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사라왁 선교지 현장조사 및 보고서”입니다.(1989)
-1985년 4월4 일, 선교사로 파송받고(한국감리교선교100주년기념 선교사)
-1988년 8월, “말레이시아” 선교지를 변경하여 쿠알라룸푸르(KL)에 도착한 후
-1989년 동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사라왁” 선교현장 보고서 입니다.
-이 보고서에 의해 “뉴욕베델교회에서 사라왁선교”를 이어간 것입니다.
즉, 선교사 선발은 중부연회에서, 선교사 관리는 제가(쿠알라룸푸르 동남아선교센타)
선교사 후원은 “뉴욕베델교회”에서 전담키로한 것입니다.(에스더선교회 전적헌신 후원)
* 이규석 선교사를 선발하고(중부연회), 2달간 쿠알라룸푸르에서 사라왁으로 파송하였으며,(1989년12월)
뉴욕베델교회에서 선교비 후원 전담하였습니다.(매월 US$1,500. 외 선교활동비 등)
한국감리교는 75주년 기념으로 선교사 파송키로 하고,
80주년 때 1964년에 “김성욱목사”를 선교사로 선발하여,
1965.3.21. 사라왁 선교사로 파송하였으며,
1965.9.17. “선교사 김성욱목사”는 사라왁에 도착하였습니다.
저는 1989년8월에 김성욱선교사의 선교사역 자취를 찿으려 하였습니다.
비록 30년 전에 쓴 보고서이지만, 지금도(2014년) 별로 변한 것은 없습니다.
지금은 활발히 사라왁 선교가 추진되고 있을 뿐 입니다.
*김성욱 선교사는-“80주년 선교사”이고,
*저는(노종해)- “100주년 선교사” 임을 기억하며 마음에 두고 사명을 향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 한국방문을 마치고 선교지로 떠나며(2014.5.23.금)-사라왁 선교 자료, 자취들을 올려 봄니다.
동남아선교센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www.sunkyoro.org)
선교 후원과 참여, 감사드리며 건강하게 사역하겠습니다.
2014.5.22.
선교사 노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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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왁 선교지 현장조사 및 선교보고서
우리 주님의 권능과 인도하심이 목사님과 교회 위에 충만하여 항상 강건하시고 늘 승리하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지난 8월 8일부터 12일까지 사라왁 선교지를 방문하였습니다. 사라왁은 이미 한국 감리교회의 1960년대에 김성욱 목사, 1970년대에 임흥빈 목사님이 선교활동한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방문은 한국교회의 선교가 맥을 잇지 못 하고 끊어진 것을 이으며 새로운 선교의 역사를 이루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임하였습니다. 저의 선교 개념은 Paul사도와 같이 먼저 동족을 구원하고 현지 원주민을 전도하여 구원하는 것입니다 .즉 한인선교는 단순한 한인교회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 선교의 기지가 되고 발판이 된다고 믿습니다. 특히 이슬람국인 말레이시아에서는 한인을 외면하고서는 원주민 선교에 임할 수 없다는 점도 있습니다. 이 점을 유의하여 한인들의 상황도 파악하며 선교의 협력을 타진해 보려 하였습니다. Sarawak방문은 사라왁 주의 수도인 Kuching을 시작으로 Iban족 교회의 중심지가 되는 Sibu와 Brunei와 접경지대에 있으면서 석유산지로 활발히 성장 발전하는 Miri지역을 방문하였습니다. 방문 일정은 8월 8일 Kuching, 8월 9일-11일 Sibu, 8월 12일 Miri입니다. Sarawak을 방문하기 전에 이미 1988년 12월 말레이시아 감리교 총회석에서 사라왁 교회 지도자들과 Iban족 교회 지도자와는 선교에 협력하기로 협의한 상황이므로 이들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준비하였습니다. 또한 사라왁의 신학교인 감리교 신학교 개교 35주년 기념식이 8월 10일에 있었으므로 시기를 맞추어 사라왁 방문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레이시아 감독인 Denise C. Dutten을 찾아가 사라왁 방문을 알렸고 감독님이 Sibu에 전화를 친히 걸어주어 안내받도록 준비하고 출발하였습니다. 한인들의 상황을 파악키 위해 한인회와 교인들에게 문의하여 사라왁 지역의 한인을 소개받았으며, 저희 한인교회 남선교회 회장인 박만석 집사는 당수도(태권도) 사범으로 군경지도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사라왁 지역에 있는 제자들을 소개받아 출발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선교의 조력자들이 될 수 있는 줄 압니다. 이러한 사전 준비를 통해 단신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사라왁에 대해서는 원주민 선교를 기도하며 방문 추진해 왔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출발하였으며 생각보다 더 큰 선교의 가능성과 방향을 찾았고 사명을 불타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라왁은 전체적으로 볼 때 무슬림 지역이 아님을 확인하였습니다. 오히려 무슬림이기를 거부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는 사라왁 원주민들이 말레이인에 대한 다른 인식때문입니다. 즉 사라왁의 주인은 사락왁의 원주민이지 말레이 반도의 말레이인일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점에서 사라왁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종족 이름으로 불려지기를 원하며 그들의 언어와 문화, 전통습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라왁의 원주민은 35개여 종족이 되며 이들을 크게 해변종족과 내지종족으로 구분합니다. 원주민 중 가장 큰 종족인 Iban족은 해변종족에 해당되며 이들은 과거에 “Headcutting”족으로 유명합니다. 이반족은 원주민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종족이며 이외 Kayan족, Kelabit족 등 내지종족도 있습니다. 이러한 종족들은 원시신앙 속에 있으며, 이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개신교는 물론 카톨릭, 성공회 교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원시종교인 수가 40%가 되며 기독교가 30%이고 불교 20%, 무슬림이 10%가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선교는 1960년대에 활발하였으나 1964년 싱가폴교회가 독립하면서 1970년 대 “이슬람화 정책 강화” 등 정치적 관계로 선교사들이 모두 추방당하여 현재 선교사 입국이 거부되며 선교사도 없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교 받은 현지교회가 체계적으로 이어가고 있으며 성장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특별히 사라왁 원주민 중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종족인 이반 족이 개신교이며 특히 감리교인이란 점이 앞으로 원주민 선교 전망을 밝게 해 주는 줄 압니다. 현재 이반 족에는 감리교 연회가 형성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사라왁에는 두 개의 연회가 있는데 다른 하나는 중국인 연회입니다. 중국인 연회는 크고 재정도 풍성한 듯 하며 사라왁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으나 이반 족 교회는 농촌을 중심으로 있기 때문에 심히 연약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순전한 믿음으로 섬기는 교역자들을 많이 만나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쿠칭의 한인들과 식사할 때 이반 젊은 목사도 합석하였습니다. 식사 후 볶음밥 남은 것과 반찬을 비닐 봉지에 싸서 주니 아무말없이 자연스럽게 받아가는 것을 보고 우리 한국 목회자 즉, 나 자신이 얼마나 때묻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우리 같으면 먹다 남은 찌꺼기를 준다고 기분 나빠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8월 9-11일 Sibu에서 주로 이반 목사들과 이반 교회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반 교회 연회장 Tallan Tindit목사의 영접을 받았으며 이반연회본부 직원의 안내를 받아 교회와 신학교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라왁의 목회자들과 이반교회 지도자들이 한국교회 선교사 즉, 김성욱 목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김성욱 목사가 선교하였던 빙땅오(Bintangor)지역까지 방문하였습니다. 이반 연회장이 Bangau Amping 이반 목사를 안내인으로 하여 8월 10일 Bintangor를 배를 타고 직접 방문하였습니다. 강을 타고 가면서 사라왁 주민들의 생활을 볼 수 있었으며 도로보다는 강을 중심으로 생활이 이루어짐도 보았습니다. 사라왁 특유의 긴 나무배, “롱보트”에 노를 젓기도 하고 모터를 달고 가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반 목사에게 물으니 저러한 보트가 선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자동차보다는 보트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보트 한 대 값은 Rm3000로 미화 1200$이 된다고 합니다. Bintangor에 도착하여서 먼저 김성욱 목사가 활동하던 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빙땅오 중심에 중국인 교회가 있었고 옆에는 4층의 감리교 센터 건물도 있었습니다. 또한 유치원과 학교도 있었습니다. 마침 유치원에는 김목사를 기억하는 선생이 있어 어린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김성욱 목사는 중국인 교회에서 선교활동하며 유치원도 세웠고 무엇보다도 이반 족 지역으로 들어가 선교를 시작하여 지금도 평균 45명이 중국인 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확인하니 감사한 심정 금할 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제가 분명히 확인한 점은 선교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선교의 주인은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김성욱 목사님이 머물렀던 집도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어서 이반 족 전통의 Longhouse를 방문하였습니다. 이반 목사와 빙땅오 중국인 교회 목사의 안내로 찾아간 곳은 35km 떨어진 농촌의 롱하우스였는데 이 한 지붕 밑에 35세대가 살고 있는 수용소 같은 집이었습니다. 학교 복도와 같은 마루 가운데는 사람의 해골이 네다섯개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반 목사에게 ‘언제 것이냐’고 물으니 ‘조상때부터 내려오는 것이므로 모른다’고 했습니다. 롱하우스 안에서 기독교인의 가정에는 마치 한국교회가 교우의 가정에 교패를 달 듯 성화를 붙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감동 받았습니다. 어떤 문 앞에는 성화 위에 부적과 같은 것이 붙어 있어서 ‘이것은 무엇입니까’ 물으니, 이반 목사는 ‘가족 중 젊은이는 교회에 나가나 나이든 어른은 교회 나가지 않으므로 전통적인 Animism신앙을 따라 부적을 붙인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안 것은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이반족을 무슬림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레이 정부에서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듯 회유정책을 쓰나 이반 족들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확인한 바로는 롱하우스 전체가 회교로 개종키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선교의 시급함을 깨달았습니다. 원시종교로 남아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회교로 전향케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독교 선교사들을 추방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반족들은 농촌에서 일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매우 초라한 생활을 하고 있 습니다 .주로 후추농장에서 일하며 고무농장 등 막노동 근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라왁의 경제권은 모두 중국인들이 쥐고 있음은 사라왁 도착 즉시 볼 수 있습니다. 도시는 중국인들의 근거지이며 농촌은 원주민들의 근거지입니다 .이들에게 누가 복음 전도의 손을 잡아주고 힘을 주며 함께 선교해 나가겠습니까? 저는 우리를 부르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치 바울 사도가 마케도니아로 부르는 환상을 보았듯이 지금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빙당고에도 중국인교회는 교회건물 뿐 아니라 감리교 건물까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원주민인 이반 교인들은 예배처도 없이 롱하우스 복도에서 예배드리고 있으며 도시의 노동자들은 중국인 교회를 빌려서 드리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반족 목사는 이반교회 설립할 장소도 물색해 놓았으나 재정이 없어 매입치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물색해 놓은 장소를 가보니 큰 길 옆 중국인 교회와 나란히 있는 지점이며 곁에는 천주교회가 서 있는 중간지점이었습니다. 또한 김성욱 목사님이 머물렀다는 집 바로 옆이였습니다. 대지는 5-6백평 돼 보이며 지금은 낡은 가옥이 한 채 있을 뿐입니다. 저는 이곳에 우리 한국교회가 선교의 맥을 잇기 위해서라도 이반교회를 설립해야 한다고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앞으로 이 일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이반 연회장에게도 견적서와 함께 후원요청서를 보내달라 하였습니다.
이반족 교회에 대해서는 이반 교회의 실력자로 연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Jerry Rabbu목사를 만나 이반교회의 현황을 듣고 선교협의 할 수 있었습니다. Rabbu목사와 또 다른 이반 롱하우스를 밤에 방문키도 하였습니다. 롱하우스 한 동에 35세대 정도가 살며 한 세대의 가족 수는 평균 25명이라 했습니다. 제가 찾아간 롱하우스 가정은 가족이 30명이 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롱하우스는 Rabbu목사가 전도한 곳으로 롱하우스 전체가 교인이었고 주일이면 공동마루에서 예배드린다고 했습니다. 제가 계획하고 있던 원주민 전도인 채용에 대해서 의논하니 쾌히 찬성하였습니다 .즉 우리 선교센터에서 현지인을 전도인으로 채용하여 정글 전도케 하고 3개월에 한번씩 보고회와 선교훈련 집회를 갖는 계획이며 전도인에게 매월 미화 200$씩 지원한다는 계획입니다. Rabbu목사는 대찬성이며 전도인을 추천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Sibu에 있는 Methodist Theological School 35주년 기념식에 참여하여 말레이시아와 사라왁 지도적 인사들을 만나 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신학교의 학장은 이반 목사였으며 규모는 작으나 짜임새있는 신학교로 사라왁, 사바의 실제적인 목회자 양성기관임을 알았습니다. 귀족이 배푼 만찬회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동말레이시아는 기독교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려진 곳이란 점입니다. 제가 눈여겨 보고 확인한 것은 주요도시의 교회마다 Guest House를 구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전도인을 양성하는 신학교도 있고 기숙사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점은 한국 선교사가 활용하기에 매우 유용한 점이라 봅니다. 현지 언어도 속히 배울 수 있고 한 곳에 머물면서도 순행선교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호텔을 이용하지 않고 언제든지 머물면서 선교해 나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선교 협력을 현지 지도자들과 협의하였습니다. 사라왁에는 선교를 협력할 우리 한국인들이 있다는 점이 또한 중요합니다. Kuching에는 하경룡 소장(신성기업)님이 계시며 김중권씨(쌍용건설 근무)는 현지인과 결혼하여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쌍용건설의 오상국 소장도 협력해 주실 것입니다. 물론 이들은 교인이 아니지만 우리의 기도와 복음 전도 대상입니다. 하경룡 소장님과 오상국 소장님이 저를 극진히 접대해 주시고 안내하여 주셨습니다. 김중권 씨도 적극적으로 안내하여 주었습니다. 천주교인이라 했으나 선교에 좋은 조력자가 될 줄 압니다. Kuching에는 세계보건기구 한국주재원으로 4년간 근무한 바 있는 장종현 박사(Dr.Chong Chun Hian,중국인)님이 있다고 하여 찾아 뵈었습니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 한국에 근무하면서 서울대학 의대, 카톨릭 의대. 이화여대 의대 등 여러 학교에서 강의도 하신 어른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말레이 국립대학 의대에서 교수하셨으며 현재 Kuching 종합병원도 돌보시면서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계신 분입니다. 당시 신현확 보사부 장관과 서울대 총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한 분인데 한국 선교사라 하니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더욱이 이분은 쿠칭의 영어로 예배드리는 감리교회의 충실한 교인이었습니다. 부인도 경희대 음대 대학원 피아노과를 나오신 분으로 기도회 후 한국 가곡을 부르며 회상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앞으로 한국 선교사가 오면 협력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브루나이와 접경에 있는 Miri에는 원목 목재공장을 경영하시는 이왕섭 사장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1964년부터 Miri에 거주하신 분으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영주권을 받으신 분이요 사업에도 성공한 분입니다. 현재 Miri의 귀족과 일본인과 함께 합작한 원목목재의 거대한 공장을 운영하시는 분입니다. 이 분의 친절한 안내로 미리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미리는 70년 전 Shell회사에 의해 개발된 도시로 양질의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중요지역이며 천연가스도 나와 앞으로 더욱 발전 전망이 있는 곳입니다. 비교적 교육시설도 훌륭하며 천주교와 성공회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입니다. 개신교의 선교도 자유로우며 감리교회가 부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1988년까지 한국 성공회 신부가 선교사로 3년 활동하다 귀국하여 한국 선교사가 없는 지역입니다. 브루나이와 접경지대에 있으므로 Visa에 관해서는 브루나이를 드나들면서 신청하면 될 줄 압니다. 선교지를 방문한 본인의 판단으로써는 선교사가 Miri에 거하면서 Sibu의 Iban족과 연합하여 원주민 선교에 임하며 타종족으로 뻗어나가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사바(Saba)주 지역도 담당하여 사바 주의 수도인 Kota Kinabaru와 Sandakan을 돌봐야 하리라 봅니다. 선교가 더욱 확장된다면 사바 선교사도 파송해야 할 것입니다. 사바 지역은 감리교가 약하고 Basel복음교회가 선교한 지역입니다. 앞으로 선교가 확장되 나가야할 지역입니다. 말레이시아 감리교회에서도 사바 선교에 최근 관심을 가지고 선교에 착수하고 있습니다. 사라왁 현지에서 조사한 바로는 선교사 주택으로 방 세 개인 집 월 임대료가 Rm3-400(미화 140$)입니다. 자동차 기름은 Rm40불(미화 16$)을 넣으면 480km는 넉넉히 갑니다.(프로톤 사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TOYOTA 1.6 승용차는 너무 헐값에 매각되기 쉬우므로 매각치 않고 사용함이 좋을 듯 합니다 .그러나 매월 Rm870(미화 335$)은 매우 큰 지출이 될 것입니다. 생활비로는 적어도 미 700$이 있어야 하며 선교비가 있어야할 줄 압니다. 선교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선교사 비자를 받는 일입니다. 이 일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우선 말레이시아 한인교회 지교회로 신청해 보려 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쉽지 않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사라왁은 비자에 있어서 연방정부의 법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기로 합의하에 연방정부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법은 현지 한국인이나 기독교 기관의 일원으로 비자를 받는 길입니다. 어쨌든 선교사로서 비자받기는 쉽지 않으며 한국기업의 직원으로 비자받아 활동하는 것이 좋으니 이러한 길을 찾아봐야 하리라 봅니다. 현지 기독교에서 선교사 비자 받으려면 우선 한국 기독교인들이 있어 교회를 형성해야 비자가 나올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No Visa 체결이 되어 있으므로 이웃나라 국경을 드나들면서 선교활동을 시작해야 하리라 봅니다. 또 선교여행은 항상 필요한 것이므로 브루나이 선교도 추진해 봐야할 일이라 여겨집니다. 브루나이에는 한국인 교인들이 있으므로 협력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아시아 중에서도 이슬람이 가장 강하고, 동남아시아의 지도적인 국가인 말레이시아 선교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때를 얻던 못 얻든지 전도하라 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앞서서 역사하시고 인도해 주심을 믿고 나가고 있습니다 .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사명 감당할 힘과 능력과 지혜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이 승리하셨으므로 그 뜻 가운데 서서 나가기만 하면 넉넉히 이길 줄 믿습니다.
1989년 8월 20일 말레이시아 선교사 및 한인교회 담임목사 노 종 해. —————————— * 기도편지-1989.12.13. 동 말레이시아로 선교 파송받은 이규석 목사 부부가 이 곳 선교센터에서 두 달간 머물렀으며, 오고 가는 선교사들이 선교센터에 묵거나 쉬고 갑니다. 이 모든 일이 이미 해외선교를 위해 중요한 일을 우리 감리교회가 감당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서기산 총무님과 박순명 중부연회 총무님도 방문해 주시고 묵고 가셨습니다. 특별히 이규석 목사는 사라왁 지역의 원주민인 이반족 연회와 협력하여 원주민 선교를 추진할 것입니다. 지난 12월 8일 선교지로 출발하여 현재 중국연회 교회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있으며, 마땅한 주택을 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감리교 선교사의 정착과 선교활동을 위해 합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라왁은 이미 1960년대에 김성욱 목사님이 활동하셨고, 1970년대에는 임흥빈 목사님이 선교활동을 한 곳입니다. 지금은 사라왁 주정부에서 선교사들을 모두 추방하여 한 분도 없는 형편입니다.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선교되고 설립된 원주민 교회는 건실히 성장하고 있으나 신앙적 지도자와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현재도 외국교회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형편입니다. 앞으로 우리 한국감리교회가 선교의 역사를 이어 재진출하여 원주민 선교에 임할 것입니다. 비자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우리 한국과는 3개월 비자없이 입국이 가능하므로 계속 갱신해가며 선교에 착수하려 합니다. 사라왁 선교를 위해서는 미국의 뉴욕베델교회(박순종 목사 시무,UMC)가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희 선교센터와 직결하여 선교팀을 이루어 나가려고 합니다. 새로이 시작된 선교지 확장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1989.12.13. 기도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