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신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방 동 섭교수
1. 신학의 사중적 패턴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신학의 사중적 패턴(four-fold pattern)의 구조(성서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는 서구 신학이 계몽주의 시대의 학문적 세례를 받아 형성되었으며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엔싸이클로페디아 학문적 경향에서 유래하였다고 본다. 당시 유럽은 철학, 법학, 의학등 각 분야의 전문적 지식을 집대성한 백과사전적 서적을 출판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신학 분야에 있어서도 당시 학자들은 역사를 통해 나타난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을 조직화하고 정리하여 여러 권으로 된 방대한 저서를 출판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저술들은 신학 분야의 교과서, 혹은 참고서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래 신학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된 진리를 연구하는 하나의 실체로 그 안에는 오늘날처럼 세부적으로 나뉘어진 분야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하나의 통일된 실체로서의 신학을 우리는 ‘테올로기아‘(theologia)라고 부른다. ‘테올로기아’는 실천과 이론, 영성과 지성, 선교와 아카데미아가 하나로 통합되어 어디까지가 이론이며 어디까지가 실천인지가 구분이 되지 않는 실천이면서 동시에 이론이고, 이론이면서 동시에 실천인 학문이었다. 따라서 실천 없는 이론만의 신학이나 그 반대로 이론 없는 실천만의 신학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주후 1세기 바울의 신학 이후 통일된 실체로서의 신학은 약 1800년 가까이 유지되다가 18세기 계몽주의 영향으로 핵 분열되면서 두 개의 커다란 분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즉, 하나는 ‘이론으로서의 신학‘(theology as theory)과 다른 하나는 ‘실천으로서의 신학‘(theology as practice)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세속의 모든 학문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본문(text), 역사(history), 사실(truth), 적용(applic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신학자들도 이러한 일반 세속적 학문의 경향을 따라 신학을 나누어 신학의 본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성서신학(text),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교회사(history), 사실을 정리하는 조직신학(truth), 그리고 그런 이론들을 현장에 적용하는 실천신학(application)의 네 개의 분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신학자들은 처음 세 분야를 이론신학, 나머지 적용분야를 실천신학이라고 하였고, 그 이후 신학은 왜곡되면서 때로는 이론만의 신학, 혹은 때로는 실천만의 신학으로 이론과 실천이 너무 갈라져서 하나가 될 수 없는 괴이하고 이상한 모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론과 실천이 철저하게 유리되는 신학의 유형은 1724년 출판된 파프(C. M. Pfaff)의 <신학의 학문적인 역사에 대한 서론> 이라는 책에서 처음 발견된다. 이 책에서 파프(C. M. Pfaff)는 신학을 다섯 개의 분야로 나누었다. 즉 주경신학, 교의신학, 변증신학, 역사신학, 그리고 목회신학으로 나눈 것이다. 이러한 파프(Pfaff)의 오중적 신학 유형은 자유주의 신학의 시조라고 불리우는 독일의 쉴라이어맠허(Friedrich D. Schleiermacher)(1768-1834)에 의해 사중적 패턴의 유형으로 정리되었다. 그는 신학을 주경신학, 교의신학, 역사신학, 그리고 실천신학으로 구분하였고 그 후 이러한 사중적 유형의 신학은 오늘날까지 교회 안에서 정형화된 신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 선교학의 자리 매김
계몽주의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이러한 사중적 유형의 신학 패턴 속에서 선교학은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가? 1장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선교학은 사실상 주후 1세기 교회가 처음으로 신학할 때 이미 신학의 내부 구조 속에 깊게 존재하여 신학과 선교는 서로 구분되지 않는 모습으로 있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가 서서히 선교를 상실해가면서 선교학의 존재는 희미해졌으며, 신학이 계몽주의 세례를 받고 사중적 엔싸이클로페디아로 분해되면서 선교학은 실천신학의 한 분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러한 계몽주의적 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신학분야에 비해 선교학은 비교적 “젊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교학이 걸어온 길
교회 역사를 검토해 보면 선교학이 걸어온 순례의 길은 순탄한 길이 아니었으며 선교학은 때로 그의 위치와 역할에 있어서 심각한 위기를 경험해왔음을 알 수 있다. 선교학자 버카일(J. Verkuyl)이 “선교학이 한 때 신학의 엔싸이클로페디아 안에서 자기 위치를 가지지 못한 때가 있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헤셀그레이브(D. Hesselgrave)는 오랜 신학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유럽이나 북미에서도 선교학에 대한 인식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마이클버스트(Myklebust)는 “하나의 신학 분야로서의 선교학은 학문적 세계에 대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거나 알려져 있을 때에도 학자들에 의해 언제나 올바르게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윌버트 솅크(Wilbert R. Shenk)를 비롯 많은 선교학자들이 선교신학이 걸어온 불안한 여정을 지적하고 있다. 솅크는 “선교신학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이후 학문적 분야에 있어서 확실하지 않은 자리(an uncertain status)에 있어왔다“고 지적한다. 셰어러(James A. Sherer)도 “120년 전 새롭게 등장했던 선교학은 신학 커리큘럼 내에서 아직 안전한 위치를 얻지 못했다“고 하였다. 던스탄(J. L. Dunstan)은 선교학을 심지어 ”길 잃어버린 양“(the lost sheep)이라 부르며 “선교학은 교회사, 신학, 비교 종교학, 종교 교육 각 분야에 흩어져 이리저리 방황하였다“고 표현하였다.
선교학은 실천신학
선교학을 신학이라는 학문의 영역 속에 끌어드린 최초의 신학자는 쉴라이어맠허(Friedrich D. Schleiermacher)(1768-1834)라고 할 수 있으며 그때부터 선교학은 대학 울타리 안에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교학을 실천신학 분야에 포함시켰고, 그 후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큰 이견 없이 쉴라이어맠허의 모델을 따라 선교학을 실천신학 분야에 넣어 다루게 되었다. 쉴라이어맠허가 취급했던 선교학의 문제점은 두 가지 면에서 나타난다.
첫째, 쉴라이어맠허는 선교학을 “개종자를 다루는 이론”으로 규정하였지만, 선교를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는 구속론적 동기로 이해하는데는 실패하였다. 특히 그는 문화적 우월주의에 기초하여 교회의 선교를 비서구적 지역에서의 문화적 책임 (a cultural responsibility)으로 이해하여 그는 선교사들은 어디 가든지 “조국의 법률이나 관습을 지키고 그가 머무는 지역의 더 나은 삶을 기대하여야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 후 많은 서구의 선교사들은 선교 사역과 선교지의 문명화 작업을 혼동하게 되었다.
두 번째, 쉴라이어맠허가 선교를 실천신학에 포함시키게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개신교의 신학 커리큘럼에 있어서 선교학이 변두리 학문으로 (a peripheral part) 고정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 후 쉴라이어맠허를 따라 화란의 칼빈주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1837-1920)는 선교학을 실천신학(the practical discipline) 혹은 목회학 분야(the diaconological group)에서 다루었다. 그는 선교학을 심지어 설교학 (the didactic discipline)에 포함시켰다.
바빙크(J. H. Bavinck)(1895-1964)도 역시 선교학을 실천신학의 분야에 넣는다. 그러나 그는 선교학이 다른 신학 분야와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독립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카이퍼가 선교를 단지 설교학(the didactic)에서 다룬 것을 지양하고 선교학을 “섬김의 학문” (the diaconological group)이라 말한다. 그는 선교를 설교처럼 가르치는 사역이 아니라 섬김을 실천하는 사역이라고 본 것이다.
선교학은 독립적 학문
1864년에는 독일의 라이프지히 선교회(Leipzig Missionary Society)의 설립자였던 칼 그라울(Karl Graul)이 에어랑겐(Erlangen) 대학에서 처음으로 개설된 선교학의 정교수로 임명되었다. 이 것은 선교학이 실천신학의 범주에서 떠나 독자적인 학문의 길을 걷게됨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 일은 계속 유지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선교학이 독립된 학문의 한 분야로 정식으로 등장한 것은 그 보다 훨씬 늦은 시기 19세기말의 일이었다. 이 작업은 독일의 구스타프 바르넼(Gustav Warneck)(1834-1910)의 학문적 노력을 통해 성취되었다.
현대 선교신학의 진정한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바르넼(Gustav Warneck)은 독일의 선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교 문헌 가운데 하나인 <일반 선교 잡지>(Allgemeine Missionszeitschrift)를 발간하여 현대 선교학의 틀을 잡기 시작했으며, 그가 출판했던 복음주의 선교학(Evangelische Missionslehre)은 개신교 선교신학 분야의 최초의 조직적인 전문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저술하였는데, 즉 선교 역사, 선교 이론, 선교 변증학등이다.
특히 1896년 할레(Halle) 대학의 선교신학 정교수로 임명되면서 그는 선교를 신학이라는 학문적 틀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있어 큰 공헌을 세웠다. 마이클버스트(Mykleburst)는 바르넼(Warneck)이 선교학의 교수로 임명된 사건을 가리켜 “선교학이 마침내 신학이라는 학문 내에 하나의 손님이 아니라, 정식 분야로 수립된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버카일(J. Verkuyl)은 바르넼(Warneck)을 “선교학의 개척자“라고 부른다. 바르넼이 무엇보다 선교신학의 발전에 크게 공을 세웠던 점은 선교학의 자리 매김에 있어서 “선교학을 실천신학이라는 분야에 부적절하게 배치시켰던 당시 신학적 토양으로부터 선교학을 해방시키고, 전통적 신학의 학문 영역에 독립적인 역할을 부여했다“는 데 있다.
3. 선교학과 신학과의 관계성
그렇다면 이제 선교학이 신학 엔싸이클로페디아 내에 다른 신학의 분야와는 어떤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관 관계에 대해서 서구 교회와는 달리 한국교회는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일이 많이 부족하였으며 이 분야의 논문이 전무하다 시피 하다. 선교학 신학은 서로 만나서 당연히 관계를 맺고 대화를 통해 상호적 유익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선교학과 신학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관계 방식은 무엇인가?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상관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종속적 관계
위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쉴라이어맠허가 선교학을 실천신학 분야에 포함시킨 이후 선교신학은 자연스럽게 실천신학에 대해 종속적인 관계를 지니게 되었다. 보쉬(David Bosch)는 선교가 신학이라는 학문적 써클에 들어오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신학의 사중적 유형은 너무 신성불가침한 것이어서 선교 사상을 신학 안에 수용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틀을 깨지 않고 다른 방식이나 수단이 필요하였고, 가장 자연스러운 해결책은 이미 존재하는 네 개의 신학 분야의 하나에 선교에 관한 연구를 추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대부분 개신교의 신학 안에서는 아직도 선교학이 자기 고유의 자리를 배당 받지 못하고 여러 다른 신학의 분야, 특히 실천신학의 분야에 편입되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종속하게 되었다.
독립적 관계
선교학을 다른 신학 분야의 관계에 있어서 독립적인 관계로 보는 견해가 있다. 다시 말하면 선교학은 실천신학이나 기타 다른 신학의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독자적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선교신학자 마이클버스트(Olav. G. Myklebust)는 선교학의 독립성(Independence of missiology)을 강하게 주장하는 선교 학자로, 그는 말하기를 만일 “선교학이 다른 신학 분야와 통합된다면 그것이 가져야 할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사를 더듬어보면 거의 대부분 19세기말이나 20세기 초에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는 선교학 교수를 임명하면서 선교학을 독립된 학문 분야로 다루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1867년 스코틀랜드에 에딘버러 대학에서는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 1806-1878)를 선교학 정교수로 임명하여 스코틀랜드 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선교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다루어졌다. 독일에서는 1896년 구스타프 바르넼(Gustav Warneck 1834-1919)이 할레(Halle) 대학에서 선교학 교수로 임명되어 선교학이 독립된 분야로 존재하게 되었다. 또한 바르넼의 지대한 영향으로 1910년에는 캐톨릭 대학에서도 처음으로 뮌스터 대학에 선교학이 독립되어 쉬미들린(Josef Schmidlin)이 정교수로 취임하였다.
통합적 관계
이 입장은 선교학을 분리되어진 독립된 분야로서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그 대신 신학의 전체 분야에서 선교적 차원의 가르침을 부각시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선교학은 별도로 필요치 않고 이미 존재하는 신학의 네 분야에서 선교라는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언뜻 보면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만일 각 분야의 교수들이 교회의 선교나 신학에 있어서 선교적 차원(missionary dimension)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여 선교학적 관심을 가지지 못할 경우 선교학은 다른 신학 분야에 자연스럽게 예속될 가능성이 많다.
독립적이면서도 보완적 관계
보쉬(D. Bosch)도 선교학의 자리 매김에 있어서 전통적인 신학 분야의 한 종속 과목으로 여기거나 완전히 독립적인 분야로 인식하지 않는 제3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필자는 제3의 대안으로 선교학이 다른 신학 분야에 대해서는 독립적이면서도 전체로서의 신학을 발전시키는데는 보완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하비 칸 교수(Harvie Conn)도 “신학과 선교학은 서로 상호 작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선교학이 다른 신학에 대해 보완적인 위치에 서는 방법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선교학은 선교적 입장에서 성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제시하여 성경신학 분야에 보완적 공헌을 시도할 수 있다. 헤셀그레이브(David Hesselgrave)는 “선교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일 뿐 아니라 성경을 명백하면서도 의미 있게 해석하는 원리“라고 하였다. 선교적인 관점에서의 성경해석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적인 계획을 잘 파악하면서 성경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조직신학의 가장 큰 주제 가운데 하나인 교회론은 선교신학적 보완이 많이 필요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선교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선교하므로 존재하고, 선교를 통해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정적이고 본체론적인 교회론도 필요하지만 교회의 또 다른 특성인 선교적 역동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영국의 선교신학자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아니라면 그 것은 전혀 교회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선교학은 교회의 본질을 새롭게 인식시키며 교회 공동체가 지나치게 제도화되거나 화석화되는 위험을 막아주고 생동하는 공동체로 역동성을 간직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선교학은 자신에 대해서는 독립적이면서도 다른 신학 분야에 대해서는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버카일(J. Verkuyl)은 선교학이 다른 신학에 대해서 보완적인(complementary) 관계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선교학은 선교적 가르침을 제창하여 신학의 여러 분야들을 온전케 하여 하나님의 법도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도록 해야한다.“ 월스(A. W. Walls)는 주장하기를 “현대의 신학은 선교학으로 새로워 질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신학은 그 동안의 선교 연구가 가져온 지식, 훈련, 기술, 자료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신학은 선교학적 도움 없이 자기의 기능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4. 21세기 선교학이 나갈 길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 활동을 다루는 선교신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위치에 두고 있는가? 오늘날 한국의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선교신학에 관계된 과목은 신학교 커리큘럼의 변두리에 있거나 장식물과 같이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한 두 과목 배우는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한국의 몇몇 신학교 안에 선교대학원이 설치되면서 선교를 전공하는 지도자를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목회학 석사 과정에서(M. Div.) 선교학이 변두리 과목으로 존재하고 있고,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선교학을 전공하지 않은 교수가 선교학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들은 21세기를 향하여 가는 지도자를 키우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신학교육에서 극복되어야 할 과제이다. 선교학은 어떤 길로 나가야 하는가?
고립된 선교학은 안 된다.
우선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은 선교학이 다른 신학 분야와 고립되어 선교사 후보생이나 선교사만을 위한 학문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선교학 발전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요인 혹은 문제점이라면 선교학이 주로 선교사만을 위한 학문으로 오해되면서 대다수의 학자들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무관심하다는데 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선교학자들의 책임이다. 선교학자들이 다른 신학분야와 깊은 대화를 통해 선교학이 그들에게도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판단하기로는 21세기에 선교학에 무지하면 선교 사역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목회가 불가능하고 교회 존립이 불투명해질 것으로 본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선교학을 잃어버린 신학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동시에 한국교회는 신학을 상실한 선교학을 가르쳐서도 안 된다고 본다. 신학 없는 선교는 단지 인류학이나 지역학, 종교학으로 전락하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선교를 시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학은 신학교 커리큘럼의 중심
미래적으로 교회가 정체현상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역동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선교학은 선택과목이나 변두리 과목이 아니라 신학교 커리큘럼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스코틀랜드의 교회 역사상 첫 선교학 교수로 취임했던 더프는(Alexander Duff) “선교 연구는 신학교 커리큘럼의 변두리가 아니라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선교는 교회의 존재하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앤드류 컥(J. Andrew Kirk)은 모든 신학 교육은 선교적 차원을 자신의 분야에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신학 분야에 언제나 선교적 질문을 던지라.
선교학은 언제나 다른 신학 분야를 향해 선교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즉, 교회 공동체가 선교적 실천이 없는 신학을 추구한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혹은 선교적 활동이 없는 신학을 진정한 의미에서 신학을 하는 것으로 교회 공동체가 수용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적 활동의 감소를 낳는 신학이라면 문제가 있는 신학이기 때문이다. 보쉬는 선교적 실천을 잃어버린 신학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신학이 아니라 차라리 죽은 정통“(dead orthodoxy)이라고 하였다. 하비 칸(Harvie Conn)은 선교에 무관심한 오늘날의 서구 신학을 향해 질타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인류의 2/3가 매일 밤 배고픈 채 잠자리에 들어가는 견디기 힘든 사실 을 오직 선교만이 언급해야 하는가? 매일 굶어 죽어 가고있는 15,000명에 관 하여 동시에 그 죽어 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의 신학은 무엇을 말할 것인 가? 세계 자원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인류의 20%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다 루기 위하여 우리는 신학 교과 과정의 얼마정도를 배치할 것인가?
이것은 한국의 신학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어느 한국 선교사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진솔한 고백을 통해 그동안 한국 신학교육이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선교사의 길에 들어선 후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필자의 마음에 거듭 떠오르 는 당황스러운 질문이 있었다. ‘왜 그 영광스러운 선 교적 메시지를 신학 교육 을 통해 전수 받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서양 선교사를 통해 비로 소 깨닫게 되었는가?’ ‘신학이라는 학문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와 성찰 일진데, 왜 그토록 자명하고 핵심적인 선교 메시지를 신학 교육을 통해 들을 수 없었는가?’ ’왜 신학 교육은 복음적인 열정을 더 뜨겁게 해주거나 선교적 책임감을 더 분명하게 만들어 주기보다는 오히려 깨뜨리거나 모호하게 만드 는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필자는 이러한 문제 제기의 원인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신학이 신학의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교적 특성과 전망을 상실한 모습으로 신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 극복을 위해 선교학은 다른 신학 분야와 부지런히 상호작용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끊임없는 문제 제기를 통해 신학의 여러 분야가 선교적 관점을 회복하도록 도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넷째, 선교를 총체적인 개념으로 가르치라.
신학교에서는 선교 개념을 가르치되 반드시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아직도 우리는 선교를 말할 때 언제나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만 선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선교는 어디든지 비기독교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그 나라를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단지 해외에서 복음 전하는 것만 선교가 아니다. 국경을 넘어 타문화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해외 선교를 담당하는 교회가 자기 교회가 서있는 지역에선 선교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선교학은 단지 해외에 나가는 사역자만을 훈련시키는 과목이 아니다. 선교학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어디 지역에 서있든지 있는 자리에서 선교적 사명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가를 총체적으로 가르치는 학문이다. 왜냐하면 만일 어느 특정지역의 지역교회가 자신이 서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 선교적 몸짓을 잃어버린 채 표류한다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요, 그 주변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결국 제도화, 세속화의 양 조류 가운데 침식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학은 신학교육의 일방성과 폐쇄성을 극복하는데 헌신해야 한다.
오늘날의 신학교는 신학교육의 ‘세계화“(globalization)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신학교육의 세계화는 미래의 신학 교육의 방향이다. 오늘날 세계는 정보 통신망의 확대와 교통 수단의 발전으로 점차 한 가족처럼 가까워지고 연결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교회가 이제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국경을 넘어 서로 의존하고 연결되어진 지구촌 교회로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교회가 더 이상 지역 분파주의나 지역 이기주의와 같은 구 시대의 낡은 개념에 매어 있을 수 없다.
신학교는 이 같은 시대적 요청 앞에서 미래의 지도자들을 어떻게 교육 시켜야 하는가 고민해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의 신학교 협의회(ATS)는 1986년에 가진 제35차 정기모임에서 시의 적절하게 “세계화“(globalization)를 21세기를 향한 신학교육의 주제로 정하고 연구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교학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제 서서히 선교학은 신학 교육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돌아와서 신학교 교육이 때로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고 볼 수 있는 지역주의, 혹은 개 교회 중심적인 이기주와 같은 교회의 일방성이나 폐쇄성을 극복하는데 있어 역할 수행을 감당해야한다. 선교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신학교육의 세계화를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특정한 지역에서 섬김의 사역을 수행하면서도 세계를 향한 비젼을 동시에 소유한 미래의 지도자로 키우는데 헌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