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中東… 왜 이러나
① 해묵은 종교 갈등
이집트 세속정권에 도전해온 무슬림형제단
첫 집권했지만 쿠데타로 실각하자 유혈 투쟁
시아파 이란, 시리아정권 지원… 수니파 맹주 사우디는 반군 편
중동이 불타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지난 14~17일 군부가 쿠데타 반대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1000여명이 사망했다. 시리아에선 21일 정부군이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반군 거점인 구타 지역을 화학무기로 공격해 1300여명이 숨졌다고 반군 측이 주장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예멘 등에서도 테러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속주의와 이슬람의 대결
이집트 사태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대결로 압축된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현실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는 쪽이 이슬람주의 세력이다. 이집트에서 발족한 무슬림형제단은 회원과 지지 세력이 500만~1000만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이슬람주의 단체다. 반대로 세속주의 세력은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집트 군부는 세속주의를 대표한다. 이런 대결 구도는 알제리, 튀니지, 터키 등 다른 지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1953년 이집트 공화국 수립 이후 2011년까지 정권을 잡은 군부는 정교(政敎) 분리를 지향해 왔다.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과는 1979년 평화협정을 맺었다. 미국과는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 같은 정치노선을 반(反)이슬람적 행위로 규정하며 세속주의 군부 정권에 줄곧 도전해 왔다.
무슬림형제단은 지난해 6월 시민의 힘을 통해 처음으로 집권에 성공했지만 군부 쿠데타로 ‘1년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니파 대 시아파 충돌
시리아 내전도 당초엔 세속주의 대 이슬람이라는 구도로 시작됐다. 1971년부터 집권 중인 ‘알아사드’ 가문은 세속주의인 사회주의 노선을 취했다. 그러나 1954년 이후 시리아에 들어온 무슬림형제단은 국민 기층에서 이슬람주의를 확산시켰다. 무슬림형제단은 1982년 하마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2011년 아랍의 봄 발발 이후 가장 먼저 반군 거점 도시가 된 곳도 하마와 홈스였다.
시리아 내전은 2년 5개월간 지속되면서 ‘수니파 대 시아파’라는 종파 대결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632년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수니파와 시아파는 후계자 선정 문제를 놓고 갈라져 1400여년간 갈등을 빚고 있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레바논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는 알라위파(시아파 분파)인 알아사드를 지원하고 있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터키 등은 수니파 반군을 지원한다. 시리아 내전이 이웃 이라크로 번지면서 종파 간 유혈 충돌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② 미국 영향력 축소
美, 中東예산 깎고 軍철수… 해결사 역할 못해
중동 지역의 정치 불안정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 국방 예산을 줄이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면서 중동 지역의 분쟁 억지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국가별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2014년 예산안에서 팔레스타인·요르단·이집트·이라크에 대한 지원 예산을 동결하거나 삭감했다. 게다가 미국은 2011년부터 외교 정책의 중심축을 중동에서 아시아로 서서히 옮기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동에서는 ‘살짝 발 담그기(light footprint)’ 전략을 취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지난달 3일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것에 대해서는 ‘쿠데타’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시리아에서 많은 아이가 죽고, 리비아에서 지난해 9월 미국 대사가 테러로 숨지는 상황에서 만약 부시 행정부였다면 군사 개입을 했을 것”이라며 “미국이 개입을 주저하는 사이에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알카에다 세력 확대를 도와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 반군에 제공한 무기가 알카에다 손에 들어가 테러 세력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알카에다와 연계 세력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시리아·이라크·리비아·소말리아·예멘·알제리·말리·나이지리아 등 중동·북아프리카 전역에 퍼져 있다. 이들은 시리아 내전, 이라크 유혈 충돌, 리비아 벵가지 미국영사관 테러, 알제리 천연가스전 인질극 등 굵직한 사건에 모두 관여했다.
③ 고질적인 경제난
富의 편중, 高물가 高실업… 청년층 울분 폭발
중동 사태 배경에는 종교 갈등과 더불어 높은 청년 실업률과 부(富)의 불균형 등 경제 문제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치열한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는 집권층인 알라위파가 경제적 이권과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각 지방에 퍼져 있는 수니파, 쿠르드족 등의 서민들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할 기회를 거의 잡기 힘든 실정이다. 이들은 인구 15% 미만인 알라위파 자녀들이 해외 유학, 국영 기업에 손쉽게 취업하는 모습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내전 발발 직전인 2010년 말 실업률은 20%에 달했다. 정부군이 비폭력으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어린아이까지 고문하는 상황에 이르자 젊은이들은 무장 투쟁을 시작했다. 시리아는 전체 인구의 35세 이하 비율이 65%를 차지할 정도로 젊은층이 매우 두껍다.
이집트 사태는 경제적 요인의 비중이 더 크다.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6월 민주 선거로 당선돼 큰 기대를 모았다. 국민은 시민혁명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지난달 3일 축출될 때까지 무르시는 줄곧 “경제난 해소는커녕 더욱 악화시키는 무능력한 지도자”란 비판을 받았다. 2011년 3%였던 물가 상승률은 무르시가 쿠데타로 축출될 무렵 18%까지 치솟았다. 정부 부채는 300억달러에서 2년 만에 400억달러로 늘었다. 이집트 통계청(CAMPAS)에 따르면 15~29세 실업률은 77%를 넘어섰다.
[김강한 기자] [노석조 기자]