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거하드 아펜젤러 (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 2.6- 190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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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 주류 신학의 기초를 놓은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김홍기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교회사 교수

<들어가는 말>

아펜젤러가 한국 땅에 선교하러 온 지 119년이 지났고, 순교한 지 102년이 지났으나, 지금까지 그의 신학사상에 대하여 제대로 연구된 논문이나 책이 나오질 않았다. 물론 언더우드의 신학사상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한국기독교선교 12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된 이 강연회를 계기로 한국선교사들의 신학사상이 본격적으로 연구되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한국에 가져온 선교사들의 신학사상이 어떠한 유형인지, 또 어떠한 신앙유형을 한국교회 속에 뿌리내리게 하였는지를 제대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논문에서 그의 신학사상의 배경이 되는 그의 생애와 선교활동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고, 그러고 나서 그가 얼마나 웨슬리 신학적 사상을 가졌는지를 그의 설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그러한 그의 신학사상이 한국교회의 주류를 형성한 신학사상이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아펜젤러에 관한 연구는 윌리암 그리피스가 쓴 A Modern Pioneer in Korea: The Life Story of Henry G. Appenzeller(1912)가 있는데, 그는 일본 선교사로서 친일파였기에 아펜젤러의 사회적 성화(social holiness)에 대한 관심, 곧 항일적 정치적 입장과 독립운동에 대한 적극적 지지에 대하여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다니엘 데이비스(Daniel Michael Davies)의 드루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The Missionary Thought and Activity of Henry Gerhard Appenzeller”(Drew University Ph. D dissertation, 1986)이 있다. 여기서는 아펜젤러의 생애를 비교적 소상하게 탐구하였으나, 그가 통일교회 선문대학교 교수가 될 정도로 통일교적 시각을 각고 있기에 역시 아펜젤러의 생애와 사상을 제대로 해석해 못한 아쉬움을 갖게 한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특히 신학사상 면에서 거의 연구가 부실한 것이었다. 또한 이만열 교수의 [아펜젤러](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85)가 있다. 이 책은 3부로 되어있는데, 1부는 그리피스의 책을 번역한 것이고, 2부는 아펜젤러의 일기와 편지를 편집한 것이며, 3부는 아펜젤러의 교육과 선교에 대한 이만열 교수의 논문이다. 여기서도 신학사상을 본격적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국선교사였고 감신대 교수였던 박대인 교수(Dr. Edward Poitras)의 논문 “The Theology and Missionary Strategy of Henry G. Appenzeller, Pioneer Methodist Missionary to Korea”, 『신학과 세계』(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 1955)가 본격적인 신학사상에 관해서 언급한 논문이다. 하지만 이 논문 역시 선교신학사상에 국한하여 취급하고 있다. 그 후에 성백걸 박사의 감신대 박사학위 논문인 “아펜젤러와 최병헌에 의해 형성된 초기 감리교회 신학형성에 관한 연구”(감리교신학대학교 Th. D. 논문, 1996)가 지금까지의 논문 중에서 가장 아펜젤러의 신학사상을 많이 취급한 논문이다. 그러나 성 박사의 논문에서 웨슬리신학과 아펜젤러의 신학을 철저히 비교하면서 웨슬리의 경건주의적 복음주의(Pietistic Evangelicalism)가 아펜절러에게 이어진 점을 잘 밝혀 주지는 못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필자는 지금까지의 선 연구와는 다르게 아펜젤의 신학사상이 웨슬리의 경건주의적 복음주의에 어떻게 깊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그의 설교들을 중심으로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웨슬리적 경건주의적 복음주의가 한국교회 주류 신학 내지 신앙유형을 형성하여 왔음을 본 연구에서 밝히고자 한다. 그래서 아펜젤러의 신학사상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한국교회의 주류 신학과 주류 신앙유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음을 본 연구에서 강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아펜젤러의 웨슬리적 신학사상이 21세기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영적으로 성숙하고 양적으로 성장하는 핵심적인 영성과 신학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아펜젤러가 보여준 성화와 사회적 성화 사상은 오늘 한국교회를 다시금 새롭게 갱신시킬 수 있는 원동력임을 본 연구에서 주장하고자 한다.

  1. 한국신학의 주류를(mainline) 형성한 아펜젤러 신학사상의 웨슬리적 성격:

아펜젤러는 미국의 제2차 대각성운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제1차, 제2차 대각성운동은 경건주의적 복음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경건주의는 17세기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Protestant Orthodoxism)가 교리화되고 제도화되어 가는 것에 대한 도전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그래서 경건주의는 교리에 반대되는 생명(life verse doctrine), 사무적인 것에 반대되는 영적인 것(spirit verse office), 경건의 모양에 반대되는 경건의 능력(power verse appearance)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제2의 종교개혁을 시도한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 1663~1727), 진젠도르프(Nikolas Ludwig Zinzendorf: 1700-1760)와 모라비안주의(Moravianism)등에 의해서 독일에서 발전하였고, 그것이 진젠돌프가 이끄는 모라비안을 통해 영국으로 건너가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2)에 의해 감리교운동을 일으켰으며, 다시 웨슬리와 함께 감리교운동을 하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등에 의하여 미국에서 제1차 대각성운동(the First Great Awakening Movement)으로 발전하였다.

제2차 대각성운동(the Second Great Awakening Movement)은 1797년부터 일어났다. ‘단순한 복음진리’(plain gospel truths)를 선포하였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인간의 전적 타락,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이다. 회심의 열매는 영적 심각성과 도덕적 개혁이었다. 제1차 때보다 제2차 때는 더욱 강한 도덕적 개혁, 사회적 성화운동이 전개되었고, 선교운동도 조직적인 선교회를 구성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제2차 대각성운동의 지도자들은 역시 대부분 칼빈주의자들이었고 예일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교수들이었음이 특징적이다. 이 운동은 에드워드의 외손자 티모티 드와이트(Timothy Dwight: 1752-1817), 나다니엘 테일러(Nathaniel Tayler: 1786-1838), 찰스 피니(Charels Grandson Finney: 1792-1875)로 이어졌다. 변호사 피니는 1821년 영혼이 흔들리는 회심을 경험한 후 정규 신학교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설교가로서의 소명을 받았고, 설교가 자격증을 얻게 되었다. 지역신문이 그의 능력 있는 설교에 대하여 보도할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고, 이리호 지역 주변도시들인 Utica, Troy, Rome 등지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게 되었다. 그의 설교는 거칠고, 직접적이며, 능력 있고, 인기를 끄는 매력이 있었다. 그는 1835년 새로 시작된 오벌린대학(Oberlin College)의 신학교수직을 수락하였고, 마침내 1851년부터 1866년까지 총장직을 맡게 되었다.

찰스 피니는 개혁교회전통의 칼비니스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부흥운동 메시지와는 좀 더 다르게 웨슬리적으로 선포하였다. 그는 웨슬리의 저서 [기독자의 완전](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을 독파하여 웨슬리의 성화(sanctification), 완전성화(entire sanctification), 그리고 사회적 성화(social sanctification)를 강조하는 부흥사가 되었다. 그는 한 개인의 완전성화의 실현을 믿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사회화하는 천년왕국적 이상을 굳게 믿었다. 그래서 제1차 대각성운동은 내면적 뜨거움의 운동이었지만, 제2차 대각성운동은 내면적이면서도 사회적 뜨거움으로 발전하여 간 운동이다. 그래서 피니는 오하이오 주 오벌린대학(Oberlin College)의 총장이 되면서 이 대학에 최초로 여성을 입학시키고 흑인도 입학시키면서 푀비 파머(Phoebe Palmer)같은 감리교회 평신도 여성설교가를 키웠고, 흑인노예제도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 내면적 거듭남과 성화,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 성화로 이어지는 제2차대각성운동의 선교신학적 분위기에서 아펜젤러는 한국선교를 시작하였다. 본래의 웨슬리신학적 영향과 이 제2차대각성운동의 영향으로 아펜젤러는 웨슬리 경건주의적, 복음주의적 신학의 바탕 위에서 한국선교를 시작하였다. 아펜젤러 자신의 글에서 “1795년-97년에 서부 메사추세츠와 커네티커트에 부흥운동이 간헐적으로 일어났으나, 그러나 1799년 가을에는 동부 테네시와 켄터키에서 더욱 강력하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이런 미국 부흥운동의 맥락에서 자신이 선교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아펜젤러는 독일개혁교회성도였으나 의도적으로 감리교도가 되었다. 그래서 웨슬리적 세계선교정신이 강하였다. 선교사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웨슬리의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는 정신 속에서 갖고 있었다. ‘이 세대 안에서 세계복음화’가 그의 선교적 표어였다. 복음화는 십자가의 복음만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의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철저히 웨슬리적이다.

그리고 그의 선교의 또 하나의 주제는 문명화로써 이것은 웨슬리적 사회성화와 상통한다. 그는 한국의 개화와 독립을 강하게 열망하였다. 한국이 정의롭고, 민주적이고, 개화되고, 자유로운 자주독립국가가 되기를 간절히 열망하였다. 대부분의 한국선교사들이 독일형의 경건주의자들이어서 한국교회를 비 정치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펜젤러만은 예외였다. 그는 웨슬리적 경건주의자였기에 각종 사회참여 활동과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단순히 동정적인 차원에서 독립운동가를 도운 것이 아니라, 한국이 아시아에서 안전하고 독립적인 상태를 확립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부패하고 귀족정치적인 한국정부를 정의롭고 민주적인 정부로 바꾸어야 한다는 정치철학과 사회윤리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이 그러한 진보적인 지도자들을 길러내는 진보적, 독립적 입장의 학교로 발전하기를 열망하였다. 그래서 그는 독일형 경건주의자였던 알렌과 심각하게 논쟁하기도 하였다.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는 1858년 2월 6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 수더톤(Souderton)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장을 경영하였으며, 스위스에서 이민 온 분으로 루터파의 신앙을 가졌다. 어머니는 독일계 메노나이트파(Menonite)의 신앙을 가졌다. 그러므로 아펜젤러는 날 때부터 웨슬리적 신앙전통의 분위기 속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루터교회적이고 독일 경건주의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것이다. 1882년 그는 랭카스터에 있는 명문 Franklin and Marshall College를 졸업하였다. 그는 대학시절, 웨슬리적 체험신앙에 감명을 받아 감리교회에 출석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 후 드루신학교(Drew University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하여 3년간의 신학과정을 마쳤다. 그 당시 드루신학교는 지성적 목회자들을 배출하는 명문신학교였다. 그는 특히 신학교시절부터 웨슬리적 부흥운동을 좋아하였다. 아펜젤러 당시의 드루신학교는 설립된 지 15년 밖에 안 되었기에 교단신학교로서의 깊은 개인적 경건과 종교적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한편 아펜젤러는 신학교에서 웨슬리적 사회성화운동에 대하여서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회심을 일으키는 복음주의는 개인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임을 드루신학교 캠퍼스에서 체험하였다.

1884년 11월 엘라 제이 닺지(Ella J. Dodge)와 결혼하고 감리교 한국선교부(The Korean Mission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의 첫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1884년 12월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파울러 감독에게 안수를 받고, 1885년 2월 일본을 거쳐 한국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그는 부인과 장로교선교사 언더우드와 함께 제물포에 상륙하였다. 아펜젤러는 그 날의 감격을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부활주일에 여기 왔습니다. 이 날에 죽음의 철장을 부수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매고 있는 줄을 끊으시고 그들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는 빛과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1885년 6월 28일 외국인을 위해서 한국 최초의 개신교 공식 예배를 인도하였고, 1886년 6월 8일 한국의 근대교육의 효시인 배재학당의 첫 학기를 공식적으로 개강하였다. 현대식 학교로는 최초의 학교가 아펜젤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1887년 2월 21일 배재학당이란 이름을 고종으로부터 하사 받았으며, 1887년 12월 25일 한국어로 첫 설교를 하였다. 1887년 배재학당 내에서 한국최초로 신학과목을 강의하기 시작하였으니 이 신학공부가 협성신학교로 이어졌고, 그것이 오늘의 감리교신학대학교로 발전한 것이다. 이로서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역사는 117년이 된 것이다. 결국 아펜젤러에 의해서 한국 최초의 현대 교육학교인 배재학당이 시작되었고, 한국최초의 개신교신학교인 협성신학교(감리교신학대학교)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는 1887년 7월 24일 한국인 박중상에게 첫 세례를 베풀었고, 같은 해 10월 9일에 한국인들과 함께 “벧엘”에서 첫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한국최초의 감리교회 정동교회였다. 1897년 12월 26일 한국의 문화재가 된 정동교회당을 새로 짓고 봉헌식을 하였고, 노병선, 최병헌 등과 함께 죽을 때까지 목회를 하였다. 1885년부터 1886년까지는 대리감리사로, 1886년부터 1892년까지는 미감리회 한국선교회의 감리사로 일하였다.

그밖에 그는 일생동안 파란만장한 우리 민족 개화기의 역사 속에서 조선 8도 중 6도에 걸쳐서 1,800마일의 여행을 두루 다니며 자기희생적인 선교와 봉사를 아끼지 않다가 1902년 6월 11일 밤 성서번역위원회 참석차 목포를 향하여 가던 중 선박 충돌사고로 군산 앞 바다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소천하였다. 그는 한 소녀를 죽음에서 건지고 자신이 죽는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죽음으로 사랑을 보여준 예수의 제자요, 사랑으로 성화를 보여준 웨슬리의 제자였다. 그는 17년 간 한국을 위하여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한국의 개화와 독립 등 사회적 성화를 위해서도 큰 공헌을 하였을 것이고, 한민족의 복음화를 더욱 빠르게 이룩하는 개인적 성화를 위해서도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아펜젤러의 웨슬리적 경건주의 유형은 한국 신학의 주류를 형성하여 왔다. 경건주의는 한국교회의 주류(mainline)를 형성한 신학이다. 유동식 교수는 한국교회의 신학유형을 진보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로 삼분화 하면서 경건주의를 보수주의 유형에 집어넣어 버렸다. 경건주의는 보수적 근본주의와는 다른 신앙유형이다. 또한 송길섭 교수는 경건주의적 복음주의적 색채를 나타내긴 하였으나 너무 사실 나열에만 그친 아쉬움이 있다. 초대 부분에는 비교적 경건주의와 복음주의에 대한 해석이 나오지만 후대로 갈수록 희미해져 가, 한국교회 100년 역사를 일관성 있게 지배하여 온 경건주의적 특징을 분명하게 밝혀 주지 않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하여 필자는 “경건주의와 한국교회” [한국의 기독교사상](연세대학교출판부, 1998)에서 취급하였다.

경건주의적 복음주의는 1885년 초기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의 선교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아펜젤러는 웨슬리적 경건주의 유형의 복음주의자였지만, 언드우드마저도 “쾍쾍소리지르는 감리교도”(roaring Methodist), “장로교선교부의 감리교설교가”(The Methodist Preacher of the Presbyterian Mission)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웨슬리적 경건주의적 복음주의였다. 선교역사의 대가 라투레트도 초기 한국 선교사들은 “부흥운동(revivlaism), 개인주의(individualism), 이원론(dualism), 경건주의적 복음주의(pietistic evangelism)” 중심의 선교사들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1907년 대부흥운동을 보고 런던타임즈의 세실 경이 말하기를 웨슬리적인 부흥운동이라고 해석하였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이야기는 웨슬리의 일기에 나오는 부흥운동의 이야기와 너무나도 흡사하다고 해석하였다.

한국교회의 제도는 장로교의 회중주의(congregationalism)가 지배하여 장로 없는 교회가 없고(감리교회나, 성결교회나, 순복음교회나), 목사의 선택도감리교회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교회가 감리교회의 파송제가 아니라 칼빈적 장로교회의 초빙제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영성적, 신학적 경향은 웨슬리적 경건주의적 복음주의가 지배하여 왔다. 웨슬리적 속회와 구역예배, 웨슬리적 새벽기도회와 철야기도회, 웨슬리적 부흥회와 사경회가 한국교회 신앙을 형성하여 온 신학이다. 웨슬리적 경건주의가 “마음의 종교“(religion of heart)를 강조하였듯이, 한국인들도 반만년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 한과 정을 가져온 민족이기에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체험의 종교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그 경건주의적 복음주의가 근본주의와 만나면서 근본주의적 복음주의가 되기도 하고, 진보주의와 만나면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가 되기도 하며, 자유주의와 만나면서 문화적 복음주의가 되기도 하고, 순복음교회를 비롯한 오순절성령운동이 강조되면서 오순절적 복음주의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역사적 경건주의의 뿌리가 가장 깊은 독일식의 루터적 경건주의 혹은 복음주의로 인하여 신앙제일주의(solafideism)가 강하게 자리 잡기도 하였고, 제1, 2차 대각성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식의 칼빈적 경건주의 혹은 복음주의로 인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강조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특히 로잔선언에서 크리스쳔의 사회적 책임을 선언한 이후에 소위 복음주의자들(evangelicals) 속에서도 에큐메니칼주의자들(ecumenicals)처럼 사회참여의식이 강조되고, 최근에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하여 삶의 질에 관심 갖기 시작하면서 사회복지에 교회가 어느 누구보다도 관심을 갖고 경실련이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을 통하여 사회구조악에 항거하는 기독교시민운동단체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통일운동에 거교회적으로 적극 참여한다. 한국교회협의회(KNCC)도 보수적인 희랍정교회나 하나님의 성회를 회원교회로 받아들이고 헌장도 바꾸면서 복음적 관심과 사회적 관심이 변증법적으로 종합을 이루는 총체적 교회(whole church)의 총체적 복음(whole gospel)을 강조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극복해 가는 신학을 한국교회가 모색하고 있다. 그래서 1919년 3.1운동과 1960년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 당시에 나타났던 사회참여운동은 이제는 진보적 그룹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개신교역사의 주류를 형성해 온 경건주의적 복음주의가 교회의 양적 성장운동, 해외선교운동, 열심 있는 평신도운동, 소규모영성운동, 뜨거운 체험적 신앙운동, 구원의 확신을 일으키는 신앙운동에 크게 기여하여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 반대로 부정적인 요소도 너무 많았다. 저 세상적 관심, 이원론적 금욕주의, 행함이 없는 신앙지상주의, 세속 직업의 소명 의식 약화, 기복주의, 비정치화, 몰 역사화, 비 사회화, 비 문화화의 길을 걸어온 것이 사실이다. 바로 그런 시각에서 한국개신교회의 경건주의적 복음주의가 사회적 성화와 문화적 성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롭게 거듭나야 하고 새롭게 성숙해 가야 한다.

이렇게 한국교회의 주류신학의 초석을 형성하게 된 아펜젤러의 신학사상을 제대로 이해함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복음에 근거한 인격적 성화를 추구하면서도, 사회적 성화와 문화적 성화를 강조하였던 아펜젤러의 신학을 재발견하여 한국교회의 신학이 보다 건전하게 발전하고 성장하여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더욱이 그러한 아펜젤러의 건전한 복음주의(healthy evangelism)는 웨슬리적 요소로 형성되었음을 본 논문에서 밝혀 보려고 한다.

 

 

  1. 아펜젤러의 구원론(웨슬리 구원론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1. 선재적 은총론:

웨슬리처럼 아펜젤러도 칼빈의 예정론을 비판하면서 선재적 은총론을 전개한다. 롬 8:29-30 본문을 중심으로 주석한 “예정”(Predestination)이란 설교에서 웨슬리의 해석을 직접 인용한다: “이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정의)원인과 결과라는 사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이 역사하는 방법을 보여 주는 것이다. 구원의 몇몇 가지들은 끊임없이 서로서로 따라오는 질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칼빈의 이중예정(double predestination)을 비판하면서 그리스도를 믿는자는 구원에 이르도록 예지하신다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예정을 웨슬리가 주장한 것처럼 아펜젤러도 예지 예정설을 지지한다.

자유로운 대행자로서(agent) 인간의 자유는(자유의지) 하나님의

자유로운 지식의 우선적인 기초가 된다. 하나님의 예지는 하나님의

결정에 우선한다. 하나님의 예지에 의해서 미래행위가 원인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행위에 의해서 하나님의 예지가 원인

되어진다. 인간이 걷는 것을 볼 때 우리가 그의 움직임에 의해서

그의 행동이 원인 되어지는 것을 보고 안다. 우리의 보고 아는 것에

의해서 그의 행동이 원인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아젠젤러나 웨슬리에게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유로운 의지의 결단을 할 때에 그 믿음의 결단의 행위를 보고서 하나님의 예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하나님의 예지가 우리를 믿게 하도록 결정지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십자가 안에서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얻도록 우리를 예지 예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펜젤러나 웨슬리에게 있어서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다. 그러나 칼빈은 믿음의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 무조건적(unconditional0 예정을 말한다. 예정된 자들에게 믿음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펜젤러는 심지어 “사탄은 빈번하게 하나님의 예지를 그의 목적들에 앞서는 것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예정은 하나님형상회복의 단순한 목적인데 그 성취는 인간의 신앙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신앙을 계속 유지하지 않으면 상실할 수도 있다고 아펜젤러는 말한다. 웨슬리가 그의 설교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신자의 특권”에서 베드로처럼, 다윗처럼, 항상 타락할 수 있기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함을 강조한다.

아펜젤러는 구원의 은혜는 모든 만인에게 열려있고 모든 만인의 속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였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복음을 거절하는 자조차도 하나님은 부르신다는 것이다.(마22: 3-9, 14). 이것은 웨슬리의 설교 “값없이 주는 은혜”(Free Grace)에서 속죄의 은총은 모든 사람 안에서(in all), 모든 사람을 위해서(for all) 자유롭게 열려있다는 해석과 너무나도 동일하다. 웨슬리는 로마서 8:32 말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를 중심으로 설교하였다. 먼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모든 사람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것임을 웨슬리는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값없이 세상을 사랑하시는지요! …. 그를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는 얼마나 값없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지요! 참으로 값없이 주시는 은혜가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하나님이 생명에로 정해 놓으신 자들만 위하여 값없이 주시는 것이며, 그들은 작은 수의 회중일 뿐이며 더 많은 부분의 인류를 죽도록 정해 놓았으므로 그들에게는 은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미워하시므로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그들이 죽어야 하는 운명으로 정해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선한 기쁨이며 하나님의 주권 의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저주 아래서 자라며,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이, 지옥에서 몸과 영혼을 파괴하도록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만인 속죄론(universal atonement)이라고 한다. 그러나 웨슬리나 아펜젤러나 오리겐의 만인구원론(universalism)은 비판한다. 오리겐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지옥도 없고, 사탄마저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한다. 아펜젤러는 그의 설교에서 이 만인구원의 보편주의를 비판한다.

그러므로 아펜젤러나 웨슬리는 인간구원은 예정의 은총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거저 주시는 선재적 은총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에 응답함으로써 인간구원은 출발한다. 하나님의 열심 100%와 인간의 열심 100%의 신인협조적(Divine-human cooperation) 모습으로, 인간구원은 응답하는 은총(responsible grace)으로 시작한다.

  1. 의인화와 거듭남:

아펜젤러는 선교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 이방세계로 가야함을 강조한다. 아펜젤러가 아는 단 한가지의 사명은 인간을 죄에서부터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믿는 체험적 은총 곧 의인화와 거듭남을 아펜젤러는 강조한다.

아펜젤러는 웨슬리와 함께 종교개혁의 핵심사상인 ‘신앙의인화’(信仰義認化: justification by faith)에 철저히 서서 십자가의 복음을 강조한다. 그 십자가의 복음을 믿을 때 값없이 거저 주어지는 의롭다하심이 수동적으로 객관적으로 전가됨을 주장한다.

이 의(義)는 하늘로부터 위로자 성령이 증거하는 복된 진리에로

내려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에

의하여 거저 값없이(freely) 의롭다하십니다. 그의 의를 보이기

위하여 그의 피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화해를 이루신다.

그런데 이렇게 거저 주시는 의롭다하심의 은혜는 먼저 성령의 회개케 하심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아펜젤러는 해석한다.

꾸짖음(성령의)이 위로보다 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앞서

다가오는 것을 아십시오. 이것이 구원의 질서(oder of salvation)

이다. 곧 옛 세계에서 새 세계로 옮겨지는 과정이다. 갈보리산이

있기 이전에 시내산이 있고, 복음이전에 율법이 있으며, 의인화

이전에 회개가 있으며, 위로이전에 꾸짖음이 있고, 면류관이전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것은 웨슬리의 주장과 아주 흡사하다. 웨슬리는 종교 혹은 구원의 현관(porch)은 회개, 종교 혹은 구원의 문(door)은 믿음, 종교자체 혹은 구원자체는 성화 혹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선재적 은총, 회개, 의인화, 거듭남, 성화, 완전 등의 구원의 질서(oder of salvation)를 웨슬리는 해석한다. 이렇게 웨슬리가 의인화와 거듭남을 일으키는 믿음보다 앞서는 것은 성령의 회개케 하심이라고 본 것을 아펜젤러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아펜젤러는 웨슬리의 구원론을 아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의인화에 구원론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웨슬리는 마음의 종교를 강조하는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아 거듭남도 중요한 구원론의 요소로 해석하고 있는데, 아펜젤러 역시 의인화와 거듭남을 동시에 중요한 구원의 교리로 주장한다. 마치 웨슬리에게 있어서 의인화(義認化: justification)와 거듭남(重生 혹은 新生: regeneration)이 동시적 사건이요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일어나는 은총이라고 이해하였듯이, 아펜젤러도 십자가의 복음을 오직 믿는 사람들에게 의인화와 거듭남은 동시적으로 일어난다고 이해한다.

신학적 용어 사용에 있어서 의인화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모든 죄들을 용서하는 하나님의 법정적(judicial) 행위로 묘사되어진다.

성도를 관계적으로(상대적으로) 의롭다고 간주하시는(regarding

him as relatively righteous) 것이다…..거듭남은 인간 안에(in man)

이루어지는 역사로 거듭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성령으로 태어나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의롭다하심은 인간을 위한(for

man) 객관적(objective) 역사이며, 거듭남은 인간 안에(in man)

행하시는 주관적(subjective) 역사이다. 의인화가 거듭남보다

앞서는(precedes) 것이라도 이 둘은 동시적(synchronous)이다.

웨슬리가 여러 설교에서 의인화가 거듭남보다는 논리적으로(in thinking)는 앞서지만, 시간적으로(in time)는 똑같이(at the same time) 일어난다고 해석한 것과 너무나도 동일하다.

시간적인 순서(in order of time)로 본다면, 어느 것도 다른 것에 우선되지

않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순간(in the moment), 역시 우리는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고의 순서(in order of thinking)로 본다면,

말의 표현에 있어서는 칭의가 신생에 앞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먼저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 속에 역사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펜젤러는 웨슬리의 설교를 너무나도 그대로 옮겨 놓는 듯이 의인화는 인간 위한 객관적 은총이고, 거듭남은 인간 안에 임하는 주관적 은총이라고 해석한다.

만일 기독교의 전체적인 범위 안에서 어떤 교리든지 ‘근본적’이라고 적절히

규정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다음의 두 가지, 즉 의인(義忍)의

교리와 신생의 교리입니다. 전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for us)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 위대한 역사(役事)와 관계되며, 후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in us) 우리의 타락된 본성을 다시 새롭게 하시는 위대한 역사와

관계됩니다.

아펜젤러는 웨슬리처럼 의인화는 객관적(objective), 법정적(judicial), 관계적(relational), 상대적(relative)인 은총일 뿐 아니라 죄책의식에서 해방시키는 외적(external) 변화의 은총이라고 이해하며, 거듭남은 주관적(subjective), 실제적(real) 변화의 은총일 뿐 아니라, 도덕적 본성을 갱신시키는 내적(internal) 변화의 은총으로 이해한다.

거듭남의 필요성은 우리 본성의 부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한편, 의인화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책의식(guilt)의 현실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구별됩니다(distinct). 의인화는 외적(external)이고, 그 목적은

우리의 죄책의식(guilt)을 없애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내적(internal)이고,

그 목적은 우리의 도덕적 본성을(moral nature) 갱신하게 하거나

정화하는 것입니다. 의인화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new relation) 갖게 하며, 거듭남은 우리 안에(in us) 새로운 마음의

상태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지극히 웨슬리적이다. 웨슬리가 의인화를 “우리를 위한”(for us) 은총, ““객관적” 은총(objective)이라고 표현한 것을 아펜젤러는 “외적인”(external) 은총이라고 아주 유사하게 해석하였다. 그리고 웨슬리가 거듭남을 “우리 안에서”(in us) 일어나는 은총, “주관적”(subjective) 은총이라고 해석한 것을 아펜젤러는 “내적인”(internal) 은총이라고 아주 웨슬리와 유사하게 정리하였다. 그리고 웨슬리처럼 아펜젤러도 의인화와 거듭남은 동시적 사건이면서도 그 은총의 성격상 분리된다(distinct)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웨슬리가 거듭남의 핵심을 하나님의 형상 중에 “도덕적 형상”(moral image)의 회복으로 보았듯이, 아펜젤러도 거듭남의 핵심을 “도덕적 본성”(moral nature)의 갱신과 정화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아펜젤러는 계속해서 “의인화는 우리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relation)에 두는 것이고, 거듭남은 우리 안에(in us) 마음의 새로운 상태(new state of mind)를 두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웨슬리가 의인화는 하나님의 원수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으로 화해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지는 “관계적 변화“(relative change)요, 거듭남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새로운 상태로 우리의 본성을 다시 회복하는 “실제적 변화”(real change)라고 해석하는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이렇게 아담의 타락과 함께 모든 인류에게 유전되어진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고 본래적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도덕적 본성과 형상의 실제적 변화는 성령의 인격적 모습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아펜젤러는 믿었다. 동물과 식물이 그들의 조상을 본받는 것처럼, 성도들도 거룩한 본성을 본받을 때에 성도 속에 거룩한 본성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성도의 불멸의 마음속에, 그리고 마음 위에 역사하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성취됨을 웨슬리는 강조한다.

그리고 웨슬리처럼 아펜젤러는 거듭남의 본성은 주관적 성결(subjective holiness)의 상태라고 해석한다. 성도 속에 주관적으로 성결의 변화를 성령이 일으키심으로 하나님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거룩함을 입는다고 아펜젤러가 강조하는 것은 웨슬리가 벧후 1:4에 근거하여 그토록 강조한 하나님의 본성에로의 주관적 참여(impartation)와 동질의 해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펜젤러가 주관적 성결의 상태를 웨슬리와 유사하게 다음과 해석하고 있다.

거듭남의 본성은 주관적 성결(subjective holiness)의 상태입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것은 영이라고 말할 때 여기서 영적 탄생의

모체는 성령임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는 거룩함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 자신의 형상으로, 즉 그의 도덕적

본성으로(moral nature)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할 때에 이 도덕적

본성을 잃어버렸고, 부패한 본성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거룩함으로(holiness) 다시 갱신되게 되었습니다.

이 본문은 웨슬리가 “거듭남”(New Birth)에서 거듭남의 핵심은 본성적 형상도, 정치적 형상도 아니라, 주로 도덕적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과 아주 유사하다. 이 형상은 하나님의 본성적 형상(natural image)도, 하나님의 정치적 형상(political image)-우주를 통치하고 주관하는-도 아니고 도덕적 형상(moral image)의 회복이 주류를 이룬다. 곧 의로움과 참 거룩함이다(엡 4:24). 아담의 타락 이후 총체적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거듭남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믿고 의인화와 거듭남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고 화목하여 양자 혹은 양녀가 되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성품, 하나님의 성품을 총체적으로 본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때에 부분적으로 타락했던 본성적 형상이나 부분적으로 타락했던 정치적 형상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에 관한 웨슬리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그러면 첫째로, 우리는 왜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까? 이 교리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신생의 근거는 거의 이 세상의 창조만큼이나 심오한 데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 말씀의 설명에 따르면,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과 모습을 본 따서 인간을 창조하자고 하시고’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창 1:26, 27). 즉 하나님 자신의 불멸성의 모습, 곧 본성적인 형상(natural image)을 따라, 뿐만 아니라 이해력과 의지의 자유,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진 영적인 존재로서, 또는 ‘바다의 고기와 땅 위의 만물을 지배하는’ 이 세상의 지배자인 정치적인 형상(political image)으로서, 그 뿐 아니라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의로움과 참 거룩함’(엡 4:24)을 지닌 도덕적인 형상(moral image)으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 속에서 인간이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생명을 전적으로 상실하고,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가지고 있었던 의로움과 거룩함 대신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교만과 아집에 사로잡힌 채 악마의 형상(image of devil)을 지니게 되었고, 관능적 욕구와 정욕 속에서 짐승의 형상(image of beast)을 지니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본성이 전적으로 타락하게 되었다는 점, 바로 이것이 신생의 근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죄 속에서 태어난 인간들이 있는 곳에서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여자로부터 태어난 그런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웨슬리가 모라비안 진젠돌프와 논쟁한 핵심적인 이슈였다. 다시 말해서 진젠돌프는 객관적, 수동적, 순간적 의로움과 거룩함이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us) 주어진다고 보았으나, 웨슬리는 주관적, 본성적, 점진적 의로움과 거룩함이 성도 안에서도(in se) 이루어진다고 해석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웨슬리가 그의 설교 “우리의 의가 되시는 주님”(Lord Our Righteousness)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의인화(義認化)와 의인화(義人化) 혹은 성화의 근거가 됨을 동시에 말하고 있듯이, 아펜젤러도 그리스도의 의가 객관적으로 전가되는 수동적 의만 아니라 주관적으로, 본성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의 곧 의인(義人)으로 변화되는 성화론적 의로움(impartation)의 근거가 됨을 강조한다: “위로자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의는 죄인을 의롭다하시고 또한 성화시키는 의임을 확신시킨다” 계속해서 아펜젤러는 그의 설교 “예정”(Predestination)에서 웨슬리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자신도 웨슬리처럼 성화론적 차원에서도 의로움을 이해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스터 웨슬리는 말합니다: “의인화는 일반적으로 용납받는다

(allowed)는 뜻입니다. 그러나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은 여기서

(롬8: 30) 특별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그들을(부르신 자들을) ‘정의롭고 의로운 사람으로 만드셨다’(he

made them just or righteous)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으로 그들을 본받게 하신다’는 그의 약속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흔히 말해서 그들을 성화시켰다(sanctified

them)는 뜻입니다.

 

이러한 본성적 의로움(imparted righteousness) 곧 의인(義人)이 되는 것, 곧 의로움과 거룩함의 신적 본성을 회복하는(엡4:24) 성화론적 차원을 루터나 칼빈은 약하게 강조하였으나 웨슬리시대의 루터주의자(모라비안)나 칼빈주의자들은 강하게 거부하였다. 그래서 웨슬리와 모라비안 루터주의자들과 심하게 논쟁함으로써(진젠돌프나 몰더 등) 공동으로 시작한 페터레인 신도회(Fetter Lane Society)기 분열되었고, 휘필드를 비롯한 칼빈주의자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웨슬리가 그 구원은 미래의 약속일 뿐 아니라 믿는 그 순간부터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현재적 구원의 축복이라고 “성서적 구원의 길”(The Scriptural Way of Salvation)에서 강조한 것처럼, 아펜젤러도 현재에 축복과 행복과 영생을 누리는 현재적 구원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에 의한 축복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종교는 여기서 우리를 유익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의인화와 거듭남은 양자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그의 설교 “Adoption”에서 해석한다. 웨슬리의 경우 양자됨을 의인화와 거듭남의 표식이라고 해석하는 것처럼, 아펜젤러의 경우에도 이것을 의인화와 거듭남의 결과로 보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의인화를 얻는 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하늘나라를 상속하는 양자됨이 값없이 주어지는 은총으로 이루어짐을 강조하는 점에서도 웨슬리와 똑같다. 그리고 이렇게 양자됨으로 구원의 확증을 얻는 내적․영적 확증(inner, spiritual assurance)의 교리에서도 아펜젤러와 웨슬리는 동일하다. 의인화와 거듭남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처럼, 양자 되는 것도 우리의 공로로 되어지는 것이 전혀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행위로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도저히 양자와 양녀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오직 갈보리산 십자가의 피로, 그리스도의 공로로 양자와 양녀가 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아펜젤러의 해석은 웨슬리의 설교들 “신자의 특권”(The Privilege of Those Who Are Born Out Of God)이나 “노예의 영과 자녀의 영”(The Spirit of Bondage and the Spirit of Adoption)에서 강조하는 양자 됨의 은총과 너무나 비슷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아펜젤러도 웨슬리처럼 “노예의 영”(Spirit of Bondage)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노예의 영을 받은 사람은 영혼 속에 죽음과 죄책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이 남아 있다고 아펜젤러는 강조한다. 또한 “양자의 영”(Spirit of adoption)이란 용어 대신에 “하나님의 영”(Spirit of God)이란 용어를 쓴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두려움을 쫓아내는 완전한 사랑과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양자됨의 특권을 가진다고 해석한다.

  1. 성화(sanctification):

웨슬리에게 있어서 의인화와 거듭남은 구원의 출발(initial salvation)이고, 구원의 완성(final salvation)이 성화(sanctification)와 완전(perfection)이듯이, 아펜젤러에게 있어서도 구원의 출발은 의인화와 거듭남이며, 구원의 완성은 성화와 완전이라고 이해되어진다. 그리고 웨슬리에게 있어서 의인화와 거듭남은 오직 십자가의 은총으로(sola gratia crucis) 거저 주시는 속죄가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 이루어지지만 성화와 완전을 위해서는 믿음만 아니라 선행과 사랑의 실천을 통한 인격과 생활의 성결을 이루는 영적 성숙을 강조하듯이, 아펜젤러도 성화와 완전을 위해서는 선행과 사랑을 통한 인격과 생활의 성결을 이루는 영적 성숙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인가?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인가? 를 묻는다면, 웨슬리나 아펜젤러는 믿음은 구원의 필수조건(의인화와 거듭남)이고, 행함은 구원의 충분조건(성화와 완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회개는 종교의 현관(porch)이요, 믿음은 종교의 문(door)이라면 성화는 종교자체(religion itself)이다. 종교란 구원이란 뜻이기도 하다. 웨슬리의 구원관과 종교관의 핵심이 성화이듯이 아펜젤러에게 있어서도 성화는 구원관과 종교관의 핵심이다. 아펜젤러는 성화를 이루기 위하여 의인화의 순간에 신자들이 행위적 죄들은(actual sins) 사함을 받았으나,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악성(inner sin)에서도 해방되기 위해서는 날마다 성화 되어야함을, 웨슬리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미스터 웨슬리는 “신자들 안에 있는 죄”란 제목으로 설교하였습니다.

“육적인 마음의 잔재”와 “괴로움의 뿌리”를 모두 제거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 밖에서보다는 교회 안에서

더 잘 수행될 수 있습니다.

아펜젤러에게 있어서 교회공동체는 신자들의 성화를 이루는 영적 치유의 병원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일찍이 어거스틴에게서 발상된 사상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믿음으로 자범죄들(actual sins)로부터 해방을 받고 의롭다하심과 거듭남의 구원을 얻은 신자들이라도, 그들의 마음과 육체 속에서 죄악성(inner sin) 곧 죄의 뿌리들이(roots of sin) 그들을 지배하지(control)는 않지만 남아 있어서(remain) 그들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웨슬리에게서도 나타난다. 웨슬리는 행위 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는 순간에 용서함 받고, 내적 죄는 성령의 역사로 성화의 과정에서 성결해짐을 믿는다. 이 내적 죄는 교만, 자기 의지, 분노, 불신앙, 온갖 욕망 등이다. 이 내적 죄는 죄의 뿌리일 뿐 아니라 원죄라고 웨슬리는 이해한다. 행위의 죄들을 (의인화의 순간에) 용서받았다 할지라도 내적 죄악은 계속 성도들에게 남아 있다고 웨슬리는 해석한다. 그러나 죄가 더 이상 성도들을 지배하거나, 다스리거나, 조종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완전의 은혜로 성결함을 받을 때까지 우리 속에 남아있는 내적 죄악의 요소와 투쟁하여야 하고 계속 회개해야 한다. 완전의 은혜는 모든 죄악으로부터 크리스천을 구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롭다 함을 얻는 순간, 모든 말과 행위의 자범죄(actual sins)에서 해방되었고 죄의식(guilt)에서 자유함을 얻었다 할지라도, 거듭나는 순간 내적 죄악성(inner sin, roots of sin, original sin)이 파괴되기 시작함으로 이제는 더 이상 죄의 능력(power of sin)이 나를 지배하지도 않고 다스리지도 않고 컨트롤하지도 않을지라도, 죄악성(inner sin)이 계속 남아서(remain) 내 속에서 나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지 않으면,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지 않으면, 천국을 침노하지 않으면,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손을 굳게 붙들지 아니하면, 항상 내적 죄악성이 다시 자범죄(actual sin)를 저지르도록 실수할 수 있고 심지어 다윗처럼, 가롯 유다처럼, 베드로처럼 타락할 수도 있다고 웨슬리는 경고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화의 모습은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세상 사회 속에서도 나타나야함을 웨슬리처럼 아펜젤러는 강조한다: “우리의 일은 주일날 성소 안에서 뿐 만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사랑과 자비의 실천으로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높이는 것입니다” 특히 아펜젤러는 교회 안에서나 사회 속에서 우리의 사랑이 나타나는 원천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임을 강조한다. 회심한 죄인이 가장 처음으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다.

죄가 제거되고 예수의 피로 씻음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옵니다. 인간은 씨름하는 야곱처럼 부르짖습니다. ‘당신의 사랑!

당신의 사랑! 당신은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나는 나의 마음으로

당신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아침이 다가오고, 그림자들은 사라집니다.

당신은 순수하고 보편적인 사랑이십니다. 당신의 이름과 본성은

사랑이십니다. 새 신자에게 다가오는 위대한 첫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오 얼마나 끝이 없고 얼마나 순수하십니까? 내가 아는 한가지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랑이

나타나지만,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사랑이 나타나지만, 항상 똑같고

복되며 거룩하고 순수한 사랑이 십니다. 죄책의식이 사라지고,

오랫동안 투쟁한 어두움의 세력들이 물러나고 빛이 다가올 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복되고 달콤한 확증이 당신에게 다가왔습니다.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서 우리도 사랑하게 됩니다……………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강하게 더욱 강하게 자라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언도 페하고, 방언도 사라지며, 지식도 없어지지만,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사랑만이 영원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견고한

기초 위에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아는 한가지입니다. 나는 그 사랑의

실재를 압니다. 나는 그 사랑의 능력을 느낍니다………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력가들도, 권세들도, 현재 일이나 미래 일도, 높음이나

깊음도, 그 어떤 피조물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웨슬리가 거듭난 성도들은 성화의 과정에서 믿음과 사랑과 함께 산 소망을 갖고 살아가게 됨을 주장하였듯이, 아펜젤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안에서 영생과 부활의 산 소망을 갖고 살아야함을 강조한다.

 

나는 베드로와 함께 외칩니다. ‘그의 풍성하신 자비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산 소망으로 우리를 낳으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복되시도다.’…죄는 이 소망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소망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산 소망으로

우리를 낳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산 소망은 성결, 정결, 사랑, 지식, 지혜에 있어서 그리스도처럼 완전해 지기를 소망하는 완전성화를 열망하게 하며, 더욱 나아가 영화롭게 영화되어(glorification) 영광의 희망 속에서 안식하게 되는 것으로 발전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자신의 영원한 성장(our own eternal growth)을 열망하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상속할 상속자가 되는 것으로 기뻐하게 된다.

그리고 아펜젤러는 웨슬리처럼 성도들이 하나님의 속성에 동참하는 완전성화를 강하게 확신하였다. 성도가 거듭나고, 의로워지며, 성화됨으로써 하나님의 성결의 동참자(partaker)와 동반자가 된다는 완전성화의 변화(impartation)를 확신한다:

그들은 이제 ‘빛 속에서 성도들의 유산의 참여자들(partakers)이 되었고’

심판자 자신의 말씀을 직접 듣습니다. ‘오라,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태초부터 당신을 위해 준비되어진 왕국을 물려받아라.’ ‘나에게 주신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줍니다’(요 17: 22). “그 분(그리스도)과 함께

우리도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롬8: 17)

 

여기서 그 성화완성의 마지막은 영화임을 말한다. 결국, 선재적 은총, 회개, 의인화, 거듭남, 성화, 완전, 영화 등의 구원의 순서를 웨슬리처럼 강조하는 진정한 웨슬리안(Wesleyan)으로 아펜젤러는 그의 구원론을 정립하였다.

그런데 이 완전성화와 영화를 열망하는 현재적 성화의 과정 속에 이미 하나님나라가 현존함을 아펜젤러는 강조한다. 바로 이 점도 웨슬리의 천국개념과 너무나 유사하다. 아펜젤러는 롬14:17을 해석하면서 의와 평화와 사랑이 현존하면 이미 천국이 우리 속에 내재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하나님나라는 영적인 왕국이다. 그 영적 왕국 안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피조물의 마음과 감정을 통치하고 계십니다…..마음 안에,

우리 안에 그리스도는 그의 보좌를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왕국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사랑으로

가득찬 마음 속에 그의 왕국을 세우십니다.

‘오 능력의 성령이시여 내 안에

오셔서, 내주하십시오

그리고 슬픔, 두려움, 그리고 죄로부터 해방시키셔서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게 하옵소서’

웨슬리는 그의 설교 “영적 예배”(Spiritual Worship)에서 현재에 실현된 천국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할 때 이미 영생은 시작한다. …… 영원한 행복은 시작된다. 영원한 행복은 나타난다. 영혼 속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 …… 우리가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범사에 자라는 동안 내적인 하늘나라는 필연적으로 또한 증가한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할 때 이미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III. 아펜젤러의 사회적 성화와 문화적 성화(웨슬리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1. 사회적 성화(social sanctification):

그는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기공식에서 기도를 하였고, 1987년 8윌 13일 독립협회 기원절 행사에서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의무”란 제목의 연설도 하였다. 1898년 11월 수구파의 탄압으로 수배를 당하게 된 윤치호를 아펜젤러는 당신 집에서 보호해 주기도 하였다. 윤치호를 돌보아 준 것에 대해 아펜젤러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그리고 이승만 등을 숨겨 주고 돌보는 일에 앞장섰는데, 1897년 2월 6일 감옥에 있는 이승만을 도와주었다. 이승만, 서재필 등이 아펜젤러의 사랑과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특히 이승만은 그의 일기에서 아펜젤러를 선생님으로 고백하고 있다. 1898년 서재필이 물러난 독립신문을 윤치호와 함께 편집하였다. 다시 말해서 영어로 독립신문을 번역 출판하였다. 그리고 감리교선교부 출판국이 독립신문을 인쇄하게 하였다. 이것 때문에 감리사 스크랜톤(William Scranton)이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그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아펜젤러는 독립운동가들을 보호하고 도와주었고, 감옥에 갇힌 독립운동가들을 풀어 주기도 하였다. 이것은 웨슬리적 사회성화의 신학적 영향이 표출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의 사회적 성화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 주는 다음과 같은 독립협회와 관련된 언급에서 나타난다.

한국의 독립협회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기독교학교와 교사들에

의해서 양성된 사람들이란 것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우리의

한 젊은이는 신들이나 양반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신앙으로

의식화되었습니다…..또한 이 나라에 있는 총명한 소년들 중

일부는 우리 기독교학교의 학생들이며, 소녀를 위한 단 하나의

학교도 우리 기독교 학교라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가장

애국적인 시민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이란 중요한 사실을 잘

기억하십시오.

감리교회정신에서 세운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가장 애국적인 시민들을 기르고 있고, 그들에 의해 나라의 독립과 나라의 발전이 잘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회적 성화의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젊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한반도 속에 확장되어 가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아펜젤러가 오래 살았더라면 그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다양하고 적극적인 운동을 전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펜젤러가 크리스쳔의 생활과 증거의 사회적 차원을 말하였을지라도, 사회복음(social gospel)운동시대 이전에 살았기에 사회복음을 말하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일어난 사회복음운동은 인간을 원죄를 갖고 태어난 죄인으로 보지 않고, 사회제도만 고치면 지상에 낙원이 이루어진다는 유토피아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아펜젤러는 철저히 죄인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으로 죄사함을 받아야함을 강조하고 지상의 천국만을 믿는 유토피아주의를 또한 반대한다.

바로 이점에서도 웨슬리의 신학적 입장과 대동소이하다. 웨슬리는 철저히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타락한 죄인임을 강조하고, 사회적 성화의 희년운동은 겨자씨 한 알 같이 역사 속에서 자라가지만 지상의 유토피아로만 끝나지 않고 초월적 내세적 하나님나라로 완성되어진다고 확신한다. 웨슬리나 아펜젤러나 사회봉사(social service)나 사회구조적 변혁(social transformation)을 강조하였지만, 지상의 유토피아주의를 믿은 사회복음이나 자유주의 신학적인 요소가 없다. 아펜젤러나 웨슬리의 공통점은 복음이 사회를 혁명화하는 힘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복음의 영향력을 잘 몰랐던 사회를 혁명화하는 힘이 있음을 보여준 사회적 성화운동을 웨슬리나 아펜젤러는 보여 주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웨슬리가 감리교도를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유를 민족을 개혁하기 위함(to reform the nation)이라고 강조하였듯이, 아펜젤러도 감리교선교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더 좋은 한국, 더 완전한 한국이 되기를 열망하였다. 웨슬리가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없는 성결을 모른다고 주장하고, 사회적 기독교 아닌 기독교를 모른다고 강조한 것은 아펜젤러의 다양한 사회적 성화운동 속에서도 나타난다.

웨슬리는 신앙의 본질(essence)은 내면적(inward)이지만 신앙의 증거(evidence)는 사회적(social)이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성화 아닌 성화를 모른다고 말하며 사회적 종교 아닌 기독교를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감리교회는 어떤 새로운 종파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to reform the church), 민족을 개혁하기 위해서(to reform the nation)라고 웨슬리는 힘주어 강조한다. 교회개혁과 민족개혁이 감리교정신이다. 기독교를 은둔자의 종교, 기도하고 명상하는 종교로만 만드는 것은 기독교를 파괴시키는 행위로 본다.

그래서 웨슬리 신학자 Albert Outler는 수직적이고, 내면적인 구원만을 강조하고 개인적 성화만을 강조하는 것은 불건전한 복음주의(Unhealthy Evangelism)이라고 해석하고, 개인적 성화와 사회적․수평적․외향적 성화를 모두 강조하는 것은 건전한 복음주의(Healthy Evangelism)이라고 해석하면서 웨슬리의 사상은 바로 건전한 복음주의라고 풀이한다.

웨슬리의 개인적 성화는 성결적 요소(holistic factor)로써 히브리어 카도쉬( kadosh )와 희랍어 하기오스(αγιοσ)로 표현된다. 곧, 세속성과 죄악성으로부터의 분리(separation)와 성별을 뜻한다. 그것은 외적 행위죄들(actual sins) 뿐 아니라 내적 죄(inner sin)까지도 사함 받는 죄 없음(sinlessness)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둘째로 웨슬리의 사회적 성화는 성육신적 요소(incarnational factor)로써 세속성으로부터 분리된 성별의 힘을 갖고 세속을 찾아가는 성육신의 참여 곧, 사랑의 적극적 행위를 세상 속에서 실천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결은 소극적 성화의 방법이고 사랑은 적극적 성화의 방법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사랑의 에너지로 채워지는 믿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이 산 믿음이다.

  1. 문화적 성화(cultural sanctification):

아펜젤러는 사회적 성화의 정신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이 서구 문명을 받아 들여 더욱 개화된 나라가 되기를 염원하는 문화적 성화에도 크게 관심을 가졌다. 사회적 성화는 사회적․정치적(socio-political)차원을 말한다면, 문화적 성화란 사회, 정치, 경제, 예술, 문화를 모두 포함한 문화의 개화, 문명의 개화를 추구하는 차원을 말한다. 아펜젤러는 기독교선교의 가장 근본적인 관심은 복음화(evangelization) 곧 복음선교를 통하여 한국을 구원하는 것이지만, 2차적 선교의 목적은 한국을 문화적으로 개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기독교신앙은 개인적, 사회적이며, 문화적이고 문명적인 영역에까지 모든 생활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아펜젤러의 저술과 설교에서 강조하였을 뿐 아니라 그는 다양하고 포괄적인 활동들을 통하여 문화적 성화를 성취하려고 생각하였다.

아펜젤러는 의료사업, 교육 등 여러 형태의 문화사업을 통하여 문화적 성화를 이루기를 열망하였다. 그가 배재학당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런 문화적 성화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문화적 근대화를 위해서 근대적인 과학교육을 통해 개화를 가속화시키려고 생각하였다. 그는 한국의 미래를 창조하는 개혁가들(renovators), 한국의 미래를 위한 국가고문들(future counsellors of State)이 많이 배출되기를 희망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웨슬리가 킹스우드 학교(Kingswood School)를 통하여 문화적 성화를 실현하려고 하였던 것과 같다. 특히 아이들을 세상 사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바꾸려면, 일반 교육만 갖고는 부족하고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각성되는 기독교 교육의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그래서 웨슬리는 1748년 킹스우드(Kingswood)에 학교를 세웠다. 그 당시 중산층이 아닌 아이들은 국민 학교 이상을 다닐 수 없었는데 가난한 광부촌 킹스우드에 학교를 세웠다. 킹스우드 학교는 가난한 집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서 교육비를 전혀 부담하지 않게 하였다. ‘새 집’(New House)이란 이름으로 설립되었는데 1749에는 두 개의 탁아소(day school), 소녀들을 위한 고아원도 세워지게 되었다. 이 학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도움을 통한 지혜와 성결에 이르게 함에 있으며 합리적이고 성서적 크리스쳔이 되는 방법으로 훈련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기독교적인 영성수련을 통하여 많은 감리교지도자들을 배출하였다. 좋은 교육은 좋은 기독교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고 웨슬리는 생각하였다.

물론 아펜젤러의 문화적 성화는 미국을 문화적으로 우수한 나라라고 생각하여 미국식 문화를 심어주려는 문화우월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식민지문화를 심으려는 발상이 없었기에 한국인들에게 기독교복음과 미국의 문화는 건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일본의 식민지정책의 의도를 강하게 반대하면서, 미국의 문화는 한국을 식민지화하기보다 한국의 근대화 내지 현대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아펜젤러는 동양문화와 서구문화를 비교하였다. 동양문화는 부모에게 만족하며 과거지향적인 문화라면, 서양문화는 결코 부모에게 만족하지 않고 미래지향적 문화임을 지적하면서, 서양문화, 특히 미국문화를 세계화하는 것이 선교사들의 사명과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1. 아펜젤러 신학사상의 21세기적 의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되었던 금년(2004년) 부활절연합예배 설교자 옥한음 목사(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는 한국교회가 더 이상 양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전도의 문이 막힌 원인이 한국교회 교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작은 예수가 되지 못함에 있다고 정확하고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들은 많으나 예수를 본받는 작은 예수가 되어 가는 성도들은 심히 적은 것이 심각한 문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는 성도들은 많으나 예수처럼 살기 위해 영적으로 성숙해가지 못하고 영적 어린이 상태에 그냥 머물러 있는 성도들이 대부분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쌔들백 교회(Saddleback Church)의 담임목사 릭 워렌(Rick Warren)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이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No.1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그 책에서 워렌 목사는 다음과 같이 21세기 기독교인들의 영적 위기를 지적하였다: “슬프게도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이 나이는 늙어 가고 있지만 영적으로 성숙해 가지 못한다. 그들은 기저귀와 소아용 발싸개를 착용한 채 영구적인 영적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결코 영적으로 성숙하기를 의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적은 역시 옥 목사의 지적과 동일한 것이다. 한국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세계 크리스천들의 가장 큰 영적 위기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영적으로 자라 가는 작은 예수운동의 결여라고 우리는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웨슬리 신학적으로 말할 때 성화(sanctification) 지향적 영성의 부족이라고 우리는 분석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인들과 세계교회교인들이 성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성화를 추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영적 위기요 질병임을 절감한다. 20세기까지의 한국교회 부흥회의 주제는 거듭남이었지 성화가 아니었다. 한국교회 부흥회 포스터마다 거듭남을 부흥회 주제로 써 왔지만 성화라는 주제를 써 놓은 부흥회 포스터를 필자는 본 적이 없다. 이제 21세기에는 부흥회의 주제가 성화가 되어야 한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거듭남”(New Birth)에서 물세례는 육적 세례(physical baptism)로 보았고, 거듭남을 성령세례(spiritual baptism)로 보았다. 그리고 성화는 성령 충만으로 웨슬리는 해석한다. 아펜젤러 역시 이것을 그대로 강조한다. 성령세례는 영적 탄생을 일으키는 일회적 사건이지만,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적 성숙을 위해 계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교인들이 은사 체험적 오순절적(charismatic pentecostal) 체험은 많이 하였으나 인격적 성결(personal holiness)을 추구하는 성화체험은 너무나 부족하다. 더구나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의 성결(holiness of life)은 더욱 부족하다. 지금까지 20세기에 한국교회가 전자를 너무나 많이 강조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21세기는 전자와 후자가 통전적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은사를 체험한 능력 있는 성도들이 예수처럼 생각하고 예수처럼 성품이 변화되어가고 예수처럼 사는 모습을 세속사회 속에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세속 불신자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지만, 예수께서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지만 예수처럼 살지 못하는 성도들을 나는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다. 이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 가는 운동이 절실히 요청된다. 엡 4:12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곧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이르는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온 몸과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알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엡5: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곧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 가는 것이 성화다.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이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성품은 의로움과 거룩함인데 그 하나님의 형상을 입으라는 것이다.

  1. 21세기가 요구하는 의인화와 성화의 총체적 이해:

21세기는 한국교회가 의인화와 성화의 총체적 영성을 추구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기독교인들은 많아졌으나, 행함과 인격의 성숙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어서 전도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웨슬리와 아펜젤러는 구원의 출발(initial salvation)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지만, 구원의 완성(final salvation)은 믿음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웨슬리와 아펜젤러의 구원론의 완성은 성화와 완전 성화다. 그런 의미에서 웨슬리나 아펜젤러가 보여준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통전적인 영성이 필요하다. 수동적이며, 실제적인 변화를 체험하는 영성운동이 필요하다.

 

  1. 21세기가 요구하는 영성수련을 통한 인격적 성숙:

 

21세기는 명상기도 같은 영성수련를 통한 인격적 성숙의 영성에 많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동양종교의 선이나 요가들을 서구인들이 좋아하는 것도 이런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동양종교의 영성을 언급할 필요 없이 웨슬리와 아펜젤러의 영성을 심취하면 그러한 인격적 성숙을 위한 영성수련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영성신학이나 영성수련은 천주교회적 발상이라고 규정짓는 학자들이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천주교 속에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과 거듭남을 체험하는 영적 각성운동이 더욱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거듭나지도 않았는데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난 개신교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는 영적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는 영성수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웨슬리와 아펜젤러가 속회를 통한 영성수련을 강조한 것은 교회사적으로 큰 공헌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가 감리교회 뿐 아니라 장로교회나 성결교회나 모두 웨슬리의 속회를 본받아 구역예배를 드리는데 그 속회의 목적이 바로 영성수련과 인격수련을 통하여 작은 예수가 되는 성화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속회의 목적은 단지 행정적인 조직이나 교인 수만을 증가시키는 양적 성장(growth)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화훈련이라는 질적 성숙(maturity)을 도모하는 목회적이고 신앙적인 동기에 있었다. 모든 속도들은 자신의 영적 상태들을 간증형식으로 고백하고 나눔(sharing)으로써 서로 권면하고, 돌보며, 격려하고, 위로하는 영적 책임의식(accountability)을 가졌다. 이 속회나 구역예배 활동을 통하여 그들의 신앙이 파선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삶을 통해 움직이도록 하는 것, 또한 은혜를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랑의 선행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속도들이나 구역교인들이 공동체를 통해 공동의 성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오늘날 셀 목회나 가정교회 목회의 원형이 바로 아펜젤러가 한국에 소개한 웨슬리 속회임을 알고 그 정신을 21세기에 다시금 살릴 필요가 있다.

  1. 21세기가 요구하는 사회적 성화(social sanctification)운동:

21세기는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종교가 사회적 변혁 및 문화적 변혁의 주체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한국교회들도 이제는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절감하고 있다. 사회복지와 사회구조개혁에 관심을 갖지 않는 기독교는 쇠퇴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웨슬리와 아펜젤러의 성화는 개인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다. 그러한 사회적 성화운동을 오늘 21세기 한국교회가 다시금 본받아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갈 때 선교의 문이 다시 활짝 열릴 것이다.

  1. 4. 21세기가 요구하는 에큐메니칼적 신학형성의 공헌:

1999년 10월 31일에 루터교회와 로마카톨릭교회가 공동발표한 “칭의론에 대한 공동선언”(이하 “공동선언”이라고 표기함)은 칭의, 성화, 믿음, 그리고 선행에 관한 해석에 있어서 아주 웨슬리적이고 아펜젤러적이다. 웨슬리와 아펜젤러가 이미 해석한 믿음과 칭의의 관계, 선행과 성화의 관계를 1999년 공동선언도 표현하고 있다. 공로가 아닌 믿음에 의한 칭의를 강조하면서도 이 25조에서도 믿음은 사랑 안에서 역사함을 강조한다. 행위 없는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 없음을 주장한다. 이 점은 로마 카톨릭적 요소가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하나님의 포도원에 관하여”에서 루터는 신앙의인화에 대하여 강조를 한 반면에 선행에 의한 성화에 무관심하고, 로마천주교회는 선행에 의한 성화에 강조를 한 반면에 신앙에 의한 의인화에 무관심하였다고 비판하면서 감리교도들이 이 둘을 가장 잘 조화시킴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공동선언”은 웨슬리적이다. 그리고 웨슬리나 아펜젤러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하나님의 약속의 명령이기에 선행을 실천할 뿐만 아니라, 인간행위에 대한 자유의지의 책임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책임적 행위는 어디까지나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그런데 “공동선언” 로마 카톨릭적 입장 제38조 마지막 부분에 보면 이러한 웨슬리적, 아펜젤러적 요소를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용납의 의(imputation)와 그리스도 의에의 참여(impartation)는 “공동선언” 제 28조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다. 객관적으로, 법정적으로 전가되는 의로움(objective, forensic and imputed righteousness)을 넘어서서 “공동선언”은 주관적이며 실제로 변화되는 의로움(subjective, real and imparted righteousness)도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루터교회에서 양보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이 양면적 의로움을 강조한 학자가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역시 웨슬리다. 이러한 루터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학적 합의는 트렌트공회의 신학적 심판 이후 처음으로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선언으로서 역사적 의미와 의의를 지닌다. 그런데 아직도 남아 있는 차이점이 극복되려면 성화론을 칭의론과 함께 취급하여야 하며, 칭의론과 성화론을 가장 잘 총제적으로 종합한 웨슬리와 아펜젤러 신학에 근거하여 대화를 계속 추진하여 갈 때 신교와 구교간의 에큐메니칼적 합의를 도출하여 낼 수 있을 것이다.

<나오는 말>

이러한 진정한 웨슬리 복음주의의 전통에 선 선교사 아펜젤러가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한국교회가 웨슬리의 구원론을 제대로 체계적으로 배우고 의식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건전한 신앙과 성숙한 영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한 지도자가 역사 속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가 얼마나 큰 것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다.

한국교회사를 지배해온 신학이 웨슬리적, 아펜젤러적 신학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한국개신교의 경향이 한마디로 신앙지상주의 혹은 신앙제일주의(solafideism)로 치달아 왔다.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의 위대한 프로테스탄트정신이 한국 땅에서는 선행과 사랑을 배제한 율법폐기론적(antinomianism) 신앙지상주의로 발전되어 왔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수동적 객관적 영성만을 강조하여 왔기에 한국교회는 지금 성장을 멈추고 있다.

신앙이 행함으로 이어지는 영성,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라디아5장)이나 ‘행함 있는 산 믿음’(야고보서2장)을 강조하는 영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신앙의 사회화, 신앙의 역사화, 신앙의 문화화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건전한 기독교윤리와 건전한 기독교문화를 만들어 가는 한국교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아펜젤러의 가르침을 한국교회가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성화를 추구하는 한국교회가 될 때, 성숙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으며, 완전성화를 향하여 달려가는 한국교인이 될 때 성숙한 교인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나아가 사회적 성화, 문화적 성화로 발전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신학의 반석은 아펜젤러의 신학사상이다. 그 반석 위에 설 때만이 한국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아름답고 건전하게 발전하고 부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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