남겨진 부르심을 따라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달려야 합니다
. 선교사가 되기까지 많은 사연들이 있었습니다만 중략하고,,,
1989 5월 총회 세계선교부를
찾아가서
제가 인도에 선교사로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당시 세계선교부 간사이셨던 
이종실 목사가 제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후, “인도는 선교의 문이
닫혀있습니다
.” “그런데 6개월전에 브라질 아마존에서 선교사 요청이
있었는데 그곳에 보낼 선교사 후보를 찾고 찾아도 없습니다
. 인도가 아닌 브라질 아마존으로 가주면 어떻게냐?”
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라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해
보고 전화로 답을 주겠다
.”고 하고 세계선교부 문을 닫고 나오는데, 동시에 두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주님이 나를 그렇게 만만하게 보시나?
악어가 득실거리고 창을 든 인디오들의 무서운 얼굴들이 있는 그곳으로,”  더불어 얼마나 나를
신뢰하셨으면 이 어려운 부탁을 내게 하실까
?” 라는 감사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금릉군 부항으로 돌아가서 부항중앙교회 마루바닥에 엎드려 기도할 때, 이미 인도에
가서 죽겠다고 하였는데 아마존이면 어떠냐
? 라는 마음이 들어서 아마존에
선교사로 가겠습니다
.” 라고 대답을 하고 긴 과정을 거처 결국 아마존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브라질 아마존 선교사로 감사하고 행복했던 만 2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제가 10 18일 저녁 수산나를 미국으로 보내주고 마나우스 공항에서 홀로 걸어 나오는데 주님이 제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아 내가 네 앞서 걷고 있다.
너는 나만 바라보고 걸어라.” 저는 천천히 아주 천전히 공항을 걸어나오면서 주님 당신만 바라봅니다. 이제 제게는 바라볼 것이 없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당신만 보고 걷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제 의지로 선택합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 한국이 아닌 당신을 선택합니다. 저를 도와주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간곡한 중보 기도와
선교비와 선물로 도움을 주시며
, 아마존 검은 강 선교에 지금까지 동역 하여 주신 동역자님들께 온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에벤에셀여기까지 도우신
분이
  주님이시고 동역자님들의 중보 기도와
도움 때문이었습니다
. 더불어 다시 한번  간곡히 청원합니다. 저와 선교지를 위하여 계속 기도하여 주시고 협력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저희 자녀들 수산나와 지훈이를 위하여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특히 엄마를 돌보기 위하여 계속 엄마와 항상 동행하며, 제가 한국에 갈 때면, 선교지에 와서 휼륭했던 엄마를 닮아 아빠를 대신하여 강의하고 신학생들과
사역자들을 권면하며 용기있게 사역하고 주님께 헌신했던 수산나가 엄마의 떠남으로 인하여 많이 슬퍼합니다
.

 

주님께서 친히 수산나를 찾아가 만져주시기를 바라며 수산나가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 잘 정착하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요. 저희 아들 지훈이는 IHOP University(국제 기도학교 대학) 마지막 학년으로 저희 뒤를 이어 아마존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브라질 아마존에서 김철기선교사 드립니다

                         

 

                                                 김철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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