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國父’ 리콴유 자서전 출간… 그가 보는 세계는]
– 중국 강경 외교 경계
“中, 모든 국가를 친구 삼아야 평화 속 발전 ‘화평굴기’ 가능… 시진핑, 만델라급 도량 갖춰”
– 일본 미래 매우 어두워
“내가 日 청년이면 이민 간다”
– 美, 초강대국 지위 약해져도…
“아이패드 같은 창의성 있는 한 美 경제 위세는 쇠퇴 안 한다”
“중국이 전쟁에 휩쓸리면 내부에서 내란과 충돌이 발생해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다시 한번 추락하고, 이번 몰락은 아주 길어질 수 있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리콴유(李光耀·90) 전 총리가 지난 6일 발간된 영문판 자서전 ‘한 남자의 세계관(One Man’s View of the World·사진)’에서 중국의 강경 외교를 경계했다고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와 홍콩 문회보(文匯報) 등이 8일 보도했다. 중국이 화평굴기(和平崛起·평화로운 부상)를 지속하려면 분란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리콴유는 과거 말레이시아 산하 자치정부 시절과 독립 싱가포르를 포함해 총 31년간 총리로 재임했다. 인구 530만명의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세계 수준의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90년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정치 자문역을 맡아 2011년까지 활동했다.
리 전 총리는 이 책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이 내건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지혜로운 해법”이라면서 “중국이 독일이나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20세기 초 독일과 일본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유럽과 아시아 각국 간 권력과 영향력, 자원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고, 이것이 두 차례 세계 대전으로 이어져 결국 두 나라의 기세가 꺾였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은 다른 강국을 따라잡는 데 30~40년의 시간이 필요하며, 강국을 자극하지 않고 모든 국가를 친구로 삼아 현상을 잘 유지하면 중국의 세(勢)가 갈수록 강대해질 수 있다”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중국 내부 문제를 해결할 공간을 확보하고 경제 발전도 지속할 수 있는 길”이라고 밝혔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취임 이후 중국에 대해서는 “내부 도전 과제 해결이 관건이 되는 시기이고, 돌발적인 외부 사건이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면서도 “시 주석이 심사숙고해 침착하게 대응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리 전 총리는 지난 2007년 말 막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진급한 시 주석을 만난 직후, ‘도량이 넓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같은 급(級)의 인물’이라고 평가했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이라고 평가했다. 리 전 총리는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가장 큰 요인은 인구의 급격한 감소”라면서 “일본은 이런 상황에서도 ‘인종의 순수성’을 고집해 다른 대안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민의 문호를 닫고 개방하지 않는 한 일본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면서 “앞으로 10~15년 동안 계속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도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지만, 우리는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내가 만약 영어를 할 줄 아는 일본 젊은이라면, 이민을 택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는 “중국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아이패드 같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있는 한 미국 경제의 위세는 쇠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 전 총리는 그러나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결국 다른 나라와 나눠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중 관계에 대해서는 “양국은 이데올로기 등의 측면에서 첨예한 대립 관계가 아니다”면서 “중국은 미국 시장 진입과 투자, 기술 확보를 위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으며, 미국도 중국을 장기적인 적대국으로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리 전 총리는 자신의 생사관도 드러냈다. 그는 “삶이 죽음보다 좋긴 하지만 누구도 죽음을 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혼수상태에서 오래 병상을 지키는 것보다 빨리 세상을 떠나는 길을 택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이징=최유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